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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20>맥거핀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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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1-15 15:04:39 수정 : 2010-11-15 15: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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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공간 개발, 정작 해야할 고민들은 표류 맥거핀, 중요한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신라의 달밤’이라는 영화에는 박 반장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저씨가 나온다. 늙수그레하고 꾀죄죄한 풍모에 꼬깃꼬깃한 바바리를 입고, 모자를 쓰고 다닌다. 그는 주인공인 박영준(이성재)을 느닷없고 끈질기게 찾아와 “박영준이! 난 너 같은 인간쓰레기 청소하러 온 환경미화원이야” 하며 쫓아다닌다. 다만 형사로 추정될 뿐인 그 아저씨는 영화 속 이야기의 진행과 큰 연관성이 없으며 별다른 의미도 없다. 다만 사람들을 교란시킬 뿐이다.

1991년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비롯해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을 휩쓴 코엔 형제의 영화 ‘바톤 핑크(Barton Fink)’에서, 할리우드로 끌려온 어리바리한 극작가인 주인공 바톤 핑크는 호텔방에서 새벽에 깨어나 함께 자던 사람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놀라고 당황해하던 그는 옆방에 묵고 있는 정체가 모호한 보험영업원 찰리의 도움으로 당장의 곤란(시체처리)에서 벗어난다. 깔끔하게 일을 처리한 찰리는 어디론가 떠난다며 짐을 하나 맡긴다. 그것은 종이로 곱게 싸서 노끈으로 묶은 내용을 알 수 없는 상자이다. 주인공은 그 상자를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 들고만 다닌다.

영화의 내용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면서 찰리가 사람 목을 베어 죽이는 살인마라는 것이 밝혀진다. 불안한 핑크의 눈(그리고 관객의 눈)은 계속 그 상자에 머물지만, 그 상자 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결국 밝혀지지 않는다. 그 상자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것들을 ‘맥거핀(macguffin)’이라고 한다. 속임수, 미끼라는 뜻으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고안한 것인데, 영화의 초반부에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버리는 극적인 장치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이 히치콕과 맥거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가령 스코틀랜드로 가는 열차에 두 남자가 타고 있는데, 한 남자가 선반 위에 놓인 상자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묻는다. “저기 위에 얹혀 있는 상자가 무엇입니까?” “맥거핀입니다.” “맥거핀이라뇨?” “맥거핀은 스코틀랜드 고원에서 사자를 잡는 장치랍니다.” “스코틀랜드 고원에는 사자 같은 것은 살고 있지 않은데요?” 그러자 남자가 대답한다. “아∼ 그럼 맥거핀은 아무것도 아니군요.”

또는 네 명의 사나이가 어떤 방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사나이들이 들어오기 전에 그 방 한가운데 있는 탁자 아래에 누군가가 시한폭탄을 장치해놓는 것을 관객들이 먼저 본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전지적 시점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사나이들은 폭탄이 설치된 상황의 급박함을 모른 채 철딱서니 없게도 서로 농지거리만 해댄다. 화면에는 계속 폭탄에 장치된 시계와 사나이들이 교차한다. 긴장이 최고조에 이를 때쯤, 그중 하나가 “우리 나가서 음료수나 마실까!”라고 말하고 모두 동의하며 쾌활하게 그 방을 벗어난다.

그렇다면 폭탄은 뭐냐! 허무개그가 아니라 히치콕이 친절하고도 자상하게 예시해준 맥거핀의 사례다. 결국 맥거핀은 사람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이고 떡밥이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눈이 팔려 정신없이 끌려다니다가 어느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는 그 ‘사자 잡는 장치’를 망연자실 쳐다보게 된다. 그 순간 사람들은 아이러니를 느끼고 상황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실현된 은평뉴타운(출처 부동산 써브).
아이러니, 진실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아이러니는 원래의 생각과 반대되는 말로 숨겨진 의도를 은연중 나타내거나, 사건들이 기대하던 것과 정반대로 전개되어 의미를 강조하거나 특정한 효과를 유발하는 것을 뜻한다. 아이러니에는 의도적인 무지(無知)를 사용하여 상대방을 점차 모순으로 빠져들게 하여 스스로 무지를 깨닫게 하는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가 있다고 사전에 쓰여 있다. 우리의 무지를 깨닫게 해주려고 의도적 무지를 사용한다고?

사실 우리는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런 일에 아주 익숙하다. 왜냐하면 여러 번 겪어왔기 때문이다. 독재자로 오랫동안 악명 높았던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한 이라크 전쟁의 시작은 대량살상무기(WMD)였다. 대량살상무기란 유엔재래식군축위원회에서 정의한 바에 의하면 “핵폭발무기, 방사능무기, 치명적인 화학·세균무기 및 상기 언급한 무기와 파괴효과에서 필적하는 특징을 갖는 장래에 개발될 무기”이다. 이런 무기를 운송하는 미사일 등을 포함하기도 하며, 이들의 치명적인 파괴력으로 세계가 핵확산금지조약(NPT)과 생물무기금지조약(BWC) 등 이를 억제하려는 노력을 모으고 있다.

