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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술협의회 편, 아카넷 |
척박한 인문·사회·자연과학 분야를 집중 지원해 우리나라 기초 학문의 균형성장을 꾀한다는 취지로 1980년 출범한 대우재단이 30년을 맞았다.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의 200억원 출연으로 만들어진 대우재단이 30년간 지원한 연구과제는 총 1370건에 달하며 참여한 학자만 1800명에 이른다. 연구 지원 결과물은 ‘대우학술총서’와 ‘대우고전총서’로 출간됐다. 1983년 11월 ‘한국어의 계통’(김방한 지음)을 시작으로 인문학 219종, 사회과학 127종, 자연과학 208종 등이 출간된 ‘대우학술총서’는 최근 600권 기념호로 ‘우리 학문이 가야 할 길’(한국학술협의회 편, 아카넷)을 내놨다.
그동안 연구지원이 많이 이뤄진 14개 학문 분야의 현황을 점검하고 새로운 가능성과 방향을 모색한 600권 기념호엔 특집으로 김광억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김두철 고등과학원 원장, 이태수 인제대 철학과 교수가 ‘우리 학문의 현황’을 주제로 가진 대담을 실었다. 이들은 학계의 양적 팽창에 대한 문제, 번역 문제, 영어 강의, 학문의 융복합 경향을 포함해 서구 중심으로 재편된 학계에서 우리 학문이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김광억 교수는 “문화 간의 이동 혹은 통관 과정의 고민이 담긴 원전의 번역 없이 이차적인 연구서의 번역이 주류를 이루는 현실이 우리 학문의 자생력을 떨어뜨린다”고 진단했고, 이태수 교수는 최근 부쩍 강조되는 영어 강의와 외국어 논문에 문제를 제기하며 “국제 교류를 활성화할 필요는 있지만 우리말로 이루어지지 않는 학문 활동이 어떻게 우리 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느냐”고 꼬집었다. 또한 “국내 학자들은 동료 학자의 작업에 무관심한 경향을 보인다”는 김두철 원장은 “단순히 유행처럼 융복합 학문을 내세울 게 아니라 학문 간의 소통을 위한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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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문의 현황’을 주제로 대담을 하고 있는 김두철 고등과학원 원장, 김광억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이태수 인제대 철학과 교수(왼쪽부터). |

장경렬 교수는 “인간은 과학과 기술 공학의 시대에서조차 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인간적 삶을 살아갈 것이므로 문학은 ‘과학화’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현 교수는 제국 또는 패권 중심의 ‘낡은 세계사’의 대안으로 탈서구 중심주의를 내세우는 ‘새로운 세계사’를 제시하고, 장영민 교수는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충분히 높지 않으면 로스쿨 운영이 왜곡될 소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진우 교수는 “한국 철학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란이 오히려 학문의 발전을 방해한다”며 “다양한 사상을 창의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21세기의 철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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