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레미제라블’의 이색 배우 노진우·홍창진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자리한 대학로연습실. 오는 30일부터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레미제라블’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레미제라블’은 빵을 훔친 죄로 19년을 복역한 뒤 미리엘 주교를 만나 감화돼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장발장의 이야기를 담은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레미제라블’은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 ‘가난에 허덕이고 수치스러운 생활이나 행위를 하고 있는 비참한 사람들’이란 뜻을 담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이상 사회를 건설하려는 빅토르 위고의 열정이 표현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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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레미제라블’의 배우 노진우(왼쪽)와 홍창진 신부. |
“죄수번호 24601 출소”라는 대사와 함께 어두운 표정의 한 중년 남성이 햇살이 비치는 세상으로 나왔다. 그의 이름은 장발장,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목청을 높여 “쳐죽일 놈들, 쳐죽일 세상”이라며 세상과 권력자들을 증오하는 대사를 내뱉었다.
오현경, 박웅, 정상철, 이승호 등 대학로 터줏대감 배우들과 관록있는 여배우들, 20∼30대 젊은 배우 등 모두 40명에 가까운 배우들 가운데 특이한 이력을 자랑하는 두 사람이 눈길을 끌었다. 극의 주인공 장발장 역을 맡은 배우 노진우(49)와 장발장을 감화시킨 미리엘 주교 역으로 연기하는 홍창진(51) 신부다. 배우와 스태프가 개런티를 받지 않고 수익이 생길 경우 수익금을 공동배분하는 방식으로 치러지는 이번 공연에서 홍 신부는 비중은 있지만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연기 중 잠시 짬나는 시간을 활용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노씨는 홍 신부를 향해 “신부님 요즘, 연습에 자주 못 나오시네요. 개막이 얼마 안 남았는데, 좀 걱정스럽네요”라고 하자 홍 신부는 멋쩍은 웃음만 지을 뿐 말이 없다. 극 중 미리엘 주교는 장발장에게 “나는 지금 당신 영혼을 샀소”라고 말하며 감회시키는 존재지만 연습실에서 둘은 각기 다른 배역을 맡은 동료 연기자다. 장발장 역을 맡은 노씨는 실제로 구치소 수감 경험이 있는 중견 배우다. 1986년 군 제대 후 87년부터 연극이 좋아 무작정 연극 무대에 발을 들였지만, 경제적으로 열악한 배우의 길은 힘들기만 했다. 때로는 을지로 지하도에서 노숙도 했고, 산속에 들어가 생활하기도 했다. 돈이 궁한 나머지 ‘조직생활’을 했고, 그 결과 구치소 신세를 졌다. 노씨는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그래도 매년 서너편씩, 지금까지 70여편 연극을 쉬지 않고 한 것 같다”고 했다. 교도소가 아닌 구치소 생활, 시대도 서로 다르지만 미리엘 주교를 만나기 전 사회를 향해 분개하던 장발장의 삶의 일부는 노씨의 삶과도 정서적으로 맞닿아 있다.
“우리 사회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극심한 불공평한 사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장발장 역할이 저에게는 가슴에 정말 많이 와 닿습니다.”
미리엘 주교를 연기하는 홍 신부는 천주교 수원교구 여주 점동성당의 주임 신부다. 프로 연극 무대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 신부는 “연습에 자주 참여하지는 못한다”면서도 “5번 연습해보니 감 잡았다”고 연기력을 걱정하는 주변의 소리를 잠재웠다. 그는 이어 연기력을 뒷받침할 만한 자신의 화려한(?) 경력도 소개했다.
“오페라 ‘토스카’에서는 추기경 역할을 했어요. 물론 대사가 없어 큰 부담은 없었지만요.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서도 신부 역할을 했습니다. 그뿐 아니죠. 장애인의 성 문제를 다룬 독립영화 ‘섹스 볼런티어’에서는 형사 역할도 했답니다.”
홍 신부는 “성당에서 늘 하는 것처럼 하는 배역이지만, 그래도 연극 무대는 처음이니까 큰 실수없이 연기하는 게 목표”라면서 “가능하면 내면연기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 당신의 영혼을 샀소’라는 대사가 가장 맘에 듭니다. 진짜 종교인의 혼을 불어넣어 볼 생각입니다. 용서와 사랑의 힘으로 사람과 사회가 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3만∼7만원. 12월18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02)929-8679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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