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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19> 정조어찰 공개 주도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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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3-06 16:53:05 수정 : 2009-03-06 16: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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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독살설에만 관심갖는 것에 부담
대화하는 소통의 리더십 평가해야
돈·명예보다 하고싶은 것을 하는게 프로페셔널
바로 그런 비주류들이 조선의 역사를 만들어”
◇안대회 교수는 “옛 글이라고 해서 성리학적 이념만을 논하고 있지는 않는다”며 “정조의 어찰에서 보듯 솔직한 글이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을 더 많이 담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덕 기자
◇박종현 기자
정조의 어찰집(御札帖·임금의 편지 모음) 공개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인터뷰 내내 조심스러워했다. 안 교수는 지난 9일 정조(재위 1776∼1800)가 정적으로 알려진 노론 벽파의 심환지(1730∼1802)에게 보낸 편지들 중 299통을 공개했다.

정조 어찰 공개 후 보름 가까이 흐른 뒤의 만남이었지만, 그는 다른 연구자에게 방해가 된다며 말을 아꼈다. 새로운 연구자료를 공개한다는 데 애초 취지를 뒀으나, 언론을 비롯한 사회 일각에서 정조의 독살설에 유독 관심을 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과 학계의 관심은 여전한 듯했다. 책으로 가득 찬 연구실에서 거의 십 분마다 전화가 울렸다. 일간지에 이어 방송과 주간지들이 안 교수의 의견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건 것이다. 이렇게 전화가 걸려오면 제아무리 집중력이 남다른 학자도 제대로 연구하지 못할 성싶다. 연구 재미에 빠져 있는 학자들이 휴대전화 번호 공개를 꺼리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안 교수도 그런 부류의 학자로 보인다. 그는 각종 인터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 홍보실의 생각은 이와 달랐다. 안 교수는 이 시리즈에서 만난 최초의 성균관대 현직 교수이다. 이 시리즈를 읽고 있다는 성대의 홍보전문위원과 홍보과장이 이메일을 보낸 것은 지난 1월이었다. 그들이 “시리즈의 기획 취지에 부합하는 성대의 교수들이 많은데 추천해도 좋겠느냐”며 추천한 이들 중 한 명이 안 교수다.

# “정조는 소통의 리더십 보여주었다”

안 교수는 되도록 ‘정조에 관한 질문’을 피하고 싶다고 했으나, 아무래도 관심은 정조 어찰에 먼저 쏠린다. 정조의 편지 공개는 많은 연구자의 관심과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안 교수는 그 고마움을 애초의 소장자에게 돌렸다.

“정조 어찰을 깊숙하게 소장하고 있던 분이 학술적 연구를 위해서 공개한 것을 높이 평가해야 해요. 저도 2006년 처음으로 자료를 접하고 흥분했던 게 기억나는데, 앞으로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연구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공개된 자료를 보고 흥분하고 있는 일부의 시선처럼 그도 그때는 진한 감동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 흥분을 삭여야 했다. 탈초(脫草·초서로 된 글을 정자체로 풀어쓰기)와 번역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어려웠던 과정을 비교적 쉽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동료 연구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번역 후 초고를 완성해 공동연구원 다섯 명이 자료를 공개하면서 논문을 발표했지요. 그간 많은 일을 뒤로 미루고, 매달린 것이라 감회가 새로웠지요. 정조 어찰 공개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접하면서 사료 발굴의 중요성을 다시 실감한 것은 또다른 성과입니다.”

정조 어찰의 의미는 비교적 명확하게 설명될 수 있다. 정조와 벽파 영수인 심환지 사이에 비밀스런 대화가 진행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료를 통해 역사를 설명하는 길은 다양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그래서 신중한 접근을 주문한다.

“‘정조의 독살설’에 대해서는 사실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공개 어찰이 독살설의 힘을 빼거나 뒷받침하는 절대적인 근거가 될 수는 없어요. 어찰 공개가 ‘독살설’ 논란으로 불거지는 게 이상할 뿐이지요. 오히려 기본으로 돌아가 다시 자료를 충실하게 다지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정조가 정적과도 적극적으로 소통을 시도했다는 점도 확실히 드러났다. 안 교수는 “자신감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꾸준히 신하와 접촉하며 의지를 드러낸 것은 정조의 강점이다”며 “독살 여부와는 별개로 정조가 소통의 리더십을 펼친 것은 평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통 부재를 걱정하는 이즈음의 상황에서 안 교수는 정조를 ‘격정적인 로맨트스형 정치가’로 평가했다. 정조의 이미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통 리더십과 겹쳐진다는 것에 안 교수는 동의했다.

