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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18〉 ‘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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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0-12 22:10:03 수정 : 2010-10-12 2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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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처럼 뭉클한 ‘공간사옥’… 직관과 감각이 만나다 직관, 문제를 보며 동시에 답을 읽는다

직관(直觀·intuition)은 판단·추론 등을 개입시키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에두르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직관의 길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천부적으로 물려받은 감각으로, 또 하나는 미스 마플처럼 부단한 경험과 그 경험의 축적으로 진실과 직접 교류하고 거래하는 것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서 포와로와 두 개의 축을 이루는, 이것저것 관심이 많은 노처녀 아마추어 탐정 미스 마플은 ‘목사관 살인사건’에서 처음 등장한다. 마치 형사 콜롬보가 그렇듯이 미스 마플도 늘 구박받고 뒤로 밀리다가 막판에 실력을 발휘하며 그간 받은 설움을 날리는 스타일이다. 그녀는 세인트 메리 미드의 목사관 옆집에 살면서 늘 손바닥만 한 정원에 나와 화초를 가꾸는 척, 혹은 새를 관찰하는 척하면서 동네 사람들을 살피고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충분히 쌓아 놓은 경험을 통해 바로 답을 찾는다. 문제를 보며 동시에 답을 보는 것인데, 정말로 부러운 재능이다.

◇1883년에 시작해 100년 이상 공사가 진행 중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성가족성당’.
‘목사관 살인사건’에서 유일하게 미스 마플에게 호감을 표했던 목사가 묻는다. “그 능력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미스 마플은 이렇게 답을 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진실에 도달하는 매우 확실한 방법이 있어요. 사람들이 통찰력이라 부르며 대단한 것인 양 떠들어대는 것이죠. 하지만 사실 통찰력은 단어의 철자를 일일이 다 읽지 않고도 단어를 읽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일이에요. 어린아이들은 할 수 없는 거죠. 경험이 거의 없으니까요. 하지만 어른들이라면 전에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단어를 알 수 있죠.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목사님은 아시죠?”

가령 Apple라는 단어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처음 글을 배우는 사람은 낱낱의 글자를 하나씩 읽어서 ‘애∼ㅍ∼으∼을’, 아마 이렇게 읽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몇 번 더 그 단어를 만나게 되면 최소한 ‘애∼프ㄹ’ 하다가 ‘애∼플’로 인식을 하고 그다음에 머릿속으로 사과의 모양을 그리게 될 것이다. 그러다 숙달이 되면 Apple라는 단어를 보면 연상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단어와 의미가 동시에 떠오른다. 직관적으로….

◇공간공간들이 서로 틈입하면서 연결되는 ‘공간사옥’(사진 박영채).
데이터의 양보다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일기예보 시스템은 무척 첨단화되었다고 들었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몇 나라 되지 않는 기상위성 보유국이며(7번째), 최첨단의 슈퍼컴퓨터까지 최고의 기상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기상예보의 정확성은 수십 년 전보다 더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중요한 순간 예보가 어긋나서 엄청난 피해가 생긴다. 예전에는 뉴스 말미에 기상통보관―김동완 통보관이라고 한때 무척 잘나가던 사람이 있었다―이 나와서 백지를 벽에 걸어놓고, 굵은 매직펜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대륙의 귀퉁이를 그리고, 그 위에 천기도를 그리며 앞으로 펼쳐질 날씨를 보여줬다. 그때도 늘 정확했던 것은 아니겠지만, 예보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오차의 범위도 그리 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그래서 글씨 못 쓰는 선비들이 붓 탓하고 못질도 제대로 못하는 날라리 목수가 연장 탓을 하는 것이다.

데이터가 전부는 아니다. 주어진 데이터를 통해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가령 예전에 리영희 교수는 그냥 신문에 실리는 평범한 기사를 통해 많은 사실을 밝혀냈다. 주로 정부가 발표하는 내용의 허구를 파헤치는 것들이었는데 그가 인용하는 자료들은 어떤 기관에서 입수한 것이라든가, 아니면 내부 고발자가 슬그머니 밀어내준 고급정보가 아니라 나도 엊그제 신문에서 봤던 바로 그 기사들이었다. 그런데 그 평범한 흘려들었던 단편적인 정보들을 엮으면 놀랄 만한 진실이 나오는 것이다. 가령 하얀 백지 밑에 동전을 깔고 연필로 문지르면 서서히 동전의 문양이 나오는 것처럼 생생하게 진실이 드러난다.

