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4> 인터페이스

관련이슈 세계일보 창간 21주년 특집

입력 : 2010-03-09 21:32:15 수정 : 2010-03-09 21:32:1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공간과 공간 사이 경계 넘나드는 ‘소통의 門’ 찾아야 # 직관적 인터페이스의 시대

◇옛 대법원 건물을 개조한 서울시립미술관.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의 힘은 막강하다. 그에 대한 기대는 거의 종교에 가깝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가 발표하는 신제품 설명회의 프레젠테이션에 열광하고 그가 주머니에서 꺼내는 새로운 물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유는 애플의 제품들이 직관적이다 못해 사용자의 마음까지 읽을 것 같은 환상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잡스가 가진 힘의 근원은 기술을 극대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하는 ‘바로 그것’을 정확히 꿰뚫고 기술과 결합하는 데 있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내는 각이 둥그렇게 다듬어진 하얀 기계들은, 그동안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건너야 했던 많은 다리들을 한순간에 가로질러 직접 들어가는 것을 허용해 준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잡스가 창조해 내는 그 ‘직관적 인터페이스(intuitive interface)’다. ‘직관적’이라는 것은 판단이나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말하고, ‘인터페이스’란 말은 포괄적으로는 매개체를 뜻한다. 사물과 사물의 접점, 경계 혹은 관계 혹은 관련성이라고도 하고 사용자 환경이라고도 한다. 즉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간, 사물과 사물의 소통을 만들어주는 것이 인터페이스이다. 인터페이스는 웹과 같은 가상공간에서는 디지털 데이터의 형식으로 존재하기도 하며, 물리적 공간에서 사물의 형식으로 주로 존재한다. 그러니 ‘직관적 인터페이스’를 갖추었다는 것은 이런저런 설명 없이도 바로 보고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라는 뜻이다.

흔히 “인터페이스가 개선되었다”거나 “인터페이스가 좋다”는 것은 주로 컴퓨터와 관련해서 하는 말이다.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라면 각 내부구조의 계층 중에서 가장 사용자 측에 가까운 계층으로서, 사용자와 직접 맞닿는 부분을 말한다. 퍼스널 컴퓨터가 막 보급될 무렵 컴퓨터 학원을 잠시 다닌 적이 있는데, ‘아래한글’을 쓰려면 A드라이브에 여섯 장의 디스켓을 차례로 넣어야 프로그램이 구동되었다. 글자 몇 자 쓰려고 그렇게 디스켓을 넣었다 뺐다 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너무 귀찮아-말하자면 인터페이스가 너무 불편해서-‘배움’은 그만두었지만, 당시 대부분의 컴퓨터 환경은 그렇게 까만 도스 화면에 하얀 글씨의 명령어들을 수없이 외워서 입력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란 화면에 깔린 단추(아이콘)들에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인터넷 세상이든 어떤 프로그램이든 한순간에 문(윈도)이 열리던 때의 그 감동이란!

# 시간과 공간을 건너뛰다

◇8개의 마당으로 공간 사이에 적당하고 조화로운 경계를 부여한 윤증 고택.
얼마 전 아주 멀고 먼 나라 슬로베니아의 마리보(Maribor)라는 도시 강가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나무 옆에 있는 경사진 땅에 미술관 설계 공모가 있어서 그 작업을 진행했다. 한 두어 달 동안 도면과 보고서와 모형을 열심히 만들어, 모형은 사무실에 보관하고 도면과 보고서는 EMS 배송을 보내고, 송장을 사진 찍어 이메일로 보내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살아생전 한 번 가 보지도 못한 나라에 집을 설계하면서, 나는 컴퓨터를 켜놓고 바탕화면에 떠 있는 ‘구글 어스(Google Earth)’를 클릭하여 그 도시를 경험하면서 일을 할 수 있었다. 바다 몇 개를 건너뛰고 푸른색 덩어리로 들어가, 점점 길이 보이고 산맥이 보이다가는 마침내 동네 골목까지 보이는 놀랄 만한 디지털 매개체를 통해…. 그 얼마나 경이로웠던가. 강은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고 모든 길들은 반짝거리며 도시를 활보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불꽃놀이를 하거나 카페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1994년이든가 그 언저리에 사무실 책상 위에 컴퓨터가 하나씩 놓일 때, 나는 방금 내 책상 위에 놓아준 컴퓨터 화면에 둥실 떠있는 넷스케이프에 올라탔다. 물론 지금처럼 검색기능이 훌륭하지 않을 때였으므로 나는 어렵게 주소를 입력해서 일본의 어느 유명 건축가의 사이트로 들어간 적이 있다. 도착해서 마침내 문이 열리고 머리끝부터 한 줄씩 마치 도트프린터가 아주 느린 속도로 종이에 그림을 출력하듯이 그가 설계한 건물 이미지가 약 30분에 걸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 기껏해야 몇 개밖에 보지 못했지만 나는 공간을 시원하게 꿰뚫는 동시성에 매료되었다. 어떻게 도쿄의 어느 구석에서 걸어놓은 이미지가 서울 남동쪽 끄트머리 동네 12층 구석까지 연결이 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마 전화기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저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혹은 문자가 처음 생겨났을 때나, 불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을지 모른다. 아주 어릴 때 본 어떤 만화에서는 주인공이 늘 문을 메고 다녔는데, 그는 위기에 처하면 문을 열고는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으로 이루어진 세상으로 도망치곤 했다. 마치 그 문처럼, 우리는 책상에 가만히 앉아 다른 세상으로 건너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터페이스가 물리적으로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라면 편지나 봉화도 일종의 인터페이스였을 것이고, 지금으로 말하자면 휴대전화나 유·무선의 네트워크도 해당될 것이다.

