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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17> 집단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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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9-16 16:35:56 수정 : 2010-09-16 16: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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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없는 집단지능… 디자인 사라진 ‘공룡건물’만 우뚝 집단지능, 하나와 하나를 더하면 둘 이상이 된다

개미는 아주 작다. 그러나 개미는 효율적인 군집 생활과 협업을 통해 집단적인 지능체계를 형성하고 거대해진다. ‘집단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이란 1910년 미국의 곤충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William Morton Wheeler)가 그의 저서 ‘개미:그들의 구조·발달·행동(Ants:Their Structure, Development, and Behavior)’에서 제시하고 발전시킨 개념이다.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과정을 통하여 얻게 된 집단의 지적 능력을 의미하며, 이는 개체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후 그 개념은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레비(Pierre Levy)에 의해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단지능으로 발전한다. 그는 개개인이 사이버 세상에서 독자적으로 자신의 공간을 형성하는 시대가 오면 어느 곳에서나 어느 시간에서나 분포한다는 사이버공간의 속성이 실제적인 힘으로 발현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피에르 레비가 집단지능에 대한 주장을 발표한 19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공상적 예언으로 들릴 이야기였는데 어느덧 세상에는 우리가 평생 열어봐도 다 볼 수 없을 정도의 사이버상 개인공간(사이트)들이 널려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들이 마치 개미들처럼 강력한 조직이 되기도 하고 물방울처럼 한 방울 한 방울 모여든 것이 나중에 거대한 바다가 되기도 한다.

◇성남시청사. 턴키 방식으로 지어진 공공청사의 대표적 사례다.
가령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이 밝혀지는 과정이 그런 경우이다. 그 사건의 진실은 검찰의 조사도 아니고, 서울대의 자체 조사도 아닌 ‘브릭(BRIC:bric.postech.ac.kr)’이라는 젊은 생물학 연구자들의 정보교환 게시판을 통해 밝혀진다. 브릭은 1996년에 개설된 순수 생물학에 관한 정보수집의 장이었는데, 2005년 황 박사의 사이언스 게재 논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연구가 부풀려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기에 이른다.

게시글이 올라오면 관련 전공자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토론이 이루어진다. 그 과정이 마치 하나의 지성을 가진 생명체처럼 매우 유기적이다. 생물학 전공자뿐 아니라 화학·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의 심도 있는 논의가 지속됐고, 서울대 조사위가 발표한 사실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확인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정보들이 모이고 의견이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집단지능의 한 형태라고 생각된다. 2002년 연말의 대선 국면에서 단기 필마로 대통령에 ‘무모하게’ 출마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이나 촛불시위 전개 과정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율적이고 현명한 판단이 전제가 될 때 가치가 있다

그러나 무리로 몰려서 지혜를 쏟는다고 모두 성공적이고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앞의 두 경우처럼 긍정적인 경우도 있지만 방향이 잘못 잡힌다든가 어떤 불순한 목적에 이용될 경우 상당히 무서운 독소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집단지능이다.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여럿이 모였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아이디어를 도출해내는 게 아니며, 집단지능은 이른바 병렬 수행(parallel processing) 방식을 채택할 때 제 기능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개미나 꿀벌들은 객쩍게 무리로 몰려다니며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자가조직의 원리에 따라 철저하게 병렬 수행의 방식으로 문제를 푼다. 자율적이며 현명한 판단이 전제가 되는 집단지능일 때 그 가치가 생겨난다는 이야기이다.

한편 행동생리학자 에리히 폰 홀스트(Erich Von Holst)는 무리 생활을 하는 피라미류의 행동특성에 대한 실험을 한다. 무리 중에서 한 마리를 골라 무리들 간의 교감을 담당하는 전뇌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고 다시 무리 속에 집어넣었다. 전뇌가 제거된 피라미는 정상적인 물고기처럼 보고 먹고 헤엄친다. 다만 그 피라미의 유일한 이상한 행동특징은 무리 이탈에 대하여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이를 보았거나 그렇게 행동해야 할 다른 이유가 있으면 무리의 움직임에는 개의치 않고 단호하게 그 방향으로 헤엄친다. 그러면 오히려 전체 물고기 떼가 그를 따른다. 전뇌가 제거된 물고기는 그 결손 덕분에 무리의 지도자가 되어버린다.

