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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 배운 자 등 권력자 전문 배우에서 성전환자로 파격 변신한 배우 박용수. 김범준 기자 |
연기인생 35년 만에 성전환자로 파격 변신한 배우 박용수를 10일 남산예술센터에서 만났다.
“처음에는 고사했죠. 내가 봐도 망측할 것 같아서. 제가 우리나라 배우들 통틀어 얼굴 크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듭니다.”
대본을 쓴 이해성 작가는 처음부터 호리호리하고 예쁘장한 남자 배우를 찾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일부로 살을 빼지도, 간드러진 목소리를 꾸미지도 않았다. 눈썹을 붙이고 립스틱을 바르고, ‘이년들아∼’를 입에 달고 살지만 흥분하면 어느새 목소리가 굵어진다.
“배역을 소화하는 데 있어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다이어트 같은 인위적인 노력은 하지 않았어요. 작가가 대본에 쓴 대로 편안하게 따라갈 뿐입니다. 다만, 여성이 되려는 노력은 보여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당부였어요.”
딸이 태어나던 날 드레스를 입고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 나타난 말복은 20년 만에 만난 부인에게 “어머, 이게 몇 년 만이니? 잘 지냈니? 어쩜 너는, 옛날 그대로다 얘”라고 말한다. 애교 있는 말투는 보기와 달리 평소 장난기와 어리광 많은 그의 말투가 근간이 됐다고 한다.

“당시 최형인 교수님이 나를 앞에 세워놓고 한참 어린 학생들에게 ‘여러분은 호흡이 안 되는 잘못된 배우의 전형을 보면서 수업을 하니 얼마나 복 받은 겁니까?’ 그러시는 거예요.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하지만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았죠.”

“연기 훈련을 통해 호흡이 편해지면서 제 속에 오욕칠정이 다 있다는 걸 알았죠. 어리광, 장난기, 질투심. 그때부터 제 자신이 재밌어지더라고요.”
그의 깨달음은 예리한 연출가들도 읽었던 모양이다. 양정웅 연출은 그에게 ‘돈키호테’(2011년)의 애교 있는 충신 산초 역을 줬고, 임영웅 연출은 ‘고도를 기다리며’(2002년)에서 징징대는 캐릭터인 에스트라공 역을 맡겼다. 칭얼의 극치를 보여주며 ‘앙증맞다’는 소리를 물리도록 들었다고 그는 자평한다.
그는 지난해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아워 타운’ 등 5편의 연극을 했다. 젊어서도 이렇게 쉬지 않고 무대에 오른 적이 없었다. 다만, TV나 영화에서는 장난기 많은 친근한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장자연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노리개’(2월 개봉)에서도 그는 여자 연예인을 성노리개로 삼은 신문사 사장을 변호하는 검사장 출신 변호사로 나온다.
“얼마 전 게이 역할이 들어왔는데 안 한다고 했어요. 성전환자에 이어서 하는 것이 좀 그래서. 귀여운 남자 연기가 제일 하고 싶어요. 늘 힘 있고 자신만만한 역할만 했으니 이제는 고생도 하고, 힘들면 비겁해지기도 하고 마누라한테 칭얼대기도 하는 친근한 아버지, 삶의 애환이 있는 서민적인 역할요. 60대가 제 전성기가 될 것 같은데 그때쯤이면 할 수 있겠죠?”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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