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57〉 기억의 공간

입력 : 2012-06-26 18:20:03 수정 : 2012-06-26 18:20:0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전쟁기념물의 상식의 틀을 깨뜨린 美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는
특별한 장식 없이도 폭력과 상처의 기억을 치유하도록 이끈다.
요즘엔 사진과 동영상이 강력한 기억의 도구로 자리잡아…
#기억, 대상의 영속성과 사고의 연속성

내가 알기로 가장 우스운 집의 이름이 바로 ‘전쟁기념관’이 아닌가 한다. 기념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가 뜻깊은 무언가를 마음속에 간직한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관용적으로 기념이란 말은 기쁘거나 축하할 만한 무언가를 기록하고 보존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전쟁이란 인간에게 가장 슬픈 기억이다. 뜻이 맞지 않은 집단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혹은 감정적인 골을 메우지 못해 무력으로 충돌하여 많은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인간에 의한 가장 강력한 재앙이다. 그것을 방지하거나 예방하는 게 아니라 ‘기념한다’는 것은 웃기고 어이없는 말이다. 만일 우리가 전쟁을 기억해야 한다면, 결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로 인한 희생과 고통을 추모하고 기록하는, 혹은 유물을 보존한다는 취지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기억’은 우리 두뇌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특정한 형태로 저장했다가 필요에 따라 재생하거나 재구성하는 기능을 말한다. 인간 기억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아주 어릴 때, 심지어 젖먹이 때 어머니 품에 안겨 있던 기억까지 간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로 며칠 전의 일도 선명히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기억의 유효기간에 절대적 기준이란 없다.

‘대상의 영속성(object permanence)’이라는 개념이 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눈앞에 있는 것만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아에게 어떤 물건을 보여주면 그 아이는 눈에 보이는 사물에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종이 한 장으로 가리면, 바로 눈앞에 있더라도 곧바로 그 사물의 존재를 잊어버린다. 그리고 눈앞의 장애물을 치우면 바로 아까의 관심이 다시 이어지고, 그 사물은 아이에게 존재를 인정받게 된다.

스위스의 철학자이자 발달심리학자인 장 피아제(1896∼1980)에 따르면 ‘대상의 영속성’은 인지발달과정의 네 단계 중 첫 번째 단계인 출생 직후부터 2세까지의 기간인 ‘감각운동기’에 습득되는 감각이다. 눈앞에 보이는 사물이 영속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사고의 연속성이 필요하고, 사고의 연속성은 기억이라는 두뇌의 작용이 필요하다.

“나는 나무 그늘 아래 유모차에 누워 있다. 화창하고 따뜻한 여름날, 하늘은 푸르다. 황금빛 햇살이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비치고 있다. 유모차 덮개는 젖혀져 있다. 나는 그 눈부신 아름다움에 막 눈을 뜨고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나무의 잎사귀와 꽃들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을 바라본다. 모든 것이 온통 경이롭고, 다채롭고, 찬란하다.”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은 두 살 무렵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그의 표현에 의하면 ‘내적 사건’의 체험으로부터 인간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여러 가지 정신의 신비를 파헤쳤다. 그는 인간은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기억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마들렌 과자를 입에 무는 순간 옛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의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치 중세의 세밀화처럼 찬찬하고도 꼼꼼하게, 기복도 없고 반전도 없이 펼쳐진다. 스웨터가 올이 풀려 해체되는 것의 역순으로 실들이 차근차근 엮이며 하나의 거대한 인상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그 인상을 완성하기까지 엄청난 인내와 시간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프루스트는 인간이란 시간의 흐름과 그에 따른 망각의 엄청난 파괴력 앞에 무기력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파괴자들로부터 견딜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기억뿐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워싱턴의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 상징적인 장식은 아무것도 없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폭력과 상처의 기억을 치유하도록 이끄는 감동적인 조형물이다.
#기억의 집


인간은 기억을 한다. 그리고 기억은 인간 존재의 연속성과 영속성, 정체성을 담보해 준다. 기억을 위해 인간은 그림과 기호를 만들고, 그 기호는 문자가 되고 문화가 된다. 인간은 문화라는 큰 용기 안에 기억을 담아 놓는다. 말하자면 문화는 하나의 타임캡슐과 같은 것인데, 그것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근본적이고 영속적인 도구다.

