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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윤의 아시아 문화 기행] 인도 파테푸르 시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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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6-27 10:42:01 수정 : 2008-06-27 10: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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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영화' 아름다운 폐허로…
◇광활하게 펼쳐진 성곽구역의 모습.
옛 무굴 제국의 수도이자 타지마할로 유명한 아그라(Agra)에서 불과 30㎞, 느리기로 유명한 인도 버스로도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 1571년부터 1585년까지 단 14년 동안 무굴 제국의 수도로서 영화를 누린 파테푸르 시크리(Fatehpur Sikri)는 그렇게 먼지 풀풀 날리는 도로와 함께 다가왔다.
◇로열 콤플렉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판치 마할.

겨우 14년? 얼핏 봐도 무척이나 공들여 조성했을 법한 이 도시의 짧은 역사는 많은 이들을 의아하게 한다.

때는 무굴 제국의 전성기를 연 악바르 황제 시절. 엄청난 정복사업으로 무굴을 제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그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제위에 오른 지 13년이 지날 때까지 아들이 없다는 것. 남성 위주의 황실에 이보다 더한 고민은 없었다.

황제는 사람을 풀어 영검하다는 예언자를 수소문한다. 다행히 성자는 수도인 아그라에서 멀지 않은 곳, 바로 오늘날의 파테푸르 시크리에 은거하고 있었다. 성자의 이름은 바로 샤이크 살림 치스티(Shaikh Salim Chisti).

이슬람교의 한 분파인 수피의 성자였던 그는 이미 수많은 기적으로 민중의 신망을 받고 있었다. 제국의 황제는 성자를 만나러 몸소 황량한 들판으로 나간다. 동굴 속에서 은거하던 성자는 황제를 보자 빙그레 웃으며 손가락 셋을 펴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 악바르는 힌두 왕국의 공주 출신인 아내 조다 바이(Jodha Bhai)에게서 아들을 얻는다. 황제는 뛸 듯이 기뻐하다 못해 무모한 계획을 세운다. 성자 샤이크 살림 치스티가 있는 벌판으로 천도하기로 결정해 버린 것이다.

성미 급한 황제는 자신의 궁성 일부가 완성되자 공사 현장으로 거처를 옮겨버린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도시의 수명은 겨우 14년에 불과했다. 완공도 하기 전에 수도는 다시 아그라로 옮겨져 버린다. 가장 큰 이유는 물 부족이었다. 최소 50만명 이상이 살 도시에 우물이라고는 고작 20여곳뿐이었다고 한다. 
◇파테푸르 시크리의 시장 풍경.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인도에는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황제들이 있었다. 가장 악명 높은 사람 중 하나는 기아스 우드 딘 투글라크(Gyas ud din Tughlaq). 그는 델리 시내에 자신을 욕하는 방이 붙었단 이유로 수도 이전을 결정해 무려 10만명의 국민을 강제로 끌고 1100㎞나 떨어진 남부 도시로 이동한다. 이 속좁은 황제 또한 새 도시에서 머문 기간은 겨우 8년 남짓. 애꿎은 국민들은 다시 1100㎞를 돌아 델리로 돌아가야 했고, 40만명으로 출발한 수도 이전 원정대 중 살아남은 사람은 10만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파테푸르 시크리는 이후 철저하게 잊혀졌다. 아니 인도인들은 일부러 방치했다. 오늘날 외국인들은 인도인의 즉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파테푸르 시크리를 꼽는다. 도시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작은 마을에 지금은 500호 안팎의 집들이 성곽 아래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해발 40m 작은 언덕 위의 마을은 영검한 성자 샤이크 살림 치스티의 무덤이 있는 모스크 자미 마스지드(Jami Masjid), 황제의 궁성이 모여 있는 로열 콤플렉스(Royal Complex), 그리고 방치된 성곽구역(Ruins City) 등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성자의 무덤에는 수많은 여인네들이 끊임없이 몰려와 기도를 드린다. 우리네 예전과 똑같은 모습이다. 아들만 가문을 이을 수 있는 인도 사회에서 아들이 없는 여인네들은 온 정성을 다해 성자에게 아들을 점지해 줄 것을 기원하고 있다. 종교에 관대한 인도 사회의 특성상, 이슬람 모스크에 힌두교를 믿는 여인들의 기원 행렬이 더 많다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이다.

자미 마스지드 동문을 통해 나가 직진하면 로열 콤플렉스.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성곽 구역이 나온다. 파테푸르 시크리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는 로열 콤플렉스는 ‘돈값’을 한다. 모든 궁전 건물들이 깔끔하게 보수되어 있어 불과 몇 년 전까지 궁전으로 쓰이던 곳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400명에 달했다는 악바르 황제의 수많은 부인 중 첫째아들을 낳은 조다 바이의 궁전이 가장 큰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샤이크 살림 치스티의 무덤.

로열 콤플렉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은 황제의 후실과 시녀들만 머물렀다는 판치 마할(Panch Mahal)이다. 칸막이가 쳐진 작은 방이 무려 350개에 달했다고 한다. 악바르 황제가 시녀들을 말로 삼아 인도식 장기 놀이를 즐겼다는 파치시 정원(Pachisi Courtyard)도 기묘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파테푸르 시크리 최고의 구역을 꼽으라면 누구나 방치된 성곽구역을 선택한다. 로열 콤플렉스가 복원을 통해 원형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성곽구역은 웅장하게 부서진 남성적 잔영이 흩뿌려져 있다. 많은 유적들이 범하는 오류는 아쉽게나마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려는 것이다. 선진국이라면 첨단 기술을 총 동원해 원형에 가깝게 만들 수 있으나, 그게 아니라면 처참한 콘트리트 덩어리이거나 시멘트 흉물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성곽구역 최고의 미덕은 돌과 돌 사이 그리고 그 틈에서 피어나는 들꽃과 잡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폐허도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반파된 성벽의 끝자락 무너져 내린 망루의 기단 위에서 굽어보는, 끝간 데 없이 펼쳐진 인도 북부의 평원과 농촌 마을의 풍경. 이보다 더 완벽한 그림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여행작가

≫여행정보

인천공항에서 인도의 수도 델리까지는 비행기에 따라 8시간30분∼16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델리에서 파테푸르 시크리로 가는 직행 교통편은 없다. 타지마할로 유명한 아그라까지 간 뒤 다시 파테푸르 시크리로 이동해야 한다. 델리∼아그라는 기차에 따라 2∼4시간, 아그라∼파테푸르 시크리는 버스로 1시간이 소요된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시장통이 이어지고, 언덕을 바라보면 자미 마스지드의 정문인 블란드 다와자(Buland Dawaza)의 웅장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미 마스지드→로열 콤플렉스→성곽구역의 순서로 둘러보면 된다. 로열 콤플렉스의 입장료는 5달러. 파테푸르 시크리에는 딱 네 곳의 숙소가 있다.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에 거점을 두고 당일치기로 방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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