인터페이스라는 개념은 하나가 아니다. 마치 끝말을 이어가듯이 연결되기도 하고, 혹은 젤 타입의 물질처럼 어떤 용기에 들어가면 그 용기가 원하는 포즈를 취해준다. 그 ‘매개체’는 마치 촛불을 켜놓고 나란히 앉아 손을 마주 잡고 눈을 감은 채 다른 세계로 우리를 데려다 주듯이 혹은 다른 세계를 불러내 주듯이 우리의 모든 소원을 중재해주고 연결해준다. 세상의 모든 공간이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통해 그렇게 연결되고 통합된다.

# 객체 중심 인터페이스, 인간 중심 인터페이스

◇편리하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진 아파트.
건축에서의 인터페이스란 무엇일까? 이를테면 건축에서의 도면도 하나의 인터페이스다. 설계자의 의도를 현장에 전달하는 것이 도면이다. 건축가는 땅을 보고 구상하여 구체적인 건축물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은 공사라는 형식을 통해서 실물로 만들어지는데 그 구상을 기록하고 공사를 위한 안내를 하는 것이 설계도면이라는 형식이다. 건물을 수평으로 잘라 위에서 내려다본 평면도, 수직으로 잘라 옆에서 본 단면도, 외양을 그리는 입면도, 하늘에서 내려다본 조감도, 실제 지어진 모습에 가장 가깝게 그려내는 투시도 등이 반드시 그려야 하는 기본도면들이다. 여러 명이 나누어 그리기도 하고 한 사람이 계속 그리기도 하지만, CAD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인터페이스가 발전하면서 여러 명이 동시에 한 건물의 3차원 도면을 그려낼 수도 있게 되었다. 단순히 도면의 분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공사의 질이 함께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오해이긴 하지만.

건축의 물리적인 부분으로 눈을 돌려보면, 가령 기단은 땅과 건물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이다. 천장 몰딩은 벽과 천장이 상징하는 수평과 수직을 매개해준다.-더구나 몰딩이 없다면 도배하는 사람들은 무척 곤란을 겪는다.- 걸레받이는 걸레만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벽과 바닥의 충돌을 막아준다. 용마루는 건물이 하늘을 ‘감히’ 찌르는 것을 막아준다. 방과 방,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매개역할을 하는 마당도 중요한 건축의 인터페이스다.

논산에 있는 윤증 고택에는 다양한 성격과 다양한 모양을 가진 마당이 8개 있다. 혹은 그 이상이다. 들어가기 위한 마당, 집안을 관장하기 위한 마당, 사당으로 가기 위한 마당, 여자들을 위한 마당, 관상하기 위한 마당, 제례를 지내기 위한 마당 등. 이 집에서 마당은 살면서 필요한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기도 하고, 벽과 지붕으로 이루어진 방이라는 공간들 사이에서 서로 연결해주며 성격을 부여해주기도 하는 아주 기능적이면서도 미학적인 인터페이스이다.

즉 건축은 연결의 객체가 되는 공간들과 더불어 사용자로 분류되는 인간이 개입되는 형식의 다차원적인 인터페이스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나름의 엄격한 원칙과 질서가 적용된다. 한국 건축 특히 지금 남아 있는 유학자들의 집에서는 공간 간의 구성과 위계가 먼저이고, 최종 사용자로 볼 수 있는 인간은 조금 뒤로 빠져 있다. 보수적인 유학자 이언적이 지은 양동마을의 향단은 심지어 직접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 없는 구조다. 그들의 공간 구성방식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철학적인 원칙이 인간의 삶에 앞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는 그런 집들은 사용자 중심이 아니라 객체 중심의 인터페이스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객체들(공간들) 하나하나가 독립적이고 실존적인 존재이며 하나의 정연한 질서와 우주를 구성하는 ‘정신의 총화’라고 볼 수 있다. 대단히 추상적이다. 윤증 고택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제사를 지내고 집안을 관장하고 드높은 학문적인 경지를 유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윤증 고택은 기본프로그램(의식주)보다는 응용프로그램(제사 및 행사) 지향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다. 그 집은 보편적 가치보다는 윤증 당시의 시대에 중요시하던 것들, 즉 실존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다.

