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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35> 트위터

입력 : 2011-06-15 10:27:08 수정 : 2011-06-15 10: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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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처럼 떠도는 140자 ‘지저귐’의 힘에 감탄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채 무한 복제되는 아파트군.
스마트한 삶을 이끄는 도구들


우리는 유행에 무척 민감하다. 그런데 그 유행의 배경에는 둔감하다. 1990년대 초반에 ‘답사 열풍’이 불어 전국 방방곡곡의 문화유적지가 몰려드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았던 적이 있다.

1차적으로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책에서 답사 1번지 등으로 언급된 지역들이 부각되었기 때문이고, 그 이면에는 당시 경제성장 덕분에 폭발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자동차가 있었다.

차를 샀으니 어디론가 가긴 가야겠는데 마침 책에서 경치도 좋고 역사적 의미도 있는 장소들을 알려주니, 차를 몰고 나가기만 하면 됐던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걷고, 산 넘고 물 건너 물어물어 가던 장소들 간의 거리가 시간적으로 대폭 축소된 것이다.

그렇게 차를 타고 여기저기 구경 다니던 사람들은 200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 선을 타고 싸이월드나 카페, 블로그로 몰려가게 된다. 1인 미디어라는 블로그, 음악이나 영화 감상, 맛집 탐방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카페, ‘싸이질’이라며 1촌 등 인맥관계끼리의 링크가 주가 되는 싸이월드 등등…. 각 사이트마다 올라오는 게시물에는 음식이나 장소의 공간을 촬영한 ‘인증샷’ 사진이 빠질 수 없는 필수요소였다. 보다 멋진 이미지를 첨부하기 위해 너도나도 고화소의 간지 나는 디지털 카메라, 그것도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을 목에 걸고 ‘출사’를 나갔다.

그마저도 시들해질 무렵 등장한 게 이동 중 촬영한 사진의 인터넷 업로드라는, 제각각이었던 과정들을 한번에 해결해주는 똑똑한 기계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Smart Phone)은 무선인터넷을 이용하여 인터넷에 직접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속할 수 있고, 사용자가 원하는 앱(application·사용 목적에 따른 전용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거나 다운받아 각자 자신에게 알맞은 인터페이스를 구현하고, 심지어 다른 사용자와 공유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기계다. 혹은 장난감이다. 어른들을 위해 나온 장난감 중 실용성과 확장성 측면에서 최고라 할 수 있다. 일단 이것을 손에 넣으면 모두들 이 기계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눈을 돌리지 못한다.

지난 여름, 5년 동안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사용하던 휴대전화의 자판이 결국 고장 나서 시원섭섭한 이별을 했다. 마침 아이폰으로 촉발된 스마트폰 열풍이 불던 참이라 별다른 고민 없이 나도 스마트폰의 세계로 입성했다. 전화만 잘 걸리면 되지, 휴대전화에 무슨 ‘스마트한’ 기능이 필요하단 말인가, 선입견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동 중에도 인터넷 접속이 되어 메일 확인이나 구글과 연동된 스케줄 관리를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는 점은 무척 매력적인 핑계가 되었다.

새로 받은 전화의 바탕화면에는 컴퓨터 윈도의 아이콘을 축소한 몇 개의 아이콘들이 정렬되어 있었다. 통화와 메시지, 인터넷, 지도, 카메라 같은 기본적인 기능을 포함해서 게임, 공부, 동영상 시청 등 무궁무진한 세계로 통하는 문들이었다. 버스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앱, 사진을 아예 보정해서 저장해주는 앱, 명함을 인식해서 주소록으로 넘겨주는 앱, e-book에 내비게이션까지…. 심지어는 책상의 컴퓨터를 켜는 시간이 줄어들 정도로 스마트폰은 유용했고, 매혹적이었다. 수많은 앱들을 깔았다가 지워가며 훌훌 건너다니다 보면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가버리곤 했다.

그리고 일 년 정도 지났다. 

