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훌륭한 음악과 절제된 연출… 질풍노도의 청춘물 ‘사베지 나이트’와 ‘라빠르망’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던 로만 보링거,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 리샤르 보링거가 함께 출연한 클로드 밀러 감독의 ‘고백(L’Accompagnatrice)’은 ‘반주자’인 원제에서 유추 가능하듯 피아노 반주자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산더미 같은 악보를 가지고 다니며 솔리스트의 특징을 재빠르게 파악해 내고 무대의 주인공이 연주, 혹은 노래하기 쉬운 반주를 뒤에서 완성시켜 내는 반주자들. 이들은 주인공과 같은 무대에 함께 존재하지만 어찌 보면 자신을 죽이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942년, 독일에 의해 점령당한 파리를 배경으로 영화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러시아 여류작가 니나 베르베로바의 원작소설 배경인 페테르부르크를 2차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로 각색시켜 놓은 것이었다. 가혹한 전쟁 중에도 오페라 가수 이렌은 보석과 드레스로 치장한 채 아름다운 용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감동적인 소리와 노래를 통해 한밤중에 몰려든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사실 그녀가 이 전쟁통에서도 순조롭게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부유한 사업가인 남편 샤를 때문이었다. 그는 조국을 아무렇지도 않게 배반하기도 하지만 내심 나치가 몰락하기를 바라며 망명을 한다.

소프라노 이렌을 동경하던 궁핍한 소녀 소피는 이렌의 반주자가 되는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서서히 이들의 사생활에 개입하기 시작하는데, 이렌느와 그녀의 레지스탕스 정부인 자크와의 사랑을 감춰 주기도 한다. 이는 반주자가 솔리스트의 실수를 교묘히 감싸주는 행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우상에 대한 질투심, 그리고 복잡한 관계들과 어려운 상황에 맞부딪히면서 소녀는 쓸쓸하게 성장해 나간다.

영화 내내 음악은 끊이지 않는다. 특히나 영화의 예고편에 사용되기도 했던 모차르트의 ‘예배를 위한 저녁기도’ 중 ‘주를 찬양하라’는 유독 큰 사랑을 받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자장가’와 ‘헌정’, 그리고 쥘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와 같이 비교적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 트랙들을 비롯해 피아노 반주만으로 이루어진 베를리오즈의 ‘여름 밤’과 슈베르트의 가곡 등 프랑스와 독일을 넘나드는 명작곡가들의 고전을 영화와 앨범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곡들은 소프라노 로렌스 몬테이롤에 의해 녹음됐다.

가곡뿐 아니라 슈만의 피아노 연주곡들인 ‘어린이 정경’과 ‘숲의 정경’, 그리고 영화의 음악감독 알랭 조미가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든 스코어 또한 삽입돼 있다. 곡들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편인데, 음반의 마지막 트랙 ‘엔드 타이틀(Generique Fin)’의 경우 ‘안녕, 프란체스카’와 같은 국내 시트콤에 삽입되기도 했다.

훌륭한 음악과 절제된 연출, 명배우들의 완숙미 넘치는 열연으로 완성된 일종의 질풍노도의 청춘물이다. 소녀는 서서히 냉정한 세상에 대해 알아가고 실망하며, 무엇보다 청중의 아낌 없는 박수는 반주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 간다. 화성 진행, 그리고 리듬의 동향을 좌지우지하면서 음악의 전체적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물론 반주자의 몫이지만 대부분 그 영광은 솔로이스트에게 돌아간다. 마치 흘러가는 삶 속에서 두드러지지 않은 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군중처럼 말이다. 사실 세상은 불특정 다수의 관찰자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불싸조 밴드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