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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7>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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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4-21 01:52:22 수정 : 2010-04-21 01: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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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맛골, 예지동, 장사동… 사라지는 서울의 뒷골목
‘우리들 기억’도 사라져
#공간엔 시대와 의지와 감정이 담겨

아내의 부정을 목격하고 지독한 여성 혐오증을 갖게 된 페르시아의 샤리아르 왕은 아내를 죽이고 새로 결혼을 한다. 그러고는 결혼한 다음날 아침 다시 아내를 죽인다. 계속 새로운 여자와 결혼하고 또다시 죽이는 왕의 만행으로 나라 안의 신붓감이 될 만한 여자들이 모두 죽거나 피신해 여자가 몇 남지 않게 된다. 그러자 대신의 딸 세헤라자데는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왕과 결혼한다. 세헤라자데는 결혼한 날 밤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천일하고도 하루 동안 지속되는데 왕은 이야기를 듣느라고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결국은 상처가 치유된다. 세헤라자데가 들려준 이야기가 바로 유명한 ‘천일야화’이다.

이야기의 힘은 무척 강하다.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안식을 주며, 심지어 상처를 치유하기까지 한다. 우리는 안식과 평화를 주었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이야기, 혹은 할머니의 구수한 이야기들을 잊지 못한다. 그 이야기들은 줄거리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안온한 공간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생산하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소비하는가 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나 건축과 같은 공간도 하나의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에는 시대가 담기고, 사람의 의지가 담기고, 감정까지도 담긴다. 공간이 직접 소리 내어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마치 자동 재생되는 녹음기처럼 그 앞에 서면 이야기가 시작된다. 물론 그 대상과 주파수를 맞추어야 하겠지만….

가령 우리가 유명한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제(Le Corbusier)의 대표작 ‘빌라 사보아’를 본다면 그 건물과 그 건물을 통해 들려주고자 한 르 코르뷔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건축이란…”으로 시작되는 그의 이야기는 새로운 형식, 즉 벽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20세기 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가 주장한 현대건축의 다섯 가지 형식이 따로 물어볼 필요도 없이 그 집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는 경주 감포의 감은사 절터에 있는 감은사탑을 볼 때 우리는 삼국통일을 완성한 강한 왕 문무왕과 그에 못지않게 강했던 그의 아들 신문왕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굳이 ‘삼국유사’를 펼쳐서 볼 필요도 없이 그 탑은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걸어온다. 명작을 본다는 것 혹은 역사를 체험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거창한 역사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늘 만나는 이곳저곳의 건축이나 길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질펀하다. 오래된 집은 오래된 집대로, 새로 만들어진 집은 그 집대로의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겸재의 ‘청풍계’와 현재의 모습. 계곡은 사라지고 ‘백세청풍’ 글씨가 새겨진 바위만 남아 있다.
#문화란 잘 가꾸어진 콘텐츠


경북 안강 근처에 있는 양동마을에는 오래된 집이 여러 채 있다. 집뿐 아니라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두 집안의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특히 그 마을 초입에 우뚝 솟아 있는 ‘향단’이라는 집은 조선 초기의 대학자 회재 이언적이 그의 어머니를 위해 지어 주었다는 갸륵한 이야기와, 회재의 지극히 추상적인 관념의 세계에서 시작해서 그 마을에서의 자신의 입장과 어머니에 대한 생각까지도 들을 수 있다. 또는 그 근처에 있는 월성 손씨 대종가 ‘서백당’에 가면 고귀한 품성과 덕성에 대한 가르침과 단순함이 주는 감동을 실컷 듣고 나오게 된다. 우리는 그런 깊은 이야기가 있는 것들에 대해 존경을 표하며 ‘고전’이라고 한다.

와인 한 잔을 마시려면 30분 동안 그 와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와인 바에 간 적이 있다. 그 집의 주인은 와인에 대한 대단한 지식과, 그 지식을 풀어서 옮길 수 있는 대단한 상상력이 있었다. 그 대단한 의식을 거친 후 입 안에 흘려 넣는 그 액체에서는 조금 전에 들었던 역사가 피어오르고, 도메인의 성격이 형상화되고, 솔숲을 지나거나, 햇살이 부서지는 길을 걸어가는 기분을 체험하게 된다. 그때 우리가 마신 것은 단순히 포도를 으깨서 만든 ‘포도주’가 아니라 ‘와인’이라고 하는 역사가 듬뿍 담긴 이야기였다. 그런 것들은 다양한 어조의 이야기로 표현되어 하나의 콘텐츠가 되고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국 문화란 잘 포장된 하나의 이야기다. 2008베이징올림픽 폐막식 때 TV를 통해서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장이머우가 굉장히 공을 들여 연출했다는 폐막공연을 보고 있었다. 길고도 엄청난 스케일의 그 공연이 끝나고, 아주 짧게 다음 올림픽 개최지인 런던을 홍보하는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2층 버스가 나오고 그 안에서 영국의 락 음악을 대표하는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나오고, 팝페라 가수가 나오더니 마지막으로 영국의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축구공을 들고 나와 공을 발로 멀리 차며 퍼포먼스가 끝났다.

