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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볼리비아 포토시

입력 : 2008-11-06 18:30:40 수정 : 2008-11-06 18: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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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홀리는 은빛 광산
◇산기슭에 있는 세로리코 광산 회사들의 사무실.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가 이후 미국과 다른 국가 소유였던 이곳 광산에는 현재 30여개의 회사가 채굴권을 갖고 있다.
볼리비아 포토시에 도착하자 거대한 산 하나가 나타났다. 이 산은 마을 어디에서나 보일 만큼 컸다. 나무 하나 없는 황량한 붉은빛의 토양은 조용하지만 뭔가 큰 비밀을 간직한 듯 커다란 힘을 내뿜고 있었다. 

골목마다 특이하게 작업복장과 헬멧이 씌워진 인형이 있다. 여행사에는 ‘Tour to Cooperative Mines’(광산 협력 투어), ‘ You will never forget’(결코 잊지 못합니다)라는 간판이 있어 필자의 궁금증은 증폭됐다. 첫 번째로 보인 여행사로 들어갔더니 달랑 하나뿐인 손님을 반갑게 맞는다.

윌리는 꽤 영어를 잘했다. 마을 어디에서나 보이는 산은 은광이라며 저 산 때문에 마을이 흥했고, 또 지금처럼 몰락했단다. 그 이면이 너무 궁금해 개인관광을 하기로 했다.

다음날 광산으로 출발했다. 먼저 광산 근처의 시장으로 가는데 이곳에서는 코카 잎과 담배, 술 등을 판다. 광부들이 갱으로 들어가기 전 들르는 곳이란다. 이들은 대부분 안전장비나 마스크 없이 광산으로 들어가는데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광산이란다. 대신 코카 잎을 입 안 가득 씹으면 폐로 들어간 미세먼지나 갱 안의 나쁜 공기 영향에서 벗어난다고 믿고 있다.

한번 들어가면 8∼24시간 동안 나오지 않고 일하기 때문에, 들어갈 때 화장실도 식사도 안에서 해결한다고 한다. 식사라야 감자와 바나나를 말려 섞은 것을 씹고, 97%의 순수 알코올과 담배 그리고 코카 잎으로 연명한단다.

세상에나!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들어가 장시간 동안 일하면서 몸에 해로운 것만 먹다니 믿을 수가 없다. 윌리는 힘들게 일하는 광부에게 선물을 주면 좋아한다며 필자에게 코카 잎, 담배, 알코올, 그리고 다이너마이트를 권한다. 다.이.너.마.이.트? 위험한 다이너마이트를 이런 시장에서 팔다니…! 광부들이 개인 돈으로 사서 갱을 뚫는다고 한다. 아무리 좋아해도 몸을 해치는 것들을 선물하라니 도저히 못하겠다. 보라. “여기, 당신을 위해 순도 97% 알코올과 다이너마이트를 선물할게요.” 웃기지 않나? 폐에 도움이 된다는 코카 잎 한 봉지만 겨우 샀다.

우리 역시 광산에 마스크조차 쓰지 않고 들어갔다. 뜨겁고 탁한 공기, 과연 이 중에 산소는 얼마나 될까? 윌리는 괴물처럼 생긴 바위에 알코올을 뿌리고 담배에 불을 붙여 구멍이 있는 곳에 꽂았다. 광부들은 이런 의식을 하며 오늘도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도록 빈단다. 우리도 별 탈이 없기를….

지하 깊숙이 걸어 내려가는 동안 물었다. 공기가 나빠 숨쉬기가 정말 힘들다.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기는 한가요?” 윌리는 볼 한가득 코카 잎을 씹으며 말했다.
◇마을 어디서나 보이는 거대한 세로리코 광산을 뒤로 한 젊은 부부(왼쪽). 광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좁고 위험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볼리비아에서는 한 달 평균 500볼리비아노(1볼리비아노=약 182원) 정도를 버는데 광부들은 600∼800볼리비아노를 버니 많이 버는 편에 속하죠. 1980년대에는 그래도 하루 8시간 노동이 지켜졌지만, 정권이 바뀐 지금에는 생산량을 채우기 위해 더 일하기도 해요. 예전에는 24시간도 일했었는걸요.”

