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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25> 작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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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2-08 20:59:21 수정 : 2011-02-08 20: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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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오두막집에서 큰 ‘초월주의’ 문학이 탄생했다 가장 작은 방, 가장 작은 삶

요즘은 공식적인 사용을 규제하고 있지만, 우리가 평소에 익숙하게 사용하는 ‘평(坪)’이라는 넓이 개념이 있다. 이것은 사실 대한제국 시절인 1902년에 일본, 서양 등과 교역하기 위해 우리가 종래에 사용하던 영조척(약 31㎝) 대신 일본의 곡척(1척=30.303㎝)을 들여와서 쓰기 시작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한 평(3.3㎡)은 사방 6자, 즉 가로 세로 1.8m 정도이다. 일제강점기에 많이 사용했던 다다미 한 장이 가로 3자(0.9m), 세로 6자(1.8m)였으니까, 그 다다미를 2장 맞붙여 만든 정사각형의 넓이가 그만큼 된다. 비슷한 규모의 집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아파트 문화가 보편화하면서 우리는 3평의 방, 5평의 거실, 1평 반의 화장실 하는 식으로 방의 용도와, 그에 따른 넓이에 대하여 동물적 감각에 가까운 판단기준을 갖게 되었다.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 지었던 4평 크기의 오두막. 그는 벽난로와 침대와 책을 읽을 수 있는 간단한 의자가 전부인 작은 집에서 큰 생각을 펼쳤다.
가령 온갖 제도적 혜택을 받는 기준이 되는 ‘국민주택’ 규모는 85㎡인데, 그 옆에 덧붙여 (25.7평) 하는 식으로 병기를 해야 비로소 그 크기가 대략 인식될 정도로 우리는 그 잣대에 익숙해졌다-국민주택 규모의 유래는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을 제정할 때, 박정희 대통령이 과거 살던 집의 크기를 떠올려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해서 정했다는 것이라는 설이 있다.

과거의 집이 적어도 국민주택 정도의 규모 언저리에서 할아버지·아버지·손자 등 3대가, 심지어는 아버지, 작은아버지까지 모여 사는 대가족을 집에 담아야 했다면 요즘은 주말가족, 기러기 가족 등등 여러 가지 사회적 이유로 가족들이 흩어져 사는 일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무슨 민족의 해방과 국가의 독립을 위해서도 아닌데 비장하게 흩어지고 외롭게 잠자리에 든다.

그런 식으로 홀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형태의 집들이 오피스텔, 원룸, 고시원, 쪽방 등등이다. 수준의 차이가 많이 나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사람의 삶을 담아놓는 주거의 형태들이다. 원룸의 평균 넓이는 약 26㎡(8평), 고시원은 전용면적 6∼10㎡(2∼3평)이고,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본 쪽방의 크기도 1.2m×2.4m(2.88㎡, 약 0.9평)로 한 평에 조금 못 미치는 크기였다. 반쪽짜리 방이라는 의미의 그 작은 방은 전국에 만여 개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쪽방의 크기는 감옥 독방의 크기이기도 하다.

“존경하는 판사님과 검사님. 당신은 혹시 길이 여덟 자, 너비 넉 자 크기의 관 속에 들어가 누워 본 일이 있습니까? 어떤 느낌일까요? 경험이 없어서 상상이 안 가지요, 그 관의 크기는 0.9평입니다. 그 관에는 0.2평의 변소가 붙어 있어서, 전체가 1.1평 크기라고 가정합니다. 상상이 갑니까?”

리영희 교수가 80년대 말에 신문에 썼던 칼럼의 일부이다. 지금은 그 크기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예전에 악명 높았던 서대문 형무소에서는 독방에서 세상에서 가장 좁은 공간을 겪어야 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작은 감옥에서 하루에 잠깐 비치는 손수건만 한 햇볕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면, 세상에서 점유할 수 있는 절대적인 최소한의 면적에 인간이 갇혀 살아갈 때의 고통이란 어떠할 것인지, 치죄를 하고 구형을 하는 이들에게 역지사지해보라는 의미로 쓴 글이었다.

좁은 면적, 최소한의 빛…. 인간을 무력하게 하고 희망을 잃게 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아주 작은 공간의 압박….

발길 닿는대로… 2명이 살 수 있는 이동식 집 오스트리아에서 제작, 판매하는 2.6m 입방체로 된 주택 ‘마이크로 콤팩트 홈(micro compact home)’.
큰 집, 빈 집… 크기에 집착하는 현대인 집의 노예로


우리는 모두 집에 집착한다. 집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집의 크기에 집착한다. 차의 크기와 집의 크기는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따라서 현대의 집들은 커졌다. 그러나 그 안에 사는 사람들 또한 비대해져서 집은 점점 좁아지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집 늘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보통의 인간’은 아주 작게 태어나서 아주 작은 집(반 평짜리 관이나 작은 단지)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 삶의 중간에서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키우고, 결국 그 무게에 눌려서 버둥거린다. 왜 우리는 우리의 몸에 맞지 않는 집을 원하는 것일까.

