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부부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33> 아포리즘

관련이슈 세계일보 창간 21주년 특집

입력 : 2011-05-17 21:55:42 수정 : 2011-05-17 21:55:4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적을수록 많다’
장식 적을수록 의미는 풍부해지고 형식 절제할수록 본질에 가까워진다
새로운 시대의 감정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해서, 일찍이 베렌스가 20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불릴 것이라 예언한 미스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1929).
신은 죽고, 인간의 시대가 열리다


“신은 죽었다.” 역사상 이처럼 강력했던 말이 또 있었을까? 젊은 시절 나도 그 나이의 모든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부할 수 없는 그 레토릭에 반해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를 읽기 시작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왔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엄한 음악처럼 비장하게…. 그러나 조금 읽다가 졸고, 다시 조금 읽다가 생각이 완전히 다른 데로 가버리고 하는 통에 몇 번의 시도 끝에 포기했다. 그 책의 이야기는 지당한 말이며 합당한 말인데, 도통 나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지 못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의 책은 마치 들어가지는 못하고 계속 올려다보기만 하는 허공에 매달린 문과 같았다. 오랫동안 벼르다가 다시 도전한 건 얼마 전의 일이다. 여전히 졸렸고 여전히 생각은 줄곧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도대체 A4용지 반쪽이면 다 쓸 수 있는 말을 왜 이렇게 길게, 그리고 졸리게 써놓았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마침내 다 읽었다.

20세기 초의 건축가 페터 베렌스가 디자인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표지.
“신은 죽었다.” “형제들이여, 간곡히 바라노니 대지에 충실하라. 그리고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마라! 그들은 스스로 알든 모르든 독을 타서 퍼뜨리는 자들이다.” “인간이 아니라 초인이 나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목표다. 가장 가까운 이웃도, 가장 가난한 자도, 가장 고통받는 자도, 가장 착한 자도 나의 목표는 아니다. 내가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라는 점에서다.” 몇 개의 문장들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

니체의 말은 그간 서구라는 거대한 마차를 굴러가게 하던 바퀴의 축을 빼버린 것과 같은 커다란 충격을 줬다. 지금의 시점에서, 지금의 상황에서 그 말의 무게를 재보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가 ‘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당시에 서구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무척 컸고 처음에는 미친 사람의 미친 소리로 넘겼었지만 차차 맑은 물에 한 방울의 잉크가 서서히 퍼지듯 고르게 퍼져나갔다.

“신은 죽었다.” 이처럼 독하고 무모한 말은 또 없었을 것이다. 사실 니체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본인도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에게 ‘꼬마 목사’로 불릴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으나 18세 이후로는 새로운 신을 찾아다녔다. “만일 신들이 존재한다면 도대체 창조할 그 무엇이 있겠는가?… 만일 신들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하여 우리는 자기가 신이 아니라는 것을 견딜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그가 말하는 초인이 불교에서처럼 누구나 해탈할 수 있는 경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인간 개개인의 잠재성을 자극하는 언어들로 충만했고, ‘차라투스투라’는 일종의 복음서라 부를 만 했다. 윌 듀랜트는 “니체는 다윈의 아들이었고, 비스마르크의 동생이었다”고 말한다.

1844년에 태어난 니체는 1900년에 사망한다. 그가 1900년에 사망했다는 것은 무척 상징적이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놓고 바로 그 문까지 인류를 데리고 들어가서 문 안으로 밀어 넣고 자신은 사라졌다. 

다빈치가 그린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스케치.
아포리즘, 짧지만 강력한 언어들


니체의 책이 그토록 읽기 힘들었던 것은 그의 책이 잠언 형식의 철학적 경구로 이루어져 있어서였던 것 같다. 그의 글은 일반적인 철학책이 가지는 일정한 흐름과 속도 그리고 방향이 있는 논증적 서술방식이 아니라, 강력한 주제를 짧고 반짝거리는 경구로 계속 반복해서 들려준다. 마치 모두 금으로 도배되어있는 아름다운 조형물을 볼 때처럼, 아름다움을 느끼기보다는, 진리를 깨닫기보다는 그 몸통을 전부 휘감고 있는 반짝거리는 것들로 인해 눈이 부셔서 굉장히 괴로웠다.

