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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54〉산책

입력 : 2012-04-10 17:37:42 수정 : 2012-04-10 17: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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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사람과 풍경이 서로 녹아드는 방랑과 명상의 시간 # 산책, 자신을 깨우는 시간

휴식 삼아 천천히 거니는 일을 산책 혹은 산보(promenade)라 한다. 어릴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혼자 등하교할 무렵이 아마도 누구에게나 처음 세상 밖으로 산책하는 경험일 것이다. 입학식을 하고 일주일 정도 부모의 손을 잡고 다니다가, 드디어 혼자 큰길로 나가서 학교까지 오가는 길은 두려우면서도 무언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이때 세상은 새삼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고, 내가 모르던 질서가 길 위에 무섭게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그동안 읽어내지 못하던 책 안에 깊숙이 박혀 있던 진리를 깨우치는 것처럼, 혼자 걷는다는 것은 행간을 읽게 되는 것이고 ‘세상 속 존재’로서 자신을 깨우는 순간이기도 하다.

도시의 산책 - 파리 아케이드
나는 서울 을지로1가 지금의 ‘페럼타워’라는 건물이 들어선 자리에 있던 청계초등학교에 다녔다. 집이 있던 을지로3가부터 대로변에 도열하고 있는 온갖 색상과 크고 작은 온갖 글씨들로 채워진 간판, 길 쪽으로 크게 크게 창을 내고 문을 낸 상점들을 보는 것이 나의 산책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많은 풍경들이 흘러 다녔고, 나는 그 풍경들을 보기도 하고 담기도 하고 그냥 흘려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간판들을 통해 한글과 한자를 배웠고, 그 거리의 스케일과 그 안의 구성을 보면서 도시와 공간을 익혔다. 도시 안에는 무척 많은 정보와 지식, 그리고 냄새와 기억들이 흐르고 있었다.

한동안 도시 한가운데에서 살다가 청소년기에 서울 외곽으로 이사했는데, 그 동네에는 버스 종점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그 버스들 중에 한 노선을 택해 제일 뒷자리에 앉아서 다음 종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산책을 즐겼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오전 동안 꼼짝 않고 일하고 오후에는 파리의 거리를 헤매곤 했는데, 특히 승합마차의 지붕 위 좌석, 그가 이름 붙인 바대로 하자면 이동식 발코니석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거기서 마음 내키는 대로 대도시의 온갖 측면을 연구할 수 있었다. 그는 “귀청이 터질 것 같은 파리의 소음이 내게는 바다와 똑같은 효과를 가져다 준다”고 주장했다. (에두아르 드뤼몽, ‘청동상 혹은 눈의 조상’과 발터 벤야민, ‘도시의 산책자’에서 재인용)

물론 빅토르 위고처럼 이동식 발코니석은 아니었지만 도시가 흘러가고 소음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풍경을 보는 것, 특히 한적한 도시 외곽에서 시작해 드글드글 끓어대는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고 다시 도시 외곽의 한적함으로 빠지는 일련의 경로는 마치 한 편의 장편소설 혹은 한 곡의 교향곡과도 같았다.

“한 인간으로서 처할 수 있는 가장 가혹한 상황에 놓인 내 영혼의 일상을 묘사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나는, 그러한 일을 실행하는 데 머릿속이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아무런 저항과 장애를 받지 않고 생각들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면서 하는 산책들과, 그러한 산책 중에 샘솟듯 떠오르는 몽상들을 충실히 기록하는 것보다 더 솔직하고 확실한 방법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이 고독과 명상의 시간은 하루 중 다른 것에 마음 뺏기지 않고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오롯이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러한 시간이야말로 자연이 원했던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장 자크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중에서)

