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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67〉 경계

입력 : 2013-01-08 20:32:06 수정 : 2013-01-08 20: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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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경계'위에 자유와 평온을 담다 #경계를 넘나드는 즐거움

지난 여름에 ‘도둑들’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드는 최동훈 감독이 오랜만에 내놓은 영화이고, 포스터에 보이는 화려한 캐스팅 때문이라도 안 볼 수 없는 영화였다. 역시 화려하고 많은 이야기가 촘촘하게 엮여 있어 꽤 재미있게 보았다. 화면을 꽉 채우는 유명 배우들만큼 이름은 잘 모르지만 영화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훌륭한 조연이 많이 나왔다. 특히 중반 이후에 홍콩 조직의 보스로 나오는 배우는 분명히 아는 얼굴인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영화는 급격한 경사를 타고 마지막을 향해 내쳐 달리고 있었고 나는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는 영화의 결말과 더불어 그 배우가 누구인지 하는 의문이 동시에 고개를 들고 요동을 쳐서 아주 어지러웠다. 마침내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분수처럼 아래서부터 위로 뿜어져 올라오고 있었다. 마침내 그 배우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기국서…, 아니 기국서라니? 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 연극 연출가인데 막상 그를 영화 화면에서 마주하자 그를 몰라본 것이다. 나는 그를 잘안다. 왜냐하면 그가 연출하는 ‘관객모독’이라는 연극을 여러 번 직접 가서 봤기 때문이다. 그는 그 연극의 연출자이면서 그 연극의 출연자이기도 했다. 그가 그 연극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출자로서 중간 중간 끼어들어 얼굴을 비춘다.

‘관객모독’을 처음 본 게 아마 1980년대 말 공간사랑에서였던 것 같다. 원서동 공간사옥 지하에 있던 작은 극장인 공간사랑의 벽돌로 된 내부 공간은 마치 카타콤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나눠주는 신발주머니에 신발을 얌전히 넣고 컴컴한 실내로 들어갔다. 그곳의 관객은 내가 꼬드겨서 데리고 간 우리 일행 4명 이외에 커플로 추정되는 남녀 등 모두 합해 여섯 명이 전부였다. 그리고 극이 시작될 때까지 더 들어오는 사람 없이 여섯 명이 그 연극을 보았다. 마치 극장을 통째로 전세 내 연극을 보는 것 같았는데 왠지 모르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쑥스럽기까지 했다.

제목이 상징하는 것처럼 ‘관객모독’에서 관객의 기대는 극이 시작하면서부터 허물어진다. 무언가 설치하는 소리,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관객은 일상적인 연극의 무대를 기대하지만 막이 오르면 그 무대에는 달랑 네 개의 의자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의자에 배우 네 명이 앉아서 연기를 시작한다. 그들은 무척 좋은 발성으로 무언가를 외워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은 주로 연극에 대한 이야기, 즉 연극론이었다. 처음에는 진지하게 강연을 하듯이 시작하더니 시간이 흐르며 점점 그들의 자세가 흐트러지며 이야기와는 관계없는 독자적인 플롯을 가진 동작으로 바뀌고 있었다. 우리 연극에서 이야기를 기대하지 마라, 우리 연극에서 무대를 기대하지 마라 등등 점점 심각해지고 그들의 행동은 점점 우스꽝스러워진다.

마지막에는 갑자기 관객을 향해 욕을 하기 시작하고, 객석으로 뛰어 들어와 물을 뿌리고 면전에 대고 욕을 하고…. 관객 다섯에 배우 넷과 중간에 합류한 연출가까지 다섯, 다시 말해 거의 일대일로 상대하는 진풍경이 되었다. 그런 일종의 ‘형식 파괴’ 체험이 즐거워서 이후에도 몇 차례 ‘관객모독’을 보러 갔고, 최근에 간 것은 2009년 대학로에서 공연하는 것이었다. 그 사이 배우도 많이 바뀌었고 대사도 요즘의 언어를 쓰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간 중간 끼어들던 연출가 기국서가 나오지 않아 무척 섭섭했다.

