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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73> 일본건축

입력 : 2013-05-10 02:28:03 수정 : 2013-05-10 02: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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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지향 문화 녹아 … 그림 같은 ‘2차원적 건축미’ 추구
길이 120m ‘삼십삼간당’ 절·정원
아름답지만 인공적… 감동 못 느껴
공간 흐름 중시 우리 건축과 차이
#너무나도 비슷한, 너무나도 다른, 한국과 일본


몇 년 전부터 지은 지 80년이 훨씬 넘은 일본식 집을 고치는 설계를 하고 있다. 부유한 일본인 상인이 지은 집으로, 집도 규모가 크고 볼 만하지만 전통 일본 조경 기법으로 가꾸어져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정원이 더 유명하다. 온갖 나무들이 햇빛이 들어설 틈 없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중간중간 다양한 돌과 조경시설이 갖춰진 정원은 아름답고 신기하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한편으론 어딘지 우리와 무척 다른 감수성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은 참 묘한 나라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비슷하면서 어쩌면 이렇게도 다를까. 마치 서로 깔고 앉아 있는 지각의 판이 다르듯이, 서로 다른 미적 기준과 목적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차이가 아주 미묘하게 어긋나 있어 어디에서 갈라져 나간 것인지 알기가 어렵다.

일본이나 우리나 알게 모르게 만나서 섞이다 보니, 가령 일본어를 멀리서 들으면 마치 우리말처럼 들릴 때가 있다. 오히려 뉴스에서 북한 사람 말투를 들을 때 더욱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1960년대의 우리 영화를 보면 말투가 투박한 것이 북한에서 지금 쓰는 말과 억양이 비슷해서 기분이 묘하다.

그러면서도 일본과 우리는 무척 다르다. 어느 일요일 오후에 도쿄의 번화가인 하라주쿠 오모테산도의 길 끝 약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았던 적이 있다. 그때는 아주 날이 좋은 가을의 일요일 오후였는데 거리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역까지 가기 위해 그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꽤 긴 길을 걸었는데도 오가는 사람과 한 번도 부딪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었다.

교토 삼십삼간당(三十三間堂). 정면이 33칸으로, 길이는 120미터가 넘는 무척 큰 절이다.
나로서는 참 특이한 경험이었다. 가령 비슷한 상황에서 서울의 명동 성당에서 내리막길을 걸어 롯데백화점 앞 명동 입구 쪽으로 걸어간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쿄에서 2차선 도로를 보수하는 공사현장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의 우리네 도로 공사 현장에서는 주변에 넓게 방책(바리케이드)을 쳐놓고 공사하는 사람은 여유 있고 널찍하게 공사를 한다. 지나다니는 보행자들은 몸을 오그리고 차와 인도 사이의 이상한 공간을 마음 졸이며 투덜거리며 걷는 게 일반적인 상황인데, 그곳의 방식은 사뭇 달랐다. 공사범위 주변을 최소한으로 확보하고, 공사하는 기술자들은 거의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엎드려서 아주 진지한 자세로 도로를 마치 손으로 꿰매는 듯 심혈을 기울이며 공사하고 있었다.

물론 시민의 편의보다 공사의 편의를 앞세우는 우리네 방식이 잘못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철저함 속에 들어 있는 묘한 강박 또한 느껴졌다.

오래전 신문에서 이어령 선생이 일본과 한국인의 국민성에 대해 쓴 칼럼을 본 적이 있다. 당시는 우리나라에 일본식 극기훈련이라는 것이 기업에 도입되어, 신입사원을 뽑으면 군대 유격훈련과 같이 혹독한 단련을 시키거나 혹은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큰 소리로 자기를 소개하거나 물건을 팔게 하며 담력을 키운다는 의도를 가진 이상한 ‘짓’을 강요하던 시기였다. 그는 긴장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고 그런 분위기에 맞게 사람이 적응되고 문화가 만들어진 일본 사회와, 그와는 정반대로 이완이 문화적인 코드이고 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된 동력인 우리 사회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그런 문화적인 배경과 민족성을 이루는 인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선진문화라며 일본의 문화를 이식하면 필연코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썼다.

