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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62〉 데이드림

입력 : 2012-10-02 23:17:15 수정 : 2012-10-02 23: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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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는 흐릿한 욕망을 쫓는 개발의 꿈 #꿈인 줄도 모르고 꾸는 꿈

“꿈속에서 즐겁게 술을 마시던 자가 아침이 되면 불행한 현실에 슬피 울고, 꿈속에서 울던 자가 아침이 되면 즐겁게 사냥을 떠나오. 꿈을 꿀 때는 그것이 꿈인 줄을 모르고 꿈속에서 또한 그 꿈을 점치기도 하다가 깨어나서야 꿈이었음을 아오. 참된 깨어남이 있고 나서라야 이 인생이 커다란 한바탕의 꿈인 줄을 아는 거요.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깨어있다고 자만하여 아는 체를 하며 군주라고 우러러 받들고, 소치는 목동이라고 천대하는 따위 차별을 하오. 옹졸한 짓이오. 공자도 당신도 모두 꿈을 꾸고 있소.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또한 꿈이오.”(‘장자’ 제물편, 27)

꿈은 부조리하다. 앞뒤가 맞지 않고 시간도 뒤죽박죽이고 일관성도 없다. 그러나 그 안에는 어떤 강력한 진실이 숨어있다. 혹은 인생에 대하여 신이 우리에게 넌지시 건네는 무척 강한 암시가 숨어있다. 가령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도다, 혹은 네가 보는 이것들은 모두 꿈이니라, 하는 그런….

예전에 건축대학에 다닐 때 학교 앞에는 ‘작업실’이라고 부르는, 학생들이 모여서 같이 작업을 하는 공간이 많이 있었다. 나도 그중 한 곳에서 설계과제를 하고 공모전 준비를 하며 여러 명과 같이 생활을 했었다. 늘 과제나 공모전의 마감 압박에 시달리던 학생들은 작업실에 모여서 밤을 새우며 작업을 하다가 졸리면 아무 데서나 쓰러져서 잠을 자곤 했다. 그 지하의 작업실에는 여기저기 개미굴처럼 작은 공간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어느 날 작업하던 열 댓 명이 소리없이 하나 둘 잠자리를 찾아 들어갔는데, 나는 거의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서 버티고 있다가 2평 정도 되는 구석방에 사람들 사이로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깨어나 부스스 일어나서 작업하던 책상으로 돌아가 앉았다. 먼저 잠이 들었던 동료가 내 옆으로 와서 인사를 하곤 둘이서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용산국제업무지구에 들어설 드림 허브 조감도.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마스터플랜에 의해 19개 팀의 외국인 건축가가 기본계획을 맡고, 한국 설계사무소 7개 팀이 협력 설계를 맡았다.
“잉킹(inking)은 아직 더 해야 하나?” “아직 더 밑그림을 눌러야 해….”

대화를 몇 마디 이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거대한 구멍으로 물 회오리가 일면서 빨려들어가듯 소용돌이를 치며, 의식이 다른 장소로 옮겨지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알고 보니 방금의 대화는 내가 잠 속에서 나눈 대화였던 것이다. 나는 방에서 자고 있었다.

이불을 걷고 부스스 옆에서 자는 몇 명의 동료를 보며 방에서 나왔다. 작업 책상에 동료 하나가 앉아서 일을 하고 있다가 “일어났네∼” 하면서 아는 척을 해주었다. 나는 정신을 추스르며 옆으로 가서 “내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하며 설명을 하는 중이었다. 동료가 열심히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다시 한 번 아까의 그 소용돌이가 치고, 나는 다시 그 방에서 이불을 걷고 부스스 일어나서 동료들을 쳐다보고 다시 밖으로 나와서 깨어있는 다른 동료와 대화를 했다. 그러는 중에 다시 소용돌이가 치고…. 마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꿈 안에 또 하나의 꿈이 있고, 그 안에 또 하나의 꿈이 계속 깨어나고 있었다. 무려 아홉 번을 깨어나서야 그 꿈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삼십 년 가까이 지난 일이건만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가끔 헷갈린다. 지금 내가 열 번째 깨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백일몽,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

“언제인가 장주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채 유쾌하게 즐기면서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문득 깨어나 보니 틀림없는 장주가 아닌가. 도대체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을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장자’ 제물편, 32)

