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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윤의 아시아 문화기행] 3천년 전부터 향신료 무역항… 동서교류 ‘문화 용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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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4-02 17:24:57 수정 : 2009-04-02 17: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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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케랄라
삶이 그저 사무실과 집의 끊임없는 오감의 연속임을 느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별개 없음을 깨닫고는 이내 실의에 빠지곤 한다. 여행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주위로부터 받는 가장 큰 오해는 ‘너는 그런 허무함이 없을 것’이라는 일종의 추측이다. 여행이 업인들, 왜 없을까? 그저 범위가 넓어졌을 뿐이다. 직장인이 가기 싫은 거래처를 의무적으로 가야 하듯, 여행인 또한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여행지를 몇 번씩 가야 하는 비루함은 남과 다르지 않다.

◇중국 경극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케랄라의 전통무용 카타칼리.
인도 남서부 끝자락에 있는 케랄라는 그런 점에서만 본다면 참 다행인 지역이다. 열 몇 번을 방문해도 가슴 설렘이 남아 있고, 케랄라로 가는 기차에만 올라도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기대가 용솟음친다.

인간의 역사를 바닷가 모래알에 비유할 정도로 가볍게 봤던 인도인들은 그 이유로 역사기록을 후세에 남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케랄라 지방에 대한 역사기록도 없다. 다만 아라비아와 서양인의 기록 덕택에 역사를 가늠할 뿐이다. 하여간 그들의 기록에 의하면 이 일대는 약 3000년 전부터 향신료 무역항으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고대 세계에서 항구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세계의 문화유산이 만나는 일종의 문화 용광로였다.

◇아시아 최대의 향신료 시장이라는 명성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오늘날까지 머리 터지게 싸워대는 힌두와 이슬람 간의 대결에서 케랄라만큼은 두어 발짝 비켜서 있다. 이유인즉 무역을 통해 자연스레 이슬람을 받아들였고, 칼이 아닌 교리가 마음에 들어 자발적으로 개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미덕은 예수교까지 이어지니, 현재 케랄라는 힌두·이슬람·예수교신자의 황금분할로 이어지며 종교적 평화를 누리고 있다.

이런 다양함은 케랄라만의 독특한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아름다운 포트 코친항에 늘어서 있는 중국식 어망은 중국 광둥성에서 전래되었다는 일종의 설치형 그물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전래되었다는 광둥에는 같은 형태의 그물이 이미 사라지고 없다는 것.

나는 케랄라가 좋다. 첫째는 케랄라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동서문화 교류의 흔적이 좋으며, 둘째는 인도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즐길 수 있는 해물 커리의 풍부함이 좋고, 마지막으로 인도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주임에도 인도문화에 끼친 빛나는 유산을 사랑한다.

동서문화 교류의 흔적은 앞서 전술한 광동식 설치형 그물 외에도, 인도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유대인 커뮤니티의 존재에서 그 빛을 발한다. 기원전인 바빌론의 유대 침략시기에 밀려온 사람들이 그 시조라 하니, 커뮤니티의 역사만 2500여년이 넘는 셈.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거의 대부분이 인도를 떠났지만, 아직도 4가구가 남아 자그마한 유대인 커뮤니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케랄라의 해물 커리는 인도 해물요리의 거의 모든 것과도 같다.
케랄라의 해물 커리는 인도 음식이라면 손사래부터 쳐대는 사람이라 해도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맛이 일품이다. 원래 전통 힌두들은 생선에 아예 입을 대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 때문에 인도 요리에서 해물이 자치하는 자리는 한마디로 쥐똥만큼이다.

케랄라의 해물 커리를 가능하게 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먹을거리 선택이 자유로운 이슬람의 힘이다. 인도 최대의 어항이자 향신료 무역항이라는 지리적 요건은 그러지 않아도 뜨거운 케랄라의 날씨보다 더 화끈한 이 지역의 해물 커리를 탄생시켰다. 코코넛 우유와 갓 잡아올린 신선한 대하, 여기에 강황과 고추, 생강, 타마린드라는 천연 식초가 맛을 뿜어낸다.

한국인의 입맛에는 새콤 화끈한 맛이랄까? 무엇보다 향 없이 화끈한 맛으로만 승부하니 입에 착착 붙는다. 물론 매운맛에 익숙지 않은 서양인 여행객들과 일본인 관광객은 멀찌감치 서서 그 맛에 감동하는 우리를 이상하게 볼 뿐이다. 

◇이제는 관광객을 위한 퍼포먼스일 뿐이지만 위용만큼은 웅장한 중국식 어망.
케랄라의 면적은 남한의 40% 정도인 3만8000㎢에 불과하다. 인도라는 나라가 남한 면적의 33배에 달하는 크기니 인도의 주치고는 가장 작은 축에 끼는 셈이다. 하지만 케랄라가 인도에 끼친 영향은 그야말로 지대하기 짝이 없는데, 이 작은 땅에서 인도의 4대 무용 중 하나인 카타칼리가 탄생했고, 인도 유일의 전통무술인 칼라리파야트의 고향도 케랄라다. 새로운 대체의학으로 각광받는 아유르베다 또한 케랄라의 트리슐이라는 도시를 그 원조로 하고 있으니, 문화적으로만 따진다면 고만고만한 주 서너 개를 합친 것보다 더 빼어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카타칼리는 케랄라의 녹음과 향신료, 그리고 혼성된 문화가 창조한 보물이다. 원체 종교적인 탓에 모든 무용이 사원의 신에게만 향하는 인도에서 카타칼리는 유일무이하다시피 대중공연을 염두에 둔 무용이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명나라 시절 인도를 방문한 정화 제독이 카타칼리의 기법을 중국으로 가져갔고, 그것이 중국 경극의 원조역할을 했다고도 하니 그야말로 수백년 전의 문화교류로서는 놀라울 따름이다.

많은 사람에게 인도는 그저 아그라의 타지마할, 바라나시의 화장터뿐인 현실은 안타깝다. 없이 살아 각박해진 나머지 악다구니밖에 남아 있지 않은 북인도에 질렸다면 한 번쯤 풍요의 대명사 케랄라를 생각해 보자.

〉〉여행정보

한국에서 인도의 케랄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교통편은 싱가포르항공이다. 인천∼싱가포르∼트리반드룸(케랄라의 주도)으로 연결되는데, 기존의 인도 구간에 10만원 정도만 추가하면 된다. 주 자체가 원체 작은 크기라, 시내 교통은 장거리 버스를 이용하거나 택시를 전세내면 충분하다. 케랄라식 해물 커리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케랄라 여행의 보석과도 같은 도시 코친으로 발길을 돌리자. 중국식 어망, 유대인 구역, 카타칼리 관람과 같은 모든 볼거리들이 코친에 모여 있다. 트리반드룸과 코치는 버스나 기차로 5시간 정도면 연결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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