무리 간의 교감이란 실수를 제어할 수 있고, 평가를 할 수 있는 중요한 진행상의 장치이다. 교감을 하지 않는 결정과 진행은 추진력과 속도는 있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두를 곤경에 빠뜨리게 만든다. 전뇌가 제거된 피라미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아는 유구한 역사적 경험과 당장의 우리 현실과 아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이 어긋난 방향을 잡고 무언가 열심히 나아가기만 하는 현실과….

아이들을 채근해서 방과 후 바로 버스에 실어가 밤 열두 시까지 학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주식의 추이를 꼬리잡기게임처럼 쫓고 정보를 취하고 생산하면서 사회적인 부를 만든다. 그런데 그렇게 맹목적으로 지금 이 사회에서 우리의 집단지능이 쫓아가는 곳은 결국 무지개 저편도 아니고 실제로 보장된 부나 헤아릴 수 없는 학문적인 깊이가 아니다. 다만 전뇌가 결손된 누군가가 만들어낸 혹은 지나치게 교활한 어떤 이가 장삿속으로 만들어낸 어떤 방향으로 같이 달려갈 뿐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진행이 커다란 오류라는 판명이 날 때 그 무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면서 오히려 생활이 없어지고 관광지화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북촌.
턴키 방식 발주, 합의만 남고 디자인은 없는 이상한 집단지능


말하자면 건축이야말로 집단지능의 총체적 발현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무척 많은 공정을 나누어서 사람들이 개미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결과물을 만들어 나간다. 오랜 시간을 들여 형성되는 마을의 경우도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건축이나 도시의 구성에 있어서 그 지능이 잘못 작동할 때 참 심란해진다.

턴키입찰이라는 제도가 있다. 공공시설이나 대형 업무시설 등의 공사에서 주로 쓰이는 방식인데 시공자와 설계자 등 용역을 수행할 수 있는 집단들이 함께 팀, 이른바 ‘컨소시엄(consortium·정부나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대규모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여러 개의 업체가 만든 일시적인 회사)’을 만들어서 가격과 시공방식 그리고 설계안을 일괄적으로 만들어 수주 경쟁한다. 사용자는 마지막 완성 단계에서 키(key)만 받으면 되는 그야말로 사용자 편의 위주의 발주 방식이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사용자는 설계사무소·시공자·감리자 등을 각각 선정해서 공사를 감독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절차를 복잡다단하게 진행해야 하지만, 턴키의 경우에는 그런 복잡함이 없다. 보기에 따라서는 무척 능률적이고 무척 경제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

보통 서너 달 정도 여러 회사가 한 장소에 모여서 이른바 ‘합사’를 거쳐 하나의 안을 만들어내는 집단지능이 발현되는 시간 동안, 설계안을 공동으로 만들고 그 안을 경제적으로 검토하고 실시설계를 진행하고 일목요연한 보고서를 만들어서 제출하고 약 한 달의 기간 동안 심사위원들의 질의응답에 답변하고, 심사 당일 각자의 안을 보고하면 심사를 거쳐 당선안이 발표된다. 그러면 당선된 팀은 실시설계를 보완하여 시공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정말 그럴까. 어떤 일들이 진행되었을까. 최근에 우리가 보아온 많은 건물들,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나오는 듯한 미끈한 플라스틱 장난감 같은 각 지방청사들…. 연일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리는 호화로우면서 우멍하게 생긴 청사건물들은 그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취향도 보이지 않고, 작가의 의지도 보이지 않는, 사용자의 쓰임새도 썩 반영되지 않은 채 크기만 미련하게 커보이는 그 건물들 대부분이 바로 ‘턴키’ 혹은 유사한 형식의 공공발주의 산물이다.

문제는 무엇일까? 그 발주 방식은 디자인은 하위개념이고 당선 가능성과 시공 편의성과 경제성이 우선이다. 아니 경제성이 아니고 입찰에 적합한 가격이 우선이다. ‘적합한’이란 얼마나 두루뭉술한 말인가. ‘적합한’에 창조성이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디자인은 설 자리가 없다. 시공사가 그 컨소시엄의 대표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책임 있는 디자인이란 없고 당선에 유리한 가장 유행하는 스타일과 시공사가 이익을 얻기에 유리한 설계안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발주를 담당하는 사람(공무원)은 티끌만큼의 책임도 없다. 집단지능의 이상한 발현이다. 

