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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15〉‘환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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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9-16 16:38:06 수정 : 2010-09-16 16:3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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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같지만 닿을 수 없는 세계, 江湖를 꿈꾸다 환타지,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

책이 흔해진 요즘과 달리 어릴 적엔 집에 책이 몇 권 없었다. 벽장 속에 집문서처럼 숨겨져 있던 ‘백과사전’들과 기껏해야 교과서들 정도랄까. 용돈을 모아 샀던 ‘새소년’ 같은 잡지들은 일종의 호강이었던 셈인데, 아마도 한 권에 300원 정도-자장면 한 그릇 값-였을 것이다. 옆집에 책이 많다는 걸 알고 그 집 아이들을 핑계로 뻔질나게 들락거리며 금성인가 계몽인가에서 나온 세계동화전집, 위인전 따위를 열심히 빌려 읽곤 했다. 가벼운 활자중독 증세가 있었던 나는 책이 많은 집이 늘 부러웠고,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동네에 흔하던 만화방이든, 책들의 오래된 종이 냄새나 군대처럼 잘 정렬된 서가를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어느 날 모처럼 종로의 서점에 들러 하루키의 단편소설집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백화점에서 세일 중인 손수건을 한 장 샀다. 집에 와서 보니 고를 때는 몰랐던 책의 뒤표지에 주황색 바탕에 검은 색 빌딩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손수건의 그림도 색이며 모양이 똑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 건 사실 별거 아닌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마침 방금 산 소설의 한 대목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시치미를 뚝 떼고 수다를 떨던 택시기사가 실은 흡혈귀였다거나 하는, 일종의 소소한 ‘환타지’이기도 하다.

◇무당산 36암 중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남쪽 절벽의 남암.
우리는 자주 현실에서는 결코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에 빠져든다. 마치 진짜 같지만 사실이 아닌,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가 그려내는 세상, 그것을 우리는 ‘환타지(fantasy)’라고 부른다. 맞춤법상으론 ‘판타지’가 맞지만 그건 어쩐지 ‘환타지’스럽지가 않은 느낌이고,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소설들이 있으므로 구분해서 부르기로 하자. 진지한 순문학과 경계 지어 무협, 로맨스, 판타지 같은 소설들을 ‘장르문학’이라 부르곤 하는데, 요즘 이쪽으로 글 잘 쓰는 작가들이 제법 넘어왔는지 읽다 보면 문장에 힘이 넘치고 이야기가 탄탄한 작품을 발견할 때가 많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커피프린스 1호점’ 같은 국민적 사랑을 받은 드라마들의 원작도 알고 보면 로맨스 소설이다. 판타지 소설 또한 호빗이나 요정 같은 다양한 종족들과 용 같은 현실에 없는 캐릭터들과 호풍환우(呼風喚雨)하는 마법의 세계가 CG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실감나게 재현되면서 영화와 게임 등에서 대세가 되고 있다. 물론 원전 텍스트의 힘이 강력한 ‘반지의 제왕’에 비하면 그 이후에 나온 판타지 영화들은 화려한 시각효과에만 지나치게 의존해서 정작 이야기는 부실한 경우도 많지만…. 반면에 단지 인간의 몸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무협영화는 꽤 오랜 역사를 지녔다.

장르문학은 모두 갖춰야 할 일정한 형식들이 있다. 로맨스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하고, 판타지 소설은 로드 무비처럼 주인공들이 먼길을 돌아와야 하고 무협은 복수와 천하제패를 꿈꾸고…. 그러다 보니 몸은 같은데 옷만 바꿔 입은 뻔한 줄거리라거나, 한번 빠지면 못 헤어나는 중독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 때문에 장르소설 독자들은 본의 아니게 ‘마니아(mania)’-결국은 소수라는 의미-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다. 그러나 누가 명작을 가르는 기준이라고 눈금을 그리고 단위를 정해놓은 것도 아닌 마당에, 괴롭거나 외로울 때 단지 몇 줄의 글로도 위안을 주는 게 모든 책의 힘이다. 책이야말로 내게는 가장 큰 환타지다.

강호, 닿을 수 없는 세계를 꿈꾸다

“그해의 가을은 끔찍했었다. 세월이 흐르면 아픈 기억들은 사라지고 청춘의 추억들이 옛 기억과 뒤섞이는 것이라,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 과거는 항상 지금보다 좋은 것이지만, 그해의 가을을 두고 ‘옛날은 좋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무협작가 좌백의 ‘혈기린외전(血麒麟外傳)’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책은 ‘혈기린전’이 아니라 ‘외전’이니 당연 혈기린이라는 무림 최고 고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주인공은 무협지에서 점소이(객점이나 주루의 점원)나 방파의 정문 지키는 무사쯤의 단역으로 나오기 딱 좋은, 왕씨 집 첫째라는 의미의 ‘왕일’이다. 왕일은 그저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부잣집 아들의 군역을 대신 살러 머나먼 남만(南蠻)까지 가는데, 그 사이 집안은 오히려 풍비박산이 난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그에게 복수의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강호의 삶에서 비장함을 빼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저런 식의 긴급한 비장함에 끌리는 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현실의 삶이 때로는 너무 가볍고, 때로는 너무 무거운 까닭이다. 닿을 수 없는 세계, 강호(江湖)에 사는 이야기인 무협(武俠)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저 ‘혈기린외전’의 작가가 ‘무’를 익히고, ‘협’을 행하는 사람들의 세상을 누구보다 명쾌하게 정의해준다. 협객불망원(俠客不忘怨:협객은 원한을 잊지 않는다), 협객불상신(俠客不喪信:협객은 믿음을 잃지 않는다), 협객불기의(俠客不棄義:협객은 의를 버리지 않는다).