꿈은 현실의 강렬한 욕망을 투영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일을 꿈에서 이루고자 한다. 그럴 때 대부분 꿈은 현실의 반대가 된다. 그 안에서 행복해하지만 결국 그건 허망한 꿈일 뿐이다.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을 ‘백일몽(白日夢·Day Dream)’이라고 한다.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가 2001년에 감독하여 제작된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를 무척 벼르다 봤다. 그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고 그 악명도 익히 알고 있는 영화였다. 언젠가 보리라 다짐만 여러 번 하고 볼 기회를 잡지 못하던 차에, 몇 년 전 우연히 교육방송에서 주말에 방영하는 것을 처음은 놓치고 중간부터 본 적이 있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도저히 그 맥락을 알 수 없었다. 꿈과 현실이 교묘히 섞인 그 이야기의 경계를 이해할 수 없었고, 화자가 누구인지 누구의 시선인지 도대체 종잡을 수 없었다. 영화가 끝날 때 언젠가 다시 정좌하고 봐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곤 DVD를 사놓고 봐야지 봐야지 하다, 지난주에 세상의 모든 시간 중에서 제일 애매한 시간인 일요일 오후 점심과 저녁 사이에 마침내 그 영화를 보았다. 무슨 에베레스트 등반도 아니고 대한해협 횡단도 아니건만 대단한 결심이 필요했다. 알고 보니 이 영화를 이루는 내용은 대부분 한 여자의 꿈 이야기였다. 어떤 여자가 꿈을 꾼다. 현실에서는 다이앤이고 꿈에서는 베티인 그 여자는 직업이 배우다. 꿈 속에서는 잘나가는 배우이고,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로 좌절되고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는 시골에서 상경한 단역배우이다.

베티는 꿈 속에서 리타라는 어떤 여자를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구원해주고 도와주는데, 그 여자는 현실에서는 친구이자 애인인 카밀라이다. 현실에서 카밀라에게 배신을 당한 베티는 청부업자에게 카밀라의 살인을 부탁하고 자신의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었다.

관객이 그 이야기들이 모두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무척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에야 주인공이 꿈에서 깨어나며, 우리는 여태까지의 이야기들이 모두 한 여자의 꿈, 그것도 그 여자의 죄의식에서 비롯된 현실과는 반대로 펼쳐지는 꿈 속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작할 때 중간중간 툭툭 던져지는 맥락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이야기들이 모두 뒤에 나오는 주인공의 남루한 현실에 대한 강력한 도피기제가 작용한 것임을 희미하게나마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멀홀랜드 드라이브’라는 이야기의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열쇠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내가 처음 보았을 때는 그 열쇠를 받지 못해서 그 영화의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이야기는 거꾸로 꿰어 맞추어가자 비로소 전체를 이해하게 되었다.

업무, 주거, 상업지역에 들어설 건축물의 기본계획안 자료.
#용산의 꿈


데이비드 린치의 그 영화처럼, 도저히 그 전개를 이해할 수 없는 일 중 하나가 용산역세권 개발이라는 사업에 관한 것이다. 건국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는 용산국제업무지구(용산IBD) 사업의 이름은 ‘드림 허브(Dream Hub)’, 즉 꿈이 만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꿈도 보통 꿈이 아니어서인지 이 꿈은 그 끝이 보이지 않고 몇 년째 흐릿한 미몽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3가 51만5483㎡(약 17만1245평)의 부지에 31조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337만7531㎡, 용적률 608% 규모의 국제업무·상업·문화·주거시설 등을 조성하는 이 복합개발사업은 “대한민국을 상징할 만한 워터 프런트 신도시 건설을 통해 가장 한국적인 가치가 스며있으면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세계 10대 도시를 만들기 위한 국가적인 사업”(출처:www.dreamhub21.com)이다. 규모는 일본 도쿄 롯본기힐스의 5배에 달하며, 투입자금은 롯본기힐스(4조원), 영국 런던의 카나리워프(6조원), 독일 베를린의 포츠다머플라츠(3조원) 등 다른 복합단지 프로젝트와 비교가 되지 않는 큰 규모다. 자랑할 만한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서울시 일년 예산이 19조원이 넘고(2012년) 코레일의 자산도 19조8000억원 정도(2010년 기준)이며, 4대강 사업의 예산이 22조원이니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일임은 분명하다.

