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도 부드럽고 재미있게 문화적으로
우리가 세상을 한번 바꿔 볼까. 잘못된 줄 번연히 알면서도 될 대로 되라고 방관하거나 누군가에게 미루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트래피즈 컬렉티브 엮음/황성원 옮김/이후/2만원 |
‘혁명을 표절하라’는 이 시대 누구나 불편부당하다고 느끼지만 감수해야 했던 현안을 소수의 힘으로 바꿔 나갔던 노하우를 담고 있다. 세상을 바꾸고 있는 18가지 즐거운 상상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엮은이는 ‘트래피즈 컬렉티브’라는 이름의 3인그룹. 사회인류학을 전공하고 망명자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던 앨리스 커틀러,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깊이 깨달은 킴 브라이언, 국제정치학을 강의하면서 멕시코 자율보건소 ‘사파티스타’와 연대활동을 한 폴 채터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청년은 세상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사는 구경꾼이 되고 싶지 않았다. 힘은 없지만 어떻게든 잘못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이 세상이 뭔가 잘못돼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왜 그런지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미 당신은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사람들을 불러모아 캠페인을 벌였고, 네트워크로 소통했다. 또 워크숍도 진행했다. 책은 그 성과물을 담은 것이다.
◇자기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한 방법으로 현재와 미래를 그림으로 그려 볼 수 있다. 생활공간을 바꾸기 전(사진 왼쪽)과 바꾼 후(오른쪽)의 그림을 놓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면 이상적인 대답들이 모아진다. |
책에 담긴 이야기는 뜬구름 잡는 이론이 아니다. 3인그룹이 직접 해 보았거나 네트워크 단체에서 실제로 구현해 보았던 내용이다. 나라마다 적용하기 힘든 내용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이들이 정부를 전복하자거나 정치적 권력을 잡자고 하는 발상은 전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집회나 시위를 할 때도 현수막이나 돌멩이 대신 꽃이나 꽃가루를 활용하자는 젊은이들이다. 책은 아나키스트와 자율주의 사상을 기본 원칙으로 삼았을 뿐이다.
◇소수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커틀러, 브라이언, 채터톤(왼쪽부터). |
높아진 의료 문턱, 유해 식?의약품, 과다한 의료비용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3인그룹은 엄청나게 향상된 현대의 보건 수준에는 동의하면서 ‘기업의 영향을 받는 중앙화된 의료진 때문에 우리 스스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위축되진 않았는지’ 면밀히 살핀다. 그 결과 민간 치료요법, 자율적인 보건기구 등 방안 마련에 돌입한다. 아르헨티나 ‘실업자운동(MTD)’의 자율보건체계와 인도 ‘삼바브나 진료소’ 운영시스템은 눈여겨 볼 만하다.
◇카니발을 시위에 접목시켜 즐거운 시위문화를 이끌고 있는 ‘분홍색과 은색’ 집단. |
지금까지 세상은 거대 담론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다. 개인보다는 전체를, 나보다는 집단을, 국민보다는 국가가 잘 돼야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몫이 돌아올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3인그룹은 생각을 바꾸자고 권한다. 국가권력의 실수나 폭력적 성향은 지겹도록 보아왔으니, 수직구조가 아니라 수평구조에서 각자의 저항, 각자의 행동, 각자의 캠페인으로 일상을 새롭게 조직하자는 것이다. 이들의 제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문득 따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미래는 소수의 자발적 행동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성싶다.
정성수 선임기자 hul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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