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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11) 대표적 건축 글쟁이 임석재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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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2-01 15:35:43 수정 : 2010-02-01 15: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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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인간존엄성과 예술의 순수성이 함께 숨 쉬어야”
◇임석재 교수는 “건축은 인간 생활의 총체적 집합체인 까닭에 사회의 내적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며 “한국의 전통을 자연스럽게 재해석하는 게 건축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종덕 기자
“콘크리트와 철골로 지어진 건물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의 생활과 정신은 점점 서양에 종속돼 갑니다.”

아파트 등 부동산 값 폭락과 금융·주식시장 붕괴 등 대형 악재가 한국경제에 주름을 잔뜩 안긴 10월 말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를 만났다.

“자본주의 발생지인 유럽에서는 성찰적 반성으로 물신숭배의 폐해를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중산층 대부분은 집 한 채로 만족하며 도시의 공공시설이 제공하는 공원과 미술관을 즐기며 살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집을 투자 개념으로 바라보고, 외부 경제의 영향이 미칠 때마다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어요. 정치인이나 국민 모두 반성해야 할 대목입니다.”

# 건축은 예술, 인문학, 공학의 융합 분야

건축학과 교수인 그의 발언은 눈길을 끈다. 그의 다양한 관심은 그가 전공한 ‘건축’이라는 학문이 갖는 성격 때문인지도 모른다. 건축은 예술, 인문학, 공학이 융합된 학문이다. 건물의 종류와 디자인을 보면 그 사회의 모습을 짐작하고 예상할 수 있다. 건축은 그 사회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건축은 역사학과 철학 등 순수학문, 미술과 조각 같은 예술성, 자동차 같은 공학 산업 측면을 아우릅니다. 이 세 분야가 조화를 이뤄야 제대로 된 건축물이 나옵니다. 또한 건축은 의식주의 마무리이면서 문명 활동을 담아내는 ‘거주’와 ‘건물’의 의미가 더해집니다.”

임 교수는 경기 광주의 한 아파트에 1만점이 넘는 전공 관련 서적과 건축 관련 필름을 비축하고 있다. 아파트를 거주용이 아닌 자료 보관과 집필 용도로만 이용하고 있다. 40대이지만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는 전공 서적만 이미 34권을 썼다. 첫 책 ‘추상과 감흥’(문예마당)이 1995년에 나왔으니, 1년 평균 3권을 출간한 셈이다.

그는 어려운 학문이나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보는 ‘건축’ 관련 내용을 쉽게 풀어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게 건축 관련 책들이지만, 그의 저서들은 책마다 독자의 사랑을 받는다.

최근 내놓은 ‘교양으로 읽는 건축’(인물과사상사)을 비롯해 ‘서울, 골목길 풍경’(북하우스), ‘건축과 미술이 만나다’(휴머니스트)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임 교수는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그는 “예전처럼 전공서를 계속 저술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토로한다. 한국의 건축물에서 작품성이나 인간을 위한 섬세한 정성을 찾아보기 힘들 듯이 출판사들마저 올바른 건축도서 간행을 망설이는 것 같아서다.

“공부하고 고민한 내용을 원고로 만들어 넘길 때마다 출판사의 반응에 좌절하곤 합니다. 비건축학도로 대학을 졸업한 30대 초반의 출판사 편집자가 원고를 읽다가 두세 차례 막히면 책 내기를 주저합니다. 어렵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말랑말랑한 책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책은 내놓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 건축은 한국적 창의성이 필요한 분야

우리 문화 수준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한번 드러내자 그의 말문이 멈추지 않는다. ‘존경받는 문화’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역할마저 방기한 문화계 모습을 바라보는 답답한 속내이기도 할 것이다.

“건물이 주는 삶의 다양성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건물은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기능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요식업이나 재산 증식 수단으로만 인식되는 상황입니다. 삶의 공간으로 건물을 바라보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중요해요.”

