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낮술’을 두고 혹자는 ‘초짜들의 반란’이라고 말한다. 필모그래피가 전무한 감독, 스태프, 배우들이 모여 13일 만에 115분짜리 장편 영화를 만들어냈다. 제작비는 고작 1000만원. 그런데 이 영화, 간단치 않다. “잘 짜여진 각본과 매력적인 연출, 디테일이 살아 있는 연기”로 2008년 전주국제영화제와 스위스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각각 JJ스타상·관객평론가상과 특별언급·넷팩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 크고 작은 국제영화제의 초청이 쇄도했다.
올해도 마찬가지. 네덜란드 로테르담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홍콩·부에노스아이레스·코펜하겐·위스콘신 영화제를 통해 해외 관객을 찾는다. 올 상반기에는 미국 일반 상영관 개봉도 예정돼 있다. 촬영 내내 “밤마다 술잔을 기울이며 영화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는 1인8역(각본·연출·촬영·음악·연기 등)의 노영석(33) 감독과 우유부단 소심남 혁진 역의 송삼동(29)을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낮술’ 이야기를 들었다.
‘낮술’은 오랫동안 영화계 언저리를 맴돌던 이들이 절치부심 꺼내든 독기의 산물이었다. 노영석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 전 미대 졸업생이었고 온라인에 록음반을 발표한 가수였으며 수많은 영화사·공모전의 문을 두드렸던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기도 했다. “성격이 잡식성이라 하나만 파질 못한다”는 게 그의 변이다. 냉면집을 하는 어머니에게서 용돈을 타서 시나리오 습작을 하고 영화사 연출부에 지원했다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은 백수 시절에도 그가 버리지 않은 꿈은 “내가 만든 스토리를 영화화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는 나 혼자 해보자’며 시작한 게 ‘낮술’이다. 2005년 한 영화연출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을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를 1000만원만 가지고도 재미있게 만들어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자”고 꼬드겨 강원도 정선으로 불러모았다.
촬영 직전까지 혁진 역할을 할 주연배우 찾기에 골몰하던 노 감독은 한 인터넷사이트에서 가족뮤지컬에 출연한 적 있다는 송삼동의 얼굴을 발견하자마자 환호성을 내질렀다. 남녀노소 누구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너무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혁진 캐릭터에 더없이 어울리는 마스크였고 아우라였다. 노 감독은 “원래 혁진 역을 맡기로 한 다른 배우가 있었는데 얼굴이 영화의 전체적 톤이랑 안 맞았고 애초 팬션 옆방 여자 남자친구 역으로 오디션을 봤던 삼동이가 ‘딱이다’싶어 그 친구 양해를 구하고 술자리를 빌려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송삼동은 “내 첫인상이나 성격이 좀 어리버리하고 귀가 얇고 ‘멍 때리고’ 남들과 대화했을 때 한 템포 쉰 뒤 반응하는 타이밍 등이 혁진과 닮았다”고 웃었다.
미국 영화 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의 레이 베네트는 ‘낮술’에서의 송삼동 연기에 대해 “디테일이 살아 있는 연기가 큰 웃음을 이끌어낸다”고 평했다. 특히 우유부단함과 찌질함, 순진함, 귀여움 등이 실감나게 어우러지는 그의 표정과 말투는, 노 감독이 자신이 실제 겪은 에피소드를 녹여낸 스토리와 더불어 영화 내내 터져나오는 웃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지금이야 독립영화 30편과 연극 ‘강풀의 바보’를 자신의 연기 이력으로 소개하지만 2007년 촬영 직전엔 “대학 시절, 시험공부가 너무 싫어 친구들에게 ‘연기할래’라고 선언한 뒤 무작정 영화사와 극단 등에 프로필을 보내는게 일상인 배우 지망생”일 뿐이었다. 연기 호평에 대해 “대사를 외우고 소품을 옮기느라 연기 연습할 여유도 없었다”고 쑥스러워하던 그는 “연극 관객이 무대 위 나를 보고 ‘어? 영화에서 봤던 배우네?’라고 떠올려 준다면 더없는 보람이고 영광일 것”이라고 말했다.
두 생초짜 감독·배우가 호기 있게 도전한 첫 장편영화는 결과적으로 이들이 다음 작품을 고민하게 만드는 부담이 됐다. 신선함, 열정 등의 단어는 오로지 신인에게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송삼동은 “앞으로는 더 이상 이번처럼 편하고 재미있게 영화를 찍지는 못할 것 같다”고 아쉬워하며 “당장은 상업영화 오디션에 합격하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노 감독이 상업영화에서 제의가 올 경우를 전제로 “성장로드무비나 범죄스릴러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잘 풀어내고 싶다”고 말하자, 송삼동이 “형, 낮술 한 잔 어때요?”라고 너스레를 떤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김경호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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