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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14〉 여행-현현(顯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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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9-16 16:32:07 수정 : 2010-09-16 16: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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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묘한 곳…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 수두룩 여행은 꿈이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표지와 앞부분 30쪽 정도가 없어진 채 군식구처럼 여기저기 뒹구는 책이 한 권 있었다. 누가 산 책인지, 혹은 누군가 우리 집에 왔다가 놓고 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책은 늘 방 한구석에서 뒹굴며 불러주는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가령 그릇 밑에 깔리기도 하고, 벌레를 내쫓기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중학교 입학하며 이제는 나도 책이라는 것을 좀 읽어보자고 마음먹었을 때 하필이면, 아니 필연적으로 그 책이 눈에 들어와 집어들어 읽게 되었다. 무척 친근한 외모를 가진 여행가 김찬삼 선생이 펴낸 세계일주여행기였다. 앞부분이 날아가 버려 어떤 계기로 어디서부터 여행이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시작하는 시간을 놓쳐서 중간부터 보기 시작한 영화처럼 나는 단지 그가 미국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대목부터 읽기 시작했다.

◇도쿄 도심 한복판에 아무도 없이 고요하게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사찰.
지금이야 그런 류의 여행기가 세상에 널려 있어서 그중 한 권을 고르는 게 여행가는 것보다 더 힘든 시대가 왔지만 알다시피 1970년대 초 우리나라 사람이 오로지 여행을 목적으로 세계를 한 바퀴 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나이에 비해 퍽 늙어버린 그 책을 보고 또 보고 다 낡아빠지도록 읽었다. 이름으로만 존재하던 미국이, 유럽의 나라들이 하나하나 피가 돌고 코가 오뚝한 삼차원의 존재가 되어 내게 나타났다. 아!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그런 일을 하며 세상을 살 수도 있구나. 일종의 깨달음이 왔다.

이후 나는 대통령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닌―물론 중학생이라면 그런 유치한 꿈은 집어넣을 때였지만―여행가가 되어, 어디로 돌아다닐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나는 여행을 할 것이라 꿈꾸기 시작했다. 지리부도는 나의 바이블이 되었고 지도에 나오는 세계의 도시를 마치 도깨비방망이를 바닥에 두드리기 전에 외우는 주문처럼 줄줄 외웠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런 직업은 내 앞에 디밀어진 메뉴판에 없었기 때문이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늘 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여행은 집 밖을 한 발도 내딛지 않는 상상 속의 여행이었다. 어디론가 목적지를 정하고는 집 안을 돌아다닌다. 가는 길은 그때그때 달랐고 당연히 만나는 풍경도 매번 달랐다. 부자는 보이는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감상을 이야기하며 도착지에 이르곤 했다. 그런 상상력 때문인지, 혹은 그가 매일 썼다는 그 유명한 일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결국 훌륭한 철학자가 되고, 그것도 무척 문학적인 상상력이 흠씬 배어 있는 철학자가 된다.

나는 그게 모두 어린 시절 상상만으로 즐겼던 그 ‘저렴한 여행’ 덕분이라고 믿는다.

여행은 보상이다

여행은 꿈이며 여행은 꿈을 꾸게 해준다. 꿈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원이다. 우리나라가 하도 넓어서 다녀도 다녀도…, 죽을 때까지 다녀도 다 보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선배 한 분이 있다. 그분은 젊은 날, “내가 우리나라 동네를 모조리 다 돌아보겠노라…” 장엄하게 결심하고 전국의 동네들을 걸어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처음 한 동네를 다 보는데도 생각보다 훨씬 시간이 걸렸다고. 처음부터 예상했던 대로 우리나라는 넓어서, 어찌나 넓은지 아직도 다 보려면 멀었노라고 하신다. 그분의 꿈은 몇십 년째 진행 중이다.

또한, 여행은 보상이다(The journey is the reward). 스티브 잡스가 1982년 매킨토시 컴퓨터를 개발할 때 팀원들과 호화 해변 휴양지에서 경영 워크숍을 할 때 부르짖은 구호였다. 며칠 밤 부흥회를 하듯 직원들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추며 열광하고 새 시대를 여는 새로운 기계를 만들었다나…. 이 시대에 만들어진 일종의 신화다. 그리고 요즘도 여기저기서 ‘잡스병’에 걸린 사람들이 전가의 보도로 써먹고 있다.

아무튼, 여행은 보상이라는 말은 맘에 든다.

