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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13> 증강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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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9-16 16:41:44 수정 : 2010-09-16 16: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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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숨겨진 ‘시간의 역사’… 인간의 상상력으로 살아나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시간의 문

일각문을 하나 메고 다니는 사내가 나오는 만화를 어린 시절 본 적이 있다. 그 사내는 곤경에 처하게 되면 문을 내려놓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문 안에서는 다른 시간과 장소가 펼쳐지고, 그는 어려운 국면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람들이 가장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그런 시간의 문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과거는 아름다웠고, 미래는 궁금하고…. 그러나 인간의 한정된 능력으로는 미래는커녕 내 앞 몇 미터 반경의 현재와 기억에 남아 있는 약간의 과거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능력과 저 반대편에 영원이라는 시간적 개념이 있다. 길고도 먼 시간,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통합되는 그런 시간의 경지를 영원이라고 한다. 실은 그건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경북 경주시 황룡사 들판에 서면 오로지 인간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증강현실이 펼쳐진다.
우리가 어느 날 사랑하는 자녀의 이마에 볼을 대고 가만히 한 3분만 있어보면 느끼게 된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 여기에 있게 되는 과정의 시간과 아이의 미래 모습까지 하나로 뭉뚱그려지며 어떤 독특한 시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런 ‘영원성’은 아주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 혹은 어떤 특별한 장소에 있을 때도 체험할 수 있으며, 그런 일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어떤 기계의 작동도 없이 순수하게 우리 머리의, 사고의, 기억의 작용만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런 문의 역할을 이제는 휴대전화가 대신해준다. 누구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서 손바닥에 펴면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일각문보다 훨씬 가볍고 훨씬 세련되어 있다. 단점이 있다면 그건 우리가 무언가를 조금 양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엄살 같지만 휴대전화를 쓰면서부터 전화번호를 외우는 두뇌의 기능이 급격히 약해졌다.

예전에는 내 주변의 모든 지인의 집 전화번호, 직장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거래처, 동네 가게의 전화번호까지 ‘줄줄∼’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더듬더듬이라도 대충 외웠던 것 같은데, 요즘은 주변의 번호는 물론이고 심지어 내 전화번호까지도 도통 외우질 못한다. 물론 나이 먹으면서 생기는 자연적인 기억력 감퇴가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휴대전화가 보다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숫자들은 기름종이에 떨어지는 물처럼 그냥 겉돌다가 주르르 흘러서 내려가 버린다. 마치 투명인간이 되는 약을 먹고 차츰 사라지고 있는 육신의 한 부분을 바라보는 것 같다. 이런 걸 퇴화라고 하나. ‘쓸 필요가 없는 기능은 점점 사라진다’는 그 용불용설에 입각하여 기능의 약화는 점점 확장된다. 차량용 내비게이션이라는 것이 나오면서 길을 읽는 기능 또한 희미해지고 있다. 모든 장소는 하나의 점으로 인식이 되고, 점과 점 사이를 이어주던 머릿속의 어떤 기능이 이제는 문간방으로 밀려나가며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첨단 기술은 눈앞의 실재와 스크린 사이에 또 하나의 레이어를 개입시켜, 가상의 정보들을 현실의 공간 위에 겹쳐 제시하는 ‘증강현실’을 만들어 낸다.
사람의 편리함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여러 가지 도구들은 사람이 그동안 세상을 살면서 어렵게 진화를 거듭한 끝에 만들어놓은 몸의 중요한 기능들을 무력화하고 있다. 무거운 소지품을 배낭에서 하나씩 내려놓듯이…. 그것이 요즘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사람은 현실 속에서 산다. 우리의 인생은 영원한 현실이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는 기억과 상상력에서 존재한다. 어쩌면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사람이 기억하는 기관과 상상하는 기관을 없애버린다면 존재하지 않고 영원히 어떤 국면에 다다르면 도돌이표를 만나서 되돌아가는 쳇바퀴에 갇힌 다람쥐처럼 뱅뱅 돌 수도 있다.

