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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34> 오마주

입력 : 2011-06-01 01:46:47 수정 : 2011-06-01 01: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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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은 창작의 과정…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 감독의 대표작 ‘전함 포템킨’(1925)의 ‘계단 시퀀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언터처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에서 오마주되었다.
존경하거나 혹은 베끼거나


이명세 감독 특유의 스타일과 영상미가 넘치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의 첫 장면,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흐르는 가운데 누군가가 비가 내리는 가을날 계단에서 암살자와 그 일행에게 습격을 당한다. 화면 가득 계단에 피투성이로 쓰러진 사람들이 아이와 잠든 노인 등 평화로운 장면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그 암살 장면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영상이면서 어딘지 낯설지 않다.

우리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언터처블’(1987)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 감독의 대표작 ‘전함 포템킨’(1925)에서도 그런 ‘계단 시퀀스’를 본 적이 있다. 당연히 예이젠시테인이 원조이다. ‘전함 포템킨’은 러시아혁명 2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선동영화로 포템킨호의 선상 반란과 오데사항(港)의 대학살을 그린 이 작품에서 특히 유모차가 계단을 굴러가는 ‘계단 시퀀스’는 두 개의 극단적인 쇼트를 충돌시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 내는 몽타주 기법을 개척해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그 외에도 ‘드레스 드 투 킬’(1980)에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1960)의 욕실 샤워 살인장면을 집어넣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평소에 즐겨보며 영향을 받았던 홍콩 느와르에 존경을 표하며 ‘저수지의 개들’에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에 나오는 장면을 군데군데 삽입했다. 뤽 베송 감독은 ‘제5원소’를 만들 때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오시이 마모루에 대한 존경의 표현으로 그의 작품 ‘공각기동대’에 나오는 장면(여주인공이 누운 채로 떨어지는 장면)을 따서 집어넣었다. 이처럼 영화에서 감독들이 평소에 자신이 존경하는 작가의 업적과 재능에 대한 경의를 담아 그 표현방식이나 장면을 따라하는 것을 ‘오마주(hommage: 존경, 경의)’라고 한다.
재료와 비례의 단순함과 기능적 가능성을 표현한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판스워드 주택’.
동양화의 경우도 원래 남의 그림을 베끼는 데서부터 그 공부를 시작하므로, 호생관 최북이라든가 오원 장승업 같은 대가들도 중국 화가의 가짜 작품을 그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베낀 내용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남의 작품을 모작(실물을 복제, Copy)하거나 임작(실물을 변화시켜 모사, Transcript) 또는 방작(실제 화풍을 모방, Imagined reproduction)했더라도, 누구의 작품을 누가 다시 그렸다고 명시한 고서화들은 원작을 그린 화가와 다시 그린 화가의 사승 관계라든가 영향력을 설명해 주어 오히려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오마주뿐만 아니라 ‘따라 하기’를 뜻하는 단어는 많다. 표절, 모방, 인용, 패러디, 리믹스, 리메이크, 파스티슈…. 표절은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인용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반면 오마주나 패러디, 파스티슈는 일부러 원작이 무엇인지 드러나게 하거나 아예 밝히는 것이다. 패러디는 풍자의 의미가 있고, 프랑스어인 파스티슈(Pastiche)는 합성, 혼성작품을 지칭한다. 고대 로마에서 그리스 헬레니스틱 유품의 단편에 새 의장을 덧붙여 완성한 작품에 사용된 미술용어로, 몇 개의 단편을 연계하여 만든 합성작품을 뜻하며 모작, 남의 것을 그대로 따와서 새롭게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적 문화현상의 하나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리믹스나 리메이크는 주로 음악에서 많이 쓰이는데 기존의 음원에 기술적 조작을 가한 것은 리믹스, 다른 사람의 음악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다시 만든 것은 리메이크이다. 그리고 음악에 전자기술이 도입되면서 악기와 목소리는 물론 자연음까지 손쉽게 음원(Source)으로 만들고 재생하는 샘플링 기법이란 게 생겼다. 기존 음악의 음원을 그대로 오려내서 집어넣는 것은 미술이나 조각 등 다른 분야에서는 어려운 기법으로, 음악이라는 독특한 양식이므로 가능한 것이다. 어쨌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판스워드 주택을 오마주한 필립 존슨의 ‘글래스 하우스’.
필립 존슨의 글래스 하우스