‘관객모독’은 페터 한트케(Peter Handke)라는 오스트리아 그라츠대학 법대에 다니던 청년이 1965년에 쓴 작품이다. 많은 사람이 그것이 연극으로 성립되는지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고, 1년 후인 1966년에 프랑크푸르트 투름극장에서 첫공연을 했다. 언어극을 표방한 이 연극은 마지막 순간 배우들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데 서양 연극에서야 새롭고 놀라운 발상이겠지만 우리의 연희(演戱)에서는 관객과 배우가 객석과 무대의 경계 없이 서로 참견하다가 마지막에 한마당에서 노니는 모습은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사과나무 숲에서 바라본 ‘1월의 집’. 마을이 시작되는 곳이자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곳, 즉 자연과 도시의 경계 혹은 삶의 경계라는 의미가 있다.
#경계 위에 집을 세우다

세상에는 많은 경계가 있다. 땅의 경계, 인종의 경계, 신분의 경계 등등. 그리고 그 경계를 통해 타자와 구분된 자신을 인식한다. 경계는 예를 들어 민족과 같은 하나의 공동체로 사람들을 결속시키거나 집단에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런 경계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경우에는 큰 문제가 생겨나기도 한다. 경계를 넘나든다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과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큰 자유로 보았고 서양에서는 하나의 혁명적인 상황으로까지 인식했다. 그런데 그 경계라는 것이 사실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가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전주는 차분하고 아름다운 도시다. 신도심과 구도심을 만들며 균형이 깨지는 일반적인 큰 도시들의 실패 또한 별로 보이지 않는데 자연과 건물의 경계가 느슨하고 알맞은 스케일을 유지하고 있어서인 것 같다.

그곳에 얼마 전 집을 하나 설계해서 짓게 되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아파트에 살다가 단독주택을 짓고 싶어 전주 외곽에 땅을 산 부부의 집이었다. 집을 짓게 될 터는 전주나들목을 나가자마자 처음 나오는 동네에 있었는데 동네 이름이 반월동이다. 반월은 달이 차오르는 보름과 달이 기우는 그믐의 교묘한 경계에 있다는 면에서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길에서 쏙 들어가면 바로 아담한 규모의 마을이 나온다. 바로 건너편의 현대적인 풍경과는 대비되는 시멘트로 바른 담장과 좁은 길이 연속되며 계속 급하게 꺾어진다. 길은 언덕으로 이어지고 하늘과 길이 바로 붙는 지점에 오른쪽에 소담한 소나무숲이 나오며 마을이 끝난다. 그 앞에 내리막으로 펼쳐진 땅, 그곳이 집을 지을 땅이었다.

그곳은 사방이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진 경계로 둘러싸여 있었다. 땅의 동쪽으로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낮게 펼쳐져 있고 그 속에는 부글거리며 생활이 푸근한 된장찌개처럼 잔잔히 끓고 있었다. 동쪽 마을 너머로는 바로 눈앞처럼 가까이에 월드컵이 끝나고 십년째 실업자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월드컵경기장이 있었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어떤 집안의 영혼을 모시는 재실과 영혼이 남기고 간 육신이 담긴 무덤들이 편안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초록으로 몸을 덮은 채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가느다란 길이 그 영혼들이 이루고 있는 동네와 집 지을 땅 사이를 뒤꿈치를 끌고 지나가면서 경계선을 그어주고 있었다. 그 경계에는 사람들은 그 선을 넘을 수 없다는 아주 강한 의지가 보였다.

정남향으로는 멀리 큰 철탑이 보였고 남동쪽으로 틀면 모악산이 보였다. 모악산은 무척 큰 산이라는 뜻이다. 그럼 모악산은 주산(主山)이고 앞에 있는 월드컵경기장은 안산(案山)인가…. 그 풍경은 세계화된 첨단문명의 기념물 너머로 존재하는 도시와 사람들이 점점 증발하고 있는 국토의 90%가 넘는 ‘나머지’ 부분들의 강력한 상징처럼 다가왔다.

집 지을 자리 남쪽에는 마치 스크럼을 짜고 이쪽을 바라보는 것처럼 높이 자라지 않고 땅 위에 수북하고 촘촘하게 사과나무가 모여 있는 과수원이 있었다. 마치 자코메티가 만든 조각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할아버지 한 분이 그곳에서 CBS 방송을 하루 종일 크게 틀어놓고 일을 한다. 수많은 ‘형제님과 자매님’과 더불어 그 숲속의 사과나무가 인적 드문 고요한 풍경 속으로 퍼지는 그 소리를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들으며 사과를 키워내고 있었다.

