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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미술과 유토피아’ 펴낸 이화여대 윤난지 교수

입력 : 2011-08-08 17:24:21 수정 : 2011-08-08 17: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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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미술은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다 “추상미술은 특정한 사회, 역사적 맥락에서 형성된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을 투영하는 시각적 도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화여대 윤난지 교수(미술사·사진)가 최근 펴낸 ‘추상미술과 유토피아’(한길아트)에서 추상미술이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추상미술에서 순수형식만을 증류하고자 한 모더니즘에 의해 구체적인 삶으로부터 뿌리 뽑힌 추상미술을 다시 삶에서 바라보게 해 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존 캐리의 정의처럼 유토피아는 그냥 없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욕구가 투사된 장소다. 산업혁명으로 기술적 수단이 가시화되자 19세기 말부터 유토피아 문학이 다시 활기를 띠게 된다. 이상향으로의 도피를 지향하는 여행 소설이 붐을 이뤘다. 폴 고갱의 타히티 그림이나 앙리 마티스의 ‘삶의 기쁨’ 같은 그림이 유토피아의 회화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에 이르면 유토피아의 개념들이 압축적으로 실험된다. 러시아 혁명은 유토피안 기획을 실행에 옮기고자 한 대표적 예다.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필연적으로까지 인식하면서 미래인을 자처하는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이 등장했다. 20세기 미술의 전형인 추상미술은 새로움에서 예술의 이상을 발견하는 아방가르디즘의 발현인 것이다. 칸딘스키, 말레비치, 몬드리안 등에게 미술은 미래의 유토피아를 미리 보여주는 일종의 현시였다.”

한편 현재 속에 유토피아를 구축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다. 러시아 구축주의, 네덜란드의 드 스테일, 독일의 바우하우스 작가들이다. “추상은 이들에게 실제 환경을 구현하는 형식적 수단이자 물질적 요소였다. 말레비치의 정신주의를 실제공간 속에 재현한 블라디미르 타틀린 같은 작가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같은 분위기는 자본주의 진영으로 바통이 이어지면서 변하게 된다. 테크노토피아에 대한 거부의 제스처들이 등장하게 된다. 인공의 세계를 만들어낸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이라 할 수 있다. “무의식의 세계를 추상형식을 통해 좀더 직접적으로 토해 놓고자 한 엥포르멜 작가들이나 추상표현주의자들에게 자연의 상태란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지점이다. 순간의 행위에 몸을 맡기는 이유도 이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다.”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론 추상형식이 기하형태에서 비정형으로 이동한다. “이데올로기가 보편주의에서 개인주의로, 평등주의에서 자유주의로 옮겨 왔음을 증거한다.”

편완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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