모두들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집도 커져야 한다고 믿었다. 18평 아파트에서 시작한 신혼살림이 40대쯤엔 40평이 되고, 50대엔 50평 이상이 되어야 사회적 성공을 이룬 것이라고들 믿는다. 성공적인 재테크로 마련된 넓은 집을 놔두고, 남편은 야근과 회식 때문에, 아내는 아이들을 실어나르는 시간을 기다리며,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가족 모두가 종일 길 위에 있으면서도 말이다.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은 하루의 삼분의 일도 안 되는, 주로 잠자는 시간뿐이다.

그건 결국 살기 위한 집이 아니라 내보이기 위한 집이다. 정작 사람 대신 빈둥빈둥 옷가지나 책을 얹고 있는 고가의 소파, 알고 보면 비닐로 뒤덮인 턱없이 비싸고 몸에도 맞지 않는 수입 싱크대, 벽보다 더 큰 텔레비전…. 속을 더부룩하게 하는 삶의 거품들을 잔뜩 얹고, 집 혼자 집을 지킨다.

물론 사람들이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니고, 다만 자본주의 사회의 체제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그런 욕망을 부추기고 그 동력으로 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좋건 싫건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충실하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날마다 각종 매체에 누가 새로 몇십 억원짜리 집을 샀다든가, 영화에 나올 법한 궁전 같은 집에서 고급 가구에 둘러싸여 산다든가 하는 기사들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우리는 넋을 잃고 그 생활을 머릿속에 스캔하고 마치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라도 되는 듯이 열심히 입력한다.

그러나 그런 집에서 산다는 건 마치 유명 패션 디자이너가 한껏 힘을 주어 만들어놓은 발표용 의상을 입고 생활하는 것과 같다. 앉다가 구겨지면 어떻게 하나, 밥을 먹다가 국물 한 방울이라도 튀면 어떻게 하나 고민하듯, 우리가 집착하는 큰 집이나 화려한 집에 살기 위해서는 일상의 편안함을 포기해야 한다. 마루가 파이면 어떡하나, 가구 모서리가 닳으면 어떻게 하나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이 지경이 되면 이건 집이 아니라 상전이고, 우리는 집의 노예인 것이다. 점점 사람은 왜소해지고 생각도 왜소해진다. 화려한 집에 담기는 건 빈곤한 삶이다. 그 안에서 어느 날 물밀듯이 밀려오는 존재에 대한 회의처럼 집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궁궐 같은 집, 성당 같은 집, 우주기지 같은 집…. 우리는 왕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우주인도 아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집도 사람을 기형으로 만든다. 우리에게 맞는 적합한 크기는 얼마만큼일까. 

접으면 호주머니에 ‘쏙’… 펼치면 쉼터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고 사람이 하나 들어갈 정도의 입방체가 되기도 하는 휴대형 공간.
작은 집, 큰 생각… 무소유의 삶 우주를 품다


어떤 사나이가 바지 주머니에 무언가를 넣고 걸어간다. 그는 넓은 장소에 이르자, 주머니에서 그 물건을 꺼내서 부풀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점점 부풀어 결국 사람이 하나 들어갈 정도의 입방체가 되고, 사나이는 그 안으로 들어간다. 집의 규모를 최소화하여 들고다니다가 언제든 내려놓고 들어가 쉰다는 상상, 이것은 물론 관념적이고 실험적인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이지만, 우리는 언젠가 그런 공간, 즉 그렇게 휴대할 수 있는 집에서 살게 될 날이 올지 모른다.

실제 비슷한 생각이 구체적으로 발현된 사례도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제작, 판매하는 작은 입방체로 된 주택 ‘마이크로 콤팩트 홈’(micro compact home)은 2.6m 입방체로 2명의 성인이 주거할 수 있게 만든 이동식 모듈의 주거 유닛이다.(www.microcompacthome.com) 물론 직접 들고다닐 수는 없지만 이동이 가능하고, 필요하면 더 쌓을 수도 있다. 유닛의 내부는 위층에 2인용 침대가 있고, 아래층에는 4∼5인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조리공간이 있다. 딱 몸에 맞는 크기처럼 보이는 그 2.6m×2.6m 공간은 6.8㎡(약 2평)의 넓이다. 하나 가지고 다니고 싶어질 만하지 않은가.