◇동서독을 연결하던 검문소 인근에 세워진 이탈리아 건축가 알도 로시의 벽돌 건축물. 도시의 기존 컨텍스트와 가로의 연속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서로 교감하고 돌아보는 집단지능이 절실한 때


또 다른 예가 있다. 북촌은 가회동과 계동, 원서동 등으로 구성된 한때 서울의 부촌이었던 곳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과 한옥이 잘 보존된 덕에 관심을 받았던 동네인데, 그곳이 지금 텅 비어 있다. 좀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곳에서 생활은 점점 증발되고 있다. 2000년 무렵 서울에서 그래도 한옥이 많이 남아있는 지역인 북촌에 다가구·다세대 주택이 들어서는 것이 안타까워서 뜻있는 여러 사람이 백방으로 노력하여 결국 한옥 보존지역으로 지정되게 된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곳에 이상한 욕망과 ‘전뇌가 소실된 행정’의 힘이 개입되면서 한옥 보존을 빙자한 여러 가지 ‘우아한 개발’, 처마에 풍경을 달고 마당 가득 그윽한 차향이 번지는 개발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세대를 이어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떠나고 낮에만 거주하는 사람들과 관광객으로 채워진다. 결국 동네로서의 기능이 희미해지게 되고 박제화된다. 실제로 이 일대 한옥 시세―기사에 의하면 3.3㎡당 평균 3000만원에서 높게는 3500만원―는 웬만한 강남아파트보다 비싸지만 인기가 높아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집단지능이란 여럿을 합치면 하나보다 훨씬 나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서로 교감하고 뒤돌아볼 줄 아는 인식적인 장치가 기반이 되어있을 때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턴키 입찰이나 북촌의 예를 보면 효율성을 우선으로 두고 무책임과 전시행정이 수반될 때 집단지능이 얼마나 이상한 방식으로 변질하는지 알게 된다.

독일 통일 전 서독정부는 베를린 장벽 서쪽 지역 재개발을 위해 1987년 베를린 국제건축전(IBA)을 열었다. ‘생활을 위한 장소’라는 의미에서 이너시티(Inner City)라는 주제로 열린 IBA는 단순히 전시장에서 이루어진 단발성 행사가 아니라 베를린에서 추진하는 도시·건축계획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는 전람회로 미술관뿐만 아니라 베를린의 5개 지역에서 개최되었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개최 8년 전인 1979년 ‘국제건축전 유한회사’를 설립하여 총 5개 지역에 약 3000가구의 주거공간 및 주민 참여형 도시공간을 조성하는 프로젝트의 개념 설정에서 설계공모전과 사업추진까지 모든 과정을 이끌었다. 그 결과 베를린 장벽 서쪽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개별 건축물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재개발을 추진할 수 있었다.

베를린은 예부터 예술과 문화의 도시였지만, 통일에 대비해 베를린 장벽 주위의 개발을 최대한 억제한 결과 노숙인과 불법체류자들이 모인 낙후지역이 돼 버렸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인간적이고 예술성이 높은 도시 재정비’라는 목표를 내걸고 건축전을 열게 된 것이다. 전람회는 크게 신도시개발과 도시재개발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건축가가 참여하였고, 그들은 자신의 설계안이 채택되면 실제 건축물을 해당 터에 지을 수 있었다. 지역주민들도 계획단계부터 참여해 그들의 뜻을 반영했다. 결국 IBA는 ‘성공적’이란 평가와 함께, 새로운 관광명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미 당시의 독일에는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바탕으로 몇 차례의 건축전람회를 거치며 도시의 발전과 생태환경, 에너지 문제 등에 대한 인식이 공감을 얻고 있었다. 담당 건축가들이 도시에 대하여 정면에서 현실적으로 파악한 이념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기획했을 때 연방정부와 베를린시가 전폭적인 지원을 했고, 시민들도 높은 관심을 가졌기에 계층 간의 사회적 혼합·융화가 가능했고, 부분적으로는 재개발에 투입되는 비용을 절감하면서 높은 주거밀도를 20% 정도 낮추는 효과도 볼 수 있었다. 주택 재개발시 가장 문제가 되는 주민들의 재정착률도 높일 수 있었다고 한다. 임기 내에, 예산이 넘어가기 전에, 늘 조급하게 무언가를 이루려 급급한 우리의 현실에서 돌아보아야 할 모습이다.

가온건축 공동대표·‘서울풍경화첩’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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