원래 이 사업은 2005년 철도청이 코레일로 전환되면서 KTX 적자로 발생한 4조5000억원의 부채를 정리하기 위해, 서울 철도정비청부지 중 44만2575㎡(약 13만4000평)의 개발계획을 세우며 시작되었다. 이에 서울시는 한강 르네상스 사업과 연계하여 서부이촌동의 12만4000㎡를 포함해 ‘통합개발’하는 것을 인·허가 조건으로 내세웠다. 코레일 측은 토지수용비와 민원 등으로 인한 사업 지연을 우려해 거부하다가 한강 수변과의 연계 개발을 결국 수용했다. 그래서 서부이촌동의 대림·성원·동원베네스트 등의 5개 아파트 2200가구와 단독주택 600여 가구가 사업지구에 포함되자, 토지 대금이 애초 3조8000억원에서 8조원으로 증가했다. 

벨로타워(왼쪽 사진)와 더클라우드.
2007년 11월 삼성물산·국민연금 컨소시엄이 사업시행예정자로 선정되면서 ‘세계도시의 꿈이 만나는 곳’이라는 주제로 “세계인의 동경의 대상이 되고 후세까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도시로 만들 것”이라는 야심 찬 계획이 발표됐다. 당시 중심건축물인 물방울 모양의 랜드마크 빌딩은 푸르덴셜과 삼성그룹 등이 인수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12월 민간 시행자, 여러 금융 기관과 함께 페이퍼 컴퍼니인 드림허브프로젝트 금융투자주식회사(드림허브 PFV)와 실제 개발 업무를 담당할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AMC)를 설립했다.

그러나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사업성은 불투명해졌고, 2010년 8월, 용산역세권개발의 1대 주주인 삼성물산이 뒤로 물러났다. 2011년 7월 코레일이 토지대금 납부 유예·분납이자 감면·랜드마크 빌딩 선매입 등의 정상화 방안을 내놓았다. 이후 다시 국제공모를 통해 미국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마스터플랜이 당선되었고, 기본계획은 외국 유명 건축가인 렌조 피아노(이탈리아)·MVRDV(네덜란드)·헬무트 얀(미국)·겐슬러(미국)·베노이(영국)·BIG(덴마크)·야마모토 리켄(일본) 등 19개 팀에게 맡겨졌다. 삼우설계·시아플랜·해안건축·혜원까치·무영건축·서영엔지니어링·진우엔지니어링 등 7개사가 협업 설계를 맡았다.

전체 설계용역비는 3269억원에 달하고, 75%인 2448억원이 한국 업체의 몫이다.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선정한 랜드마크 빌딩 ‘트리플원’(111층·공사비 1조4000억원)을 제외한 65개 고층빌딩(공사비 8조6000억원 이상)의 발주 계획도 진행되고 있다.

이 꿈같은 사업은 발표되고부터 신축한 지 2∼13년밖에 되지 않은 대단위 아파트의 수용에 반발한 주민들의 반대가 거셌고, 용산참사라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아픔도 겪었다. 2016년에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주민 보상 문제로 진통이 계속되고 있으며, 통합 개발과 서부이촌동 지역을 단계별로 추진하는 분리 개발 사이에서 서울시와 드림허브 측 모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땅을 팔아 빚을 해결하려다 건국 이래 최대 개발사업의 주체가 된 코레일의 부채는 2005년에 5조7995억원에서 2010년 9조6580억원으로 늘어나, 부채비율이 70%에서 95.1%가 되었다. 2006년 계획이 시작될 당시 26조원이었던 사업비는 서울시가 한강 르네상스 사업으로 용산 서부이촌동을 포함시키면서 4조원, 사업비 조달 지연 등 착공 지체로 1조원 정도 늘어나 총 31조원이 되었다. 남발됐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사업의 여파로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는 가운데, 드림허브의 대주주이며 8조원의 토지 대금을 받아야 하는 코레일은 받아야 할 이자는 연기해 주고, 4조1632억원짜리 랜드마크 빌딩을 선매입해 주면서 오히려 대금을 납부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시행사인 드림허브의 자본금은 1조원으로, 총 사업비의 3∼3.5%밖에 되지 않는 부실한 규모이다.

과연 용산의 꿈은 현실이 될 것인가.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끝나는 꿈이 될 것인가. 이제라도 누군가 꿈 속의 그들에게 ‘킥(역시 꿈을 주제로 한 영화 ‘인셉션’에서 꿈을 깨워주는 장치)’을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임형남, 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작은 집, 큰 생각’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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