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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헌병 출신 아버지 떠올리며 이 연극 만들어”

입력 : 2012-05-30 18:14:23 수정 : 2012-05-30 18: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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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연출가 정의신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한국 무대 올려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호평을 받았던 재일동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55)이 신작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6월 12일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되는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말인 1944년 남도의 외딴 섬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해방 전 조선(한국) 땅 전쟁의 광기 속에서 살아남고자 했던 한 가족의 삶을 중심으로 다룬다. 이 작품에 대해 정의신은 한때 일본에서 일본군 헌병으로 복무했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만들었다고 했다.

정의신 연출은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를 관람하는 분들이 전쟁에 휘말린 한국 현대사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정의신은 옛 일본군의 소집 영장을 뜻하는 ‘아카가미(赤紙)’를 묻는 질문에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라 알고 있다”면서 자신과 아버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본 혼슈(本州) 서부에 위치한 효고(兵庫)현 출신인 정의신은 고향에서 히메지 고교를 졸업한 뒤 교토에서 다니던 대학을 2년 만에 중퇴했다. 이후 요코하마영화학교를 마친 뒤 영화가 아닌 연극 세계로 뛰어들었다. 정의신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15살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일본군에 자원해 헌병 생활을 했다. 그가 25살이 될 때까지 까맣게 몰랐던 사실이었다.

해방이 됐지만 아들이 일본 헌병이었기에 힘겨워했던 정의신의 할아버지, 고향으로 돌아오려 했지만 한편으로는 헌병이라는 굴레에, 다른 한편으로는 불가항력적인 사고로 그의 아버지는 고국행을 접어야 했다. 그런 아버지의 운명이 한국과 일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 정의신의 운명 일부를 결정지었다.

“일본에 정착한 아버지는 한국말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들은 일본에서 교육받으며 살라고 하셨죠. 집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본어로 대화했습니다.”

그 영향인지 정의신은 한국말을 알아듣기는 해도 잘 말하지 못한다. 이만큼도 어쩌면 양국에서 연극을 올렸기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이번 작품에서는 ‘경계인’을 부각시키거나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조선인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일본군 헌병이 된 대운, 일본군 중좌 시노다, 그와 사랑에 빠지는 첫딸 진희, 반일운동을 하다 사살되는 막내딸 정희, 사연 많은 딸들을 둔 아버지 홍길과 어머니 영순 등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군상들을 그린다. 일본 헌병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극을 만드는 한 동기일 뿐 실제 극에서 주된 흐름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에게 아버지는 강렬한 존재로 다가온다. “일본 교육을 받고 살아가지만 그래도 너희는 한국인이니까 한국인으로 살라는 말씀을 하셨죠.”

그 영향인지 그는 귀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재일동포가 갈수록 늘어간다. 한 세기가 흐르면 재일동포의 삶은 일본에서 그 족적을 찾아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정의신은 한국 무대에 일제강점기, 재일한국인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올리는 이유를 “기록해 두어야 하기 때문에”라고 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인간 군상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재일동포 2, 3세는 갈수록 줄어들고, 1970년대 이후 뉴커머 세대 상당수는 귀화를 택한다.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재일 한국인들의 삶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50년 만에 할아버지 묘소를 참배하고 돌아온 아버지에 대해 “네 아버지는 일본군 헌병을 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할까봐 돌아가지 못했다”고 귀띔한 어머니,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들른 한국에서 고향 말을 했을 때 “말이 하나도 안 통했다”고 한 구순 넘은 아버지 등 모두가 기록해 둬야 할 가족사다. 그 기록은 또한 재일 한국인의 삶이기도 하다.

그는 앞으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남사당과 조선 문화를 사랑했던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를 모델로 한·일 문화 교류를 그린 연극을 올릴 예정이다.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에서 일본군인과 조선여인의 사랑이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소재였다면, 오는 11월 도쿄와 오사카에서 공연될 새 작품에서는 한·일 커플의 자녀들이 등장한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일본 대하드라마 ‘료마전(龍馬傳)’ 등에서 명품 연기를 선보인 가가와 데루유키(香川照之)와 ‘초난강’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구사나기 쓰요시(草なぎ剛)도 출연한다.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공연은 7월 1일까지 이어진다. 1만5000∼2만5000원. (02)758-2150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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