그런 식으로 지식이나 지혜를 짧은 문장으로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아포리즘(aphorism)이라고 한다. 그 시작은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에 관한 저작 ‘아포리즘(Aphorisms)’이라는 책이며,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말로 시작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진다. “기회는 갑작스럽고 위험하다. 경험은 사람을 속이기 쉽고, 판단은 내리기 어렵다. 의사가 자기 할 일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환자와 환자를 돌보는 사람 및 필요한 모든 외부 사람이 군소리 없이 준비를 하고 그 일에 대비해야 한다.”

이렇듯 아포리즘은 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이나 글, 즉 격언·금언·잠언·경구 따위의 통칭이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널리 퍼져 사용된다는 점은 속담과 비슷하지만 속담은 작자가 분명하지 않은데 비해 아포리즘은 작자가 분명하다. 원래는 ‘분리하다(aphorizein)’라는 그리스어에서 파생한 기술적 용어로, 초기엔 예술·농학·의학·법학·정치학처럼 독자적인 원리나 방법론이 뒤늦게 발달한 학문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한다.

한동안 식당 입구마다 액자로 걸려 사람들의 찌든 마음을 위로해주곤 했던 푸슈킨의 유명한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나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같은 경구들이 대표적인 아포리즘이다. 짧고, 굵게, 누구에게나 공감과 지식을 선물하는 아포리즘. 요즘 유행하는 트위터 같은 SNS에는 그때그때 가슴을 울리는 온갖 아포리즘이 리트윗(retweet·다른 사람이 올린 글을 그대로 전송하는 것) 등을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퍼져나간다.

말하자면 아포리즘이 세상을 바꾼다. 자신의 생각을 함축하여 앞뒤를 자르고 핵심적인 부분만 툭 던져놓는 말들은 그대로 한없이 진리에 가까운 것이다. 진위를 판단할 틈 없이 사람들에게 경로를 생략한 채 바로 전달된다.

예전의 아포리즘이 고통을 잊고, 미래를 준비하는 단서로서 곱씹히는 약초 같은 글이었다면, 근래의 아포리즘은 양념을 뺀 매운탕처럼 멀건, 도무지 맛을 알 수 없는 글들이다. 언뜻 들으면 선문답 같지만 뻔한 이야기, 하나 마나 한 이야기들이 세상에 넘쳐나고 있다. 사람들은 마치 복합 비타민 영양제처럼 늘 그것을 복용한다. 서점에는 그런 류의 책들이 넘쳐나고 사람들은 그 짤막한 글들을 사방에 퍼 나르고 있다.

“참으로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의 얼굴보다 더 나은 가면을 쓸 수는 결코 없으리라, 그대 현대인들이여! 누가 그대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온몸에 과거의 기호들이 가득 적혀 있으며, 또 이 기호들 위로 새로운 기호들이 덧칠해져 있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인체의 비례와 황금비 등을 적용한 모듈러 체계를 개발해 건축에 적용했다.
건축의 아포리즘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다.” 이것은 괴테의 말이다. 건축의 비율과 형태와 구조의 관계를 상징한 것이다. 건축에 대한 아포리즘은 이렇듯 형태와 공간에 대한 비유 혹은 건축의 본질에 대한 것이 많다. “건축구조는 세 가지 본질을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데, 견고함(firmitas·强)과 유용성(utilitas·用), 그리고 아름다움(venustas·美)이다.” 이것은 기원전 1세기 로마의 건축가였던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us Pollio)가 한 말이다.

그는 케사르의 건축가였으며, 아우구스투스를 위해 현존하는 고대 유일의 건축 서적 ‘건축10서’(De Architectura 10권)를 썼다고 한다. 그가 지은 건축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건축10서’는 고대 로마 건축 연구 및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건축의 바이블’이라 할 만한 책이다. 기하학 도형 속에서 남자가 팔과 다리를 벌리고 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명한 인체비례도가 바로 비트루비우스의 책을 읽고 그린 것이다.