스케일만 강조한 길고도 서술적인 중국의 퍼포먼스보다 영국을 상징하는 단 몇 개의 상징들로 이루어진 영국의 퍼포먼스는 훨씬 강렬했다. 물론 역사와 내용의 면에서 볼 때 중국의 문화를 따라올 문화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중국의 이야기는 너무나 길고도 지루했고, 영국의 이야기는 짧지만 누구나 영국의 문화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영국의 퍼포먼스는 이야기의 방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서촌,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

서촌은 서울 경복궁의 서쪽에서 시작해서 인왕산의 무릎까지 치고 올라가는 동네를 이른다. 옥인동, 신교동, 청운동, 체부동, 통인동, 적선동, 누하동 등 작은 단위의 구획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그 동네에는 오래전부터 살아온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이어주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이다.

◇겸재의 ‘수성동’과 현재의 모습. 계곡과 기린교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 동네에는 많은 기억이 숨어 있다. 이상이 큰아버지 댁에 양자로 들어와서 신명학교에 다니던 통인동 집 자리가 있고, 윤동주가 거닐었다는 산책길이 있고, 친일파 윤덕영·이완용이 궁궐 같은 집을 짓고 행세하던 터가 있다. 또한 거슬러 올라가면 태종 이방원이 왕이 되기 전에 살았던 곳이 있고, 그 자리에서 세종대왕을 낳았던 자취가 있고, 영조가 태어나서 왕이 되기 전까지 살던 집터도 있다. 그러나 묘하게도 그 동네에는 가시적인 자료는 거의 없다. 다만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떤 휘황한 실물이 남아 있는 곳보다도 훨씬 깊고도 울창한 역사적 상상을 할 수 있다.

그런 서촌을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자료라면, 바로 진경산수화를 그렸던 겸재 정선이 남겨 놓은 그림들이다. 겸재 정선은 1761년 지금은 경복고등학교가 들어서 있는 유란동에서 태어났다. 유란동은 조선말의 세도가 ‘장동김씨’의 본거지였다. 장동김씨의 대표적 인물인 청음 김상헌은 우리가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라는 시조를 통해 알고 있는 조선 중기의 예조판서를 역임한 문신이며, 대표적인 척화파이기도 하다. 김상헌의 손자 김수항과 김수항의 아들 6형제가 모두 높은 벼슬과 학식으로 세상에 유명해지는데, 겸재 정선은 그 집안의 형제들에게 글과 그림을 배웠다. 특히 6형제 중 셋째인 김창흡에게는 후세에 ‘진경’이라고 칭하는 현실을 표현하는 정신을 물려받게 된다. 200년 전 무렵의 이야기다.

청운동은 겸재의 외가가 있던 곳이다. 그 지명은 청풍계와 백운동에서 나온 이름인데 청풍계의 위치는 청운초등학교 북쪽으로 바짝 붙어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으로 올라가다가 막히는 지점까지이다. 지금은 무척 넓고 높은 개인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인왕산으로 오르는 길을 막아서고 있으나, 예전에는 무척 아름다운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청계천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청풍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란 뜻이다.

그곳에는 김상헌의 형이며 병자호란 때 임금을 모시고 강화도로 피신을 갔다가 자결한 충직한 신하 선원 김상용의 집이 있었다. 겸재는 이곳의 풍경을 여러 번 그렸는데, 그의 그림 속에는 연못이 세 개가 있었고 무척 아름다운 초당이 있었고 늠연사라는 사당이 있었다. 그 위로 바위가 하나 우뚝 솟아 있었으며 그 바위에는 ‘백세청풍’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도시의 활발한 성장에 계곡은 메워지고 사당과 연못도 사라지고, 다만 그때 바위에 새겨 놓았던 글씨만 남아 있다. 바위 앞에 남이 보일까봐 숨겨 놓은 듯한 손바닥만 한 동판에 새겨 놓은 안내판이 하나 발아래 묻혀 있을 뿐이다.