직관적인 건축가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스페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이다. 그가 활동했던 바르셀로나는 가우디 덕분에 도시를 유지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가우디가 남긴 여러 유형의 자산들 덕분에 수많은 관광객의 방문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가우디가 살아생전 그런 영예를 누린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건물 짓는 현장 인근에서 공사를 감독하며 먹고 자며 살았다. 세상을 떠나던 1926년 6월 어느 날, 그는 새벽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 ‘성가족성당’(Sagrada Familia) 앞길에서 전차에 치였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초라한 행색과 신원을 증명할 어떤 물건도 없었기에 그를 기다리던 작업장 인부들의 수소문으로 이틀 만에 그의 죽음이 밝혀질 정도로 평생 그는 고독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건축에 매진하던 사람이었다.

세상은 곡선이다. 가우디가 보는 세상에는 직선이 없다. 모든 것이 우미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그는 직선은 인간의 몫이고 곡선이야말로 신의 세계라고 주장했다. 1883년 시작해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공사가 진행 중인 ‘성가족성당’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곡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당시 직접 거리를 돌며 모금을 하고 현장에서 모형을 만들고 도면을 그리며 건축을 완성해 나갔다. 그의 건축은 놀랄 만한 정성을 들인 수공예로 이루어지며, 재료는 타일이나 도자기 공장에서 파손된 자재들을 수집하여 콜라주나 테라코타 형식으로 만들어졌고, 가우디는 ‘직관적으로’ 편견 없는 자연관찰과 균형감각을 통해 자연의 뼈대를 모방하고 자연의 장식을 답습했다. 그럼으로써 진정한 아름다움을 창안해 놓았다. 그의 건축은 하늘과 땅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들의 형상에 대한 건축적인 구현이다.

◇20세기 한국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의 ‘공간사옥’(사진 박영채).
직관과 감각의 건축가 김수근


건축가들이 작업하는 방식에 대해서 건축계에서 떠도는 농담이 하나 있다. 우선 서울에 간첩이 나타났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건축가 세 명이 차례로 간첩을 잡는다. 첫 번째 건축가는 일단 사람들을 모아놓고 책상에 지도를 펼쳐 놓고 여러 가지 조건들을 살펴보고, 토론을 하고 범위를 좁혀나가 결론을 내고, 작전을 짜고, 일사불란하게 현장으로 달려가 간첩을 잡는다. 두 번째 건축가는 사람을 모은 뒤 일단 나간다. “나를 따르라!”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서 길이 끝날 때까지 달려간다. 결국 길이 막히면 다시 다른 골목으로 달려간다. 결국 간첩을 잡든 못 잡든 대장만 신난다. 세 번째 건축가는 사람들에게 “저기 골목에서 전부 대기하고 있거라” 하고 자신은 종로 한복판이나 강남역 근처같이 사람들이 드글거리는 한복판에 돗자리 펴놓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다가, 어떤 사람을 지목하며 “바로 너지!” 하면 모두 나와서 간첩을 잡는다.

그 신통방통한 점쟁이 같은 건축가는 김수근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는 55세, 한참 일할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참 많은 설계작업을 한 복 많은 건축가다. 한국전쟁 때 일본으로 건너가서 십여 년 공부하고 ‘국회의사당 현상설계’에 당선되어 돌아와―지금의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남산에 지으려 했던 것으로 실현되지 않았다―약관의 나이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일생을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면서, 한편에서는 ‘권력의 실세’와 어깨동무하고 큰 무대에서 서성거렸고, 한편으로는 작업으로 내세울 수 없는 대공분실들도 그려냈던…. 한국 현대사의 양지와 음지를 다양하게 넘나들던 김수근.

듣기에 그는 대단한 통찰력을 가진 건축가라고도 하고, 그냥 찍어대는 건축가라고도 하고, 또는 무척 낭만적인 건축가라고 한다. 밑에서 배우기 무척 힘든 스타일이다. 일정한 방향이 없으니 모두 “선생님이 언젠가 회심의 일획을 그으시지 않겠어?” 하며 결정적 어느 순간을 기다린다. 가령 출장을 다녀온 후 하룻밤 만에 설계안을 휙 하고 뒤집는 일이 많았는데, 그러면 모자를 들면 그 안에서 비둘기가 날아가는 마술쇼를 보듯 모두 입을 벌리고 감탄을 했다는 그런 전설이 전해진다.

아무튼 김수근은 감각적인 건축을 구사했고 자신의 직관을 철저히 믿었던 것 같다. 물론 김수근도 처음부터 그런 직관의 힘을 발휘했던 것은 아니다. 30대에 약간의 실무 경험만 있는 상태에서 온갖 건물을 설계하게 되었는데 그에게 오랜 경험과 이를 통해 얻어진 직관이 있었겠는가? 그래서 그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어느 날은 르 코르뷔제가 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오스카 니마이어가 되기도 하고…. 영향도 잘 받고 응용도 잘하고, 무수한 시행착오도 있었고 무수한 따라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런 ‘물건’들이 추레했다거나 그렇다면 비웃고 지나갈 텐데 그렇지 않았다. 건축이란 것이 잘 알다시피 그렇게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경험이 필요하고, 인격이 필요하다―그래서 도편수는 정승감이 해야 한다고 했다.