비트루비우스는 이미 2000년 전에 도시계획과 건축일반론, 재료, 신전·극장·목욕탕 등 다양한 건축물, 측량법, 천문학 등 건축기술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다루었다. 그는 그리스 건축의 영향을 받아 규칙적인 비례와 대칭구조, 고전적 형식미를 강조했고, 그리스 건축양식을 도리스, 이오니아, 코린토스 양식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그에게 건축은 새나 벌이 둥지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모방이었으며, 따라서 건축의 재료는 자연에서 구하는 것이고, 건축은 인간에게 휴식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집은 안전하고 편안한 피난처(shelter)라는 것은 특별한 학습 없이도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는 일종의 선험적 지식이다. 몇 년 전 어느 날 갓 한글을 배운 딸이 집에 굴러다니는 책을 읽고 와서는 씩씩대며 물었다. “이 건축가는 이상한 사람인데? 집이 왜 기계-따위-라는 거야?” 집에 대한 정의를 뒤흔들어 딸을 화나게 한 사람은 현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다. 그는 1921년 ‘에스프리 누보’에서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La maison est une machine a ´habiter)”라고 쓰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비행기·배·자동차 같은, 논리적이고 정확하며 가장 효율적이면서 아름답기까지 한 이동 가능한 기계들에서 얻은 교훈을 통해 기하학적 기본 형태의 단순미를 추구했다. 기존의 모든 주택과 관습적 거주 방법을 잊고 사람의 몸을 기준으로 한 주거 단위에 대해 ‘새로운 정신’으로 냉정하게 연구하고자 했고, 그것은 산업혁명 이후 농업에서 공업 위주로 급격히 변화한 사회 환경, 즉 농민에서 도시민으로 전환한 대다수 사람들의 ‘새로운 삶’을 지원하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모두가 니체가 열어준 문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가장 유명한 건축의 아포리즘은 역시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경구 “적을수록 많다(Less is More)”일 것이다. 장식, 즉 요소들이 적을수록 의미는 풍부해지고, 형식을 절제할수록 본질에 가까워진다는 식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그 말은 건축뿐 아니라 디자인 분야에까지 널리 회자하며 20세기 건축을 뒤흔든 가장 중요한 아포리즘이 된다.

정작 미스는 자신의 사상이나 기본 동기를 설명하는 어떠한 개인적인 활자도 자신의 건축작품에 덧붙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건축을 미학적 사변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다.(프리츠 노이마이어, ‘꾸밈없는 언어’) 20세기 초 젊은 미스가 페터 베렌스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무렵, 베렌스를 비롯해 당시 새로운 건축양식의 주요 대변자들이었던 앙리 반 데 벨데, 브루노 타우트, 르 코르뷔지에와 화가 마티스, 칸딘스키 등 많은 예술가들이 니체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들 모더니즘의 선구자들은 니체를 통해 도덕·종교·자연의 구속으로부터, 또 신화적 구속으로부터 이론과 예술을 해방시키고자 나섰고, 미학적 형식 속에 내재된 약속을 통해 삶의 실천으로 이끌어갈 준비를 갖추었다. 여기서 삶의 실천은 ‘현상의 모사’가 아니라 ‘의지 자체에 대한 모사’이며, ‘시대의지(Zeitwille)’가 담긴 것이어야 했다. 미스가 추구한 본질적 건축은 그러한 ‘존재의 건축’이었고 그의 건축 자체가 일종의 함축적 아포리즘이었다. 그리고 현대 건축은 미스의 아포리즘과 함께 활짝 열렸다.

“나는 창조하는 자, 수확하는 자, 출제를 벌이는 자들과 힘을 합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무지개를 보여주리라. 초인에 이르는 모든 계단도.”(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가온건축 공동대표 ‘이야기로 집을 짓다’ 공동저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나연 '깜찍한 브이'
  • 나연 '깜찍한 브이'
  • 시그니처 지원 '깜찍하게'
  • 케플러 강예서 '시크한 매력'
  • 솔지 '아름다운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