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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근무한 직원이 죽었는데 조문은 커녕 조화조차 안보내”

입력 : 2010-09-28 09:59:51 수정 : 2010-09-28 09: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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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통 유증기 폭발 사고로 숨진 50代 노동자 유족들 눈물의 하소연 “회사 측은 위험물 관리자가 따로 있는데 남편이 왜 위험한 통을 가져다가 작업해서 사고를 당했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1600도 용광로에 빠져 숨진 노동자가 왜 안전줄을 매지 않고 일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27일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한모(48·여)씨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한씨의 남편 허모(51)씨는 지난 7일 오후 2시50분쯤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문구류 제작업체인 S사 공장에서 갑작스런 폭발사고로 사망했다. 20일이 지난 지금껏 허씨의 시신은 차가운 병원 안치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유족과 회사 간의 책임 공방, 보상금을 둘러싼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은 탓이다.

한씨는 “10여년을 근무했는데 조문은커녕 화환 하나 없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반면 이 회사 장모 상무는 “충분히 성의를 보였다. 결국 돈 문제인데 법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20대 노동자가 용광로 쇳물에 빠져 숨진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가운데 우리나라는 하루 평균 260여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해 ‘사고공화국’이란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S사 시설물 관리담당인 허씨는 ‘메탄올’을 보관하던 빈 드럼통을 절삭기로 자르려다가 통 안에 남아 있던 유증기가 폭발하면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S사 시설물 관리 담당자인 허씨가 빈 드럼통을 왜 자르려 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위험물질이 들어 있던 빈 드럼통을 규정대로 관리하지 못한 회사 측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현장을 살펴본 경찰과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정확한 작업 경위 등은 조사 중”이라면서도 “메탄올은 산업안전에 관한 규칙 등에 의해 위험물로 규정돼 있어 빈 통이더라도 제한구역에 보관해야 하는데, 허씨와 업체 모두 안전기준을 위반한 정황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지난 6월부터 45일간 예년 평균의 10배가 넘는 1만여개 사업장을 상대로 특별 현장점검을 벌인 적이 있는데, S사도 당시 점검을 받았다. 정부 점검이 이뤄진 지 두 달 남짓 된 사업장에서 극히 원시적인 사고가 터진 셈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05년 8만5411명이던 국내 산업재해 인원은 2007년 9만147명으로 9만명대를 처음 돌파한 것을 비롯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올 들어 상반기에만 4만8066건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92년 이후 18년 만에 10만건을 돌파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2008년 산재 사망자 1246명을 기준으로 산업재해 원인은 ‘추락’이 408명(32.7%)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충돌·접촉 286명(23.0%), 낙하·비래(날아옴) 106명(8.5%), 협착·감김 96명(7.7%), 화재·폭발 95명(7.6%) 등 순이었다.

산업재해로 가장을 잃은 가정은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절대책이 더욱 절실하다. 한씨도 9살, 12살 난 두 딸을 키울 막막함에 몸부림치고 있다. 일자리와 새 보금자리 등 여성 혼자 준비하기엔 벅찬 일들뿐이다. 한씨는 “다니던 교회의 배려로 부속건물에 살고 있는데 내달 말까지 방을 비워 주기로 했다”면서 한숨만 내쉬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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