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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신문활용교육)] 한국사회 ‘불신의 병’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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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3-25 02:00:37 수정 : 2013-03-25 02: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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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적 정쟁·소득 양극화 극심
국민들 정치·경제 불신감 팽배
경쟁·배타성 높아져 통합 저해
■ 기출문제

-제시문 (1)의 논지와 대비하여 제시문 (2)를 해설하고, 제시문 (3)을 참조하여 한국 사회의 불신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술하시오.

〈2008 고려대학교 정시 인문계열 논술 변형〉

〈제시문 1〉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보편적인 규범을 준수하여 예측 가능하고 정직하게 행동하리라는 기대로부터 신뢰는 싹튼다. 신뢰의 중요성은 공동체의 이익과 관련하여 강조될 수 있다. 구성원들이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협동한다면 그들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신뢰에는 항상 어느 정도의 위험이 따르므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경계하고 불신하기도 한다. 신뢰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윤리적인 덕목이다. 신뢰의 반대편에 자리한 불신은 그 본질상 악덕이지만 피치 못해 선택되는 경우도 있다.

…중략…

불신 사회에서 사람들이 협동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따라서 불신 사회에서 사람들은 협동하지 않는 반면 적자생존의 경쟁과 제로섬(zero-sum)적인 갈등에 몰입하게 된다. 사람들은 무익한 협동 대신 기만과 협잡, 배신 등을 통해 이익을 추구한다. 다른 모두가 나를 속이려 한다면 나도 다른 모두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가족의 울타리 너머로 확산되는 신뢰의 연결망이 존재하지 않으며 감시와 제재와 처벌의 위협이 사람들을 비로소 정직하게 행동하도록 한다는 것이 불신 사회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처럼 비극적인 균형 상태는 외부의 개입이 없는 한 그대로 유지된다. 불신 사회에서 타인을 신뢰하는 사람은 불행하고 그래서 삶은 매우 암울하고 위태롭게 지탱된다. 팽배한 불신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은 개인만의 결단이 아닌 여러 사람들의 공동 행동을 통해 가능하다.



〈제시문 2〉

권투왕 마빈 해글러



그는 심판관을 믿지 않는다

판정승을 기대하지 않는다

심판관은 쉽게 매수되기 때문이다

그는 심판관을 믿지 않는다

판정승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무신론자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벌거벗은 채

승부욕이 강하게 싸운다

이 점은 순교자와 같다



서로 좋게 승리로 이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가 뛰는 링은 종종 피범벅이다

이 점은 불란서 혁명과 같다



마빈 해글러는 세계 챔피언이다

하지만 죽음의 왕 앞에선……

이 점은 불쌍한 투우와 같다



〈제시문3〉

우리나라 국민의 3명 중 2명은 사회를 불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경제연구원 김동열 수석연구위원이 20일 발표한 ‘한국 사회의 낮은 신뢰도’ 보고서를 보면 전국 20세 이상 성인남녀 1006명 중 68.6%가 ‘우리 정치·경제·사회가 투명하고 믿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별로 그렇지 않다’라는 응답이 52.0%, ‘전혀 그렇지 않다’라는 답은 16.6%였다. 이 비율은 40대(71.9%)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 이어 20대(70.2%), 30대(68.1%), 50대 이상(64.6%)이 뒤를 이었다.

…중략…

중산층 복원을 위해 시급한 정책은 무엇인가란 물음에는 43.5%가 ‘일자리 창출’을 답했다. ‘자녀 양육·교육비 부담’이란 응답은 21.1%, ‘고용안전망 확충’은 13.2%다. 우리나라 경제시스템 중 개선이 시급한 분야로는 ‘수출·대기업 중심 경제’(32.4%)와 ‘관치경제’(27.2%)를 꼽았다.

복지재원 조달방안으로는 부자증세(46.1%)와 지하경제 양성화(30.5%)란 응답이 4분의 3을 넘었다. 창조경제를 구현하는 방법에 대해선 ‘창의적 인재 양성’(38.2%)과 ‘연구개발 투자 확대’(35.8%)에 주력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3월19일자 세계일보〉

이번 논술 칼럼의 주제는 ‘신뢰’이다. 2008학년도 이래로 각 대학들이 통합교과형 논술로 전환하면서 하나의 공통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제시문과 분할된 논제로 논술출제 방식이 바뀌었다. 특히 주제에 있어서도 ‘개인과 사회’ 또는 ‘자유와 평등’ 같은 거시적인 주제에서 탈피해 보다 미시적인 주제로 출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신뢰’ 또한 2008학년도 연세대 모의논술과 동국대 수시 및 고려대·중앙대 정시 논술에서 출제된 이래로 지금까지 많은 대학에서 출제되고 있는 주제이다.

