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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자격’은 수십번 읽어도 감동줄 수 있어야

입력 : 2011-12-11 13:39:18 수정 : 2011-12-11 13: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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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그림책 ‘구름빵’ 작가 백희나
원소스 멀티유즈 대표작…한 장면 위해 수백컷 실험
화제의 베스트셀러 작가를 만나러 갔다가 숨겨진 장인의 세계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서울 한남동에 세들어 있는 백희나(40)의 작업실은 그의 장인정신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림책 백스테이지였다. 애니메이션 세트장을 방불케 하는 그곳엔 2004년 출간돼 50만부 이상이 팔려나간 그림책의 베스트셀러 ‘구름빵’(한솔수북)에서 최근 출간된 ‘삐약이 엄마’(스토리보울)까지 작가가 일일이 손으로 만든 인형과 소품, 미니어처 세트 등이 방마다 놓여 있었다.

“수십만 부를 찍는 것보다 한 아이가 수십 번을 보는 그림책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무섭다. 수십 번을 읽어도 감동받을 수 있어야 책으로 나올 자격이 있는 것 아니냐”는 백씨의 말에서 ‘구름빵’의 인기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뜬구름이 아님을 실감했다.

◆그림책 한 장면 위해 수백 컷 실험 거듭

그의 첫번째 그림책 ‘구름빵’은 TV 애니메이션, 뮤지컬,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캐릭터 인형으로 제작된 원소스 멀티 유즈의 대표작이다. 그의 창작 공정은 귀감이 될 만하다. 8개월을 꼬박 매달려 완성했다는 ‘구름빵’은 그가 PD처럼 캐릭터 인형과 세트, 조명까지 연출, 제작해 촬영한 작품이다.

“비오는 날의 특별함을 표현하고 싶어 완벽한 장면이 나올 때까지 수백 컷의 실험을 했어요. 푸르스름한 새벽빛과 집안의 노란 불빛의 대비, 물그림자 반사되는 모습, 부엌 장지문에서 떨어지는 빗살무늬와 원근감 표현을 위해 소품 배치와 각도, 조명을 바꿔가며 연출했죠.”

그의 작가주의는 “포토숍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름빵을 먹고 하늘 위를 날아가는 장면에선 고양이 남매 등뒤에 철삿줄을 매달고 촬영 각도를 조정해 책에선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의 책들이 평면 그림책으로 2D 3D 질감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수고로움이 바탕이 됐다.

출세작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책 ‘달샤베트’에선 종이상자를 쌓아 만든 아파트 집집마다 각기 다른 캐릭터와 세트를 꾸미고 전기를 연결해 따뜻한 불빛을 들였다. 그는 “히치콕 영화 ‘이창’처럼 저마다 다른 느낌의 아파트 공간을 들여다보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에게 지독한 작가주의를 고집하는 이유를 물었다. “제가 문학과 그림을 전공한 게 아니라서 밑천이 없다는 자격지심 때문이죠. 200%를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작품마다 저를 지독하게 채찍질합니다.”

겸손한 대답이지만 이화여대 교육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칼아츠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그의 내력은 작품에 독특한 빛깔을 더했다. “교육공학을 통해 매체를 자유자재 활용할 수 있게 됐고,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면서 스토리텔링의 방법과 연출력을 배웠다”는 그는 그림책을 “원시적인 매체”라고 표현했다.

“오디오도, 편집커팅도 없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그림 크기와 배분, 텍스트라는 적은 요소를 활용해 한계를 넘어선다는 게 너무 좋아요. 값비싼 그림과 달리 그림책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좋고요. 작업할 때 매체(표현방법)와 이야기가 일치되는 콘셉트를 늘 생각합니다.” 
어려서부터 인형을 만들어 노는 게 취미였던 백희나 작가는 미국 유학시절에도 인형으로 외로움을 달랬다. “그림책 작가가 돼서 취미를 당당하게 밖으로 꺼내 놓을 수 있어 좋다”는 그는 요즘 인형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김범준 기자
◆아이들 위한 그림책 쉽게 생각하는 풍토 바꾸고 싶다


목탄화 그림으로 그의 또다른 스타일을 만날 수 있는 ‘삐약이 엄마’는 그가 만든 1인 출판사 ‘스토리 보울’에서 나온 세 번째 창작 그림책이다. 작가가 출판과 영업까지 혼자 도맡는 출판사를 낸 데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상처가 있다.

‘구름빵’의 대성공에도 그의 호주머니에 들어온 건 850만원이 전부다. ‘데뷔’에 목마른 신인작가가 출판사의 요구대로 매절계약에 지식산권 양도계약을 했던 탓이다. 이 때문에 원작의 화려한 성공 뒤에서 작가는 EBS ‘빵빵 그림책 버스’의 스토리작가, 백화점 매장 디스플레이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재봉틀 다이를 작업대 삼아 그림책을 그려야 했다. 뮤지컬이든 애니든 원작자의 의도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상품화되는 것을 보면서 좌절했던 그는 저작권을 되찾고 싶은 마음 뿐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작가의 창작물에 대한 기본권리를 지킬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책 ‘달샤베트’도 허락 없이 섹시걸그룹 이름 ‘달샤벳’으로 쓰였는데, 상표권 등록이 되는대로 이름 사용중지 가처분 신청을 낼 계획이에요. 이 모든 게 그림책 장르를 우습게 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아이들을 위한 문화를 보호하는 건 중요한 일이잖아요.”

두 아이의 엄마인 백씨는 가족간의 사랑, 도시 이웃간의 단절, 환경 문제 등에 관심이 많다. 이 주제들을 아름다운 판타지적 상상력으로 꿰어내온 게 그의 창작책들이다.

“그림책 그리는 엄마의 아이들은 좋겠다”고 말을 건네자 “함께 있어도 입 꾹 다물고 시선과 생각이 딴데 가 있는 엄마 때문에 아이들은 더 불만족스러워한다. 작품 생각에 몰두하다 보면 장염 걸린 아이에게 피자를 사주거나 어린이집 준비물을 못 챙겨주는 일이 다반사”라고 웃었다.

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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