집을 설계하고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곳에 갈 때마다 들었던 그 소리는 단절적일 수밖에 없는 나의 방문에 마치 어떤 연속성을 부여하는 것 같았다. 끊어졌던 맥락을 이어주는 다리, 사방의 경계를 이어주는 매개체, 혹은 과수원을 재해로부터 보호해주는 경계처럼….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이 집은 그런 수많은 경계 위에 세워져야 했다. 영과 속의 경계, 높이가 다른 땅들의 경계, 그리고 새로운 장소에서 다시금 출발하는 인생의 새로운 경계 위에…. 어쩌면 아슬아슬하기도 한 그 경계를 넘나드는 문을 하나 두는 셈이다. 어떤 이야기 속의 주인공처럼 스스럼없고 경계 없는, 자유롭고 평온한 생활이 집에 담겼으면 했다.

땅은 남쪽과 동쪽으로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어서 처음 그 땅에 가보았을 때부터 집을 그 흐름 위로 자연스럽게 타고 앉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은 목적과 기능에 따라 두 채로 나누었다. 먼저 나무로 겉을 둘러싼 본채는 생활을 담는 공간으로 채웠고 붉은 색 벽돌로 겉을 둘러싼 별채에는 주인 둘의 여가를 담았다. 하나는 정남향으로, 하나는 멀리 큰 산을 쳐다보며 약간 동쪽으로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서쪽으로 기우는 땅의 모양대로 집을 조금씩 내리고, 두 개의 존재를 적당히 비껴놓고 그 사이에는 가늘게 흐르는 비정형의 마당, 즉 비어 있는 공간을 끼워놓았다.

그 비어 있는 공간은 두 건물 사이를 적당히 완충시키기도 하고 둘 사이를 적극적으로 차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공간은 물성이라곤 없는 그냥 허공이기 때문에 존재가 인식되지 않는다. 그 사이로 많은 관계가 맺어지고 많은 갈등이 차단된다. 다시 말해 비어 있지만 그 비움으로 큰 의미가 있는 마당을 사이에 두었다는 이야기이다.

그 마당에 면하여 별채 쪽을 향하는 모퉁이에 방을 조금 들이며 사랑방을 두고 마루를 두었다. 마루에 앉으면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던 소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나는 그 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두 장의 그림이 생각났다. 하나는 우리가 너무나 잘알고 우리가 너무나 사랑하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그린 ‘세한도’이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돌봐준 제자에게 고맙다며, 잎을 터는 듯 부스럭거리며 서 있는 소나무를 그려준 것이다.

또 하나는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이다.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며 부드러운 그림을 그리던 그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스산한 바람을 가득 담아 말년에 그린 그림이다. 뭐랄까, 탈속한 듯하면서도 무언가 깊은 회한에 종이를 푹 절인 다음 꺼내어 꼿꼿한 바늘만으로 만들어진 붓으로 종이와 무척 부대끼며 그린 것 같은 그림이다. 깊은 생각에 빠진 나무와 그 아래에서 더욱 깊은 생각에 빠진 단순하고 검소한 집…. 그 그림은 그런 서늘한 의미말고도 작가들이 인생의 변곡점에 서 있는 자신 안에서, 평소에 쓰지 않고 놓아두었던 어떤 발성기관을 통해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의 그림이었다.

우리가 지을 집터의 외곽, 옆 땅과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서 있는 소나무가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나무 아래에 단정하고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박공지붕의 차분한 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모든 창문은 남쪽으로 냈다. 멀리 모악산과 사과나무 숲과 제 키를 감당하지 못하고 휘청거리며 서 있는 소나무를 보기 위해서다.

1월은 한해의 시작과 끝이 맞닿아 있는 경계의 시간이다. 마을이 시작되는 곳이자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곳, 즉 자연과 도시의 경계이자 삶의 경계라는 의미에서 이 집의 이름을 ‘1월의 집(House of January)’으로 지었다. 시인 함민복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했다. ‘1월의 집’ 또한 수확을 상징하는 사과나무 밭과 영혼의 마을과 사람의 마을 사이에서 경계가 서로 넘나들며 생의 의미를 다시금 꽃피우는 장소가 될 것이다.

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작은 집, 큰 생각’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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