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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66〉 명랑

입력 : 2012-12-31 13:26:19 수정 : 2012-12-31 13: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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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건물들… 재미있지 아니한가 # 명랑, 무거운 시대를 횡단하는 유쾌함

유쾌하고 활발하다는 의미의 ‘명랑(明朗)’이라는 단어는 가볍고 밝은 느낌을 주어서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말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부쩍 무겁고 진지해진 요즘 자꾸 생각나는 말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에 ‘명랑’이라는 대중잡지가 있었다. 내용은 정작 보지 않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가판에 얹혀진 조악한 표지와 그 표지를 뒤덮은 발랄한 총천연색의 글자들이 생각난다. 나는 무심히 버스를 기다리며 혹은 서점 앞에서 서성거리며 그 잡지를 바라볼 때마다, 그 안에는 어떤 우스갯소리들로 가득 차 있겠지 하고 생각했었다. 

‘명랑’이라는 이름의 대중잡지. 연예인 가십이나 유머 등을 담은 대중잡지로 1956년 창간되었다가 1980년 사회정화 차원에서 폐간되었다.
자료: 문훈 홈페이지 (www.moonhoon.com)
여러 가지로 우울하고 뒤숭숭한 소식들만 나부끼는 연말에 나는 가끔 그 잡지가 생각난다. 그 내용은 어땠을까. 그 책을 읽으면 명랑해질 수 있었을까?

미국의 대통령 링컨은 물론 근엄한 표정과 훌륭한 업적으로도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특유의 유머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조금 노선이 모호해졌지만 유신정권 말기에 함석헌 선생과 더불어 대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던 김동길 교수가 링컨에 대한 무한 존경을 표명하며 그의 유머를 담아 내놓았던 ‘대통령의 웃음’이라는 책이 있었다. 굳이 웃음의 장르라는 칸 나누기를 해본다면 약간은 썰렁한 허무개그류의 웃음들이었다.

김동길 교수가 링컨에 대한 무한 존경을 표명하며 그의 유머를 담아 내놓았던 ‘대통령의 웃음’.
자료: 문훈 홈페이지 (www.moonhoon.com)
예를 들면 이런 일화들이다. 링컨이 어느 날 자신의 구두를 닦고 있었다. 그걸 보고 그의 아랫사람이 “아니 왜 구두를 각하가 직접 닦으십니까?” 하고 만류하며 물어보았다. 그러자 링컨은 대꾸했다. “아니 그러면 내 구두를 닦지 남의 구두를 닦을까요?”

링컨이 상원의원 선거에 입후보했을 때도 더글러스라는 후보와 겨루게 되어 두 사람이 합동 선거 유세를 했다. 더글러스 후보가 링컨의 과거 경력을 문제 삼아 비방하기 시작했다.

“링컨 후보는 그가 전에 경영하던 상점에서 팔아서는 안 될 술을 팔았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법을 어긴 일이고, 이렇게 법을 어긴 사람이 상원의원에 당선된다면 이 나라의 법과 질서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링컨은 상원의원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될 사람입니다.”

이 말을 들은 청중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이번에는 링컨이 더글러스 후보의 공격에 꼼짝없이 무릎을 꿇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걱정스럽게 링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링컨은 전혀 당황하거나 흥분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이렇게 답변했다.

“예, 그렇습니다. 더글러스 후보가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그 상점을 경영하던 당시 더글러스 후보는 저의 가게에서 가장 술을 많이 사 먹은 최고의 고객이었습니다. 그리고 확실한 사실은 저는 이미 술 파는 계산대에서 떠난 지가 오래되었지만, 더글러스 후보는 여전히 그 상점의 충실한 고객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링컨이 재치 있게 답변하여 더글러스의 공격을 피해가자 더글러스는 신속하게 화제를 돌려 다시 링컨을 공격했다.

“링컨은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입니다.”

링컨은 이번에도 태연하게 받아쳤다.