“그럼, 이런 환경에서 일해도 건강에는 문제가 없는 건가요?”

“문제가 없긴요. 광부들의 평균 사망 나이가 35살이에요. 보통 10대 때 돈을 벌기 위해 이 광산에 들어오는데, 이 아이들은 경제력이 있어 보통 14∼18살이면 결혼을 하죠. 저기 봐요, 저 사람은 12살부터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해 지금은 35살이에요. 꽤 오래 일한 편에 속하죠.”

그가 가리킨 곳의 남자의 얼굴은 마치 50대처럼 보인다. 지금도 15∼18살의 아이들이 일하고 있단다. 학교에 다녀야 하는 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갱에서 일한다니 무섭기만 하다. 2시간 정도 갱을 돌며 밖으로 나오니 눈이 부셨다. 뜨거운 공기가 신선하다고 느낀다. 얼굴은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됐고, 코 안은 벌써 시커멓게 먼지가 앉았다. 겨우 2시간에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조차 힘든데 몇 십 년 동안 일한 사람들이 멀쩡하다는 건 기적일 테다.

마침 바깥에는 광부들이 트럭으로 광물을 옮기고 있다. 트럭 한 대는 1t, 하루에 8t을 생산한다. 주석이나 텅스텐 같은 다른 광물도 있지만 이 중 가장 비싼 은은 1t 트럭에서 겨우 30∼40g이 생산된단다. 달걀 1개의 무게에도 미치지 못한다.

부(富)는 이상한 힘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욕심은 자신의 몸이 으스러질 때까지 부를 축적하게 만든다.

“조금 더 많이, 조금만 더. 그러면 난 부자가 될 수 있어.”

쉬지도, 제대로 먹지도, 빛을 보지 않고 일하며 일해 번 돈을 지척에 쌓아두고 폐기능이 중지돼 죽는다면 그 많은 돈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포토시의 세로리코 광산은 아름답게 빛나는 은을 미끼로 열악한 환경에서 사람들을 일하게 한다. 아니, 잡아먹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는 은광산에 동원된 노예가 하루에 50명씩 죽어나가기도 했다니 도대체 이 산은 얼마나 사람을 잡아먹어야 만족할까.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밤낮없이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나요?” “젊을 때 열심히 벌어 나이 든 뒤에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죠.”

포토시를 다녀온 후론 이런 대답을 들으면 종종 걱정이 된다. 그렇게 열심히 번 돈이 무리해서 일해 얻은 병으로 아무런 소용이 없어지면 어쩌지 싶어 말이다.

여행작가



>> 포토시;(Potosi)

포토시는 해발 4090m에 위치한 볼리비아 포토시 주의 주도로 ‘세로 리코’(Cerro Rico, 부·富의 언덕)로 불린 곳이다. 1544년 은광산으로 발견돼 한때 20만명 이상이 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이곳은 스페인 카를로스 5세의 소유였다. 1672년부터 이곳 은광에서 생산된 은이 스페인으로 대규모로 이동했다. 산의 높이는 4824m였으나 무분별한 채굴 덕분에 현재의 높이로 내려앉았다. 광부들의 죽음이 잇달아 생기는 가운데 한때 교회의 수도 86개에 달했다고 한다. 1825년 독립과 19세기 중반 대량생산에 따른 은의 가치하락으로 점점 쇠퇴해 사람 수는 10만명 미만으로 감소했다. 포토시는 한때 부귀영화를 누렸던 역사와 식민지시대의 건물로 1987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 여행정보

한국에서 볼리비아 수도인 라파스(La Paz)까지 직항은 없고 3회 경유하는 아메리칸 항공이 있다. 비행시간만 24시간 정도 걸린다. 라파스에서 포토시까지 버스로 15시간이 걸린다. 1볼리비아노는 약 182원이며 저렴한 숙소는 화장실 딸린 싱글룸이 60∼70볼리비아노, 현지식당은 5∼10볼리비아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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