그처럼 오래된 고서의 묵향처럼 고답적이고 낭만적인 풍류야말로 무협의 진정한 매력이다. 가령 나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이런 문장에는 버틸 방도가 없다. 물론 이건 무협이 아닌 김훈의 ‘칼의 노래’다. 김훈의 문장들에서는 살을 베는 듯한 혈향이 피어오르는데, 아마도 무협작가였던 부친 김광주의 작품을 대필하면서 남은 상흔일 것이다. 김훈이 부친의 작품 ‘비호’를 재출간하며 쓴 서문에 의하면, 그때 그의 가난은 ‘가히 설화적’이었고 그 원고료로 밥을 먹고 학교도 다녔고 용돈을 타서 술도 마셨다 한다.

60년대 이후 김광주에 이어 와룡생·고룡·김용 같은 중국작가들의 번역작품들이, 80년대 초반에는 사마달·검궁인·서효원·금강·야설록 등 이름은 중국식이지만 국적은 한국인이었던 1세대 창작 작가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월락검극천미명’(검궁인·사마달)이라든가 ‘풍운고월조천하’(금강) 같은 작품은 김용의 ‘영웅문’에 견주어도 될 정도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자 만화계가 그랬듯이 지나친 양산체제로 돌입해 비슷비슷한 내용을 반복하다가 침체기를 맞게 되고, 그런 난국을 용대운이나 좌백 같은 소위 ‘신무협’ 작가들이 반전시킨다. ‘신무협’의 모토는 ‘무협도 어차피 인간이 사는 세계이니 인간을 제대로 그려보자’는 것이었다. 일수에 하늘을 뒤집고 땅을 가르며 불과 몇 년 만에 몇십 갑자-1갑자는 60년-의 내공을 쌓아 수천 명을 단번에 무찌르곤 하던 ‘천마대제’ 류의 고수들, 혹은 구파일방의 후기지수나 명문세가의 자식들은 더 이상 주류가 아니다. 평범한 표사나 농부가 주인공이 되고, 박투 장면은 보다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묘사로 마치 ‘진짜’처럼 느껴진다. ‘태극문’(용대운)이나 ‘대도오’(좌백) 같은 작품들로 시작해, 이후 진산·임준욱·백야·한상운·별도·장영훈 같은 작가들이 그 계보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분가하며 한국 무협의 전성기를 끌어왔다.

◇무당산으로 설정된 ‘와호장룡’ 마지막 장면의 실제 촬영지인 창암산.
밤이 길면 꿈도 깊다


물론 그렇게 ‘시산혈해’를 건너는 일이란 상상만큼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단칼에 목이나 팔이 날아가고, 분수처럼 피가 솟는 장면이 태연하게 화면에 그려지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비디오 가게 점원 출신으로 홍콩영화를 포함한 온갖 잡다한 비주류 장르의 세례를 통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갖게 된 타란티노의 영화들은 오히려 지나치게 돌발적이고 과장되어 있기에 잔인하지만 진지하고 피가 튀지만 끈적거리지 않는다. 영화 ‘킬빌(Kill Bill)’에서 우마 서먼이 복수를 위해 찾아가는 공간은 무협의 주 무대인 주루(酒樓)랄지 객잔(客棧) 같은 곳이다. 1층에서는 가객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이야기꾼이 강호의 무용담을 전파하고, 2층에서는 늘 은밀한 음모가 이루어지는 그곳을 단지 칼 한 자루만 품고 홀연히 종횡하는 고독한 무사의 모습은 타란티노에게도 일종의 환타지가 아니었을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환타지가 있다.

그런데 요즘은 환타지의 유통에도 인플레이션이 왔다. 모든 19금 요소가 거세된 채 청소년 소설 코너로 망명을 감행한 무협은 지나치게 착해졌고, 현실 저편에 있던 강호에 십대 학생이나 특공대가 들락거리고, 혹은 이계의 마법사가 무협의 세계에 가서 손쉽게 강자가 되는 식이다. 지난했던 수련의 과정은 생략되고, 악인은 우스워지고, 주인공은 가벼워지고,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다”던 처연함도 온데간데없다.

