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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55> 멘토

입력 : 2012-05-01 18:22:51 수정 : 2012-05-01 18: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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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기본은 인간에 대한 경의 끊임없이 실수를 확인하고 늘 신중해야 하며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 스승-멘토, 지혜와 신뢰로 누군가를 이끌어주는 사람

얼마 전 청소년들을 위한 강연회의 ‘멘토’가 되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원래 남을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이라 하고, 그로부터 배움을 받은 자는 그를 높여 ‘스승’이라 불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선생, 스승이란 이름보다는 멘토라는 단어가 훨씬 자주,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듯하다. 멘토(mentor)란 다른 사람을 돕는 좋은 조언자, 상담자, 후원자를 뜻한다. 멘토의 활동을 ‘멘토링(mentoring)’이라고 부른다. 이 말의 기원을 따라가면 그리스 신화의 대표적 주인공인 오디세우스를 만난다. 이타카 왕국의 왕인 오디세우스는 미친 척까지 해가면서 피하려던 트로이 전쟁의 참전이 불가피해지자, 친구인 멘토르에게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과 후원을 부탁한다. 그는 트로이 전쟁 10년, 귀환 10년, 도합 20년이 걸린 오디세우스의 귀향이 막을 내릴 때까지 충실하게 그 아들의 친구, 선생님,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그 후로 멘토라는 그의 이름은 현명하고 성실하게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지도자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멘토로부터 지도 또는 조언을 받는 사람은 ‘멘티(mentee)’라고 한다.

호세 루이스 서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 건축가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스승은 본래 일찍부터 도를 깨달은 자, 덕업이 있는 자, 성현의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쳐주며 의혹을 풀어주는 자, 국왕이 자문할 수 있을 만큼 학식을 가진 자 등을 칭하는 용어였다. 흔히 스승에 대한 복종과 헌신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할 정도로 절대적인 규율이었다. 인도에서 ‘존경해야 할 사람’, 즉 최상급 경외의 대상인 정신적 지도자를 가리킬 때 쓰는 ‘구루(guru)’라는 말도 비슷한 의미다. 이에 비해 멘토는 지식의 전달자, 선배, 동행자라는 의미가 좀 더 강하고 구속력은 약한 듯하다. 요즘 기업마다 신입사원들을 위해 사회생활 선배들이 강연을 통해 벌이는 멘토링 등이 무척 활발한 모양이다. 하지만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거나 별다른 책임이 부여되는 것도 아니어서, 그것이 고전적 의미의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예전에 MBC에서 방영한 TV 미니시리즈 중에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원제는 페이퍼 체이스(Paper Chase)이고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드라마였다. 제목은 좀 유치했지만 일단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곳이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학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파워엘리트들이 만들어지는 법학대학원이라 모든 부모들이 시청을 권했다.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나와 친구들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시청했는데, 하트라는 이름을 가진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이 하버드 법대에 입학하여 적응하고 공부하는 이야기였다.

치열한 일상과 공부에 미친 많은 학생들이 나오고, 그들의 살 떨리는 대학생활과 그들을 키우는 교수들이 나온다. 그중 특히 킹스필드라고 엄격의 화신처럼 생긴, 그리고 정확히 그렇게 행동하는 교수의 캐릭터는 압권이었다. 무뚝뚝하고 한 치의 빈틈도 없고 학생들과 인간적인 접촉도 전혀 없는 냉정하고 완벽한 그 교수의 모습을 보며, ‘학문의 전당’이란 말에 어울리는 엄격한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 저런 공부를 해야겠구나’ 하는 막연하고 순진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뭐랄까, 그런 모습이 바로 대학의 낭만이라는 허술한 생각이었다. 요즘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하고 그 권위가 말할 수 없이 추락했지만, 대학은 그야말로 학문의 신전이었다. 그 신전에서 경건하고 엄숙하게 학문을 하는 모습…. 그런데 그런 바람은 현실에서 그대로 이루어졌다.