# 경계의 충돌, 경계의 통합

반면 현대의 집은 사용자 지향적이며 동시에 객체 지향적이다. 공간은 사용자를 위해 존재하지만 사용자는 익명적이고 다만 데이터로 존재한다. 데이터에는 물론 정신이나 추구하는 지향점은 없다. 표준화되고 시각적으로 현혹하는 당대의 선호하는 기호들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익명성은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보편적이다. 집이란 하나의 소비재로 가치를 전환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위 직관적 인터페이스의 적용이 필수적이다. 건축의 공간에서 인터페이스가 가장 활발히 발전하는 장소는 아마도 주방일 것이다. 부뚜막에서 싱크대로의 전환은 주거 문화의 가장 큰 혁신 중 하나다. 예전에는 맛있는 밥을 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기술과 연륜이 필요했다. 가마솥과 장작불(이것도 가스불로 진화했지만)을 준비하고, 물의 비율을 가장 정확히 맞추기 위해 손등이 찰랑거리는 정도의 물을 넣고 불을 조절하는 등등 여러 단계의 절차를 적절히 지키기 위해 솥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했다.

이제는 쌀을 씻어서 눈금에 맞추어 물을 부은 다음 버튼을 눌러 놓으면 아무 때나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상태의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아이라도 두 단계만 거치면 맛있는 밥을 직접 해 먹을 수 있다. 밥을 짓기 위해 들이던 긴 시간과 수많은 노동은 전기와 몇 개의 단추로 간략하게 압축되었다.

우리 주거문화의 아이콘인 아파트 또한 건축이 이룩한 현대적 인터페이스의 놀라운 결과물이다. 엘리베이터의 발명은 걸어서는 오르내릴 수 없는 초고층 아파트가 가능해지도록 만들었고, 우리의 주거 양식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기능들은 네모 반듯하거나 혹은 조금 더 모양새 있게 변형된 공간에 한꺼번에 집어넣어졌다. 단지 네모난 방들의 집합인 그 거대한 덩어리 안에는 방도 있고 부엌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대청이자 마당의 기능을 하는 거실도 모두 있다. 더 이상 우물로 물을 길러 가지 않아도 되고 장작을 패지 않아도, 뒷마당의 낙엽을 쓸지 않아도 된다.

한정된 면적에서 최대의 공간을 뽑아내며 거기에 편리성을 더해서 사람들의 동선을 혁신적으로 단축한 것이 아파트의 최대 장점이다. 그래서 전용 면적에 비해 공간들은 훨씬 널찍널찍하게 보인다. 집에 들어서면 이윽고 거실이 나오고 그 거실을 통해서 각 공간으로 들어간다. 집의 중심공간이 된 거실에 의해 공간들이 결합하기도 하고 나눠지기도 한다.

다만 그 공간들 간의 거리가 지나치게 짧아졌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오늘날 인터페이스의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거리의 단축’이 집에서는 오히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였다. 문만 열면 눈이 마주치는 개방적인 구조는 가족들이 문을 닫고 방에서 나오지 않게 만들었다. 전통적인 주거양식에서 공간과 공간 사이에 마당을 두어 사람들에게 어떤 ‘간격’과 ‘여지’를 둔 것은 공간들의 독립성과 일정한 거리를 중요하게 보았기 때문이었다. 요즘 아파트에 마당을 적용하고 성격을 부여하자며 공간을 다시 잘게 나누는 작업들이 진행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정동에 있는 시립미술관은 옛 대법원 건물이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연인들이 헤어진다는 속설의 배경이기도 하다. 엄숙하고 권위적이던 건물, 좀처럼 접근할 수 없었던 건물이 수많은 시민들이 예술을 감상하기 위해 찾아가는 곳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 예술과 일상의 경계는 본래의 건물 모습을 기억하게 하는 정면의 벽으로 대표되고, 법원으로 사용되던 어둡고 딱딱했던 기존의 구조는 밝고 넓고 시원한 미술관의 공간으로 전환되었다. 옛 벽돌 벽의 두꺼운 무게감과 유리벽의 날렵한 만남은 지극히 직설적이지만, 달라진 시간과 달라진 환경에 건축의 인터페이스가 어떤 방식으로 적응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매개체라는 것은 결국 ‘거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거리라는 것은 결국 ‘경계’를 말한다. 인터페이스는 경계다. 경계의 충돌을 최소화하고, 경계의 거리를 조절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인터페이스의 핵심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경계 사이의 문을 찾아 들어간다.

가온건축 공동대표, ‘서울풍경화첩’ 공동저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나연 '깜찍한 브이'
  • 나연 '깜찍한 브이'
  • 시그니처 지원 '깜찍하게'
  • 케플러 강예서 '시크한 매력'
  • 솔지 '아름다운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