문자의 발명으로 인간은 역사를 갖게 된다. 요즘은 사진과 동영상이 더욱 강력한 기억의 도구로 군림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억하기 위해 역사를 기록한다. 그런데 그 역사라는 것에는 왜곡의 가능성이 너무도 많다. 왜곡된 역사는 사실을 파괴하는 것이다. 역사는 굵고 연속적인 선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 굵은 선에는 군데군데 왜곡과 불연속적인 단절이 숨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중간 중간의 단절을 뛰어넘으며, 역사적 상상력과 기억의 힘으로 극복하며, 한없이 진실에 가까운 무언가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기억의 집들을 짓는다.

가령 폴란드 출신의 유태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한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은 유대인이 받은 고통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지그재그 선처럼 보이는 형태 안에 연속의 계단, 추방과 이주의 정원, 홀로코스트 공간 등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수많은 유대인의 유물이 진열된 이 박물관은 가장 풍부한 상징이 담긴 기억의 집으로 손꼽힌다.

영어의 ‘메모리얼(memorial)’이라는 단어에는 ‘기념비’ ‘기념비적인 것’ 외에도 ‘추도’라는 복합적 의미가 함께 들어 있다. 일본 나가사키 원자폭탄 희생자를 위한 평화 메모리얼,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월드트레이드센터 메모리얼 등 전 세계에는 인류가 거쳐 온 고통과 슬픔들이 담긴 수많은 기억의 집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 워싱턴에 있는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Vietnam Veterans Memorial)’는 조금 특별하다. 기념비라고 하면 대부분 하늘로 높이 솟은 조형물이나 엄숙한 형태의 무거운 공간을 생각하는데, 이 기념비는 높지도 크지도 않고, 심지어는 땅 속으로 걸어 내려가야만 보인다.

백악관과 의회, 수많은 박물관과 기념탑, 기념관이 있는 미국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 미국 재향군인회가 베트남전을 기억하는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설계안을 공모한 것은 1980년의 일이다. 여러 의미에서 실패한 전쟁인 베트남전이 끝난 지 불과 5년 만이었기에 논란이 컸다. 그래서 묵상적일 것, 주변 조경과 조화를 이룰 것, 죽은 병사들의 이름이 들어갈 것, 비정치적일 것 등 몇 가지 특별한 설계조건이 붙었다. 1981년 건축가·조각가·조경가 등 8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1421점의 응모작 중 당시 스무 살이 갓 넘은, 심지어 미국인도 아닌 중국인 예일대 대학원생이었던 마야 린(Maya Lin·1959∼)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약 70m 길이에 125도 각도로 이루어진 V자형의 두 벽은 미국의 링컨 메모리얼과 워싱턴 기념탑 사이의 정원에 세워져 있다. 지면으로부터 3m 정도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두 개의 직삼각형 벽은 거울처럼 매끈한 검은 화강석으로 이루어졌고, 그 위에는 월남전에서 죽거나 실종된 5만7939명의 이름이 연도별로 새겨져 있다. 사람들은 그 이름을 읽거나 어루만지며 희생자들을 기억하게 된다. 땅속으로 파고들어간 형상 때문에 멀리서는 보이지 않고, 그저 잘라진 지면 아래 벽을 따라 내려갔다가 올라올 뿐인 설계안은 “너무 여성적이다” “패배를 상징한다” 등 부정적 의견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기념물의 상식적 틀을 깨뜨린, 아무런 상징적인 장식 없이도 사람들로 하여금 폭력과 상처의 기억을 치유하도록 이끄는 가장 감동적인 조형의 방식으로 다가온다.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은 일본이 전쟁에 미쳐 날뛸 때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희생당한 여성들에 대한 기억을 담은 공간이자 우리 역사의 가장 아픈 곳에 대한 기억을 담은 집이다.
#땀의 건축