2003년 3월 미국과 영국 등의 연합군은 이라크가 무기사찰을 수용한다는데도 그들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며 기어이 전쟁을 시작했다. 한 달도 안 되는 사이 엄청난 무기를 쏟아부었던 그 전쟁은 A매치처럼 화려하게 세계로 생중계되었다. 결국 싱겁게 전쟁은 종결되었고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 “그러면 대량살상무기는 아무것도 아니군요.” 그렇게 끝났다.

전쟁이 있었고, 아직도 이라크에서의 긴장 상태는 계속되지만, 그 먼 나라에 대량살상무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사람들은 별로 궁금해하지도, 기억하지도 않는다.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최근 자서전에서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가 결국 발견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자신보다 더 충격받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했다. 그걸 믿으라고 하는 말인지….

그리고 우리에게는 ‘평화의 댐’도 있다. 88올림픽을 몇 년 앞두고 정부는 갑자기 북한이 남한에 물 공격을 하기 위해 금강산댐을 짓고 있다고, 그 댐이 터지면 서울의 63빌딩만 남기고 모두 물에 잠긴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아이들 용돈, 콩나물 살 돈 같은 온 국민의 쌈짓돈이 모두 모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댐은 어떻게 되었고, 우리를 담가놓을 것이라던 그 많던 물들은 다 어디에 있나? 1993년 감사원은 금강산댐의 저수량은 200억t이 아니라 59억4000만t 내외이고 최대치가 방류되어도 서울 마포 용산의 저지대 일부만 침수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리영희 교수는 “이런 식으로 정부가 국민에게서 거두어들인 ‘평화의 댐’ 건설 성금이 얼만지 아시오?”(1989. 2.12 ‘한겨레논단’)라며 질타한다. 1986년 11월1일부터 사실이 폭로되어 중단한 1988년 5월26일까지 자그마치 716억8528만1267원을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훑어냈다는 것이다. 역시 국민의 세금인 국고에서 1294억원을 ‘평화의 댐’ 기초공사에 털어 넣었으니, 합계 2000여억원! 200,000,000,000원! 리영희 교수는 정권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거기에 동원된 지식인들의 모습, 특히 ‘금강산 댐 물귀신 작전’을 과학이론적으로 입증한답시고 동원됐던(또는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학자·전문가들의 작태 또한 비판한다.

그리하여 평화의 댐은 1989년 1단계 완공 후 내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다가, 그나마 1995년과 1996년 집중호우 때 홍수 조절 기능이 입증되었다. 그 후 물 공격이 아닌 금강산 댐(임남댐)의 구조안전 문제와 그에 따른 피해 우려로 2단계로 2002년부터 댐의 높이를 80m에서 125m로 높이는 공사를 재개하여, 2005년 10월 완공되었다. 1, 2단계 공사를 합쳐 들어간 비용은 약 4000억원이라 한다.

영화 속의 맥거핀 효과라면 단지 관객을 영화가 끝나는 시간까지 잠시 현혹시킬 뿐이지만, 현실에서의 맥거핀은 이렇게 전쟁을 일으키거나, 정권을 유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까지 악용되곤 하는 것이다.

◇영화 ‘바톤 핑크’에 등장하는 상자.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줄거리와는 크게 상관없는 ‘맥거핀 효과’의 전형적인 사례다.
명분보다 삶의 가치를 찾는 길


그뿐일까? 매일 인터넷을 켤 때마다 우리를 ‘낚는’ 수많은 맥거핀들을 만나게 된다. 유명한 배우가, 혹은 아이돌 가수가 무슨 큰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서 클릭해 보면 ‘극중에서’ 혹은 ‘무대에서’ 그랬다는 식으로, 포털 사이트들에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조회 수를 올리려는 온갖 기사들이 넘쳐난다. 그런 건 잠시 마음을 어지럽히고 말뿐이지만, 진짜 문제는 직접적으로 우리의 삶과 연관된, 그럴싸한 ‘낚시’들에 늘 이리저리 끌려다닌다는 것이다. 가령 이제는 안개 속에 빠져버린 ‘뉴타운’의 꿈과 같은….

서울시 홈페이지의 소개에 의하면, ‘뉴타운 사업’이란 종래 민간주도의 개발이 도시기반시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주택중심으로만 추진돼 난개발로 이어지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시행하는 새로운 ‘기성시가지 재개발 방식’이라고 한다. 즉 주택재개발이 민간개발 편의위주로 개별주택 가치 중심의 소규모 개발이라면 ‘뉴타운 개발’은 공공이 원하는 민간사업으로 적정 규모의 생활권역을 대상으로 한 충분한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하는 종합적인 도시계획사업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도시구조의 정비, 개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과 세대가 함께 살 수 있는 ‘인간 중심의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도시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21C형 고품질의 복지주거환경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뉴타운. 그 뉴타운이 서울뿐 아니라 온 나라를 뒤흔들며 일부 지역이 주도하던 집값 상승의 전도사가 되었다. 모두들 이제는 남들처럼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다는 기대감에 들떴고, 그 바람을 타고 시장은 대통령이 되고….

