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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기자의 대중과소통하는 학자들] 〈57〉 ‘일본사’ 구태훈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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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8-09 22:37:48 수정 : 2010-08-09 22: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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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 ‘興亡史’는 한국의 ‘亡興史’
100년前 경술국치 흥분보다 직시 필요
피서객이 떠난 도심은 한가했지만, 8월 초순의 캠퍼스에는 열기로 가득했다. 흐르는 시간만이 열기를 꺾을 것이다. 올해는 예외일지 모른다. 8월 말이 되도 가슴 밑바닥에서 치밀어오르는 뜨거움이 여전할 것이다. 한일병탄 100년이 되는 경술국치일이 이달 29일이어서다. 한일강제합병조약이 체결된 때는 1910년 8월 22일이었지만, 일주일 뒤인 29일 신문에 실리면서 조약이 발효됐다.

8·15와 경숙국치일을 몇 주 앞두고 구태훈(57)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를 만나기로 했다. 그는 일본 근세사를 전공하며 독보적인 일본사 연구자로 자리매김됐다. 그가 저술한 ‘일본 고대·중세사’와 ‘일본 근세·근현대사’는 한국인이 쓴 일본에 관한 묵직한 통사로 인정받는다. 일본에 대해서 마음이 유난히 복잡해질 올해 8월에 의견을 구하기 가장 적절한 학자로 그를 꼽은 이유다.

◇미우면서도 부러운 나라인 일본은 한국인의 가슴을 무겁게 한다. 구태훈 성균관대 교수는 “‘일본은 있다’거나 ‘일본은 없다’는 표현도 우리의 미움과 부러움이 교차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며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포괄하는 역사를 알고 제대로 직시해야 우리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박종현 기자

“일본에 대한 ‘뜨거운 분노’만으로는 일본을 제대로 바라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으로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성균관대로 향했다. 복원 중인 남대문을 지나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광화문 앞을 통과하면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연구실에는 한국어와 중국어, 일본어로 된 자료와 책들이 가득했다. 이들을 재료로 삼아 구 교수는 한일병탄 100년의 아픈 의미를 되새기며, 이달 20일쯤 신간 4종을 내놓는다. 직접 저술한 책과 옮긴 책이 각기 2종씩이다. 최종 교열을 거쳐 제목까지 정한 구 교수의 탈고 원고를 살펴봤다. ‘일본제국 일어나다’와 ‘일본제국, 무너지다’는 그가 저술한 책의 제목들이다. ‘…일어나다’는 근대 국가 성립에서부터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을 다뤘고, ‘…무너지다’는 1차대전 직후부터 2차대전으로 패망할 때까지의 일본을 살핀 책이다. 구 교수는 “일본제국의 흥망사를 정반대 방향에서 살펴보면 한국의 흥망사였다”며 “일본의 모습을 제대로 아는 것은 올바른 대처 방향을 찾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직시할 필요가 있어요. 망각해서도 안 되고, 지나친 흥분을 해서도 안 되는 게 역사입니다. 우리가 미래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수치를 안긴 이웃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2종의 저술에 일본의 근현대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한국인 학자의 공력이 들어갔다면, 역서들에는 한일병탄 이후 한국을 바라보았던 일본인들의 시각이 담겨 있다. 역서의 제목부터가 그렇다. ‘100년 전 일본인의 한국 넘보기’와 ‘100년 전 일본인의 경성 엿보기’. 일본의 대학 도서관에서 찾아낸 두 책에 대한 구 교수의 설명을 옮겨본다. 짧게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 넘보기’는 자유사상을 부르짖었던 일본 중의원 가토 마사노스케(加藤政之助)의 ‘한국경영’을 수정 보완한 작품이다. 한일합병이 되기 다섯 해 전인 1905년에 내놓은 작품에서 직접 만난 인물들과 나눈 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실상을 전했다.

‘…경성 엿보기’는 100년 전 일본인 조선사 연구자인 아오야기 쓰나타로(靑柳綱太郞)의 작품이다. 아오야기는 1912년부터 조선사연구회를 이끌고, 책을 낸 2년 뒤인 1917년부터는 경성신문사 사장으로 재임한 인물이다. 그가 낸 책의 원제는 ‘최근 경성 안내기’. 한일합병 전후 서울 모습을 구체적으로 조사한 보고서 형태의 책이다. 다룬 내용은 다양하다. 상업·공업·농업·언론·종교·교육·교통·유흥가 등에 이르기까지 당시 서울의 모습을 폭넓게 살펴봤다. 물론 일본인의 시각이다. 한국인의 삶은 궁핍했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놓여 있었다.

