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재파병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분쟁지대 파병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론이 분열된다.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당위론과 파병의 실익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불가론이 맞서곤 한다.
국제사회 일원으로 참여한다는 당위론에는 미국의 요청이 배경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파병을 둘러싼 논란에는 미국에 대한 시각도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우리 사회에 영향력이 강한 엘리트 집단의 인식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이는 국제정치의 불가피한 속성일 수도 있다.
국제 정세보다는 이웃 국가와의 관계가 더 중요했던 조선시대에도 이런 현상이 빚어지곤 했다. 조선에 파병을 요청했던 나라는 중국의 명과 청나라였다. 중국의 해외 파병 요청에 조선의 엘리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를 제대로 조망하는 것은 역사 바로 알기 작업이기도 하고, 현 정세에 활용할 반면교사도 될 수 있다.
명과 청이 해외파병을 요청했을 때 조정의 대응은 시대별로 차이가 있었다. 조선 초기에 명이 파병을 요청하면 조정은 치열한 내부 논의를 거쳐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이에 따라 세종대는 몽골 원정을 이유로 만장일치로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다. 명이 건주여진 원정을 이유로 파병을 요청했을 때, 세조와 성종대에는 국익에 따라 달리 대응했다. 세조대는 만장일치로 파병을 단행했지만, 성종대는 최소 병력만 파견해 생색만 냈다. 명을 ‘천자의 나라’가 아닌 그저 큰 나라 정도로 여긴 조선 엘리트들의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
| ◇해외파병은 조선시대부터 당위론과 불가론이라는 첨예한 논쟁거리를 던진다. 사진은 이라크에 교체 투입된 자이툰 부대 환송식 장면. |
파병 논쟁이 가장 격렬했던 때는 연이은 전쟁을 겪고 난 다음인 17세기 초 광해군이 통치하던 시기였다. 후금 원정을 이유로 파병을 요청했을 때 조정 신료의 다수는 파병주의자였다. 광해군은 네 번의 파병 요구에 대의명분보다는 실리를 우선시했다. 초기에는 청의 칙서 공개를 거부했고, 나중에는 파병을 공개적으로 기피하기까지 했다.
파병 이후 역사적 의미가 바뀐 사례도 있었다. 병자호란 이후 나선정벌이 대표적이다. 청의 요청에 따른 나선정벌은 오랑캐로 인식된 청에 굴복한 수치심과 북벌을 이룰 수 없었던 자괴감을 극복하는 데 좋은 소재가 됐다. 청나라가 못한 일을 조선이 이뤘다는 평가에다가 정치적 선언으로만 끝났던 북벌을 실제로 행했다는 조선의 자기합리화에 유용한 사례였다. 게다가 18세기 이후에는 나선정벌 해석에 ‘청’은 빠지고, 조선과 러시아만 남을 만큼 그 성격이 변했다. 조선의 주체성이 어느새 강조된 것이다.
사학자인 계승범 박사는 해외파병 논란을 볼 때 조선의 지식인들은 미래를 예측하고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자신의 신간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에서다. 계 박사는 “한국 역사 전개에서 미국의 중요성보다 조선 역사에서 명과 청의 중요성이 강했다”며 “조선 엘리트의 중국 인식은 오늘 대한민국 엘리트들의 미국에 대한 시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해외파병 때마다 논란에 휩싸이는 한국으로서는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 관계의 성격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AI 글라스 커닝](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6/10/128/20260610518506.jpg
)
![[세계포럼] 총포탄은 善人·惡人 구분 안 한다](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2/25/128/20260225519433.jpg
)
![[세계타워] 부동산은 산수가 아니다](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15/128/20260415524715.jpg
)
![[김형배의공정과효율] ‘AI 의사’ 표시 의무화, 공염불 될라](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6/10/128/20260610518373.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