풍문에 의하면, 무의 종주이자 중국 선종의 본산인 천년고찰 소림사(少林寺)가 요즘 수익사업에 혈안이 되어, TV 프로나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하고 공연뿐 아니라 심지어 식품회사, 제약회사까지 차렸다고 한다. 그에 앞장서고 있는 건 MBA 출신의 젊은 방장이시라는데, 무승들이 공연을 하는 배우가 되고 동굴 속 면벽 수련 때 드시던 벽곡과 최고의 약이었다는 대환단이 ‘소림 브랜드’의 세계 전파에 기여하고 있다는 건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다.

소림사의 국제적인 명성에 기여한 ‘소림사’를 비롯해서 ‘홍콩 느와르’를 이룩한 오우삼과 서극, ‘동사서독’ ‘중경삼림’ 등을 연출한 왕가위 감독 등이 있기에 중국, 아니 홍콩영화도 좋았던 한때가 있었다. 영등포의 경원극장이나 연흥극장, 명화극장 혹은 호암아트홀 근처에서 최근까지 명맥을 이어오던 화양극장 등이 홍콩영화의 성지들이었다. 본토반환 이전, 단역도 마다하지 않고 영화마다 출연해서 팬서비스를 해주던 소박한 홍콩배우들은 미국 할리우드로 건너가거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명성 드높은 세계적인 배우들로 거듭났다. 그건 마치 동네를 함께 어슬렁거리던 옆집 형님이 성공해서 자가용을 타고 돌아올 때처럼 뿌듯한 일이었다.

그러나 왕가위의 ‘아비정전’을 볼 때쯤, 극장에는 나를 포함한 불과 여섯 명이 있었다. 그렇게까지 처절하게 실패할 영화는 아니었지만, 아니 오히려 장국영이 ‘마리아 엘레나(Maria Elena)’에 맞춰 맘보를 추던 장면은 그야말로 세기의 명장면이었지만, 이후 홍콩영화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선녀의 현신처럼 왕조현이 옷자락을 하늘거리며 밤의 숲 속을 넘나들던 ‘천녀유혼’이나 ‘동방불패’ 임청하의 미묘한 미소, ‘영웅본색’에서 성냥개비를 씹으며 돈으로 담뱃불을 붙이던 그 왕년의 주윤발과 그리운 장국영…. 모두 이제는 라디오에서조차 틀어주지 않는 흘러간 옛 노래처럼 잊혀진 기억들이 되었다.

환타지도 나이를 먹는다

환타지가 만드는 세상은 그림자처럼 조용히 발밑에 깔려 있다가, 아쉬울 때 어떻게 알고 찾아온다. 우연히 돌리던 케이블 티브이 화면에서 혹은 문 닫은 줄 알았던 동네 책방 구석의 서가에서…. 기억은 순식간에 시간을 타고 거슬러가, 볕이 들지 않는 방에서 폐관수련 하듯 오래된 나무의자에 기대어 책 속으로 빠져들던 일요일 오후의 나른함처럼 나를 빠져들게 한다. 그때만큼 행복한 순간도 별로 없다. 삶에서의 어떤 부분들이 그 어쩔 수 없는 환타지 속으로 들어가 있다.

그 모든 홍콩영화의 미덕을 그러모아 무협영화의 정점을 찍어버린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에는 우리가 무협에서 상상하던 모든 것이 있었다. 석년의 ‘예스마담’ 양자경과 돌아온 대형 주윤발, 마적단이 먼지구름을 날리는 평원과 흑의의 자객, 누구나 탐을 내는 명검, 비록 와이어를 달고 나는 것이지만 땅에서 지붕에서 대숲에서 중력의 제약을 벗어난 긴박한 대결….

무엇보다 ‘북숭소림(北崇少林), 남존무당(南尊武當)’이라 했던 무당 제자들의 이야기라는 것. 명대에 특히 숭상된 무당 도사 장삼풍이 집대성했다는 무당파는 당을 시작으로 송, 원, 명, 청에 걸쳐 천년 이상 수많은 도사들이 수련했다는 유서 깊은 도량이다. ‘진무대제(眞武大帝)가 이곳에서 수련하고 득도한 뒤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져서 ‘진무를 언급하지 않고 마땅함을 논할 수 없다(非眞武不足以當之)’ 하여 ‘무당(武當)’이라 한다.

얼마 전 소림도 그 대열에 합류했지만 1994년 이미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무당산은 “하늘에는 천상, 땅에는 소항”이라는 소주·항주와 더불어 언젠가 꼭 가보리라 마음먹은 곳이다. ‘와호장룡’에서 자유를 찾는다며 온갖 밉상 짓을 일삼던 장쯔이가 구름 속으로 날아 내리던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주윤발이나 양자경이 평생 도를 찾으려 했으나 현실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했던 반면, 그들을 끊임없이 방해했던 이기적이고 버릇없고 성급하던 어린 소녀가 그 모든 욕망을 버리는 한 순간, 그 모든 것들이 꿈처럼 희미해지던 순간, 어렴풋이 그려왔던 모든 이미지들이 명백하게 화면에서 완성된 그 순간, 나의 환타지도 그만 나이를 먹어버렸다.

가온건축 공동대표·‘서울풍경화첩’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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