서트가 설계한 하버드대 할리오크센터(1965). 이 건물은 2008년 리모델링됐다.
# 하버드대의 공부벌레처럼… 치열했던 건축수업의 기억

하버드 법대는 아니었지만 내가 입학한 건축학과 역시 혹독한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유명한 학교였다. 더욱이 내가 입학하던 해에 교수 한 분이 새로 부임했는데 공교롭게도 하버드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하신 분이었다. 그는 코가 무척 크고 덩치가 큰 데다가 킹스필드처럼 머리도 살짝 벗겨지고 나비넥타이를 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부드럽고 고소하고 은은한 향기가 퍼지는 파이프 담배향을 풍기며 우리를 현혹시켰다. 굵은 저음의 음성은 별다른 엄포 없이도 우리를 아주 손쉽게 제압했다. 우리는 마치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했고, 약간의 기시감만으로도 무척 행복했다. 그는 건축학과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하게 되는 제도와 기초설계를 맡았는데, 첫날부터 과제가 무지막지했다. 사절지 크기의 켄트지에 가득 선을 긋는 것이었다. 처음 선을 긋는 우리는 선의 굵기가 당연히 들쑥날쑥했다. 그러나 그는 선이 완벽해질 때까지 절대로 통과시켜주지 않았다.

그때부터 3월의 밤들은 우리에게 잠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4, 5, 6월…. 잠 없는 밤은 그에게 수업을 받는 1년 내내 지속되었다. 수업은 원래 월요일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간 동안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사실 끝나는 시간이 따로 없었다. 그가 과제를 칠판에 써서 아주 간단히 코멘트를 해주고 자리를 뜨면, 우리는 삐거덕거리는 제도판에 엎드려서 열심히 그린다. 그러면 교수가 불쑥 나타나서 그린 것들을 체크하는데, 그게 밤 12시일 때도 있고 새벽 4시일 때도 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 꼬박 밤을 새울 수밖에.

선을 다 긋고 나니 이번에는 가로, 세로 각 1㎝의 네모 안에 글자를 쓰는 ‘레터링’ 과제가 주어졌다. 사절지 한 장을 쉬지 않고 열심히 채우면 꼬박 4시간 걸리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가나다라마바사아…. A B C D E F G…. 그렇게 한 학기 내내 거의 초주검이 되어 보내는 동안 통과 못한 숙제가 마치 빚처럼 쌓여서 우리 모두는 이자가 원금보다 훨씬 많아진 신용불량자 같이 숙제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어찌어찌 한 학기가 마무리되고 여름방학이 다가오자, 우리는 몇 달 동안의 막중한 노동에서 벗어나 한 달이라도 쉬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말고사가 끝나고 종강을 할 무렵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보가 전해졌다. 방학과제! 한 학기 동안 했던 선긋기, 나무 그리기, 사람 그리기, 글씨 쓰기, 투시도 그리기 등등 악몽 같았던 그 숙제들을 방학 동안 그대로 다시 해 오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방학 내내 잠시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 숙제를 해야 했고, 2학기 개강이 되는 날 제출했다. 누가 감히 그 명령을 어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일주일 후 다시 되돌아온 우리의 숙제에 매겨진 평가였다. 별다른 이야기는 없고 오로지 R와 P 둘 중 하나였다. P는 통과를 의미하고 R는 다시 하라는 뜻이다. 빨간 사인펜으로 그분 덩치처럼 호쾌하고 큼직하게 그어진 그 평가는 마치 저승사자의 한 마디 같았고, 우리의 갚아지지 않는 채무 변제는 다시 시작됐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건축이 무엇인지 설계가 무엇인지 뭐 그런 생각을 간혹 했는지는 모르겠고, 했다면 아주 조금은 했을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통과를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잠을 조금 더 잘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내가 제출한 켄트지에 빨간 글씨가 안 새겨지게 할 것인가에 있었다.

‘페이퍼 체이스’는 종이를 흘리고 가면 그 종이를 쫓아가서 잡는 사냥놀이라고 한다. 우리는 별다른 이야기도 없이 그냥 숙제를 내주고 사라지는 그 교수님의 뒤를 쫓느라고 1년을 다 바쳤다. 그렇게 1년을 마치고 학생들이 받은 성적은 반 이상이 F였다. 가장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이 B였는데, 그 친구는 우리에게 마치 ‘슈퍼스타K’에서 1등을 한 허각처럼, 혹은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은 중국인 왕수(王樹)처럼 보였다. 아무도 그 교수가 내려준 성적에 불만을 표시한다든가 정정을 요구하지 못했다.