철학자의 산책 - 독일 쾨니히스베르크
# 철학자의 산책

루소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산책를 한 번 쉬었던 사람이 있다. 1926년 4월28일자 동아일보에는 순종이 서거하고 영친왕이 왕위를 계승했다는 기사가 한 면 가득 실려 있다. 마치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가치가 사라진 조선왕조의 왕위계승 기사 옆면에는 ‘철학의 완성자 칸트의 생애와 사업’이라는 기획기사가 참으로 태평하게 실려 있다. 최두선이란 사람이 칸트의 철학을 일목요연하게 풀어내고 그 아래 칸에 칸트의 일화를 몇 단락 소개한다. 그중 하나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칸트는 시간을 엄절히 지켰다. 그가 산보 나오는 것을 보고 시민들이 시간대를 맞추었다 한다. 그러나 그도 한번 시간을 어긴 일이 있다. 법국(法國·‘프랑스’의 옛 표현)의 루소의 ‘에밀’이란 교육소설을 읽을 때에는 취미가 진진하여(‘흥미진진해’의 옛 표현) 산보시간을 넘겼다 한다.”

이마누엘 칸트. 누구나 한번 넘어보고 싶지만 문을 열고는 바로 닫아야 하는 넘을 수 없는 벽….

나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란 책을 한 번 호기를 부리며 읽었던 적이 있다. 읽기는 잘 읽었는데, 그 문장들과 그 단어들이 화학이나 물리학의 공식도 아니고 외계어도 아니고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이성과 오성과 직관과 개념 등으로 이루어진 보편적인 단어였음에도, 도저히 그 뜻이 모이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하며 책을 덮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간추려 설명한 글을 읽고서야 간신히 큰 얼개 혹은 대강의 취지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칸트는 스코틀랜드에서 넘어온 조상이 자리 잡은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지금의 칼리닌그라드)에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칸트의 생활은 모든 규칙동사 중에서 가장 규칙적인 동사와 같이 질서정연한 것이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서 홍차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개비를 피운 뒤 강의 준비를 해서 오전에 강의를 마치고 오후에 하루 중 유일한 식사를 했다.

식사하는 3시간 동안 동네 사람들을 골고루 불러 마을에서 일어나는 온갖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한 잡담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3시 반에 그 유명한 산책를 하고 돌아와 책을 읽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평생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두 번 나가보았고, 결혼은 두 번 정도의 기회가 있었는데 소심한 성격으로 결정을 못하는 사이 상대가 떠나버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칸트에게 산책이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칸트는 기관지가 좋지 않아 바깥에서는 절대로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매일 출퇴근길이며 산책길이기도 한 길을 걸으며 늘 주변 자연의 변화와 활동을 관찰하고 사유했다.

걸으며 사색을 하는 것과 앉아서 사색을 하는 것의 차이는 풍경이 지나간다는 점이다. 고정된 풍경을 보는 것과 움직이는 풍경을 보는 것의 차이는 풍경과 사람이 유기적 연관을 맺고 사람이 자연의 흐름에 녹아드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 풍경에서 사람으로의 ‘도취적 상호침투’가 이뤄진다. 그런 풍경과 사람의 도취적 상호침투에 의해 걷는 동안 사람들의 의식은 보다 객관적, 이성적이 된다.

그래서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도들을 이끌고 근처의 동산을 산책하며 학문을 논했던 모양이다. 걸으며 학문을 논하고 철학을 논하던 그들을 ‘소요학파(逍遙學派)’라고 부른다.

건축적 산책로 - 빌라 사부아
# 건축적 산책로

근대화된 도시 공간 속에서 산책하는 일은 풍경 속에서 거닐며 사색하던 철학자들의 산책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뚜렷한 목적 없이 군중 틈에서 배회하며 거리의 풍경을 관조하는 산책자는 자신이 본 대도시의 충격을 회상하고 성찰하면서 묘사하는 동시에 이러한 충격이 주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현실과 대조적인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도시의 산책자, 그들은 걷는 자들이며 방랑하는 자들이다. 걷는다는 것은 도시에서 가장 기본적인 경험의 형태다. 그들이 도시의 공간을 이용하여 움직이면서 어떤 구속이나 장소의 확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흘러 다니는 동안 도시라는 ‘텍스트’가 완성되어 간다.