증강현실, 현실에 겹쳐진 가상의 세계를 보여주다

요즘 현실이라는 단어 앞뒤로 수식어를 붙인 여러 가지의 재미있는 ‘현실’들이 생겨나고 있다. 초현실도 있고, 가상현실도 있고, 증강현실도 있다. 그 현실들과 지금 우리가 손끝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어깨로 부딪히는 현실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한 남자가 로테르담 어느 거리에 서서 스마트폰을 카메라처럼 들이댄다. 공사 중인 재래시장 모습 위로 갑자기 형형색색의 새 건물 이미지가 나타난다. 그건 네덜란드 건축회사 MVRDV의 재래시장 변신 프로젝트, ‘로테르담 마켓 홀’의 예상 조감도다.

눈앞의 실재와 스크린 사이에 또 하나의 레이어를 개입시켜 가상의 정보들을 현실의 공간 위에 겹쳐 제시하는 이른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기술과 건축이 만난 모바일 건축 애플리케이션 ‘사라(SARA)’를 통해 경험하게 되는 미래의 시간이 휴대전화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지표조사를 통해 서울에 잠겨 있는 600년의 시간을 볼 수 있다(사진 출처: ‘600년 전 서울의 지적을 찾다’, 건축역사연구 18권 6호, 김홍식 명지대 건축대학 교수).
완전한 가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가상현실과 달리 ‘증강현실’은 사용자 눈앞에 펼쳐져 있는 현실에 가상의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을 말한다. 증강현실은 스마트폰의 도입과 함께 가장 강력한 유인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이 어떤 장소에 가서 휴대전화를 꺼내들면 그 휴대전화는 천연덕스럽게 아직 있지는 않지만 결국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꺼내서 보여준다. 우리는 그런 가능성에 매료되고 열광하게 된다. 그 가능성은 미래이거나 혹은 현재이거나―가장 많이 활용되는 범위가 그 장소에서 직접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까이에 있는 상점의 위치, 전화번호 등의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다―과거의 시간이다.

말하자면 증강현실은 현실에 나타난 ‘시간의 문’이다. 가상이 아닌 현실을, 보다 나은 현실 혹은 정말 실현이 될 것이라고 믿어지는 현실을 보여주는 기술이다. 사람 대신 상상을 해주는 것이 이 기술의 본질이다. 기계를 통해 꾸는 꿈이다. 결국 사람은 꿈조차 꿀 필요가 없어진다. 꿈조차 기계가 대신해 주거나, 혹은 한정된 범위 안에서 꿈을 꿀 것이다. 기계가 그려놓은 테두리 안에서 꿈을 꾸고 생활을 할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게 한다

그러나 넓게 보아서는 그것은 사람의 사고 작용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증강현실은 가상현실과 마찬가지로 현실이 아니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큰 가정이긴 하지만 엄격히 이야기하자면 현실은 아니다. 마치 미리 당겨 쓰는 돈처럼, 가불해서 쓰는 돈처럼…. 바로 앞까지는 왔지만 아직은 내 것이 아니고, 아직은 현실이 아닌 단지 가능성이 높은 현실이다. 그리고 그 ‘시간의 문’은 늘 어떤 장소, 한 지점의 공간에서부터 출발한다.

경주 황룡사 너른 들에는 아무것도 없다. 멀리 남산과 분황사가 보이기는 하지만 황룡사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최소한 우리의 눈높이에서는. 그런데 땅을 내려다보면 마치 극장에 들어가 어둠이 눈에 익듯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점점이 박혀 있는 주춧돌하며 예전에 장륙존상이 앉아 있었거나 서 있었을 초석이 보이고 심지어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도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눈에 무엇을 쓴 것도 아니고 내가 어떤 음성 정보를 듣고 있는 것도 아닌데, 오로지 나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증강현실이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경주의 황룡사 터와는 반대로 익산에 있는 미륵사 옛터는 적극적인 복원을 통해 사람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한다. 남아 있는 탑의 건너편에 현대식 장비로 깎아 만든 탑이 복원되어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우리의 상상력은 그 현대식 탑에 의해 방해받는다.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복원되기 전 무너지다 만 탑의 모습에서 우리는 백제의 아스라한 마지막을 기억할 수 있었다. 복원이 모두 능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상상력이 결핍된 복원, 혹은 어설픈 복원은 아니함만 못하다고 볼 수 있다.

건축가가 땅을 처음 만날 때 어떤 땅은 풀로 가려져 있고, 어떤 땅은 집으로 가려져 있고, 어떤 땅은 언덕배기 경사지로 되어 있어서 땅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여러 도구를 이용하게 된다.

