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피서지로는 대개 해수욕장을 생각하지만, 늦더위를 잊는 데는 계곡이 조금 더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제주에도 계곡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지만, 한라산 자락 곳곳에는 기묘한 형상의 바위와 들여다보기만 해도 더위가 달아나는 짙푸른 소(沼)가 숨겨져 있다. 제주의 계곡은 비 올 때가 아니면 말라 있는 건천이 많지만, 지하에 불투수층 암반이 깔려 있는 몇몇 지역에서 땅속을 흐르던 물이 솟아올라 계곡에 사철 맑은 물을 흘려 보내는 것이다. 제주 현지인들의 소개를 받아 몇몇 계곡과 협곡을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부분 오랜 시간 물이 흐르며 깎아내려 빚어진 뭍의 계곡과는 달리 한라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거칠게 할퀴고 지나가며 생성된 제주의 계곡은 독특한 형상이다. 원시림이 하늘을 뒤덮어 만든 짙은 그늘과 어울려 이 계곡들은 신비스러운 분위기까지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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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자락 돈내코 계곡의 원앙폭포는 제주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피서지다. 젊은이들은 짙푸른 소(沼)를 헤엄쳐 건너가 얼음물같이 차가운 폭포수 아래서 늦더위를 잊는다. |
돈내코는 제주 사람들이 여름철 가장 즐겨 찾는 계곡으로, 한라산 남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도의 계곡 중 육지의 계곡과 가장 비슷한 풍모를 지닌 곳이다. ‘돈내코’란 멧돼지가 많이 내려오는 곳(돗드르)에 흐르는 냇물의 입구란 뜻이다.
돈내코 계곡 주변은 한낮에도 어둑어둑할 정도로 원시림이 뒤덮고 있다. 골짜기를 따라 나무데크 산책로가 설치돼 있고, 초입에서 오른쪽으로 10분 정도 천천히 걸으면 산책로 끝에 원앙폭포라는 한 쌍의 폭포가 있다. 폭포 아래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시퍼런 소가 자리하고 있다. 폭포와 소의 한기가 몰려와 주변 바위에 걸터앉아 있어도 더위를 잊을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아예 소로 들어가 수영을 즐기는 사람도 여럿이다. “얼음물이야, 얼음물”이라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 퍼져 간다. 초입에서 왼쪽 산책로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가면, 둥글둥글한 바위에 걸터앉아 계류에 발도 담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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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소깍은 용암이 바다와 만나 빚어진 기암괴석이 깊은 협곡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
하효마을 효돈천의 끝자락에 자리한 쇠소깍은 지난해 6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78호로 지정됐다. 돈내코의 하류인 효돈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용암이 굳은 기암괴석이 깊은 협곡을 형성하고 있으며, 여기에 푸른 물빛의 소와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져 있다. 쇠소깍이라는 독특한 명칭은 ‘쇠소(깊은 못)’와 ‘깍(하천의 하구, 바다와 만나는 곳)’의 합성어다. 이곳은 올레 6코스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협곡을 따라 해변까지 나무 데크가 설치돼 산책하며 기기묘묘한 바위를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도 훌륭하다. 협곡 바로 앞은 검은 모래 해변이어서, 이곳에서 해수욕을 겸하는 관광객도 많다. 소에서 투명 카악과 제주도 전통 뗏목인 테우도 즐길 수 있다.
인간의 모든 근심이 없어진다는 무수천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의 무수천 역시 쇠소깍과 마찬가지로 화산이 분출하면서 용암이 흘러간 자리가 그대로 협곡이 돼 버린 곳이다. 무수천이란 이름을 두고 물이 없는 마른 하천을 뜻하는 무수(無水)라 생각하기 쉽지만, ‘없을 무(無)’에 ‘근심 수(愁)’ 자를 쓴다. 협곡의 경관이 워낙 빼어나 이곳에 들면 근심이 없어진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평지가 푹 꺼지며 좌우에 수직절벽이 생기고 그 사이로 들이친 용암이 굳었고, 다시 오랜 시간 한라산의 물이 흘러 형성된 이곳은 현무암과 화강암이 뒤엉켜 기묘한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다. ‘무수천 8경’을 선정할 정도로 제주 사람들이 오랜 세월 아껴온 비경이다. 계곡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 작은 폭포와 맑은 소가 이어진다. 상류는 까마득한 절벽이어서 전망을 즐기는 것에 만족해야 하지만, 하류에서는 계곡 아래로 내려가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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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들면 근심이 없어질 정도로 풍광이 훌륭한 무수천은 오랜 시간 제주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계곡 자체의 아름다움으로만 치면 가장 먼저 소개했어야 했지만, 네 번째로 이름을 올린 이유가 있다. 절벽이 붕괴 위험이 있어 계곡 앞쪽으로는 출입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안덕계곡은 계곡 양쪽으로 수직 절벽이 병풍처럼 둘려 있고, 그 아래로 맑고 차가운 물이 흐른다. 후박나무·조록나무 등 난대성 상록수림이 울창한 원시림을 이루고 있고 솔잎난·고란초 등 300여종의 희귀식물이 자생해 천연기념물 제377호로 지정됐다. 올레 9코스가 이곳을 지난다. 제주에서 가장 멋진 계곡으로 꼽히지만, 몇 해 전부터 입구의 높이 12∼13m, 길이 30m 규모의 주상절리대가 붕괴 위험이 있어 현재는 뒤편으로 돌아 들어가서 계곡의 뒷모습만 볼 수 있다.
나무 계단을 내려가 계곡으로 들어서는 순간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태고의 신비감이 도는 계곡은 세상과 단절된 듯한 깊은 정적이 감돈다. 무릉도원이 실제로 있다면 아마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제주=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 여행정보
렌터카를 이용한다면 내비게이션을 통해 모든 계곡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제주 대중교통 문의는 (064)728-3212로 하면 된다. 쇠소깍 주변에는 주차장과 음식점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무수천에서는 무수천 안내판이 있는 사거리에서 좁은 길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야 협곡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안덕계곡 앞에는 뒤쪽 산책로로 돌아가는 약도가 그려져 있다. 계곡 뒤쪽으로 돌아가 안덕면장 명의의 안내문이 있는 곳에서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된다. 돈내코 계곡 건너편에는 야영장도 들어서 있다. 쇠소깍 투명카약은 비가 오는 등 날씨가 궂은 날에는 운행하지 않는다. 여름철에는 오후 7시까지 운행하며, 사람들이 워낙 많이 몰려 오전 10시30분까지는 도착해야 예약번호를 받을 수 있다. 투명카약 예약 전화번호는 760-4626
렌터카를 이용한다면 내비게이션을 통해 모든 계곡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제주 대중교통 문의는 (064)728-3212로 하면 된다. 쇠소깍 주변에는 주차장과 음식점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무수천에서는 무수천 안내판이 있는 사거리에서 좁은 길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야 협곡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안덕계곡 앞에는 뒤쪽 산책로로 돌아가는 약도가 그려져 있다. 계곡 뒤쪽으로 돌아가 안덕면장 명의의 안내문이 있는 곳에서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된다. 돈내코 계곡 건너편에는 야영장도 들어서 있다. 쇠소깍 투명카약은 비가 오는 등 날씨가 궂은 날에는 운행하지 않는다. 여름철에는 오후 7시까지 운행하며, 사람들이 워낙 많이 몰려 오전 10시30분까지는 도착해야 예약번호를 받을 수 있다. 투명카약 예약 전화번호는 760-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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