시인이자 비평가 보들레르에게 산책은 존재의 조건과 같은 것이었고, 철학자 벤야민에게 산책자라는 유형을 만든 것은 파리라는 도시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산책자에게 있어 이 도시는 변증법적 양극으로 분극되어 간다. 파리는 산책자에게 풍경으로 펼쳐지는 동시에 방으로서 그를 감싸는 것이다.”

풍경이자 방으로서 파리의 산책자들을 끌어들인 아케이드(arcade)는 주로 사치품들이 거래된 곳으로 가로 상점가 천장을 유리로 덮은 건축을 뜻한다. 대부분의 아케이드는 1822년 이후 15년 동안 만들어졌고 직물거래의 번창과 철골·유리건축의 등장에서 비롯했다. “이러한 아케이드는 하나의 도시, 아니 축소된 하나의 세계다.”(발터 벤야민, ‘파리의 원풍경’ 중에서)

산책의 개념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에 의해 건축에서도 구현된다. 그는 건축의 공간적 요소들이 그 안에서 움직이며 보는 인간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주목하면서, ‘건축적 산책로(promenade architecturale)’라는 개념을 표방했다. 그는 벽을 소거하고 최소한의 구조만 남긴 미스 반데어로에(Mies van der Rohe)와 달리 내부와 벽의 존재를 중요하게 여겼고, 내부를 외부로 확장하지 않고 반대로 내부 속에 외부를 끊임없이 불러들였다.

“코르뷔지에의 집들은 공간적이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조형적이지도 않다. 바람이 집 안을 뚫고 지나간다! 공기가 구성요소가 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공간도 조형성도 아니며 오직 관계와 상호 침투뿐이다! 단지 분할할 수 없는 하나의 공간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부와 외부의 구별이 없어진다.” (지그프리드 기디온, ‘프랑스의 건축’ 중에서)

그가 설계한 ‘빌라 사부아’는 그의 이념을 건축으로 번역한 집으로, 20세기 현대건축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그가 근대건축의 5가지 원칙으로 내세운 필로티,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구성, 수평창, 자유로운 입면이 하나의 건물에 반영된 교과서 같은 건물이다. 빌라 사부아의 공간은 정방형의 입방체 안에서 비대칭, 회전, 분산과 같은 나선적인 속성이 강조되고 있다. 여기서 경사로, 계단 등의 통로들은 공간 배치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축적 산책로’의 요소들이다.

빌라 사부아는 특히 주택의 주요 공간인 거실을 자연의 조망이 가능한 2층에 배치하고, 계단과 경사로가 지상부터 옥상정원까지 모든 공간 구성 요소들을 연결한다. 그래서 건물 안에서 시각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고 유쾌한 보행과 조망을 제공한다.

빌라 사부아의 2층 테라스는 거실로 직접 연결되면서 동시에 외부에 그대로 노출된 이중적 공간이다. 특히 테라스와 거실의 연속성을 강화하기 위해 코르뷔지에는 벽을 유리로 대체하고, 벽의 반을 유리문으로 만들었다. 또한 경사로를 통하여 각각의 층을 내부와 외부의 상호 반복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속적으로 연결한다.

이렇게 외부와 내부가 연쇄적으로 교차하면서 전개되는 통로를 따라 이동할 때마다 사람들은 마치 산책하듯 다른 시선, 다른 풍경을 경험한다.

“외부는 항상 내부다”라는 그의 말은 결코 외관의 형태가 내부의 기능을 반영한다는 뜻이 아니다. 건축적 산책로 속에서 은유된 건축의 풍경이 반복되어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풍경 전체가 ‘건축적 산책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집 안으로 들어온 풍경은 건물 안에 거주하는 인간의 의식을 고양시키고 자연과 인간 상호간의 적극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호 침투’를 이루게 해준다. 여기서 건축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놓은, 자연을 향한 산책로가 된다.

가온건축 공동대표·『작은 집, 큰 생각』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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