우선 주변이 나와 있는 지도에 꼼꼼하게 주변의 환경을 기록하고 한나절 앉아서 근처를 스케치하기도 하는데, 가장 강력한 도구는 건축가의 상상력이다.

건축가는 땅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이고 물리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상상을 하고 여러 가지 단서들을, 바닥에 흩어져 있는 구슬을 실로 꿰어 하나의 완성된 장신구를 만들 듯이, 차분하게 엮어나간다. 어느 순간 그 부서져 있던 파편들은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고 건축가는 그 바탕 위에 자신의 창조적 영감을 불어넣어 하나의 건물로 만들어 낸다. 건축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그럴 것이다. 모든 창조물의 근간에는 상상력이 포함된다.

보이지 않지만 남아 있는, 우리 발 아래의 증강현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물은 일본의 10분의 1, 프랑스의 1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직도 땅속에는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는데 개발을 직업으로 삼거나, 개발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전횡으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보기도 전에 슬그머니 없어져 버리거나 제자리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유괴’되어 버린다. 그나마 요즘 서울 4대문 안에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땅을 개발할 때는 지표조사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덕분에 아쉬운 대로 전부는 아니지만 공사하다가 나오는 ‘무언가’들을 그냥 파내서 내다버리는 일을 소극적으로나마 막고 있다.

서울에는 땅속 6m까지 많은 삶의 자취들이 남아 있다. 대략 100년 주기로 1m씩 지반이 높아지며 낱낱의 문화층을 이루고 있다.

지표조사를 하느라 조심스럽게 걷어내면 땅속에서 흙과 얽혀져 있는 돌무더기들이 간혹 발굴되는데 그 돌무더기를 보며 각 시대의 문화층을 찾아내는 일이, 그 층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었고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읽어내는 일이 바로 지표조사이다. 마치 증강현실을 경험하듯이 그 일은 앞으로 있을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 땅 위에서 일어났던 현실을 보는 것이다. 오로지 상상력과 기록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지표조사에 참여한 학자들의 학술발표에 의하면 서울 시내는 한양 천도 당시 중앙에 아주 넓은 늪지가 있었다고 한다. 도성을 크게 쌓기 위해 늪지를 메우고 개천(현 청계천)을 깊게 내었다. ‘피맛길’도 원래는 개천이었는데 조선 후기에 들어 이것이 물도랑으로 바뀌면서 자연적으로 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종로 육의전 주변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불탄흙(소토) 층은 임진왜란 당시의 문화층위라고 볼 수 있는데,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같은 층위가 나오지 않으므로 임란 때도 도로변 건물만 화재를 입었다고 추정된다. 이런 이야기들이 종로 한복판 길옆에서 흙 한 삽 뜰 때마다 고구마 줄기 나오듯 줄줄이 엮여 나온다.

그 안에서는 많은 시간을 읽을 수 있다. 오로지 우리의 상상력만으로. 아무런 기계의 도움도 없이 오래된 역사와 오래된 현실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그 길이, 그 땅속의 문화층들이 다 없어지고 나면 그곳에서 역사를 읽어내는 일은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잘 알다시피 그런 지표조사는 정상적인 역사 연구 혹은 도시고고학적인 느긋한 학술조사가 아니다.

실은 개발 행위에 필요한 사전 절차로 시행되고 있는 개발을 위한 하나의 퍼포먼스일 뿐이다. 유물이 발견되면 모두 손뼉을 치고 신문에 크게 보도한 다음 어디론가 실려 가서 박제되고 꽃단장되어 박물관의 마당에 놓이거나 생뚱맞은 역사공원이라고 만들어 그 위에 놓이게 된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유물일 경우의 이야기이다.

아무리 훌륭한 증강현실 기술도 공간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밟고 있는 땅 밑에 100년 전, 멀게는 600년 전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굉장한 역사적 상상력을 만들어주고 그 상상력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자부심을 준다.

그리고 그 상상력은 우리가 어떤 기계의 도움도 없이 시간의 문을 들락거릴 수 있는 진정한 증강현실을 체험하게 해준다. 개발을 서두르는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부디, 땅속의 역사라도 남겨주시길….

가온건축 공동대표 ‘서울풍경화첩’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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