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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12> 자연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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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9-16 16:38:09 수정 : 2010-09-16 16:3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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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 넘나들며 자연과 회통하는 상상의 공간 만들어야 # 보이지 않아도 자연은 강하다

자연친화(自然親和)란 말은 인간이 자연과 친하게 지내며 조화를 이루어 건강하게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산업의 발전과정에서 자연환경이 훼손되는 상황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사람들이 적당히 자연으로부터 무언가를 취해서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이기적인 소망도 담겨 있다.

자연은 강하다. 발밑에 밟히는 풀도 강하고 휘청거리며 서 있는 나무도 강하고 유유히 흐르는 물도 강하고 아무 말 없이 그저 서 있는 산도 강하다. 그런데 잘 드러나지 않는다.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보아야 알게 된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기대고 있었던 것이 저렇게 거대한 것이었구나!” 인간이 그걸 알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의 눈은 자신에게로만 향해 있을 뿐 주변을 둘러보거나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본다거나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본의 아니게 자연과 힘겨루기를 하게 되고 결국 약한 쪽인 인간은 당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걸 모른다.

건축은 자연을 지향한다. 그리고 인간도 자연을 지향한다. 자연은 늘 그 자리에 있고 인간은 늘 움직인다. 마치 에베레스트 14좌를 정복하듯이 자연도 하나하나 인간의 손아귀에 들어온다고 믿고 있다. 강도 산도 그냥 밀어버리고 반듯하게 만들어버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산을 갈아엎어서 골프장을 만들고 못을 메워서 아파트를 짓는다. 막무가내로 기계를 밀고 들어갔다가 계산이 틀리면 던지고 나오는 것은 먹지도 못할 음식을 잔뜩 만들어놓고 그냥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개발사업’이란 것들이 그런 식으로 움직여서 많은 부자들을 만들었고, 거대한 거품도 만들었다. 우리는 자칫 스스로 만들어놓은 거품에 눌려서 질식할지도 모른다. 강을 건드리다가 그만 강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몇 년 전 여의도의 주상복합―좁은 땅에 주거와 상업을 극단적으로 밀어넣고 높이 뽑아 올리는 특이한 ‘익스트림 건축’―에서 지냈던 적이 있다. 주상복합 같은 유형의 건축은 건축이 지켜야 할 몇 가지 절대적 원칙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대범한 건축이다. 다만 금전적 가치와 튼실한 투기물로서의 위상에는 무척 예민하다. 그래서 안팎에서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대부분 고층으로 지어지다 보니 안전상의 이유로 아주 인색하게 열리는 소위 ‘시스템’ 창문이 건물에 달려 있다. 떼지 않은 눈곱처럼 달려 있는 그 작은 창이 외부와 직접 통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그 창으로 바깥 공기를 끌어들인다는 것은 형식적인 이야기일 뿐이고, 안에서 기계가 멈추면 바람도 없고 온기도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발명품은 무척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고, 사람들은 모두 기계에서 공급하는 정체불명의 ‘신선한 공기’를 공급받으며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살고 있다. 어마어마한 자부심을 안고.

# ‘자연친화’란 소재가 아니라 자세의 문제

주상복합의 답답한 공기에서 벗어나 서울의 서쪽 끄트머리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동네에 들어가게 되었다. 앞으로 뒤로 모두 숲이었고 산이었고 집안 구석구석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집 뒤로 낮은 언덕이 흐르고 그 위로 자연과 아주 잘 어울리는, 모든 풀 이름을 다 아는 시인이 살고 있었다. 집 옆으로는 사철나무 숲이 한 움큼 있었는데 그 그늘 안쪽은 비밀 아지트처럼 조용하고도 아늑했다. 마치 어느 만화영화에 나옴직한, 가족이 시골로 이사 가서 처음 만나는 신기한 풍경에 모두 입을 벌리고 감탄하는 장면 같은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것이다.

사실 서울 한복판에서 자라나서 늘 집과 집이 바짝 붙어서 사는 환경에 익숙한 터라, 그렇게 널찍한 곳에서 살아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어서 약간 어리둥절하면서도 쾌적했다. 봄은 더욱 좋았다. 누렇고 푸석푸석하던 언덕에 야금야금 물이 돌고 초록이 솟아오르더니 그 위로 우리가 아는 예쁜 색의 이름이란 이름은 다 불리며 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파주 헤이리 마을. 친환경적 문화예술마을을 지향하고 있으나 건축이 자연을 압도하고 있다.
그리고 풀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점점 날이 더워지며 풀들은 땅의 기운을 받아서 쑥쑥 자라더니 거의 집을 덮칠 기세였다. 이건 뭔가? 자연을 늘 같은 거리로 같은 정경으로 보게 될 줄로만 알고 있던 우리는 겁이 났다. 거대한 초록색과 벌레와 습기가 집안으로 쳐들어오고 피할 구석이 없었다. 그건 우리가 아는 공포와는 조금 차원이 다른 공포였다. 우리는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자연에 안겨버린 것이었다. 자연과 떨어져도 힘이 들고 자연과 너무 가까이 붙어도 힘이 들었다.