그림 속에는 200년 전의 청풍계가 보인다. 그리고 그 위치를 알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우리는 상상으로 그때를 볼 수 있다. 각지게 굽이치던 바위들은 뭉텅뭉텅 나무들과 함께 베어지고 그 위로 빼곡하게 집들이 들어섰고 집으로 올라가던 얇은 길은 아스팔트 포장이 된 큰길로 바뀌었다.

또한 겸재는 유란동에서 인왕곡으로 이사해서 인왕산을 배경으로 자신이 살던 집을 그렸고 근처 역사적인 풍경을 많이 남겼다. 지금은 철거중인 옥인아파트 자리를 그린 ‘수성동’이라는 그림이 있다. 예전에 ‘수성궁’으로 불리던 안평대군의 집인 ‘비해당’이 있던 자리이다. 그 집이 유명했던 것은 당시의 ‘문화대통령’이었던 안평대군이 많은 시인과 묵객을 집을 초대하고 후원해서 예술의 꽃을 피웠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본에 있는 조선 초기 회화의 걸작 ‘몽유도원도’가 바로 비해당을 늘 드나들던 화원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을 3일 만에 옮겨 그린 것이라고 전해진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꿈속에 사육신 중에 한 명인 박팽년과 함께 거닐었던 선경을 옮겨 그린 것이다. 그 그림은 현실과 꿈속의 선경이 나란히 나타나는데 현실에서의 모습은 아마 비해당이 있던 당시의 수성동 골짜기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아파트가 철거되느라고 여기저기 안전막을 쳐놓았는데 그 뒤편으로 비록 많이 망가지기는 했지만 겸재의 ‘수성동’에 나오는 계곡의 윤곽과 그 사이에 걸쳐 있는 ‘기린교’가 다행히도 남아 있어서 몇백 년의 시간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청풍계의 담장에 갇혀 있는 바위 한 조각, 수성동에 남아 있는 얇은 다리 하나가 시대를 이어주고 이야기를 완성해 준다.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다

도시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씨줄과 날줄이 겹쳐지며 섬유가 견고하게 만들어지는 것처럼 도시는 무수한 가로, 세로, 그리고 여러 각도의 사선들이 겹쳐지면서 만들어진다.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이야기들이 사라지게 되면, 마치 올이 풀린 섬유처럼 전체의 구조는 약해지고 내용은 부실해져 결국 껍질만 남게 된다.

이야기는 기억으로 이루어진다. 부분과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도시의 총체적인 기억들은 모두 작은 단위의 기억들의 총합이다. 마치 점들처럼 여기저기 퍼져 있는 기억들이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고 완성된다. 도시가 메마르게 되는 것을 그런 기억을 실어 나르는 이야기들이 빈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들은 거창하게 역사책에나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에는 역사엔 없는 사실들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사실 도시로서의 정체성이나 역사성은 마치 환등기가 벽에 영상을 비추듯이 그곳을 증언해 줄 사람들의 존재에 의해 그들이 보여주는 영상에 의해 재구성되고 연속성을 갖게 된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육백 년을 넘어선, 세계에 몇 되지 않는 장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역사적인 도시에 걸맞게 서울은 무척 다양한 역사의 켜가 층층이 쌓여 있다. 그러나 서울에서 역사적인 상상을 하는 것은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막 한복판에서 공룡의 화석이나, 선사시대의 주거지를 찾는 것처럼 난감하기 그지없고, 밑도 끝도 없다.

게다가 서울은 대범한 관리들과 무심한 시민들에 의해, 도시를 이루고 있는 기억들이 우리가 두 눈을 뜨고 바라보는 바로 앞에서 가림막에 가려진 채 차근차근 부서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한 것은 그 가림막에 쓰여 있는 문구들이 서울의 상징 혹은 문화도시 운운하는 단어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피맛길은 말할 것도 없고, 60년대 세운상가로 인해 무참히 깨진 예지동·장사동의 옛날 길들이 조만간 완전히 사라진다고 한다. 명분은 도시 녹지축의 복원이라는데 어떤 역사서나 지리서를 찾아보아도 종묘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은 존재하지 않았다. 서울이 가지고 있는 결은 대부분 동서 방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우리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녹지축이라는 잘못된 명분으로 역사적인 도시의 중요한 결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사라지게 될 그 길들은 오래된 서울 지도에 생생히 남아 있던 서울의 실핏줄들이었고, 동네 구석구석에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이루고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말이다.

우리가 잊고 있는 서울의 뒷골목들은 모두 600년이 넘게 서울을 이루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서울의 문화적 정체성은 결국 그 이야기들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다.

가온건축 공동대표, ‘서울풍경화첩’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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