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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기행] <2> 나일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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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3-24 17:19:09 수정 : 2010-03-24 17: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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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젖줄’ 모래속엔 세월이 켜켜이 묻혀 있었다 천상에서 흘러온 강이 시간 속으로 흐른다. 오후 내내 배 위에 누워 석양이 내릴 때까지 연안의 종려나무와 나귀와 집과 사막과 새와 하늘을 본다. 수천 년 세월이 속절없이 흘렀어도 람세스가 선단을 이끌고 오르내릴 때나 지금이나 강은 여일하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흐르는 것이 강물뿐이겠는가. 전쟁과 탐욕과 애욕 또한 수천 년 시간에도 풍화되지 않고 변함없이 흐른다. 변한 게 있다면 그 시절 사람들이 나일강의 수원(水源)이 천상이라고 믿었던 데 비해, 지금 사람들은 다소 진전된 문명의 힘으로 명확한 발원지를 알게 된 정도일까. 

◇나일강에 해가 지고 있다. 검푸른 강물 옆으로 종려나무가 자라고 그 뒤편 사막 언덕에 석양이 반사되는 환상적인 풍경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믿음처럼 나일강이 ‘천상에서 흘러온’ 강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리스인 헤로도투스는 대략 2500년 전 이집트를 돌아본 뒤 나일강을 ‘천상에서 발원한 강’이라고 소개했다. 6500㎞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이 강의 발원지가 어디인지 그 시절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남반구의 탄자니아에서부터 시작해 빅토리아호를 거쳐 이집트까지 흘러들어와 지중해로 빠져나가는 이 강의 시원을 당시 사람들이 탐색하는 건 무리였다. 그러니 죽음의 땅 사막 저편에서 흘러오는 나일강은 하늘에서 내려보내는 생명의 젖줄이었다.

1년 내내 비 한 방울 제대로 내리지 않는 사막 지형에 이처럼 풍성한 강물이 가로질렀기에 문명이 싹틀 수 있었던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더욱이 이 강은 그냥 흐르기만 한 게 아니었다. 매년 하지를 기점으로 100일 동안 강물이 범람해 하류를 뒤덮으면서 주변의 넓은 경작지를 비옥한 토양으로 만들어주었다. 헤로도투스는 ‘이집트 기행’에서 “나일 강이 범람하면 이 나라는 바다로 바뀌고 마치 에게해의 섬들처럼 도시들을 제외한 아무것도 수면 위로 나타나지 않는다”면서 “이때가 되면 배들은 더 이상 강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직접 평야지대를 가로질러 항해한다”고 전했다.

◇나일강 크루즈에서 내려 에드푸 신전으로 가는 길에 만난 이집트의 마부 소년.
범람의 원인에 대해서도 그 시절 사람들은 분분하게 의견이 엇갈렸다. 어떤 학자는 계절풍 때문이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눈이 녹은 물이라고 했으며 또 어떤 이는 대양(大洋)의 작용이라고 했는데 모두 근거가 없는 말들이었다. 헤로도투스는 이런 의견들을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 또한 엉뚱한 견해를 피력해놓았다. 태양이 겨울 동안 폭풍에 의해 리비아 쪽으로 궤도를 이탈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의 시각에는 상류지역인 아프리카 사바나 지대에 우기가 닥치면 한참 후에 먼 하류지역인 이집트 나일강의 물이 불어나는 건 당연한 이치이지만, 강의 시원도 몰랐던 이들에게는 범람은 신의 황홀한 선물이요 신비스러운 현상일 수밖에 없었다.

나일강의 범람과 관련한 소설 ‘람세스’의 한 대목이 흥미롭다. 통상 9월 말쯤이면 다시 물의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나일강의 수위계를 관측하던 관리가 상부에 이변을 보고했다. 강물이 줄어드는 대신 오히려 불어난 것이다. 이 소식은 ‘자칼처럼 빠른 속도’로 나라 전체에 퍼졌고 곳곳에서 함성 소리가 솟아올랐다. 저수용 연못을 가득 채우고 건기가 올 때까지 농토의 관개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완전한 기쁨’이라는 수위에 도달한 것이다. 소설에서는 파라오 람세스가 즉위 원년에 ‘기적’을 일으켰다고 썼다. 나일강의 범람이 이집트인들에게 어떤 축복이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하지만 그 신의 선물을 ‘문명의 힘’이 아스완 댐으로 막아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다. 버석버석한 땅에 비료를 뿌려야 겨우 소출이 가능한 죽어가는 땅으로 변해버렸다.