아파트에서 벗어난 주거문화의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한 땅콩집.
트위터, 보편성을 가진 소통의 공간


지난 4월 치러진 국회의원과 몇 군데 단체장의 궐석을 채우는 보궐선거는 야당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런데 그 승리의 바탕에는 젊은 층의 적극적 투표참여가 깔려 있었다.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였던 것은 ‘트위터’라는 새로운 매체였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트위터의 위력은 이미 미국의 대선 때 그 영향력을 선거의 전략으로 활용했던 버락 오바마가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입증된 바 있다. 짹짹거리는 새들의 지저귐(tweet)이라는 의미를 가진 트위터는 몇 년 사이에 굉장한 파급력을 가진 채 우리의 일상에 파고들고 있다.

나도 지난해 가을 트위터를 시작했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고 그냥 번호와 문자를 입력하고 승낙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냥 문을 열고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들어가니 막상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몇 달 동안 그냥 이런 말, 저런 말들…, 생기다 만 듯한 이야기들을 허공에 뿌려댔다. 그런데 그게, 140자라는 제약에서는 말을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매체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블로그처럼 이야기를 하염없이 풀어놓은 방식은, 여기서는 아니었다. 말하자면 특정한 공간이란 없고 유목민처럼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통하는 공간. 말과 생각을 실어 나르는 공간. 그러나 머무르지 않고 서로 흐르다 잠시 일별하고 다시 흐르는 공간.

어느 날 내가 누군가를 ‘팔로잉’(following)했다. 여기는 팔로잉과 팔로워(follower)가 중요하다. 마치 마지막 영혼의 숨결처럼 트위터는 그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관계를 맺는 또 하나의 방식…. 교주와 교도들이 있는 공간. 내가 누군가를 팔로잉한다는 것은 그의 교시가 나의 촉수에 얻어걸린다는 의미이다. 무언가 이야기들이 들려오고, 나는 그로부터 이야기를 수신하기 시작한다. 나는 컴퓨터에서 혹은 촉수가 예민한 나의 스마트폰을 통해서 교시를 접수한다.

놀랍게도 그 이야기들은 대개 시시한 일상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140자 속에서 그것도 오타를 남발하며 띄어쓰기가 엉망인 채 허공을 떠돌고 있는 지저귐! 간혹 무척 놀라운 것은 내가 아는 사람, 내가 존경하는 사람과 공간을 초월한 실시간의 접촉, 그것도 바로 옆에서 침을 튀며, 숨소리가 들릴 듯 가까운 위치에서 듣는 듯한 착각을 주는 접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트위터의 힘이었다. 내가 팔로잉한 어떤 유명인은 그 사람의 우산 아래 무척 많은 사람이 우글거리고 있었고, 활발하게 그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트위터의 기본 페이지는 타임라인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팔로잉한 사람들의 지저귐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데, 그게 두 사람이면 두 명의 지저귐이 어쩌다 한 마디씩 올라오고, 그게 만 명이면 만 사람의 지저귐이 올라온다. 마치 해일처럼 사람들의 작은 소리들이 끊임없이 올라오며 화면을 까맣게 덮는다.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올라와 읽자면 숨을 쉴 겨를도 없다.

자신의 소리를 올리고 그 소리가 어떤 이의 타임라인에 나타나고 그 타임라인들은 마치 다양한 집합의 양태처럼 이리저리 묶인다. 그렇게 구성된 하나의 타임라인은 어떤 이가 선호하는 하나의 기호가 되기도 하고 정치색이 되기도 하는데, 그때의 말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들이다. 듣고 싶은 말들로만 이루어진 그 세상은 남의 입을 통해서, 남의 머리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구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칫 잘못하면 세상을 잘못 이해하는, 혹은 세상을 왜곡하는 창이 될 수도 있다. 트위터가 가지고 있는 맹점이 바로 그 지점이다. 사람들은 객관화된 시각으로 오인하지만 이미 그 시각은 자신이 취사선택한 주관적인 시각이고, 그 시각을 세상에 퍼뜨리는 것이 리트윗이다.

리트윗(retweet)은 말들을 강력한 도구로 잡아서 핀으로 꽂아놓고, 이리저리 마치 바톤을 이어받듯이 서로 주고받으며 일종의 공간화를 이루어낸다. 리트윗의 위력은 이미 여러 번 우리에게 보인 적이 있다. 가령 급히 희귀혈액형을 찾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고 여러 사람이 그 글을 리트윗하면, 그 글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고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어 결국 희귀 혈액을 가진 사람에게 전달되어 응급환자를 구해내게 된다. 그 엄청난 힘에, 그 엄청난 파급력에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문화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지저귐

‘브루스 올마이티’라는 영화에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직장인 브루스는 어느 날 하느님을 만난다. 검은 피부의 소울가수 같은 흐느적거리는 몸짓을 가진 하느님이었다. 그 하느님은 브루스에게 전지전능한 능력을 주었고, 브루스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신나게 그 능력을 쓰며 돌아다닌다.