신뢰는 1990년대 콜먼(Coleman)과 퍼트남(Putnam), 후쿠야마(Fukuyama) 등에 의해 주장된 사회적 자본이론의 핵심요소이다. 그들은 종래 경제학에서 논의되던 물적·인적 자본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한 사회가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원천으로서 사회적 자본을 중요시한다. 불신이 만연한 사회일수록 거래비용이 증가해 비효율을 낳을 수밖에 없기에 구성원 간의 참여와 협력을 가능케 하는 신뢰가 높을수록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

논제의 전반부는 제시문 (1)의 논지와 대비해 제시문 (2)를 해설하도록 요구한다. 고려대는 2008학년도 이래 통합교과 논술을 강조하면서 시와 소설, 희곡 등의 문학작품을 제시문으로 자주 출제하고 있다. 문학 제시문은 추상 수준이 높기 때문에 특히 학생들이 독해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제시문 (2)를 해설하기 위한 근거가 제시문 (1)의 논지이므로, 제시문 (1)의 핵심주장과 근거를 정확하게 독해함으로써 해설의 방향성을 올바르게 설정할 수 있다.

제시문 (1)은 우선 불신사회의 문제점을 주장한다. 신뢰가 거래비용을 줄이고 상호이익을 증진시키므로 사회적으로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신뢰에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때로 불신을 선택한다. 따라서 신뢰가 타인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경우에 불신은 그 타인을 보호하는 선택이 되기도 한다.

또한 불신 사회에서 개인들은 타인들과의 협동에 실패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을 속여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란다. 이는 불신을 정당화시킴으로써 더 큰 사회 문제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제시문은 불신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사회 구성원들의 공동 행동을 촉구한다. 불신 사회에서 남을 믿는 것은 개인적으로 손해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불신의 균형은 외부의 개입이나 사회 구성원들의 동시적인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불신 사회에서 한 개인이 살아갈 방법은?

제시문 (2)는 최승호의 시 ‘권투왕 마빈 해글러’이다. 이 시는 1980년대 프로 권투 미들급의 제왕이었던 마빈 해글러를 통해 불신으로 가득한 세계 속에서 자신만을 신뢰하며 사는 한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형상화한다. 마빈 해글러에게 사각의 링은 매수된 심판이 존재할 수 있는 불신의 세계이다.

불확실한 판정승 대신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대방을 철저히 때려 눕혀 초반에 KO승을 거두는 것뿐이다. 따라서 링 위에서 그가 오직 믿을 것은 자신의 주먹뿐이다. 자신 이외에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무신론자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그가 무신론자보다는 순교자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무신론자와 순교자는 전혀 상반된 존재들이다. 전자가 불신의 극단에 서 있다면 후자는 믿음의 극단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시인이 보기에 마빈 해글러는 승리를 통해 세계의 불신을 증명하고 비판한다. 그가 거두는 승리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인이면서 세계가 불신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에 대한 역설적인 증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신의 세계 속에서 그는 끝내 패배할 수밖에 없다. 죽음마저 이겨낼 수는 없으며 그의 죽음은 그의 신념이 투우처럼 맹목적인 데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이로써 인간은 비극적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불신의 세계에 대한 극복은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을 신뢰하는 개인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정치에 대한 불신, 소득 양극화에 따른 계층 간 불신 등으로 현재 우리 사회의 불신의 정도는 매우 높은 상태다. 불신이 높은 사회에서는 정당 간 소모적 논쟁과 집단끼리의 첨예한 대립이 빚어질 수 있다. 사진은 2010년 1월 예산안 처리를 놓고 국회에서 여야 의원과 관계자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종래 신뢰의 유형은 공동사회의 혈연과 지연, 학연으로 대표되는 ‘두터운 신뢰’와 이익사회의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로 대표되는 ‘얇은 신뢰’로 구분했다. 그러나 두터운 신뢰가 내부적으로 구성원 간의 결속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좋을 수 있어도 대외적으로 배타성을 띠게 마련이므로 오히려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문제가 있다.

강남인강 인문논술팀장, ㈜C&A논술 부원장
과거 MB 정부의 ‘고·소·영’ 내각 논란과 현 정부의 성균관대, 고시, 경기고 위주의 ‘성·시·경’ 인사 논란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또한 얇은 신뢰도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 간에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정당 간 소모적 논쟁과 과거 의약분업 문제와 같은 이익집단 간의 첨예한 대립이 그 사례라 할 수 있다.

제시문 (3)에서 보듯 현재 우리 사회도 불신의 정도가 매우 높은 상태에 있다. 정치에 대한 불신뿐만 아니라 소득 양극화에 따른 계층 간 불신도 위험수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40대와 20대의 불신 정도가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과 일자리 창출에 대한 국민들의 바람이 크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불신 문제의 근원에는 경제적인 부분이 크다고 추론할 수 있다.

마빈 해글러가 가졌던 한 개인의 신념(belief)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신뢰(trust)가 더욱 요청되는 시대이다. 더디 가도 주변을 살피는 열 사람의 한 걸음을 기대해 본다.

윤기혁 강남인강 인문논술팀장, ㈜C&A논술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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