서트가 설계한 바르셀로나 후앙 미로 미술관(1975). 서트는 스페인 화가 후앙 미로(1893∼1983)와 절친한 사이였다.
# 엄격한 도제식 가르침을 통해 배운 인간에 대한 경의

건축이란 그런 것인가. 건축이란 그렇게 참는 것이고 견디는 것이고,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 수업을 통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건축은 우리가 생각했던 폼 나는 일이 아니었고 우리가 생각했던 즐거움이 아니었다. 사실 전공교수는 여러 분 계셨고, 조금 점수나 평가를 후하게 주시는 분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를 포함한 몇몇은 약간의 객기로 그 무서운 교수에게 기어이 좋은 점수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계속 쫓아다녔으나 결과는 번번이 처참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은 그에게 수업을 들은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한 마디의 인간적이거나 개인적인 대화가 오고 간 적도 없었다. 오로지 우리가 가져간 결과물에 대한 짤막하고 신랄한 평가와 예의 붉은 사인펜으로 난도질당한 도면을 되돌려 받는다든가, 잘못된 부분을 지적당해 한 귀퉁이가 무참히 깨진 모형을 돌려받을 뿐이었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마칠 무렵 ‘현대건축사’라는 이론과목을 역시 그 무서운 교수에게 듣고 있었다. 그 과목 역시 매시간 예고 없는 주관식 시험을 보고 대부분 10점이나 20점을 받는 혹독한 수업이었는데, 학기가 거의 끝날 즈음 그 교수는 우리를 둥그렇게 모여 앉도록 했다. 그리고 지난 몇 년 사이에 보았던 가장 부드러운 표정으로 우리에게 과제와 평가 말고는 처음으로 사적인 감정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너희들은 내가 혹독하다고 하고 무섭다고 하지만 내가 예전에 대학원 다닐 때 서트 교수에게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너희는 일주일에 나를 한 번 보면 되지만 우리 때는 그 교수를 일주일에 세 번이나 봐야 했어. 도면을 그려 냈을 때 그래도 나는 이야기라도 하고 얼굴을 보면서 야단이라도 치지만, 그분은 제출한 도면에 작은 잘못이라도 있으면 아예 얼굴도 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찢어서 던져버리곤 했어. 정말 무서웠지.”

그 스승은 스페인 건축가 호세 루이스 서트(Jose Luis Sert, 1902∼1983)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바르셀로나 출신인 그는 대학 시절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저서를 보고 감동을 받아 대학 졸업 후 1년간 코르뷔지에의 사무실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은 뒤 주로 바르셀로나에서 작업을 했다. 서트는 스페인 내전이 터지자 프랑코 총통의 미움을 샀고, 앞서 히틀러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간 그로피우스의 초청을 받아 193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53∼1969년 하버드 설계대학원 교수와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대표작으로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후앙 미로 미술관, 하버드대의 할리오크센터와 과학센터, 이라크 바그다드의 미국대사관 등이 있다.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의 건축은 스페인, 프랑스의 경쾌함과 모더니즘의 보편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특히 비례와 공간감에 있어서 건축의 기본에 굉장히 충실한 건실함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의 건축을 대학 1학년 때 선배의 책꽂이에서 처음 보았다. 이름도 생소하고 작품도 별다른 강렬한 인상을 주지 않았기에 그저 무난하게 ‘아, 그런 분이 있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그의 이름을 몇 년 후 우리의 학창시절을 온통 지배하던 ‘지존’이신 교수님 입을 통해 다시 듣게 된 것이다. “나는 훨씬 더 엄격하게 교육을 받았노라”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기억의 저쪽 구석 어딘가에 들어가 있는 서트의 백색 건물들을 되살리기 위해 애썼다.

가장 배우기 어려운 학문인 의학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기에 그 학문을 수련하고 거기서 비롯하는 기능을 익힐 때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경의와 애정이다. 그와 비슷한 정도의 비중을 가지고 강조하는 것이 진지하고 신중하고 꼼꼼하게 사안을 다루는 인내심과 집중력일 것이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다. 건축은 사람을 담는다. 그래서 건축은 끊임없이 실수를 확인해야 하고, 늘 신중해야 하고,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스승들이 건축을 설명할 때 제일 먼저 가르친 것이 그것이고, 제일 마지막까지 가지고 가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가온건축 공동대표·『작은 집, 큰 생각』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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