그렇다. 여행은 피곤한 인생을 헤쳐나가는 사람에게 지급되는 정당한 보상일 것이다. 나도 일년에 한 번은 여행을 다니리라 결심을 했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무척 많이 체불되어 있다. 그래서 넓게 다니지는 못하지만 대신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집중적으로 다닌다. 대표적인 예가 경주와 동해안, 강진·해남과 서남해안 언저리, 서산 등 몇 군데 국내 여행지와 출장을 겸하며 다니기 시작한 일본 도쿄이다.

왜 도쿄인가 하면 우선 거리가 가깝다. 거리가 가까운 것이 여행에 커다란 단점일 수도 있지만 나는 가까운 것이 좋다. 몇 시간씩 비행기에 갇혀서 따분하게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고, 시차가 없어서 적응이나 기타 여러 가지의 귀찮은 절차가 많이 생략되는 것도 편하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비교문화학적 관점에서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기 위해, 과연 어디까지가 우리나라의 모습인지를 알기 위해서이다.

어린 시절 어느 날 내가 사랑했던 많은 만화들이 사실은 일본의 만화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드라마 속의 주인공처럼 좌절을 했었다. 아톰, 황금박쥐, 타이거마스크…. 지금은 아주 빛바랜 캐릭터들이고 그런 것들이 이제 와서는 천기누설일 리도 없는 자명한 사실이지만, 태연하게 번안해서 붙여놓은 김박사니 철수니 하는 이름에 속아서 열광하다가 어느 날 모두 일본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허무함이란….

그런 일들은 만화영화뿐 아니라 나이가 먹으며 점점 다양하게 우리에게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피식하면서 몸의 어딘가에서 바람이 빠지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세우지 못한다. 그건 내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내가 아니라고 했다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쩔 거냐? 도대체 어디까지 내 땅이며, 어디까지가 우리말이냐…. 우리는 번번이 자신을 수정해야 했다. 나는 나를 알기 위해서…. 그런 거창하고, 거친 명분을 내세워 도쿄를 여행하게 되었다.

◇깊은 나무 그늘이 있는 메지로(目白)의 도쿠가와 빌리지 골목.
현현(顯現)-숨겨진 것들이 드러나다


여행을 떠나기 전, 구글 어스에 접속하고 도쿄 상공을 서성거렸다. 도시가 건물들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고 중간중간 녹지가 그래도 제법 넓게 보인다. 전철을 따라 훑기도 하고, 녹지를 찾아 헤매기도 하다가 어떤 동네에 눈이 멎는다. 동네의 밀도가 쾌적하고 중간중간 알맞게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곳이었다.

하강해서 눈높이로 동네를 걷는다. 동네의 분위기가 아주 쾌적하다. 이름을 보니 ‘메지로(目白)’라고 한다. 흰 눈? 왠지 이름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동네를 탐문해 봤더니 유학 간 사람들의 블로그 몇 군데에서 언급되는 수준이다. 동네 조용하다고…. 혹은 근처에 대학이 하나 있고, 일본정원이라는 손바닥만 한 정원이 하나 있다고 했다.

갈 날을 잡고 호텔을 찾아다니다 이런저런 조건을 맞추어 한 군데를 찾아서 예약을 했다. 메구로(目黑)에 있는 한 호텔이었다. 이번에는 검은 눈?

검은 눈과 흰 눈. ‘흰 눈’이라는 동네를 깊이 들어갔다. 일본정원이라는 상투적인 그러나 아주 고적한, 잘 보존돼 있는 정원을 지나고 규모가 작든 크든 잘 꾸며진 집들, 그리고 사람이 증발해버린 길을 거쳐서 더 깊이 들어갔더니 일반적인 일본 집들에 비해 상당히 규모가 큰 집들이 나왔다. 집의 크기에 비해 단출한, 혹은 커다란 오버코트 위에 달린 와이셔츠 단추 같은 문패에는 ‘德川’이라는 눈에 익은(?) 단어가 보였다.

어디서 들었더라? 그 다음 집도 ‘덕천’. 그리고 더 들어가니 경고표지판이 들어왔다. 이 골목에서는 공놀이를 하지마라, 떠들지 마라…. 8개 정도의 경고문 끝에는 ‘도쿠가와 빌리지’라고 동네 이름이 문장처럼 박혀 있었다. 본의 아니게 여행에 들어보기만 했던, 그러나 별다른 관심은 없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끼어들었다. 도쿠가와 빌리지는 도쿠가와 집안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곳이리라…. 무척 큰 집들이 골목에 깊은 그림자를 길게 늘이며 모여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우리가 묵고 있는 ‘검은 눈’이라는 동네에도 역시 도쿠가와의 흔적이 있었다. ‘다이엔지(大圓寺)’라는 절이 에도시대 초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핵심 측근으로서 에도 막부 설립에 기여한 덴카이(天海·1536∼1643) 선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절이라는 것이다.