이후 이전에 없던 ‘집단따돌림’이라든가 길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범죄 등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그 칼럼에서 이야기한 예언이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뉴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시각이미지를 반영한 이토 도요의 작품으로 시간에 따라 색이 변화하는 ‘바람의 탑’.
#축소지향의 일본인, 2차원으로 수렴되는 건축


이어령 선생이 예전에 쓴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을 30년 만에 다시 읽었다. 1980년대 초, 친척 집에 놀러갔다가 보게 되어 그 자리에서 바로 다 읽었던 무척 재미있는 책이었다. 그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일본의 독특한 문화와 독특한 정신 상태를 보며 혀를 찼었는데, 이제는 그게 어느새 우리의 일상 모습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놀라웠다. 다시 보니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다소 작위적인 논리의 전개가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재미있었고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그 책은 일본 문화의 본질적인 성격을 ‘축소지향’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글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인이 사랑하는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1886∼1912)의 유명한 시를 통해 일본인의 정신을 구성하는 열쇠를 찾는 대목은 아주 압권이다.

東海の小島の磯の白砂に /われ泣きぬれて/蟹とたはむる(동해의 작은 섬 갯벌 흰 모래밭에/ 내 눈물에 젖어 게와 노닐다).

“무한히 넓은 동해가 노(の)에 의해 작은 섬으로 축소되고 그 섬을 또 갯벌로, 갯벌은 또 백사장으로 차례차례 수축되어 마지막에는 점에 불과한 게의 잔등이로까지 응축되고 만다. 동해가 게 잔등이에서 끝난 것도 아니다. ‘내 눈물에 젖어’라고 했으므로 그 넓은 동해 바닷물은 결국 눈물 한 방울로 축소되어 버리고 만 셈이다.”(이어령, ‘축소지향의 일본인’ 53쪽)

한 문장 안에 한없이 반복되는 우리말로 ‘∼의’로 번역되는 ‘노(の)’의 연속은 마치 한없이 안으로 수렴되는 두 개의 거울로 만드는 기이한 도상과도 같다.

이레코 상자, 쥘부채, 일본 가면, 그리고 다다미로 수렴되는 일본의 공간 구조 등, 그는 일본에서 본 모든 것을 ‘축소지향’이라는 키워드로 아주 능란하게 풀어냈다. 우리는 읽는 동안 그의 말에 크게 설득되고, 그동안 보았던 모든 일본에 대한 의문이 그 단어로 풀어질 것 같다는 착각까지 잠시 하게 된다. 특히 모든 것이 2차원의 그림으로 수렴된다는 대목에서, 그런 그들의 미의식이 반영된 것이 일본의 정원이고 일본의 건축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주 크게 공감했다.

사실 내가 일본에 가서 느낀 감정이 그런 것이었다. 일본 교토에 갔다가 보았던 삼십삼간당(三十三間堂)이라는 절이 생각난다. 정면이 33칸으로, 길이는 120미터가 넘는 무척 큰 절이었다. 우리나라의 종묘보다 훨씬 긴 건물이었고 교토에서도 가장 오래된 건물로 교토의 자존심 중 하나였다.

긴 건물을 측면으로 들어가며 더 길게 느껴졌고, 무한의 경외심이 들기는 했다. 그러나 약간의 휘어짐도 없이 일직선으로 뻗은 공간과 칼로 반듯이 썰어놓은 듯한 처마와 용마루 등은 오래된 건물에서 뿜어 나오는 아우라를 느끼게 하기보다는 좀 인공적이었다. 게다가 가까이 가서 본 부분 부분의 디테일의 경직된 만남, 즉 조금의 오차도 없이 만나는 부재 간의 조합이 치밀하긴 하지만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 묘한 일이었다. 우리가 알기에 일본은 무척 디테일이 강한 나라인데, 그 디테일에는 감동이 없었다. 그들의 그림 속에서 끄집어낸 듯 아름답고 정교한 정원과, 모서리가 꼭 다물어지고 한 군데도 빈틈이 없어 보이는 그들의 공간에서는 무언가 부족함이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2차원적으로 환원하는, 다시 말해 ‘픽처레스크’함을 추구하는 그들의 미의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해 우리의 고건축은 허술하고 어눌한 듯하면서도 꽉 짜인 그런 맛이 있다. 우리의 전통건축이 추구하는 것은 2차원의 화면이 아니라 기의 흐름을 중시하는 3차원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로 인해 생겨나는 결과물은 일본의 건축과 무척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내·외부의 모든 활동이 들여다보이는 투명하고 유동적인 건축, ‘센다이 미디어 테크’.
#다섯 번째 프리츠커상 수상, 일본다운 건축에서 사회적인 건축으로