홍익대 근처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고 성산동 근처에도 자주 갔었지만, 정작 성미산이란 산은 ‘어딘가 있겠지’ 또는 막연히 ‘성산동 어느 끝에나 있겠지’ 하면서 한 번도 알아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성미산을 지키자는 운동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비로소 그 산을 막연한 이름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어떤 장소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산에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마치 남산이나 북한산처럼 ‘여기서부터’라는 경계가 명확한 곳일 거라고 짐작했을 뿐이다. 그런데 정작 그 산은 내가 대학 다닐 때 기거했던 곳에서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언덕들이었다. 나는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여태껏 그 산에 한 번 가보겠다는 생각만 하고 살았었다.

성미산 어느 구석에 검은 전벽돌로 몸을 휘감은 박물관이 하나 생겼다기에 찾아갔다.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명사 네 개가 나란히 모두 동등하게, 하나도 의미를 굽히지 않은 채 의연하게 버티고 있는 아주 특이한 느낌을 주는 이름의 작은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일본이 전쟁에 미쳐 날뛸 때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희생당한 여성들에 대한 기억을 담은 공간이었다. 우리 사회가 알고 싶어하지 않고 그 고통을 짐짓 외면한 채 방치해 놓았던 우리 역사의 가장 아픈 곳에 대한 기억을 담은 공간이다.

근처 커피숍 앞에 차를 가까스로 세워 놓고 성미산 언덕이 시작되는 곳으로 난 골목을 한참 걸어 들어가니, 고만고만한 집들이 모여 있는 평범한 주택가에 까만 벽돌이 성벽의 아랫도리처럼 휘둘러져 있는 곳이 나왔다. 그 박물관은 기단에서부터 시작해서 몸 전체를 검은 벽돌로 한 땀 한 땀 쌓아올린 집이었다.

‘땀’이란 말에는 몇 가지의 의미가 있다. 그 하나는 바느질 자국, 한번 뚫고 지나간 짧은 궤적 등을 말한다. 또 하나는 사람이나 혹은 동물의 몸에서 나오는, 대부분은 물이며 소금기를 조금 품은 액체 또는 힘든 일의 상징, 노력의 상징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 집은 ‘땀의 건축’이었다. 어렵사리 벽돌을 한 장 한 장 포개 놓은 곳이고 사람들의 정성이 한 켜 한 켜 쌓인 곳이며, 오랜 고생과 말할 수 없는 고난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집이었다. 현상설계를 통해 당선된 장영철·전숙희(와이즈건축) 두 건축가는 그렇게 애달프게 모이고 쌓여온 역사처럼, 건물을 이루는 벽돌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낱낱이 인식되기를 바랐던 것 같았다.

4만5000장의 벽돌로 지은 집은 한 장 한 장이 모여 커다란 몸을 만든다. 그 몸은 벽돌건물이 주는 분열적인 아름다움과 총체적인 아름다움 중에서 분열적인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았다. 돌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부석사의 석축은, 그 하나 속에 세상이 담기고 우주가 담기고 인간의 고뇌와 길든 짧든 행복이 담긴다. 그리고 그 하나가 또 하나와 만나고 한없이 이어지다가 하나의 거대한 화엄이 생성된다. 그 화엄의 세계처럼, 이 박물관의 벽돌에도 하나하나 사람의 이름이 새겨지고 그들의 고난이 새겨져서 전체가 이루어지는 듯하다.

그 벽돌들은 반듯하지 않았다. 마치 전쟁의 희생자들이 한 명씩 나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크지 않은 집이었는데도, 그 앞 정원 그늘에 앉아서 보고 있자니 그 이야기들이 마당 한 가득 부어졌고, 그 소리를 꾹꾹 참아내며 들어야 했다. 내가 좋든 싫든 그건 역사였고 그것이 현실이었다.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은 그런 기억의 집이었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작은 집, 큰 생각’ 공동저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나연 '깜찍한 브이'
  • 나연 '깜찍한 브이'
  • 시그니처 지원 '깜찍하게'
  • 케플러 강예서 '시크한 매력'
  • 솔지 '아름다운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