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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시의 사기극에 말려들었다"

입력 : 2008-07-18 21:11:01 수정 : 2008-07-18 2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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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매클렐런 지음/김원옥 옮김/엘도라도/1만8000원
거짓말 정부/스콧 매클렐런 지음/김원옥 옮김/엘도라도/1만8000원

“나는 대변인으로서 백악관 브리핑실의 연단에서 부시 행정부를 변호하는 데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당시 진실이라고 생각하며 말했지만, 그 중에는 그릇된 것들도 상당수 있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이 책에서 나는 백악관 내부의 거품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던 몇 가지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무시무시한 얘기다.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은 ‘비밀을 까발리겠다’는 말과 같은 뜻이 아닌가. 더구나 스콧 매클렐런은 1999년 조지 W 부시가 텍사스주 주지사 시절 수석 공보비서관으로 발탁돼 여러 해 손발을 맞춰온 측근 중의 측근이다. 2003년부터 2006까지는 백악관 수석대변인을 지냈다. 그의 고백은 계속된다.

“그 거품 속에서 한때 생활했거나 일했던, 혹은 여전히 일하고 있는 친구들과 전 동료는 내 시각이 못마땅할 수도 있다. 확신하건대, 동료 대부분은 한때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정책 결정이 근본적으로 옳으며, 현재 미국인 대다수가 부시 행정부에 보이는 냉대가 부당하다고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백악관을 나와서 외부의 시각으로 그곳을 바라보면서 나는 동료들과 다른 확신을 갖게 되었다.”

백악관 고위관료가 명망있는 외교관의 아내가 CIA 비밀요원이라는 정보를 누설해 옷을 벗게 한 발레리 플레임 스캔들을 지켜보며 한때 신심을 다해 보좌하던 부시 대통령과 동지들에게 느낀 그의 실망감은 좌절을 넘어 분노로 치달았다.

“나는 그들의 사기극에 말려들었고 나 자신을 책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과 핵심 고문들의 행동은 훨씬 더 실망스러웠다. 백악관은 플레임 스캔들에 관해 모든 것을 공개하고 솔직히 털어놓기는커녕, 계속 진행 중인 수사를 침묵의 구실로 삼아 시간을 벌었고 때로는 심지어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쪽을 택했다. 2004년 11월의 재선 출마에 악영향을 끼칠지 모를 정치적 수모를 막는 것이 목표였다. 동기는 납득할 만했지만, 행위는 옳지 못했으며 궁극적으로 자멸에 이르는 길이었다.”

사실 그는 부시 대통령에 대한 경의, 충심, 애정, 연민 등 다양한 감정을 갖고 있다. 그동안 부시와 함께 한 기간만큼이나 파란만장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때로는 버릴 수 없는 진심도 안다. 부시의 눈물을 포함해 볼 건 다 보았다.

“부시는 부인에게 다가가 그녀를 따듯이 안아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정말 용감하신 분이란다.’ 짧은 방문을 끝낸 부시는 다시 병사에게 다가가 휠체어에 가볍게 손을 얹은 채 무릎을 굽혀 정수리에 살짝 키스한 뒤 이렇게 속삭였다.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그러고는 등을 돌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똑바로 정면을 응시하면서 오른손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눈에 어린 회의감을 보았고, 자신이 내린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대한 흔들림을 보았다.”

스콧 매클렐런이 작심하고 쓴 회고록 ‘거짓말 정부’(What Happened)는 부제 ‘전 백악관 대변인이 밝히는 부시의 기만과 진실’처럼 부시가 어떻게 자기기만에 빠져드는지, 왜 전쟁을 그만둘 수 없는지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한 부시의 3인방으로 불리는 칼 로브, 캐런 휴스, 앤디 카드가 백악관에서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그들의 인성은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 재선에 성공한 후 개각 과정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이었던 콜린 파월을 잡지 못한 점 등 부시가 저지른 실수도 언급한다.

매클렐런은 부시가 처음부터 그토록 완고하고 강경

했던 건 아니라고 말한다. 주지사 시절 부시는 저자가

바라던 이상적인 리더십을 보여줬다. 하지만 부시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난 이후부터 실망하기 시작했다.

공화·민주 양당 간의 소모전을 종식시키겠다는 부시의 맹세는 자취를 감추었고, 자신이 알게 모르게 전쟁 선동의 앞잡이가 되어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고위보좌관들의 사기극에 휘말려 신뢰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매클렐런은 대통령을 지키려는 측근들의 사명감과 부시가 꿈꿨던 보다 원대한 전쟁의 이유 등도 모두 헤아린다. 다만 방법적인 면에서는 분명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개각 과정도 바람직하지 못했다. 부시는 새로운 인재를 앉혀야 할 시점에 익숙한 것에만 집착한 면이 있었고, 충성심에 대한 보답 차원의 등용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 또 전쟁처럼 장기간의 숙고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너무 직관적으로 밀어붙인 측면이 있었다. 이런 모든 것들의 결과가 결국 정치적 분열과 국민의 냉대를 낳고 말았다.

책에는 이 밖에도 첫 조각 실패, 소고기 문제, 한반도대운하, 공기업 개혁 지지부진과 국민과의 소통 실패로 50% 가까운 득표율로 당선됐음에도 대통령 취임 100일도 안돼 지지율 20%대로 추락한 이명박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내용이 가득하다.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국제 정세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위정자와 국민 사이에 신뢰만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당장은 따귀를 맞더라도 진실한 게, 거짓으로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부시의 성공을 바라는 매클렐런의 메시지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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