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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히고 설킨 시장…경제를 넘어 사회현상 지배

입력 : 2009-04-24 22:38:52 수정 : 2009-04-24 22:3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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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린드블롬은 사회적 조정체계로서 ‘시장체제’를 설명하면서 지속적으로 “경제는 잊고, 사회를 생각하라!”고 강조한다
시장체제/찰스 린드블롬 지음/한상석 옮김/후마니타스/1만5000원


린드블롬은 ‘시장’이라는 협소한 정의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조정체계로서 ‘시장체제(the market system)’를 설명하면서 지속적으로 “경제는 잊고, 사회를 생각하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현재의 세계적 위기 국면에서 소개된 그의 ‘시장체제’는 더할 나위 없이 시의적절하다. 왜냐하면 이번에 위기의 주범은 정확히 ‘시장’ 그 자체로서 시장이 곧 경제라는 사고의 오류를 폭로하고 시장의 ‘사회성’을 분명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시장체제-시장체제란 무엇이고 어떻게 움직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기존의 시장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시장의 지지자든 철폐론자든-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밀라노의 수입업자 사무실에서 연필을 물고 있는 회계담당자를 생각해보자. 연필제공에 100명, 연필 끝의 지우개 제작에 100명, 연필공장 건설에 100명, 전력생산 및 송전에 1000명 이상, 송전용 금속전선 제작에 1000명 이상, 끝으로 광석채굴·정련·용해 및 운반에 수천 명이 각각 참여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는 없다. 연쇄는 계속 이어진다.

따라서, 시장체제는 복잡한 사회적 협력의 연쇄과정에 다름 아니며 실제 경쟁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을 경쟁으로 동일시하는 견해가 이데올로기적인 이유이다. 반면, 불타는 적대감으로 시장의 장점, 즉 사회적 협력과 평화유지능력을 보지 못하는 시장체제 비판 역시 이데올로기적이다. 린드블롬이 이념적 논쟁을 벗어나 냉정하게 “시장체제라고 불리는 사회조직의 전체적인 구조”를 이해시키고자 하는 이유이다.

찰스 린드블롬 지음/한상석 옮김/후마니타스/1만5000원
주로 “전통적 관습과 정치적 권위”에 의존했던 사회적 조정원리가 시장체제로 대체된 것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부터다. 시장체제의 작동에 필요한 핵심요소는 근대사회의 주요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유권, 재산권, 응분보상원칙, 화폐, 판매를 위한 생산, 중개인, 기업가와 법인기업 그리고 국가 등과 관련된 문제들이 그것인데, 이 책 1부의 주요 내용들이다.

2부에서는 시장체제의 핵심쟁점들을 다룬다. 작동원리로서 시장에 기여한 만큼 얻어간다는 ‘응분보상원칙’의 의미, 효율성 및 비효율성의 문제들,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의 문제 등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을 제공한다. 정치학과 경제학을 함께 전공한 저자의 박식함과 균형감이 돋보이는 이 책의 정수 부분을 이룬다.

현재 구조적 위기와 관련, 당장 관심을 갖게 하는 마지막 부분 3부의 ‘대안들’은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전체 19개 장에서 2개의 장에 그쳐 양적으로도 작은 비중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제시된 대안이 철저하게 시장체제의 기능강화에서 찾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를 사회적 조정체계의 위기로 본다면 함의는 깊어진다. 린드블롬에게 민주주의는 “살아 있고 상처받고 열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권리와 권력”인데 사회적 조정체계의 위기는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이고 나아가 결국 사회의 위기에 다름 아니다. 결론 부분이 “사회를 생각하고 경제를 잊어라!”로 매듭지어지는 이유이다.

이덕재 고려대 경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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