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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속의 남미-한국화가 4인의 화첩기행] <3>페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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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6-13 10:55:11 수정 : 2008-06-13 10: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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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빛 춤추는 잉카의 대지 위에 어머니 모습이…
◇보라색 감자꽃과 이름모를 노란색 꽃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모라이 유적지의 목가적인 풍경.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4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페루의 수도 리마는 메케한 매연에 싸여 있었다. 남태평양에 연한 신시가지 미라플로레스 지구와 센트로라 불리는 구시가지로 나뉘어 있는 리마는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에 의해 건설된 도시다. 피사로는 잉카인들에게서 약탈한 금을 비롯한 물품들을 본국에 쉽게 운송하기 위해 안데스산맥 깊숙이 자리한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를 버리고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리마에 신도시를 만들었다고 한다.

신시가지 미라플로레스 지구는 해변을 끼고 있어 바다를 바라보며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붉은 저녁노을이 바다를 물들인다. 절벽 언덕 위엔 나팔꽃이 지천이다. 키스를 해야만 연인이 헤어지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는 ‘연인의 언덕’이라 했다. 키스하는 연인상이 그것을 증언하듯 붉게 타고 있다. 구시가지 중심으로 들어서면 아르마스 광장과 대성당, 식민지 시대의 관청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페루의 어느 도시나 중심엔 스페인 정복시대에 만들어진 ‘아르마스’라는 한가지 이름의 광장과 가톨릭 교회가 위치한다. 식민시대의 유산들이다.
◇나스카 가는 길의 황량한 풍경.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상의 화려한 차양 색깔이 위안이 되는 풍경이다.

리마에서 버스로 6시간 이상을 달려 나스카로 향했다. 넓은 광야에 펼쳐진 정체 모를 그림 ‘나스카 라인’을 보기 위해서다. 대지를 캔버스 삼아 돌을 배열해 그린 그림이다. 하늘에서 바라봐야 윤곽을 드러낼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그림들엔 거미 벌새 원숭이 펠리칸 등 70종류에 이르는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외계인의 우주선 착륙지였다는 설에서부터 고대인들이 별과 우주의 움직임을 그려 놓은 것이라는 얘기까지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미스터리의 대상이다.

30분가량 경비행기로 상공을 날며 구경하는 내내 ‘정말 누가, 왜, 이곳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이런 그림을?’이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늘을 보고 손을 흔드는 사람 모습과 정교하게 그려진 콘드르와 개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화가의 눈엔 대지미술로 비쳐진다. 잉카인의 큰 가슴과 거대한 스케일이 전해지는 듯하다. 평화의 메시지 같기도 하다. 예술가의 직감이야말로 어느 학설보다 정확하다는 점을 믿고 싶다. 
◇김범석 작가가 그린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

페루에 오면서 제일 가보고 싶었던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로 떠났다. 해발 3360m에 위치한 쿠스코로 가는 길은 고산병으로 인해 만만치가 않았다. 이제까지의 여정 중에서 가장 힘든 코스였다. 발걸음은 무겁고 두통과 어지러움으로 적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쿠스코 역시 시가지 중심에 아르마스 광장이 위치해 있었다. 빨간 지붕이 낮게 엎드린 쿠스코의 전경이 특히 인상적이다. 1500년대 초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단숨에 멸망해 버린 잉카제국. 정복자들은 잉카 건축물들을 파괴하고 그 위에 가톨릭 교회와 식민지 관청을 세웠다. 오만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잃어버린 잉카문명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 마추픽추는 쿠스코에서 112㎞ 떨어진 아마존강 원류 우르밤바강 절벽 위 해발 2400m에 세워진 도시다. 산꼭대기에서 1만명이 생활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고 하니 잉카인들의 기술이 놀랍다. 도시 절반이 경사면에 세워져 있고 유적 주위는 성벽으로 견고하게 둘러싸여 완전한 요새 모양을 갖추고 있다. 산꼭대기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위에서는 계곡이 다 내려다보이지만 아래 계곡에서는 어디를 둘러봐도 그 존재를 알 수 없게 되어 있어, 400년 가까이 역사에서 잊혀진 존재였다. 그래서 이름이 ‘잃어버린 도시’라는 뜻의 마추픽추라고 한다.

마추픽추를 둘러보며 새삼 놀란 것은 그 규모도 규모지만 잉카인들의 석축 솜씨다. 지금과 달리 별다른 연장이 없었을 텐데 면도날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오차도 없이, 거대한 돌들을 맞닿게 쌓아올렸다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또 경사면을 따라 펼쳐진 계단식 논의 모습도 신비로웠다. 마추픽추를 한눈에 바라보며 태양을 섬기는 잉카제국이 계속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렀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인근에 위치한 잉카시대 농사법을 연구했던 장소인 모라이 유적지를 찾았다. 목가적인 전원풍경이다. 보라색 감자꽃과 이름 모를 노란색 꽃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잉카인들은 고원지대 작물재배 실험을 했을 것이다. 여행은 때론 낯익은 사물들에 새롭게 다가서게 만든다. 어린시절 시골에서 질리도록 보아온 흰색, 보라색 감자꽃이었지만 새삼스레 감자밭 매던 어머니 모습이 중첩된다. 아마도 잉카의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글·사진=이만수 김범석 박병춘 김경화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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