자연을 취할 수 있고 가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 과정을 인간 문명의 발달사로 인식하고 있는 서구의 생각과 달리,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며 ‘순수존재’ 그 자체이다. 인간 문명의 발달사는 결국 자연과 타협하는 방법과 자연의 변덕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요령에 관한 것이다. 건강을 위해 우리는 유기농 야채를 먹고, 흙을 퍼서, 나무를 깎아서 집을 짓고 친환경 건축 소재라는 이름을 붙인 온갖 고가의―그 눈곱만큼의 자연의 옷을 입은― 재료를 덕지덕지 붙여놓고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무늬만의 자연주의’라고 할 수 있다. 자연친화라는 것은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자세의 문제다. 그 요체는 자연과 인간 간의 거리의 조정, 자연을 대하는 자세의 조정을 통해서 알맞은 눈높이를 갖는 것이다.

# 자연을 압도하는 건축

경기 파주는 서울에서 한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임진강 거의 다 가서 나오는 동네이다. 그곳에 10여년 전부터 문화 예술의 옷을 입은 동네 ‘헤이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파주의 전통농요인 ‘헤이리 소리’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하지만, 실은 영국의 ‘헤이온 와이(Hay On Way)’라는 마을에서 이름과 개념을 빌려왔다는 것을 모두 다 안다. 척박한 땅에 사람들이 들어가 산을 정리하고 습지를 다듬어서, 여름철 언덕에 풀들이 무섭게 자라 올라오듯이 집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다.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추구한 유기적 건축의 대표작 ‘낙수장’.
처음에는 출판과 문화의 도시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 예술과 문화의 도시로 생각의 지평이 확장된다. 그리고 건축가 몇 명이 주도하는 건축위원회가 꾸려져서 그 동네는 독특한 건축 지침을 스스로 만들고 그 지침에 맞춘 건축을 지향한다. 그들이 지향하는 건축은 문화가 살아 있는 친환경적, 혹은 생태철학적인 건축이라고 한다. ‘자연환경을 최대한 유지시키는 것’을 목표로 ‘땅이 갖고 있는 비공간적 성격, 본질적으로 건축이 가질 수 없는 차이점을 참조하여 만들어내는 건축적 공간’을 그 지향점으로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심어놓은 씨앗들은 ‘차이점’을 인정하고, 참조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 자신의 에고를 듬뿍 뿌린 말뚝을 듬성듬성, 가지런하지도 않게 심어놓는 것이었다. 자연은 무늬가 되고 외장재가 되어 그냥 소모될 뿐이다. 심지어는 나무를 집의 벽에다 꽂기도 하고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자라는 자연을 눕혀서 벽에 붙여 놓기도 한다.

‘낙수장(Falling Water)’은 미국의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69세에 설계한 집이다. 이 집은 그가 평생 추구하던 유기적인 건축(organic architecture)을 구현한 걸작으로 칭해진다. 이 집은 폭포 위에 지어졌다. 물이 집을 관통한다. 개념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아주 직접 물 위에 집을 얹어놓았다.

라이트는 모든 건축물은 주변의 자연 환경과 조화롭게 어울려야 하고, 더 나아가서 건축물은 내부와 외부가 서로 넘나드는 열려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다분히 동양적인 사고를 가지고 건축을 했다. 실제로 그는 동양, 특히 일본의 건축과 예술에 무척 관심이 많았고, 많은 일을 했지만 늘 적자에 허덕이느라 일본에서 수집한 예술품을 팔아서 실제 도움도 받았다고 한다. 성격이 모나고, 가정적으로 건전하지 못해서 늘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건축주와의 관계에서는 독단적이었지만, 그의 건축은 대단했고 유럽의 대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라이트는 피츠버그에서 큰 백화점을 운영하는 카우프만으로부터 주택 설계를 의뢰받는다. 계곡의 아랫부분에 집을 지어줄 것을 요구하였던 주인의 바람과는 다르게 라이트는 폭포 위에 집을 얹어놓았다. 그의 주요 디자인 어휘인 수평적이며 강한 가로선들이 계곡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집은 무척 아름답다. 마치 원래 자연에 있었던 것같이 앉아 있다. 다분히 실험적인 집에서 주인은 폭포 소음으로 골머리를 썩이고, 심지어 누수로 방 가구 위로 물이 떨어져서 어느 날 라이트에게 항의전화를 하기도 했다. 카우프만에게 돌아온 대답은 “가구를 옮겨 놓으시지요”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집은 라이트의 평생의 건축관이 잘 반영되어 있어, 지금은 펜실베이니아주 문화재가 되어 매년 수십만의 사람이 찾는 명소가 되어 있다.

