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와 관광상품 묶어 공략
국내 병원들 글로벌화 박차

최근 선천성심장병 치료를 위해 부천 세종병원을 찾은 러시아인 안드레이(35·하바롭스키 거주)씨는 연방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는 성인이 되도록 ‘심실중격 결손증’(좌심실과 우심실 사이 중간 벽에 구멍이 있는 질환)을 앓았으나 이 병원 박천수 흉부외과 과장의 수술로 완치됐다. 수술 후 약 10일간의 회복기간을 거쳐 서울시내 관광까지 한 뒤 며칠 전 귀국했다.
의료계에도 ‘한류’ 바람이 거세다.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대형 병원은 물론이고 강남 개원가, 부산·대구 등 지방의 병원에서도 어렵지 않게 일본·러시아·미국 등에서 온 외국인 환자와 방문객을 찾아볼 수 있다. 정부도 우수한 인적자원,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의료서비스 산업을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키 위해 ‘메디컬 코리아’ 대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새해 업무보고에서 지난해 해외 환자 8만5000여명(국내 거주 일부 외국인 포함)을 유치한 데 이어 올해 11만명, 2015년까지 30만명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국무조정실 국무차장이 주재하는 ‘외국인 환자유치 TF’를 구성해 의료관광 홍보는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 제공은 보건복지부 중심으로 추진하되 정보 공유 및 긴밀한 협력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의료관광 타깃도 형태별로 1∼3차 시장으로 구분해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1차 시장은 ‘관광+의료’ 형태로 중국과 일본 등 근거리 국가를 상대로 문화투어 관광에다 미용치료, 성형, 건강검진 위주다. 2차 시장은 ‘의료+관광’ 형태로 러시아, 몽골, 동남아시아 등 의료 수준이 낙후된 국가를 대상으로 치료 목적으로 한국을 찾게 한 뒤 관광을 가미하는 형태다. 3차 시장 역시 ‘의료+관광’ 형태이지만 북미, 유럽 등 상대적으로 적정한 비용을 내세워 자국에서 장시간 대기해야 하는 환자들을 겨냥한다는 계획이다. 의료비용은 미국·일본 등에 비해 저렴한 데다 의료 수준은 미국의 76%, 일본의 85%, 유럽의 87% 수준인 점을 부각시켜 의료 틈새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하는 병원들
국내 병원들의 해외환자 유치 경쟁이 본격화한 것은 외국인 환자 유치활동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효된 2009년 5월부터다. 삼성서울병원은 해외 현지시장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4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현지에 ‘삼성 두바이 메디컬센터’를 개소해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를 파견하고 각 진료과 전문의가 순환 출장 진료를 하고 있다. 중증인 환자는 한국으로 데려와 진료한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보건국은 지난해 7월 국내는 물론 동북아시아 병원 중 유일하게 이 병원을 두바이보건국 공식 지정 병원으로 선정했다. 두바이 공식 지정 병원은 두바이 현지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국민이 해외 진료를 희망할 때 그 치료비 전액을 두바이 정부가 지급하는 병원으로 미국, 유럽 등 의학선진국 일부 병원만 지정받았다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삼성서울병원은 특히 국내 최초의 외국인 전용병원이 될 삼성 국제의료센터를 2015년 개소할 예정이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2007년 국내 병원 최초로 JCI(미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 인증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 재인증(인증 유효기간 3년)을 받았다.
서울아산병원은 외국 의사들에게 의학 연수기회를 제공하는 ‘AIA(ASAN in ASIA)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전쟁 후인 1960년대 ‘미네소타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한국 의사들을 자국으로 초청해 의료연수를 시킨 것처럼, 아산병원의 우수한 의료 수준을 세계 의료계에 되돌려 줌으로써 국제적 위상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매년 300여명이 넘는 외국 의사들이 이 병원에서 연수받고 있다.
관절치료 전문인 우리들병원은 2006년 1월 외국인 환자 유치 전담 부서인 ‘우리들국제환자센터’를 개설한 이후 연간 1200명이 넘는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있다. 이 병원 이황 국제협력팀장은 “국제환자센터 개설 이후 누적 외국인 환자는 4735명으로 매년 평균 23.24% 증가했다”고 소개했다.
지방 병원들도 ‘의료 한류’에 가세하고 있다.
화순전남대병원은 올 초 베트남 하노이 현지에서 의료관광 설명회를 열고 의료관광시장 개척에 나섰다. 이 병원은 지난해 국내 국립대학병원 최초로 JCI 인증을 받아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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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등 국내 메이저 병원들은 단순한 해외 환자 유치를 넘어 외국 의사들에게 간이식과 심장수술 등 수준 높은 우리 의료기술을 전수하면서 글로벌 의료 강국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간 이식 대가로 불리는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팀이 외국 의료진에게 간이식수술법을 교육하고 있다. 이 교수의 수술장에는 1년 내내 외국인 의사들이 상주해 있다. 서울 아산병원 제공 |
이 같은 노력에도 의료 한류는 아직 초보 단계에 불과한 실정이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0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환자는 1만5484명으로 태국 154만명, 싱가포르 42만명, 말레이시아 42만명, 인도 27만명에 비해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박승림 인하대 의료원장은 “외국 환자를 유치하는 일은 글로벌하고 광범위해서 시간과 비용은 물론 많은 부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이슬람 국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병원 내에 이들을 위한 종교시설이 필요하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그들을 위해 식단도 챙겨봐야 한다.
박인출 대한네트워크병의원협회장은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산업은 의료 품질이나 가격 면에서 세계적 수준의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며 “하지만 좀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병원에 대한 투자 허용 등 글로벌 경쟁 환경에 맞는 관련 법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박태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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