“좋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러분께서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제가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면, 오늘같이 중요한 날, 왜 제가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습니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기를 보낸 링컨은 연이은 인간적·정신적인 실패로 생긴 우울증이 너무 심해 자살충동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유머란 삶의 불씨를 지켜주는 바람막이 같은 것이었고 무척 절실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건축가 문훈의 ‘락있수다’ 스케치.
자료: 문훈 홈페이지 (www.moonhoon.com)
# 웃음, 생에 대한 강한 긍정


‘명랑’이라는 잡지는 1980년 7월 사회정화 차원에서 폐간되었다고 한다. 이건 마치 사회가 이제는 명랑을 폐지하고 엄숙으로 갔었다는 어떤 이야기의 한 토막을 듣는 것만 같다.

물론 픽션이긴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가 지은 ‘장미의 이름’에서 늙은 수도사가 그렇게 참혹한 짓을 해가며 읽히는 것을 막으려고 했던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은 시학의 ‘희극’편이었다고 한다. 중세의 종교에서는 인간이 신에 대해 엄숙함과 운명에 대한 체념적인 자세로 받아들이기를 원했다.

그런데 인간이 유머 등의 희극적 정서를 느끼게 되면 사물에서 떨어져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되고 대상을 가볍게 두고 보는 자세가 생기게 된다. 그러면 신의 말씀을 경건하게 받지 않고 머리로 생각을 하고 비판하게 되며 그것은 결국 신을 경시하게 된다는 생각으로 ‘희극’이 유포되는 것을 강력하게 저지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전두환은 수도사의 마음으로 ‘명랑’을 폐간시켰나….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스스로 우스운 짓거리를 해댔던가….

대원군도 그의 정치적 스타일과는 달리 무척 유머가 넘쳤다고 한다. 어려운 시기에 ‘상갓집 개’라고 불리며 파락호 노릇을 할 때도 그는 우스갯소리를 잘했고, 임오군란으로 갑자기 피신을 갈 때도 급박한 상황에서 그의 옷을 거꾸로 입히는 하인에게 농담을 했다고 한다. 도끼를 들고 와 험악하게 상소하는 최익현에게도 벌을 주지 않고 “나의 무단정치로 언로가 꽉 막혔는데 이렇게 용기 있고 소신 있게 언로를 터놓은 공이 있다”며 상을 주는 그런 행동 또한 그의 유머감각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물론 그 상을 받을 최익현이 아니었지만.

책을 많이 읽지 않았던 초등학생 시절에 내가 그래도 집중하고 읽었던 책은 오영민·조흔파 등의 작가가 만들었던 ‘명랑소설’로 분류되는 책들이었다. ‘2미터선생님’, ‘6학년 0반 아이들’, ‘얄개전’ 같은 책들은 주로 당시 우리가 살고 생활하는 공간들에서 벌어지지만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명랑한 현실 혹은 약간 희화화된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다. 키가 2미터나 되어서 전봇대로 오인받기도하는 공영칠 선생님이 학교에 새로 부임하며 생기는 이런저런 에피소드들, 낙제를 두 번이나 한 얄개 나두수가 천방지축으로 사람들을 골탕먹이는 이야기들―이후 ‘고교얄개전’으로 영화화되어 큰 히트를 했던―을 키득거리다가 마침내는 방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읽었던 그 시간은 무척 행복했다.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너그럽고 유머스러운 그런, 말하자면 현실에는 없지만 그랬으면 정말 좋을 것 같은….

웃음은 사람을 살린다고 한다. 생에 대한 강한 긍정을 되살리고, 현실에 대해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객관화해 보게 하여 눈앞에 펼쳐진 여러 가지 상황을 보다 냉정하게 판단하게 해준다고 한다. 유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혹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능력 중에 가장 중요한 능력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독재자들은 극구 유머를 통제하는 모양이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웃음은 인간적인 것의 산물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피로도 웃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웃음은 죽음에게 속박되고 자기에게 결박된 자아의 찰나적인 균열을 보여주며, 타자를 모방하면서 타자를 받아들이려는 자아의 돌이킬 수 없는 궤적으로 나타난다. …웃음은 불안과 무기력을 넘어서려는 내면의 명령에서 나오는 생명의 충동이다.”(장석주 ‘일상의 인문학 중에서’)

문훈이 설계한 펜션 건축 ‘락있수다’. 공상과학영화나 아이들이 보는 만화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 같은 원초적인 색채와 형태를 담았다.
# 세상의 모순과 충돌하는 명랑한 건축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정선, 그 자연 속에 갑자기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뿔이 달려 있는 총천연색 건물이 나타난다. 그 대담하고 원초적인 건축물은 ‘락있수다’라는 펜션 건축이다. 혹은 망사스타킹을 덮어쓴 건물들, 마치 공상과학영화나 아이들이 보는 만화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 같은 건물들을 세상에 내놓은 건축가가 있다.