◇자연과 인공물인 집이 조화롭게 회통하며 조화와 상생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송시열의 ‘남간정사’.
# 자연과 회통하는 건축

우암 송시열은 기호학파의 적통을 잇는 조선 후기 대학자이며 두 차례 큰 전쟁 이후 혼란해진 사회를 바로잡고자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는 늘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여 반대파에 대해 가혹했으며 크고 작은 싸움으로 평생을 일관했다. 말하자면 ‘원조 보수’인데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3000번이 넘게 이름을 올려놓았다고 하니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짐작된다. 그래서 우암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그는 노론을 위해서 싸웠으며, 그에게 조선은 백성들의 나라가 아니라 노론의 나라에 불과했다”고 평하고, 그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그가 당시 무너져가는 사회질서를 다시 일으키고자 노력했던 진정한 정치인이었으며 그로 인해 조선은 급속히 무너져 내리지 않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어떤 이야기가 참인지 알 수 없다. 결국 각자 입장에 맞게 판단할 뿐이다. 나에게 굳이 입장을 밝히라고 한다면 “우암의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어느 날 우암이 지은 건축인 ‘남간정사(南澗精舍)’에 가게 되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참된 지식인들은 훌륭한 집들을 남겼다. 남명 조식은 ‘산천재’를 만들었고, 퇴계 이황은 ‘도산서당’을 만들었으며, 회재 이언적은 ‘독락당’과 ‘향단’을 만들었다. 그들은 집을 단순히 햇빛 가리고 이슬 막는 ‘쉘터(shelter)’가 아니라 평생 쌓아 놓은 학문과 정신으로 지어내는 철학적 투사물로 보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집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만들어 놓은 어떤 책보다 더욱 단순하고 강력한 도그마로 우리의 머리를 파고든다. 마치 남명이, 퇴계가, 회재가 옆으로 와서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걸어주는 것 같이 생생하다.

남간정사는 대전 시내 우암공원 안에 있다. 우암이 76살 되던 해에 자신의 집 인근에 후학을 기르기 위해 지어놓은 별서라고 한다. 남간정사는 무척 간단하고 단순한 집이다. 전면 4칸, 측면 2칸짜리 한일자로 구성되어 있다. 좌측에는 2칸짜리 온돌방이 있고, 가운데는 4칸짜리 마루방, 오른쪽에는 뒤편에 한 칸짜리 온돌방을 두고 앞에는 기둥을 세워 한 칸짜리 누마루 방을 들였다. 그리고 그 누마루 아래로 한 줄기 물이 연못으로 흐른다.

마치 라이트의 낙수장처럼 자연과 직접적인 교류를 시도했다. 그러나 낙수장과는 확연히 다르다. 자연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다. 낙수장은 자연을 크게 파내고 그 위에 집을 묵직하게 앉혀 놓아 무척 당당하고 인상적이다. 그러나 남간정사는 자연을 살짝 걷어내고 집을 납작하게 펴서 얇게 붙이고 그 사이로 물이 흐르게 만들었다. 물과 나무로 이루어진 자연과 사람이 쌓아놓은 인공물인 집이 조화롭게 회통하고 있다. 그것은 통제하기 힘들고 근원적인 자연이라는 ‘기(氣)’와 통제 가능한 건물이라는 ‘리(理)’가 한곳에 모여서 조화롭게 회통하는 모습이다. 아니, 이것은 그가 평생 말하던 이기일원론적 세계가 아닌가.

자연에 가볍게 집을 앉힐 줄 아는 사람 송시열. 우리가 아는 ‘원조보수’ 송시열과는 무척 다르다. 지금의 어떤 누가 일흔여섯의 나이에 자신의 생각을 갈무리하고 저렇게 기름기를 걷어낸 간단하고도 명료한 한마디를 남길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을 파내지도 않고 억지스러운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겸손하게 담아 놓은 남간정사는 자연친화를 부르짖는 20세기의 건축, 토목, 조경 나아가서는 정치에까지 조화와 상생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집이다.

인간은, 건축은 자연 앞에서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

가온건축 공동대표 ‘서울풍경화첩’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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