1932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현대건축:국제전시회(Modern Architecture: Inter-national Exhibition)’에서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같은 미국 건축가 외에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발터 그로피우스 등 유럽의 현대건축가들의 작품이 주로 전시되었다. 소위 ‘인터내셔널 스타일’의 합리주의 건축과 디자인을 미국에 소개한 이 전시기획에 참여했던 26세의 젊은이는 그중에서도 미스에 깊은 감명과 영향을 받고, 이후 그의 건축에 대한 전기 ‘미스 반 데어 로에’(1947)를 쓰며 저 유명한 ‘Less is more’라는 표현을 헌정한다. 그가 바로 현대건축의 대변자를 자청한 필립 존슨(Philip Cortelyou Johnson, 1906∼2005)이다.

미스는 나치를 피해 1938년 시카고의 I.I.T.의 건축과장으로 초빙되면서 미국에 건너와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재료와 비례의 단순함과 기능적 가능성을 표현한 작품들을 내놓는데, 그중에서도 ‘판스워드 주택’(Famsworth House:1946∼1950)은 지붕판과 바닥판을 잡아주는 하얀 H빔과 U형강의 보에 의해서 결구되어 있는 아주 단순한 구조물이다. 홍수를 대비해 바닥은 땅에서부터 들어올려졌고, 모서리 부분은 유리로만 연결되어 개방성과 역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 간명한 디자인은 언제 보아도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필립 존슨이 설계한 ‘글래스 하우스’(Glass House:1949)는 그에 대한 오마주라 할 수 있다. 색은 다르지만 단순한 구조의 기둥과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벽, 가장 단순한 박스 속에 가구로만 공간이 구획되어 있는 점 등이 모두 판스워드와 유사하고, 다만 바닥을 지면에 붙여 좀 더 자연이 관통되는 듯한 효과를 얻은 점, 벽돌로 된 욕실부분이 원형으로 지붕 위로 돌출된 점 등이 다르다. 필립 존슨은 이후 미스의 영향에서 점점 벗어나며 시대에 따라 적절히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미스의 거울 같은 이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다.

원래 건축에서 어떤 대상을 보고 그 표현이나 그 방식, 혹은 그 사고를 배우고자 할 때는 대상을 관찰하고 머리를 거쳐 손으로 따라 그려보는 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베낀다는 근본적인 의미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대상은 자기화하고 어느 정도 변형이 되어 다시 살아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오토캐드라는 도면을 그리는 프로그램 안에서 대상 도면을 열어놓고 베끼고자 하는 부분을 선택해서 ‘Ctrl C’ 하고 ‘Ctrl V’ 해버리면 된다. 얼마나 간단한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대상은 감정이나 감탄이나 혹은 경의 없이 그냥 복제되고 만다. 21세기에 들어서서 현대건축이 마른 식빵처럼 건조해지는 데는 그런 베끼는 방식의 혁신적 개선이 있었다. 현대는 ‘Copy’와 ‘Paste’로 표현되는, 아무 생각 없이 긁어 담아놓았다가 풀어놓는 대량복제와 감정 없는 답습의 시대인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서 나는 4년 동안 건축을 공부했으나 정작 건축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무언가 속이 휑하다는 강렬한 공복감에,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길 옆에 싱싱하게 살아 있는 많은 평범한 민가들과 그런 집들로 이루어진 동네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건축의 진정한 의미와 방법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오래된 집들과 절, 혹은 영혼이 쉬고 있는 집들은 건축의 정신적인 면과 개념이라는 것이 건축에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안동 닭실마을의 권씨 가문의 집, 논산에 있는 명재고택, 양동마을에 있는 서백당, 관가정, 향단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집을 봤고, 그 집들을 손으로 옮겨 그려보았다.

나는 길 위에서 건축을 배웠다.

실용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며 작고 소박한 집에 우주를 담은 이황의 ‘도산서당’.
우주를 담은 도산서당에 대한 오마주


특히 내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집이 안동 도산서원에 있는 퇴계 이황의 도산서당이다. 퇴계 이황은 57세가 되는 해에 도산서당을 짓기 시작했다. 마루와 방과 부엌으로 구성된 일자형 남향집으로 아주 작다. 그리고 낮은 담을 둘러져 있어 문도 없이 담이 문득 끊어진 곳을 통해 집으로 들어간다.