다만 그에게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그의 컴퓨터에는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소원들이 들어온다. 40억 인류의 소원이 들어오고, 브루스는 감당할 수 없어 모두 예스를 누른다. 그러자 모두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폭동과 같은 커다란 혼란이 온다. 하느님 노릇도 쉬운 것은 아니다.

40억 인류까지는 아니어도 수십만 대군의 팔로워들을 거느리고(?) 있는 인기 트위터러들이 적지 않다. 사실 싸이월드나 메신저 등 SNS가 낯설지 않는 한국에서 트위터가 단시간에 이 정도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이면에는 초창기에 기업의 대표나 연예인, 작가 등 유명인들의 트위터와 그들의 발언 등이 뉴스에 계속 소개되면서 인지도를 상승시킨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유명인들의 시국에 대한 발언이나 잠언류의 글들, 심지어는 잡담이나 광고성 글들까지도 곧바로 기사화되는 건 손쉽게 기사거리를 얻으려는 관련분야 기자들의 꼼수에서 시작되었겠지만, 결국 그들 스스로 발목을 잡히는 결과를 낳았다.

대중은 기사를 통해 걸러진 내용 대신 원래의 발언을 궁금해 했고, 곧장 원문에 해당하는 글들을 뒤져 찾아냈다. ‘오피니언 리더’들도 오역의 위험을 안고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대신 자신의 트위터에 하고자 하는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그 살 냄새 나는 직접적인 소통에 흥겨워하고, 때로는 상처받는다.

누군가 건축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고 했다. 아주 지당한 말씀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며, 우리는 빛나는 조상의 유산을 갈고 닦아 새롭게 적용하는 것뿐일 수도 있다. 그것은 사상은 진보적일지언정 생활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기본적 속성에 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람은 집이 필요하고 집은 인간의, 아니 사용자의 생활을 담는다. 모든 사람의 생활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인격이 다르지만 우리는 거의 표준화된 구조를 가진 집에서 산다.

말하자면 우리는 어떤 성공적인, 혹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모델을 리트윗하여 우리에게 적합한 주거형태로 삼아 살아간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파트라는 특이한 공간이다. 그것은 개발업자들에게 더 할 수 없이 수익률이 높고 안전한 투자처였고 상품이었다. 그 기이한 물건이 꽤 오랜 시간 우리의 생활을 포장하고 규정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내려온다고 한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집이 필요했던 두 남자가 함께 집짓는 일에 도전한다. 신도시 단독주택필지를 함께 사서 두 채의 집을 붙여 짓고 마당을 공유한다. 단독주택의 단점인 단열성능도 개선하고, 아파트를 팔고 이사하는 기간을 최소화해서 한 달여 만에 다락방이 딸린 2층 목조주택을 완성한다. 226㎡ 넓이의 대지 구입에 3억6000만원, 공사비 3억2000만원에 설계비와 세금 등을 합쳐 각각 3억이 조금 넘는 비용이 들었다.

두 집이 붙어 있어 이름 지어진 ‘땅콩집’ 이야기는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왕자를 만난 신데렐라의 이야기처럼 전세난과 주택대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울리게 만들었다.

마음 맞는 친구나 형제와, 혹은 부모님과 함께 땅콩집을 짓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수십 채의 땅콩집, 심지어는 땅콩밭이 계획되고 있다고 한다. 바야흐로 아파트에 의해 왜곡되었던 주택건축이 제 자리를 찾을 기회가 온 것이다. 땅콩집을 여러 각도에서 소개하는 기사가 연일 다양한 매체를 수도 없이 ‘리트윗’되고 있다. 그간 사람들이 잊고 있던 ‘진짜 집’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다만 남의 말만을 전달하는 리트윗이 아닌 자신의 말을 첨가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지저귐으로 승화되길 바랄 뿐이다.

가온건축 공동대표·‘이야기로 집을 짓다’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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