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전 늦은 밤거리/ 내 팔을 끌다 화들짝 손을 놓고 사라진 여인/ 운동회 때마다 동네 대항 릴레이에서 늘 일등을 하여 밥솥을 타던/ 정님이 누나가 아닐는지 몰라/ …식모 산다는 소문도 들렸고/ 방직공장에 취직했다는 말도 들렸고/ 영등포 색싯집에서 누나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끝내 대답이 없었다/ 용산역전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던 내 팔 붙잡다/ 날랜 발, 밤거리로 사라진 여인”(‘정님이’ 부분)
‘에레나가 된 순이’ 같은 정님이 이야기가 서러운 노래처럼 흔연히 흘러가는 이 시편은 등단 초기 1970년대의 작품이다. 역시 이 시기에 “장사나 잘되는지 몰라/ 흑석동 종점 주택은행 담을 낀 좌판에는 시푸른 사과들/ 어린애를 업고 넋나간 사람처럼 물끄러미/ 모자를 쓰고 서 있는 사내/ 어릴 적 우리집서 글 배우며 꼴머슴 살던/ 후꾸도가 아닐는지 몰라”라고 읊었던 ‘후꾸도’는 ‘정님이’와 나란히 이시영 이야기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이르면 그의 시는 짧아진다.
“가로수들이 촉촉이 비에 젖는다/ 지우산을 쓰고 옛날처럼 길을 건너는 한 노인이 있었다/ 적막하다”(‘사이’ 전문) “새끼 새 한 마리가 우듬지 끝에서 재주를 넘다가/ 그만 벼랑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먼 길을 가던 엄마 새가 온 하늘을 가르며/ 쏜살같이 급강하한다// 세계가 적요하다”(‘화살’ 전문) “이 밤 깊은 산 어느 골짜구니에선 어둑한 곰이 앞발을 공순히 모두고 앉아 제 새끼의 어리고 부산스런 등을 이윽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겠다.”(‘애련哀憐’ 전문)
‘애련’과 ‘화살’의 ‘사이’는 적막하고 적요하며 이윽하다. 깊은 여운과 단아한 언어의 운용을 사랑하던 그가 근년에는 아예 신문 기사 한 토막을 ‘게이트키핑’하는 것으로 시를 대체하는 실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시로 떠받치기에는 갈수록 현실이 더 무거워지는 것인지. 이시영 시의 다음 단계가 궁금하다. 김정환 시인은 시집 뒤 발문에 이렇게 썼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시영 시의 ‘모던’에 미달하는 작품은 아무리 서정적이라도 서정시가 될 수 없고, 이시영 시의 서정에 미달하는 작품은 아무리 현대적이라도 현대시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 이시영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척도다. 시에서도 그렇고 사회-인간적 관계에서도 그렇다. 돌이켜보면 그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나 나 같은 것은 공연히 숨결만 거친 한 마리 대책없는 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조용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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