외국계 대형 설계사무소의 한국 진출도 ‘자존심’을 잃어버리고 건축을 부동산과 연계하는 물질적인 사고 팽배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 점에서 외환위기 이후 무분별한 외국자본 유치와 명성에만 기대는 외국 설계사무소 선호 현상에 대해서도 그는 일침을 날린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이익만을 바라본 외국자본이 무차별 이탈하면서 악화한 측면이 있어요. 건축 부문도 예외가 아니어서, 독창성을 지키려는 건축학도마저 외국계 대형 사무실의 하청을 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의 시각을 담는 건축 설계도가 자리 잡을 공간이 사라지고 말았어요.”

외국계 대형 설계사무실의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관행 탓에 창의성을 발휘하는 이들의 작품마저 사장되는 현실에 대한 개탄이다.

“공공기관이나 기업 모두 직원들 월급에는 눈을 부라리며 따져서 주지만 ‘세계적 수준의 건축가’에게는 너무 무기력하게 원하는 대로 다 주고 있습니다.”

그는 “파주출판단지를 둘러보면 90% 이상이 외국 유명잡지에 실린 건축물을 모방한 것”이라며 “건축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과 이를 높게 평가하는 공공기관, 이를 추종하는 대중 등 사회 전체가 반성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비전문 분야에 대해서까지 대중의 잘못을 묻는 것은 과할 수 있다. 그러나 통속적인 분위기에 취하지 않고, 자신만의 시각을 온전히 갖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건축과 건물에 투영된 ‘물질성’도 많이 사그라질 것이다.

# “40대 이후의 내공을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을 넓혀야”

건축은 건물을 매개로 하므로 궁극적으로 자신만의 생각과 기준, 언어로 건물을 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기초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는 “자주 돌아다니고, 많이 느끼면서 스스로 훈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제안은 일견 단순하다.

“길을 지나치거나 외출할 때 건물을 정성 가득한 마음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다가 뭔가가 떠오르면 기록을 남기고, 나중에 또 그곳을 지날 때 생각난 것을 떠올려 보면 자신만의 시각을 가질 수 있어요. 건축이나 건물 이해는 결코 어려운 게 아니므로 관심의 지속 여부가 중요합니다.”

책을 통해서 건축과 건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게 우선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관심 가는 건물이 있으면 사진을 찍고, 스케치 묘사를 하라는 설명이다. 그는 일반인의 건축 이해도를 높이려는 대중강연을 자주 한다. “건축처럼 현실성이 강한 분야에 대한 연구성과는 사회에 꼭 되돌려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정의하는 건축은 이렇다.

“사람의 다양한 행태와 활동을 담아 섬세하게 하여주는 정성입니다. 건축과 설계는 서비스이지요. 맞춤양복 집에서 손님 개개인의 기호를 반영하려고 최선을 다하듯, 건축과 설계도 이러한 모습으로 변해야 합니다.”

정책 당국자와 업계에 요구하는 목소리도 단호하다.

“서울의 종합발전계획은 지금까지처럼 ‘헌 집 주고 새 집 짓는’ 방향으로만 전개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예술의 순수성이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어야지요. 그건 모두의 의무이면서 책임입니다.”

이런 의무를 제대로 지켜낼 때 모두의 권리로 자리매김 될 것이다. 이 차원에서 그는 전망과 제안을 동시에 내놓는다.

“건축에 섬세함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여성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질 것입니다. 아직 학업 중인 건축학도들은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할 때를 대비해서라도 미리 준비해 둬야 합니다. 기술이나 잔재주를 익히기보다 40대 이후에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종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인문학적 소양을 넓히면서 높여야겠지요.”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임석재 교수는…

1961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로 지금까지 총 34권을 저술하며 왕성하게 집필해 왔다. 서울대 건축학과와 대학원 졸업,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석사학위,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양건축사 시리즈 5권 집필을 완료하는 등 동서양의 건축 역사와 이론, 건축비평과 문명비평에 관한 독창적인 책을 내놓고 있다. 건축은 생활환경을 돌보는 섬세한 정성으로, 올바른 건축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소양 섭취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여긴다.

▷저서◁

‘건축, 우리의 자화상’, ‘건축과 미술이 만나다’, ‘추상과 감흥’, ‘미니멀리즘과 상대주의 공간’, ‘우리 옛 건축과 서양건축의 만남’, ‘서양건축사’(전5권), ‘한국 전통건축과 동양사상’, ‘한국의 옛집’, ‘서울, 골목길 풍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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