그건 국토해양부에서 정한 1인당 최저 주거면적의 절반이다. 국토해양부에서는 ‘최저 주거 기준’을 7년 만에 큰 폭으로 상향시켜서, 가구당 최소면적을 1인당 12㎡(3.6평)에서 14㎡(4.2평)로 올리기로 했다. 종전의 기준은 2004년 6월에 정한 것이었는데 최근 국토연구원에 의뢰한 연구결과를 근거로 내부방침을 정해 3월쯤 새 기준을 공고할 예정이고, 그 수치를 기준으로 모든 주택에 대한 정책을 펼치게 될 것이라 한다-우리의 삶에 담겨야 할 단위 면적이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몸이 비대해져서일까, 아니면 우리가 업고 살아야 할 인생의 짐들이 점점 늘어나서일까.

이번에 정해지는 최저주거기준은 공교롭게도 소로가 월든 호수(Walden) 변에 지었던 오두막의 넓이이기도 하다-물론 우연이겠지만. 1845년 7월 4일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월든 호수 근처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27살 청년이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기 시작한다. 청년이 단돈 28달러를 들여 직접 나무로 만든 그 집의 넓이는 14㎡, 약 4평 크기의 오두막이었다.

28달러라면 그가 하버드대학에 다닐 때 일 년 집세로 지불한 돈과 얼추 비슷한 금액이었으니 그다지 많은 돈이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벽난로와 침대와 책을 읽을 수 있는 간단한 의자가 전부인 그 집은, 말이 집이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그냥 ‘원룸’으로 보면 되겠다. 그는 그곳에서 2년 2개월 2일을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며, 주변의 자연과 동물을 관찰하고, 자신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숲 속의 생활(Life in the Woods)’이라는 책으로 묶어냈다. 그 책이 바로 우리가 ‘월든(Walden)’이라고 부르는 책이다.

소로는 초절주의 혹은 초월주의라고 불리는, 현실의 허구를 부정하는 약간은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철학을 개척했다. 그가 2년의 수련 후 월든 호수에서 나온 후의 삶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보여준 단순하고 경건한 삶은 마치 작년에 돌아가신 법정 스님이 연상되는 무소유의 삶이다. 소박한 생활 속에서 한없이 넓어진 그의 생각은 세상으로 퍼져나가 많은 사람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결국 한 사람에게 필요한 절대면적은 4평 정도이다. 거기에다 일반적인 취사도구와 위생기구를 가져다 놓고 음식을 만들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공간을 덧붙인다고 생각하면, 한 평 반 정도가 더해진다. 즉 18㎡(5.5평) 정도면 한 사람이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 이외의 면적은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공간, 즉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를 위한 여백이다.

소로뿐이 아니라 예부터 우리가 기억하는 많은 훌륭한 분들은 평생을 갈무리하는 시점에 작은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살며 자신의 완성을 축하했다. 마치 자신의 목표가 작은 집을 짓는 데 있는 것처럼 세 칸이나 커야 네 칸 정도의 집을 짓고 살았다.

예전에 집의 규모를 헤아리는 우리의 단위는 칸(間)의 개념이었다. 칸이란 기둥과 기둥의 사이로 대략 7∼10자의 길이를 뜻한다. 7∼10자에서 정해지는 1칸은 1자의 길이가 1902년 개량되기 이전 영조척의 기준으로 볼 때 2.17∼3.1m였을 것이다. 즉 1칸은 일정한 길이가 아니다. 가로 세로 각각 1칸이면 하나의 방이 되고, 여기에 마루나 부엌이 붙어 세 칸 집이 되는 식이다.

이것이 목조건축의 특징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전통건축의 특징이기도 하다. 즉 나무로 세우는 기둥의 간격이 한계가 있기는 해도 큰 편차가 없이 서로 엇비슷하다고 보는, 좀 더 유연한 개념이었다. 그래서 집은 짓는 장인이나 주인의 독자적인 ‘수의 철학’이 반영되어 결정되기도 했다.

한 칸이 지금의 기준으로 하면 2평이 조금 안 되는 넓이이므로 크게 잡아도 10평 남짓이다. 바른 생각을 가진 옛 사람들은 작게는 2∼3평의 집에 만 권의 책을 담았고, 우주를 담았다. 그러면서도 그 집에 주변의 자연을 담았고 세상의 인재들을 모아서 키웠다.

남명 조식은 60세에 덕산으로 가서 산천재를 지었고 퇴계 이황도 60세에 도산서당을 지어놓고 그 안에서 살았으며 우암 송시열도 남간정사를 짓고 자신은 그 속에서 반 평짜리 작은방에 몸을 뉘었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우리의 그림자는 우리의 영혼보다 크다.(Our shadows taller than our soul)”-레드 제플린이 부른 노래 Stairway to Heaven 중에서.

가온건축 공동대표·‘이야기로 집을 짓다’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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