책을 옮기면서 구 교수가 제목을 ‘…한국 넘보기’와 ‘…경성 엿보기’로 한 것은 책의 기본 내용은 살리되, 일본인의 시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두 권 모두 원본은 일본인 전문가의 글로 일본 독자를 위한 책이었습니다. 책을 번역하면서 이 땅에 살았던 할아버지 세대들의 힘들었을 생활이 떠올라 눈물이 났어요. 원 참…그렇지만 당시의 서울 등 한국의 경관을 묘사해놓은 대목에서는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한국 독자에게 맞게 새로 구성해 내놓게 됐습니다. 일본인 저자가 풀어놓은 상세한 설명이 당시의 한국 사회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쓰라린 역사를 되살려내는, 그것도 일본인의 시각에서 쓴 ‘기분 나쁜’ 책을 한국 독자가 읽을 필요가 있을까. 구 교수는 “결코 유쾌하지는 않지만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두 책에 드러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우리의 무기력한 실상과 일본의 야욕을 알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피해자인 우리는 망각의 파고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정작 가해자인 일본은 한일합병일을 잊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병합 당시에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자료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조선반도를 병합한 사실이 알려진 1910년 10월 29일부터 사흘 동안 시가 행진을 했다고 한다.

“도쿄에서 전차가 못할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반도 병합이 오늘날에도 기념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잊혀진 날이에요. 비록 기억의 저장고에서 사라졌지만, 일본은 자신의 역사에서 배울 거예요. 전쟁을 비롯해 주변국가와 갈등을 빚을 때 일본의 보통 사람들의 삶은 피폐했으니까요.”

일본은 자신들의 과거를 잊더라도 우리는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도 일본사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가령 우리가 총독부 통치를 비판하고 있지만, 일본 총독에 대한 한글 기록도 별로 없어요. 일본학 연구를 위해서라면 이 땅을 통치했던 11명의 총독에 관한 ‘총독 열전’이라도 펴내야 하지 않을까요.”

구 교수는 지금은 일본사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석사과정에 입학 당시 대학원생 구태훈의 관심은 중국사에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일본사 연구가 미진하다는 것을 알고 일본사 연구로 방향을 틀었다. 짧게라도 중국사를 공부했던 경험은 한국·중국·일본을 아우르며, 동아시아를 살펴보고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일본사로 방향을 틀고 나서, 그는 일본 연구에 매진했다. 일본사를 제대로 연구하고자 한 마음가짐은 ‘한국일본학회’의 수준을 높이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그가 회장으로 재임중이던 때에 한국일본학회는 회원을 1600명에서 1200명으로 줄인 것. 일본에서도 통할 수 있는 학문 연구를 하자는 일념에서였다. 일본과 비교해서 일본사 연구의 양은 부족하더라도, 논문의 질까지 낮아서는 안 된다는 철학이 바탕이 됐다. 학자에게는 치열함을 요구하지만, 대중 독자를 생각할 때는 다르다.

“학자들은 ‘∼연구’의 글을 좋아하지요. 특정 학문의 기층을 다지기 위해서는 학자들을 위한 연구도 중요하지만, 일반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책을 내놓는 것도 필요해요. 개인적으로는 50대 초반까지는 학문적 연구에 매진했지만, 50대 중반이 넘는 지금은 일반인을 위한 글쓰기에 적극 나서고 있어요.”

일본 관련 서적을 꾸준히 내고 있는 구 교수는 지난해 10월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앞두고 ‘구태훈 교수의 안중근 인터뷰’를 내놓기도 했다. 당시 학계와 언론이 그를 주목한 것은 ‘안중근’이라는 상징성에도 있었지만, 자신이 역사 안으로 뛰어들어 안중근 의사와 가상의 인터뷰를 한 데에 있었다. 이야기라는 접점이 있지만 학문적으로는 전혀 다른 분야가 역사학과 문학이다. 이야기를 매개로 안중근을 복원한 구 교수의 글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 책을 새벽에 읽었더니 줄줄 읽혔다.

bali@segye.com

■ 구태훈 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1953년 충남 보령 출생. 성균관대 사학과 졸업. 일본 쓰쿠바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 취득. 일본역사문화학회와 한국일본학회 회장을 지냈다. 근대 전환기에 일본의 내적 구조를 파악하는 작업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이와 함께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의 개별 국가 영역을 넘어 동아시아를 포괄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 저서

‘구태훈 교수의 안중근 인터뷰’, ‘일본 고대·중세사-역사의 여명에서 성숙한 전통사회로’, ‘일본 근세·근현대사-전통사회에서 세계 속의 일본으로’, ‘일본사 파노라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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