“이념의 세계를 감성으로, 이미지로, 예술로 대치한 것이 일본 문화라 할 수 있다. 일본이 근대화를 재빨리 이룩하고 서구 문명을 쉽게 수용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중국인이나 한국인과는 달리 자연에 대한 ‘이념’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같은 책, 215쪽)

일본은 건축 선진국이다. 일찌감치 서양의 근대를 받아들이고 자기 몸에 맞게 고치고 색을 섞어서 지금의 일본 현대건축을 만들었다. 건축의 노벨상(비유가 좀 어색하긴 하지만)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무려 다섯 팀(여섯 명)이다. 그만큼 건축계에서 위상이 높은 나라이다.

일본 현대 건축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성질도 역시 양면적이다. 단정하고 깔끔하면서 중간중간 극단적으로 비칠 수 있는 다분히 계산된 대담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자신들을 동양인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얼굴이 노란 서양인이라 생각하는 막연한 억측이 건축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나라의 위상에 비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바가 없는 것처럼 세계 건축계에서의 위상에 비해 그 철학이나 사회성 측면에서 별다른 영향을 미친 바가 없다. 말하자면 내부에서는 관대하고 밖으로 나오면 옹졸해지는 ‘축소지향’ 혹은 내부지향적인 기질이 현대까지도 이어진다는 비난이 있다.

그리고 올해 프리츠커상은 일본의 다섯 번째 수상자인 이토 도요(伊東豊雄)에게 돌아갔다. 그는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 자라 명문 히비야고등학교와 도쿄대를 나와, 1970년대 후반부터 착실하고 전형적인 엘리트의 삶을 살아온 건축가이다. 그의 얼굴을 보면 평범하면서도 반듯한 전형적인 모범생 엘리트의 느낌이 강하게 전해진다. 이에 비해 그의 작업은 그가 풍겨주는 인상을 깨는 경쾌함과 발랄함이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 중 하나인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에 지어진 ‘모두의 집(Home For All)’ 프로젝트 중 하나. 이토 도요가 젊은 건축가들과 계획한 2층 높이의 쉼터는 쓰나미에 휩쓸렸던 삼나무 19그루를 이용해 세운 것이다.
모든 것을 표상화하는, 심지어 개인의 상점까지 문장이 있는 일본 문화의 특성이 이토의 건축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그는 바람이나 나뭇잎, 나뭇가지, 심지어 눈의 결정 모양까지도 건축의 모티브로 가져다 쓴다. 그가 추구하는 건축의 개념은 뉴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기반을 둔 시각이미지와 일시성에서 출발한다. 가령 시간에 따라 색이 변화하는 ‘바람의 탑’, 내부의 모든 활동이 들여다보이는 ‘센다이 미디어 테크’ 등의 작업은 환경의 흐름을 감지하고 반응하며 그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건축, 따라서 내·외부의 경계가 모호하며, 투명하고 유동적인 건축을 실현하고자 한 작업이다.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기술의 구현에 집중했던 그의 건축에 변화를 준 계기가 된 것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은 지역에 들어가 젊은 건축가들과 함께 마을 공동체 재건을 도왔던 작업이다.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에 지어진 2층 높이의 쉼터는 쓰나미에 휩쓸렸던 삼나무 19그루를 이용해 세운 것이다. 그는 이를 포함한 ‘모두의 집(Home For All)’ 프로젝트 작업 과정을 2012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의 일본관에 전시해 금사자상을 받았고, 프리츠커상 심사에서도 ‘건축가의 사회적 책무’를 훌륭히 보여준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한다.

그는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의 옛 민가 같은 작은 집이 되더라는 깨달음과, 그간 지어온 도시 건축과 달리 더욱 자연을 향해 열린 건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이토 도요의 수상은 그가 평생 추구하고 이룬 건축적인 성과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그가 보여준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건축의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계기로 일본이, 일본 건축이 자신들의 위상에 걸맞은 공공성의 확보와 외연의 확장을 이루었으면 한다. 또한 모든 건축이 이제는 소아적인 형태의 유희와 관념의 유희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책무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대안을 제시하는 바른 건축으로 나가길 바란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작은 집, 큰 생각’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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