“나는 여자 엉덩이·망사 스타킹 등을 좋아하는 유치한 작자다. 하지만 유치함에도 고유의 가치가 있다. 유치함은 진실함과 통한다. 그게 없다면 삶은 얼마나 더 지루하고 더 부조리하겠는가. 진지함과 존경을 배제하니 두려워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모든 사람이 유치함을 비난하고 욕하더라도 나는 괜찮다. 모두가 지적 도취에 취해 배은망덕을 저지른다 해도 나는 삶에 기회를 주는 이 유치함을 사랑한다.”

삶의 기회를 주는 유치함을 사랑하는 건축가는 다름 아니라 문훈이라는 건축가이고,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숨기려고 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그의 건축은 유치하면서도 통쾌하고, 단순하면서도 신선하다.

모든 형식의 시작은 진보적이고 자유롭고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형식을 위한 형식이 괄호 위에 한 번 더 붙인 괄호처럼 의미를 모호하게 하고, 화자가 누군지 모르게 하며, 결정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들에게 복종을 강요한다. 이를테면 내용은 빠지고 껍질만 남은 채 종교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식은 밥처럼 딱딱하고 맛이 없어진다. 현대의 건축이 그렇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혁신적인 진보가 이루어진 건축은 이후 100여 년이 흐르면서 개념과 정신이 박제화되어, 앞과 뒤에 도돌이표가 붙은 악보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계속 반복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다 새롭고 진보적인 어떤 가치가 형식이 새로 나오길 기다리며 많은 건축은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와 디디처럼 푸념과 공허한 헛손질을 하고 있다. 오늘의 건축은 자칫 종교처럼 숭배와 찬양을 허공에 뿌리고 있다.

문훈의 건축은 그런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유희를 하듯이 여러 가지 상징들을 모아서 주렁주렁 걸어놓고 그 요소들 간의 충돌을 즐기는 듯하다. 그가 입고 다니는 옷도 스스로 ‘튜닝’한 옷이다. 옷에 여러 가지 상표를 마치 훈장을 주렁주렁 매단 북한군 장교의 상의처럼 붙여놓고 어떤 상징으로부터도 자유롭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는 그의 옷처럼 그의 건축도 아무런 상징이나 어떤 메시지도 없으며 그저 우리가 그 안에서 마음껏 해석해도 좋다고 허락하는 것처럼 풀어놓고 있다. 그것이 그가 원하는 건축인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인이 추구하는 혹은 현대의 건축이 추구하는, 특히 자본주의 체계에서 만들어놓은 극단적인 물신숭배의 상징체계들을 모아 놓고 보여줌으로써 비웃고 있는 것이다.
“건축은 인간사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에요. 건축가는 더 깊고 넓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세상의 모순과 충돌을 솔직하게 말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의 건축은 명랑하다. 우리는 그의 건축을 보며 모두 즐거워한다. 그의 건축은 욕망의 건축이다. 그러나 그의 욕망은 물질로 치환된 욕망을 걸어놓고 모두 한 발 뒤로 물러나서, 다시 말해 그가 지정한 ‘묘한 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건축이다.

“떠돌이, 방랑 건축이로다 … 액션건축… 동(動)건축이로다 … 움직일 수 있기에 갈등 또한 얻었구려!!! … 어디론가 떠날 수 있기에… 항상 여기에선 서성거리는… 건축… 배회와 방황만 늘었도다 … 기구한 액션건축물의 운명이로다 … 기구하다 함은 변화무쌍 좋기도 하다는 뜻…(웃음)”(문훈)

가온건축 공동대표·‘작은 집, 큰 생각’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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