# 훌륭한 문학작품은 ‘불온의 정신’에서 나온다

공개 어찰에서 정조는 ‘뒤죽박죽’이나 ‘호로자식’ 등 속어나 속담을 많이 쓰고 있다. 안 교수는 “정조는 속어나 속담 등을 썼지만 정작 자신은 소품(小品)문학의 스타일을 공격하기도 했다”며 “3월 말이나 4월 초쯤 어찰 해제집이 간행되면 어찰을 둘러싸고 학계에서 다양한 논의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굳이 이번 어찰 공개가 아니더라도 안 교수는 조선 후기의 모습을 되살려 내고 있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와 어깨를 함께하는 이가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정도다. 특히 한문학과 국문학을 함께 공부한 안 교수는 맛깔스런 글쓰기로 17∼18세기의 조선사를 생생하게 복원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 후기의 모습 중에서도 ‘비주류의 삶’에 관심이 있다. 그는 “문화를 주도하는 쪽은 힘을 갖고 있는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며 “비주류도 그 시대의 삶과 문화를 풍요롭게 한 당당한 사람들이다”고 평가한다.

지난해 하반기에 출간돼 쇄를 거듭하고 있는 ‘고전 산문 산책’(휴머니스트)만 하더라도 오랜 세월 낮게 평가된 조선 후기의 산문을 새롭게 평가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10년간 연구한 짧은 글인 ‘소품문’을 해석하며 18세기 조선을 ‘천재의 시기’로 명명한다. 그보다 앞서 간행된 ‘조선의 프로페셔널’(휴머니스트)에서도 조선의 비주류에 관심을 펼쳐 보였다. 그가 설명하는 프로페셔널의 삶은 이렇다.

“돈과 명예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요. 그리고 그것에 미치면 최고입니다. 남들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자존심으로 버티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요. 결국 역사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흘러가는 겁니다.”

# 다른 전공에 귀 기울이다

안 교수는 국어국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성균관대에서 2001년까지 연구원 생활을 했다. 이후 한문교육(영남대)에서 국어국문학(명지대)을 거쳐 한문학(성균관대)으로 소속 학과를 바꿔 가며 제자들을 만나고 있다. 소속된 학과들은 비슷한 듯하지만 약간씩 차이가 난다. 그가 짧은 시간에 대학 소속을 바꾸는 것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다른 학문에 대한 관심과 수용 태도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인문학 강좌에 적극 참석하는 것에도 잘 나타난다.

“국문학이 한문학에 비해서 좀 더 자유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하지요. 하지만 한문학과 국문학을 공부하면서 인접 학문을 함께 공부하는 것의 장점을 알게 됐습니다. 사유의 변화는 전공하지 않는 학문의 자극에서 더 강할 수 있어요.”

수동성이 아닌 능동성만 담보된다면 인접 학문 혹은 전혀 다른 학문과의 접선의 연구자의 발전을 위한 최상의 ‘영양제’라는 설명이다. 학자가 그렇다면 일반인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 ‘비타민’ 정도의 역할은 하지 않을까.

bali@segye.com

■안대회 교수는…

1961년 충남 청양 출생.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영남대 한문교육과 교수와 명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거쳤다. 조선시대 후기 문인들의 글을 현대어로 소개하는 고전문학계의 대표적인 학자다. 탄탄한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실증적인 해석을 하는 학자로 유명하다. 한문학과 국문학을 동시에 공부해 수백 년을 넘나드는 사유의 흔적을 풀어내고 있다.

▲저서

‘고전산문산책’, ‘조선의 프로페셔널’,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한시사 연구’, ‘조선후기 시화사’ 등.

▲역서

‘북학의’, ‘임원경제지’, ‘연경, 담배의 모든 것’, ‘산수간에 집을 짓고’, ‘한서열전’, ‘궁핍한 날의 벗’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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