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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덩이의 목숨까지 앗아간 잔혹성의 뿌리는

입력 : 2008-11-07 21:03:15 수정 : 2008-11-07 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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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쇼트 지음/이혜선 옮김/실천문학사/2만3900원
폴 포트 평전- 대참사의 해부/필립 쇼트 지음/이혜선 옮김/실천문학사/2만3900원

“어떻게 그런 만행이 빚어졌을까?”

TV 다큐멘터리나 책에서 캄보디아 전역을 ‘킬링필드’로 만들어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정권이란 오명을 안고 있는 크메르루즈와 그 지도자 폴 포트를 접할 때마다 갖게 되는 생각이다. 1975년 4월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함에 따라 약화한 캄보디아의 친미 론놀 정권을 몰아낸 폴 포트는 ‘농민천국’을 건설한다며 1979년 1월 베트남군이 프놈펜을 함락할 때까지 4년간 자국민을 대상으로 대량학살을 자행했다.

폴 포트가 정권을 잡을 당시만 해도 론놀 정권의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국민은 환영했다. 그러나 폴 포트는 이상적인 ‘농민천국’을 구현한다며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화폐와 사유재산, 종교를 폐지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론놀 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지식인, 정치인, 군인은 물론 국민을 개조한다는 명분 아래 노동자, 농민, 부녀자, 어린이까지 무려 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0여만명을 학살했다.

◇ 비밀감옥에 수용된 한 여성이 처형직전 아기를 안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폴 포트 정권은 보복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어린 아이까지 살해했다.
이후 크메르루즈 정권은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캄보디아 공산동맹군에 의해 전복됐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정치적 야욕으로 4년도 안 되는 짧은 집권기간 자국민을 이토록 많이 희생시킨 것은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영국의 타임스, 이코노미스트의 해외통신원 출신으로 국제적인 캄보디아 전문가인 필립 쇼트의 ‘폴 포트 평전’은 프랑스 유학파로 유머러스하고 지적이며 이상향을 꿈꾸던 지도자 폴 포트가 어떻게 인류 최악의 참사를 일으켰는지에 대해 추적하고 있다.

폴 포트 만행의 원인에 대한 답변을 찾으려고 캄보디아 전역을 누비는가 하면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전 크메르루즈 지도자들을 만나 당시 얘기를 청취했다. 베이징과 모스크바, 하노이, 파리 등 세계 여러 지역의 기밀자료도 꼼꼼히 조사했으며, 태국과 캄보디아 접경지역에 있는 크메르루즈의 본거지에서 여러 달을 보내면서 키우 삼판, 이엥 사리를 비롯해 크메르루즈 핵심인물들의 증언도 청취했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총 500시간이 넘었고, 어떤 경우에는 한 사람과 50∼60시간을 면접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사상 처음으로 자신들의 신념과 목표를 말하는 크메르루즈 핵심인물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었다. 그중에는 1950년 파리 유학 시절에 폴 포트를 처음으로 정치세계로 이끈 켕 반삭의 목소리도 있어 당시 정황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1997년 7월 폴 포트는 안롱벵 근처에서 열린 집회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그로부터 9개월 뒤 잠을 자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저자는 폴 포트가 집권한 지 2년이 지난 1977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가까이에서 보았다. 카리스마를 지녔으면서도 초연한 모습에 저자는 무척 마음이 끌렸으며, 그가 봉건적인 민족국가의 지도자라기보다는 승려처럼 보였다고 말한다. 그런 인상의 소유자인 그가 왜 대참사의 주역이란 오명을 남긴 채 4년 만에 몰락하게 됐을까.

저자에 따르면 혁명을 빨리 완수하겠다는 조급증, 적에 대한 무차별적인 가혹성이 원인이었다. 폴 포트의 이 같은 강경노선이 스탈린의 병균에 감염됐기 때문으로, 마치 스탈린이 수차례에 걸친 숙청작업을 통해 그의 적을 솎아내 권력기반을 다진 것처럼 폴 포트도 그 같은 과정을 답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처럼 장기 독재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숙청이라는 무리수를 두었고, 이 과정에서 논리적인 일관성도 보여주지 못해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킬링필드 대참사의 책임은 폴 포트만이 져야 할까.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베트남이 없었다면, 미국이 베트남에서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폴 포트도 킬링필드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책에서 모든 독재정권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기 과신이라는 잘못을 저지른다고 강조한다. 크메르루주가 평생을 일군 이상향이 몰락한 것은 너무나 빨리 이룬 1975년의 승리 때문이다. “기차가 너무 빨리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기차의 방향을 바꿀 수 없었다”고 훗날 크메르루주 인사는 회고한다.

인간의 자비심과 동정, 최소한의 선의와 품의를 저버린 크메르루즈의 참사는 나치시대의 독일인,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 등 역사 속의 비슷한 다른 모든 지도자들이 저지른 참사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옳다고 하는 것을 무시할 때 악은 자행될 수 있다는 교훈을 들려주고 있다.

캄보디아의 참사를 30여년 전 어느 먼 작은 나라에서 벌어진 특수한 것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참사에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한결같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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