경(敬)을 바닥에 깔고 실용성과 합리성을 추구한 그의 건축은 이황 자신이라는 현실과 자신을 만들어주고 지탱하게 해주는 책이라는 과거와, 그에게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이라는 미래를 담는 집이다. 그리고 참 아름다운 집이다.

작고 소박한 집에 우주가 담긴다는…, 그 말만 들어도 마음이 두근거렸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달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신전과 같은 거대한 집이 아니다. 생각이 담긴 집, 더군다나 그 생각이 높고도 향기롭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도산서당은 내가 늘 꿈꾸던 그런 집이었다. 나는 밀려오는 감동에 그 집 마루에 앉아서 시간을 거스르며 행복해했다.

어느 날 충남 금산에 집을 짓겠다는 분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9월로 접어들었지만 퇴장하는 여름의 옷자락은 길어서 문을 열고 나갔는데 아직도 후텁지근하고 하늘이 잔뜩 찌푸리고 있던 날, 금산 외곽의 진악산이라는 푸근한 인상의 산이 마주 보이는 언덕에 올라갔다. 남쪽으로 얕은 구릉에 집들이 점점이 가까운 거리에 박혀 있었고 북쪽으로는 진악산이 옷자락을 넓게 펼친 채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연달아 불쑥불쑥 솟아 있는 산 사이로 멀리 큰 저수지가 있었는데 바람이 그 골짜기에서 빠져나와 이 땅을 거쳐 동네 언덕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담았던 도산서당에 대한 오마주, 금산주택.
며칠 동안 땅에 대해 궁리를 하다가 이윽고 집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애초에는 집의 크기를 40여평 정도로 지으려고 했다. 방 세 개, 화장실 두 개, 부엌, 거실 등을 갖춘 일반적인 집이었는데 몇 달 이야기를 하고 진행하는 동안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집의 크기를 줄이기로 합의했다. 나는 진악산을 바라보는 동서로 긴 집을 권했다. 도산서당을 떠올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집을 의뢰한 건축주는 퇴계가 도산서당을 짓기 시작한 나이와 같았고, 그 지역의 대안학교에 관계된 분이어서 집의 프로그램도 거의 비슷했다. 말하자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담기는, 그리고 자연과 조화롭게 마주보며 학생들과 공존하는 그런 집이 되는 것이다.

도산서당은 남쪽을 향해 앉은 가로로 긴 집이다. 그리고 북쪽에 산을 기대어 집을 앉혀 정면에서 보면 오른쪽에 학생을 가르치는 공간인 두 칸 규모의 마루인 암서헌이 있고, 이어서 퇴계의 침실공간인 한 칸짜리 완락재가 있다. 한칸 반 규모의 부엌이 서쪽에 달려 있다. 모든 것이 아주 단순하며 실용적이다.

금산에 짓는 집도 가로로 긴 집으로, 4칸 반 규모로 정했다. 동쪽으로 두 칸 규모의 마루를 놓았고 이어서 한 칸짜리 방 두 개가 이어지고 서쪽 반 칸에 부엌과 화장실 그리고 보일러실과 서재를 집어넣었다. 물론 도산서당의 한 칸보다는 금산의 한 칸이 훨씬 넓다.

다만 도산서당은 남쪽을 정면으로 두어서 들어서며 오른쪽에 마루공간인데 반해 금산에 짓는 집은 북쪽을 정면으로 두어 들어설 때 왼쪽으로 마루공간이 있다는 것이 다르다. 그리고 공사비를 감안해 한옥을 응용한 서양식 목구조로 집을 만들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네 칸 반, 43㎡(13평), 마루 26㎡(8평) 면적의 아주 단출하고 단순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봄치고는 제법 잦은 비가 있었지만 땅이 유순해지고 꽃이 피는 봄은 공사하기 적합해서 우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을 올렸다. 한 달 하고 열흘 남짓의 기간에 뚝딱 집이 올라갔다.

마루에 앉으면 산이 걸어 들어오고 발 아래 경쾌하게 흘러가는 신작로를 내려다보는 시원한 조망을 가진 집을 짓고, 마당은 시원하게 비워 놓았다. 곧 주인이 들어오고, 책이 들어오고, 마루에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모여 앉게 될 것이다.

이 집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담았던 도산서당에 대한 우리의 경건한 오마주이다.

가온건축 공동대표·‘이야기로 집을 짓다’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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