본래 ‘뉴타운(new town)’이란 자연스럽게 발달한 도시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계획된 도시, 즉 신도시를 이르는 말로, 1946년 영국에서 신도시법에 의해 건설된 도시들을 지칭했던 것이다. 영국의 정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면서 다른 나라들에서도 대도시의 주변에 건설되는 대규모의 주택지들을 ‘뉴타운’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뉴타운이 아니라 신도시라면 우리에게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1970년대에 수도권 인구 분산을 위해 계획된 안산·과천 등도 일종의 신도시고, 1980년대 후반 노태우 대통령 정부 때 주택 200만호 건설의 목표를 세우고 건설한 수도권 신도시들도 즐비하지 않은가?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서울 주변에 입지한 이들 신도시는 ‘베드 타운’의 성격이 강했고, 일제히 건설공사가 진행되면서 자재 파동과 날림 공사 등의 문제가 대두하기도 했었다. 2000년 이후에도 판교·화성·천안·아산 등 신도시계획이 발표되어, 판교는 특히 분양차익에 대한 기대가 상승하면서 ‘판교 로또’라는 속어가 등장할 정도였다.

그러한 신도시들은 주로 기존 도시 외곽의 농경지에 건설되었으나 ‘뉴타운’은 다르다. 2002년 시범지역으로 은평·길음·왕십리 지구가 선정된 이후, 대부분 강북지역과 서남권 등 서울에서도 일련의 개발 광풍에서 비켜나 있었던 지역들이 포함되었다. 1980년대에 이미 개발된 목동이나 상계동 같은 대단위 주택단지가 ‘신시가지’라는 이름으로 건설되며 낙후된 주택지를 깨끗하게(?) 밀어냈던 것과 이름만 다를 뿐이다. 도시의 성장 과정에서 남겨진 골목과 생활의 흔적들은 한 보따리에 꽁꽁 싸매어져 땅 밑으로 사라질 참이었다.

◇북한의 금강산 댐에 대비해서 국민성금을 모아 건설한 평화의 댐(출처 수자원공사 홈페이지).
이제 8년째를 맞는 서울시의 뉴타운 사업은 준공된 구역이 전체의 5% 수준이라고 한다. 물론 예상치 못한 경제위기로 인한 타격이 크긴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치는 건 사실이다. 일부 뉴타운 지역 원주민들은 심지어 지구지정 철회 소송을 제기하고 있고, 은평뉴타운은 원주민 재정착률이 15∼20%라 한다.

뉴타운은 결국,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재개발, 재건축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공공의 주도하에 노후한 도시주거와 도시환경을 활성화시키고 부가가치를 창출하고자 했던 애초의 의도와 다르게, 정작 주체가 되어야 했던 주민들이 계획이나 실행 측면에서 소외되며 알맹이가 빠져버린 공허한 계획이 되어가고 있다. 새로운 도시(뉴타운)를 만든다 했는데, 새로운 건 이름뿐이었다. 그 ‘사자 잡는 장치’가 잠시 우리의 눈을 현혹하는 사이 정작 따라잡아야 했으나 놓쳐버린 영화의 줄거리처럼,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도시의 본질적 고민들은 어디선가 표류하고 있지 않은가?

1970년에 50%였던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2009년 기준으로 90%를 넘어섰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온다. 한국의 도시화는 이제 종착 단계라고…. 전체 국토의 17%에 인구의 90%가 살고 있으니 도시의 밀도가 점점 높아지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서울에서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인구가 50%다. 그러니 모두들 아파트에 살고 있거나 아파트에 살기 위해 그토록 애쓰고, 뭔가 새로운 게 없나 그쪽으로 눈과 귀를 쏟아붓는다. 주거의 문제는 곧 아파트의 문제였고, 부 또한 아파트에서 나온다고들 알고 있었다.

요즘에는 다시, 남들과 차별화된 곳에 살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해 더 새롭고,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편리하다고 외치던 목소리들은 쑥 들어가고, 대신 친환경, 제로 에너지, 지속 가능 이런 단어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의미도 좋고 취지도 좋지만, 두려움이 앞선다. 이런 것들이 또다시 말만 앞세운 내용 없는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주도면밀한 계획과 검증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잠깐 동안 눈길을 사로잡고 반짝거리다 옆길로 사라지는 맥거핀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이름으로 남을 것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가온건축 공동대표·‘서울풍경화첩’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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