갑판에서 객실이 5층 높이로 올라간 배의 옥상 중앙에 야외 카페가 있고 난간 주변에는 의자들이 놓여 있다. 뱃머리에 놓인 비치 의자에 누우니 사막 지역 특유의 파란 하늘과 강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뱃전을 치고 들어오는 제법 거센 바람도 견딜 만하다. 강 연안에는 종려나무들과 약간의 초지도 보이지만 바로 뒤편은 황갈색 사막이다. 연안 사막 언덕에 토굴처럼 보이는 사각의 집들이 보이는데, 배경 빛깔과 비슷한 그것들이 집이라는 증거는 지붕 위에 솟아 있는 TV시청용 접시 안테나들이다. 유난히 축구를 좋아하는 아프리카인들이라니, 아프리카네이션스컵에서 통산 7회 우승을 과시한 이집트인들에게 텔레비전은 가위 생필품이겠다.

◇이른 아침에 들른 나일강변의 ‘콤 옴보’ 신전. 고대 이집트인들이 신성시했던 나일강의 악어를 모신 신전이다.
지난 밤 아스완을 떠나 나일강 크루즈로 신들의 도시 룩소르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밤에 아스완의 강 위에서 잠들었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배는 그 사이 ‘콤 옴보’에 도착해 있었다. 이른 아침 맑은 주홍빛 아침 햇살 사이로 악어 형상의 신 ‘소백(Sobek)’을 위해 지었다는 신전이 강을 굽어보며 서 있었다. 나일강에 서식하는 악어들을 어떤 이집트인들은 매우 성스럽게 여기기도 했지만 반대로 어떤 이들은 적으로 간주했다고 헤로도투스는 전한다. 신전에서 내려와 다시 배에 오른 뒤 에드푸로 항해했다. 

◇오시리스와 이시스 여신 사이에서 태어난 ‘호루스’의 조상. 호루스는 하늘을 날면서 날카로운 눈으로 세상과 파라오를 감시하는 ‘매’의 형상이다.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인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은 ‘매’를 형상화한 호루스 신을 모시는 곳이다. 호루스는 오리시리스와 이시스 사이의 아들로, 파라오의 직분을 감찰하는 역할이자 그가 곧 파라오의 상징으로 대접받는 이집트신화의 상징적인 존재 중 하나다. 참고로 이집트 국영항공사의 기내지 표제도 ‘호루스(HORUS)’다. 이 신전은 기원전 230년 경에 지어진, 이집트 신전 치고는 비교적 뒤늦게 세워진 것이지만 모래 속에 묻혀 있다가 1860년쯤부터 발굴되기 시작하는 바람에 가장 완전한 형태로 보존된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이 발굴되기 전에는 신전 지붕 위에 농부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 세월이, 모래에 묻혀 있었다.

멀리서 조각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이가 손을 흔든다. 누운 채로 손을 들어 흔들어보지만 그들에게 보일 리 없다. 룩소르행 크루즈 옥상 왼편 하늘로 해가 지기 시작한다. 석양을 향해 누운 채로 연신 셔터를 누르다가 흠칫 놀랐다. 혼자만 누워 있는 뱃머리인 줄 알았는데 연이어 놓여 있는 비치 의자 끝 쪽에 누군가 담요를 덮어쓴 채 누워 있었다. 담요 더미가 꿈틀거려 알아본 것인데, 얼굴을 드러낸 그 중년의 남자는 바람과 풍경은 아랑곳없이 시종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누워 있었던 것이다. 신들의 도시를 향해 나일 강을 흘러내려가는 배 위에 고요히 누워 있는 그가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미라처럼 보였다.

사막 너머로 시시각각 잦아드는 석양의 하늘 속으로 기러기 떼가 보인다. 화들짝 몸을 일으켜 새떼를 향해 셔터를 눌러대는데 새들이 날아가는 하늘 아래로 아늑한 도시가 나타난다. 오벨리스크 같은 긴 첨탑이 상징적으로 솟아 있는 작은 도시 ‘에스나’다. 룩소르 전방 58㎞, 한때 기독교인들에게 모든 신전을 내주었던 곳이다. 배가 서서히 그 도시의 연안으로 다가갔고, 기다란 갑문이 설치된 좁은 틈으로 몸체를 들이밀었다. 서커스를 하듯 갑문을 통과한 크루즈가 어두워지는 에스나를 뒤에 두고 다시 신들의 도시를 향해 나아갔다. 옆쪽 끄트머리에 누워 있는 미라같은 사내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가 얼굴을 돌렸을 때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선홍빛 해가 그의 미소를 잠깐 비추었다. 바야흐로 신들도 이제 자러 가야 할 시간이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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