김수근이 이런저런 풍파를 거치고 자신의 공간을 만든 것이 종로구 원서동에 있는 ‘공간사옥’이다. 서울 종로구 원남동이 비원 남쪽에 있어서 원남동이듯 원서동은 비원의 서쪽이라서 원서동이다. 멀쩡한 남의 나라 궁을 ‘신비로운 정원’으로 폄하하고, 종묘와의 연결을 끊어내고 도로를 만든 일본인들이 이름까지 제 마음대로 난도질한 흔적이다. 그렇게까지 할 것은 없는데 꼭 그런 짓들을 했다. 그리고 더욱 참담한 것은 그런 짓들이 좋아보였는지, 그들이 가고 나서도 똑같은 짓을 하던 무리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게 문화 정체성이니 하는 단어들은 지키기 힘든 약속처럼 공허하다.

◇미로와 같은 ‘공간사옥’의 내부(사진 박영채).
‘공간사옥’, 살아 있는 생물처럼 뭉클한 ‘공간’을 느끼다


종로구 원서동 219. ‘비원’이 아닌 창덕궁과 현대건설 사옥 사이에 서 있는 검은 벽돌 건물이 누구나 20세기 한국 현대건축에서 대표작을 꼽으라면 꼭 헤아리는 ‘공간사옥’이다. 김수근의 타워호텔이나 자유센터가 모두 원형과는 다른 모습으로 리노베이션되고, 심지어 한국일보 사옥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공간사옥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아마도 세운상가를 지어 욕 많이 먹고, 부여박물관을 지어 왜색으로 몰려 난처해지고 하던 무렵 이후였을 것이다. 나름 한국성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면서 최순우 전 국립박물관장에게 사사했다. 기억하기로는 그분도 무척 감각적인 분이셨던 것 같은데, 두 ‘감각’이 만났다. 그로부터 김수근의 건축은 크게 변화한다.

그때 만든 것이 공간사옥이다. 자신의 사옥을 짓는 것이므로 정말 내키는 대로 지었을 것이다. 구애받지 않고 짓는 것…. 사실 건축가는 의뢰를 받아 설계할 때보다 자신의 집을 짓는 것이 더욱 힘이 든다. 건축이란 이런저런 제약과 까다로운 조건의 방정식을 푸는 과정인데 갑자기 일망무제의 거칠 것 없는 넓은 땅을 만나거나 혹은 건축주가 “마음대로 해보세요” 할 경우 참 난감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의지와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란 자신에게도 내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컴컴한 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어떤 책상 모서리가 내 정강이를 찧을지, 어떤 선반이 내 이마에 부딪힐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김수근은 그간 감각의 제왕 최순우에게서 사사한 한국성을, 그리고 열심히 돌아다니며 봤던 한국 건축을 넣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공간 하나하나의 성격이 뚜렷이 구분되기보다는 다 기능적이고 연속적인 옛 집들의 공간과 공간, 방과 방 사이의 닫히고 열리는 연속적인 흐름이 만들어내는 풍경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그래서 넓게 펼쳐진 마당에 흩뿌려진 공간들을 수직으로 쌓기 시작했다.

건축은 ‘공간’을 다룬다. 공간이란 벽과 기둥과 바닥이 만드는 삼차원의 빈 곳이다. 그러나 말이 쉬워서 공간이지 그런 삼차원의 공간을 제대로 구현해 내기는 쉽지 않다. 나는 공간사옥에 처음 갔다가 그 ‘공간’이라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공간들이 서로 틈입하면서 연결되는, 말하자면 살아 있는 생물을 발로 밟았을 때의 뭉클한 느낌이랄까. 당시 기와로 덮인 ㅁ자 한옥 일색이었던 주변과 맥락을 같이하려고 썼다는 검은 벽돌은 바깥쪽뿐만 아니라 안쪽 벽까지 함께 감고 돌아 들어가서, 재료의 연속성 또한 공간의 연속성으로 전환된다. 몸에 딱 맞는 크기로 열리고 닫히는 내부공간은 일본 건축가 도요 이토가 “마치 미로와 같다”고 표현한 것처럼, 바깥에서 볼 때의 절제된 형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복잡함을 품고 있다.

‘공간’에는 공간이 있다. 관입하고 꿈틀대는 공간이 있다. 누구도 이견을 낼 수 없는, 살아 있는 전통공간들이 재해석되어 그곳에 있다.

가온건축 공동대표·‘서울풍경화첩’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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