덴카이 선사는 그때에도 막부의 안녕과 국가 태평을 위해 도쿄에 5개의 절(흑·백·적·청·황)을 짓게 되는데, 그것을 에도 친고―다른 말로 고시키후도(五色不動)―라 한다. 현재 도쿄 내 다섯 곳을 선택해 ‘부동명왕’을 모신 장소를 말하는 것으로―그러나 실제 고시키후도란 명칭이 등장한 것은 메이지 말기 또는 다이쇼 초기로 약간의 모순이 있긴 하다―현재 야마노테선의 메구로(目黑)역과 메지로(目白)역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그 예측하지 못했던 ‘연결’이 흥미로워 우리는 다이에잔류센지를 찾아갔다. 작고 아담하지만 국보급 보물이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는 절이었다. 우리의 절이 그렇듯 해질녘이라 안에서는 예불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또한 도쿠가와의 사당이 있는 ‘조조지(增上寺)’라는 절에도 가게 된다(여행은 이처럼 우리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그날 신문 1면을 장식한 유명한 여배우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 뒤로 도쿄타워가 마치 사진의 배경처럼 올라서 있었다.

◇김찬삼의 세계일주여행기는 많은 사람에게 여행에 대한 꿈을 심어주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다


‘조조지’ 앞으로 큰 길을 건너면 원래의 절 끝자락에 거대한 문이 있다. 그 문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지는데 빌딩들과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번잡한 곳이다. 그 문 옆에 낮은 담 너머 정원이 보이고 나무로 만든 금방이라도 어떤 영혼이 뛰어나올 것 같은 건물이 보여 나도 모르게 무엇엔가 홀리듯 그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끼가 두껍게 여러 번 칠해놓은 페인트처럼 돌과 흙에 덮여 있었고 대나무로 만든 낮은 담들이 문득문득 드리워져 있었고-마치 점선처럼 ‘경계’에는 큰 관심이 없이 그냥―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있어야 할 것들이 없다.

사사즈카라는 조용한 주택가 골목을 산보하다가―우리의 여행의 대부분은 골목길 산보로 이루어진다. 사실 애초 도쿄에 간 목적이 오로지 길바닥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막 코너를 돌아서는데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다가가 보니 당황한 기색을 가진 동네 사람들과 경찰 몇 명이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가던 길을 멈추고 사람들의 눈길의 방향을 좇아갔더니 2층 베란다에 어떤 사람이 자살 소동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해가 뜬지 얼마 되지 않은 일요일 새벽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베란다에 올라가 있는 사람도 아래서 설득하는 사람들도 각자 자기 입장에서 조용히 그리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놀라움이랄지 애절함이랄지…혹은 분노랄지…. 그런 상황에서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것들이 역시 빠져 있었다.

메구로에서 에비스 쪽으로 밤길을 가고 있었다. 가로등과 좀 떨어진 곳이라서 컴컴한 어느 집 대문 앞에서 그 집 주부인 것 같은 평범한 아주머니가 앞치마를 두르고 나와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마치 방안을 쓸 듯이 문 앞을 쓸고 있었다. 그때가 아마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거리가 늘 걸레질이라도 한 것처럼 깨끗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도쿄에서는 누덕누덕 때워놓은 길도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이면도로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불법주차도 없다. 심지어 도로의 한 방향을 막고 공사를 할 때도,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땅에 코를 박고 몸을 최대한 숙이고 마치 정교한 바느질을 하듯이 공사를 하고 있었다. 조용한 사람들이었다. 그건 깨끗하다, 조용하다는 의미와 동시에 무언가 있어야 할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본 일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번잡한 도로를 지나칠 때도 어깨가 부딪치고 마주 오는 손끼리 부딪치는 것이 일상화된 우리가 당황할 정도로 부딪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소리가 나지 않고 발이 없이 둥둥 떠다니며 부딪혀도 충돌이 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존재들인 것 같았다.

이곳은 참 묘한 곳이다. 도쿄 거리를 거닐며 줄곧 그런 생각을 했다. 뚜렷한 윤곽이 있음에도 가까이 다가가면 그 윤곽은 신기루처럼 스러진다. 그리고 경계가 강한 것 같은데 가까이 가면 그 경계는 큰 의미가 없었고, 그 경계선이라는 것조차도 그냥 걸쳐놓은 것이다. 어떤 오래된 ‘감정’을 가지고 들어갔지만 대상이 없으니 미워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는 곳이었다. 없다. 무언가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내내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다니다가 돌아왔다.

가온건축 공동대표·‘서울풍경화첩’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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