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한국의 플럼 빌리지를 찾아서 '나에게로 가는 길'] <3> 백련암 아비라기도

관련이슈 세계일보 창간 21주년 특집

입력 : 2010-02-24 02:36:03 수정 : 2010-02-24 02:36:03

인쇄 메일 url 공유 - +

장궤합장의 고통서 ‘본래의 나’를 찾아 경남 합천군 해인사 산내 암자 중 가장 높은 해발 750m 고지에 자리 잡은 백련암은 성철 큰스님(1912∼1993)이 입적 전까지 주석하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취재를 위해 산길을 오르던 지난 19일, 예보 없이 내리기 시작한 눈발이 모든 경계를 지워내며 돌아갈 길마저 지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 눈도 삼키지 못하는 건 소리의 파동. 암자에 다다르자 전각마다 장중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수백명이 입을 맞춘 여성의 합창 소리인 듯, 남성의 절도 있는 구령 소리인 듯 싶은 소리가 양 갈래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성철 스님이 열반한 지 17년째. 선사는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했건만 백련암의 기도 소리는 끊이지 않으며 성철 스님의 뜻을 잇고 있었다.

◇백련암에 모인 수행자들이 장궤합장을 하며 진언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를 합송하고 있다. L자로 허리를 곧추세운 장궤합장 자세를 유지한 채 진언을 합송하는 아비라 기도는 육체에 가하는 엄청난 충격이다.
◆백련암에서 아비라 기도가 끊이지 않게 하라=
암자 밖은 차갑고 안은 뜨거웠다. 고심원, 원통전, 정념당, 장경각 등 4군데의 법당과 전각에 남녀로 나뉘어 아비라 기도에 몰입한 사람들의 숫자는 500명에 달했다. 법당 문을 열자 한겨울에도 후끈한 열기로 안경 표면에 뿌옇게 김이 서린다. 장궤합장(꿇어앉은 상태에서 엉덩이를 들어올려 일직선이 되게 하여 합장하고 기도하는 모양) 자세를 유지한 채 일사불란하게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를 외치는 사람들. 모두가 장궤합장이라는 극도의 긴장상태에서 내 속의 법신(法身·본래의 나)을 깨우기 위해 법신진언을 치열하게 부르고 있었다. “백련암에서 삼천 배와 아비라 기도가 끊이지 않게 하라”던 성철 스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난 17일부터 시작된 아비라 기도는 3박4일간 총 24회에 걸쳐 완성된다. 아비라 기도란 절과 능엄주 독송, 진언 합송을 아우른 종합적인 기도 형태이다. 108배(참회)를 한 후 장궤합장자세로 법신진언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를 30여분간 우렁차게 합송한다. 이어 앉아서 능엄주 독송의 순서로 1회가 구성된다. 나흘간 5회, 8회, 8회, 3회의 기도를 하루씩 나눠서 마친다. 고통이 누적되는 3일째 오후가 되면 체력과 인내가 한계에 달한다.

하지만 밀림처럼 빽빽한 대열은 이탈을 허용하지 않는다. 쓰러지든 일어나든 옆사람 어깨에 걸리고 앞사람 엉덩이에 가로막힌다. 대신 누군가 주저앉으면 일으켜세우고 덜덜 떨리는 손을 받쳐주는 것도 스님의 죽비가 아닌 옆자리 도반들의 손이다. 옆사람과 소리와 호흡을 맞추며 수십명 대중을 한 사람으로 만드는 군기는 ‘해병대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참가자들은 “남의 기도를 도와주다보면 내 기도가 더욱 잘된다”면서 “아비라 기도에 들어오면 우리는 한 배를 탄 선원”이라고 했다 .

성철스님 열반 이후에도 1년에 네 번씩 선원의 하안거, 동안거 결제와 해제에 맞춰 시행되는 아비라 기도 때면 요즘도 꾸준히 500여명의 수행자가 참여한다. 큰스님 열반 후에 일반적으로 주석했던 암자가 썰렁해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철저히 스님의 지도를 배제한 채 재가자들끼리 이뤄지는 기도의 자발성 덕분이다. 부처를 따르지 말고 부처의 법을 따르라 했던가. 오랜 경험자들이 아직 진언과 능엄주 독송이 입에 붙지 않는 초심자들을 이끌며 기도의 호흡과 리듬을 조율한다.

백련암 감원인 원택 스님은 “기도의 주인은 스님이 아닌 자기 자신임을 사람들에게 일깨우고자 아비라 기도를 강조했다”며 “‘무엇을 해달라가 아닌 무엇을 하겠습니다’로 성실히 살겠다는 원을 세우며 몸과 마음의 지극한 정성을 바침으로써 자기 마음을 회개, 정화하는 심신일여의 수행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남을 위해 기도하라=기도는 육신의 조복(조절해서 항복받음)을 이루는 방편이다. 우리 몸의 나태를 고통 속에서 극복해내며 긴장을 유지하게 하는 것. 하지만 쾌적한 설비가 갖춰진 현대식 수행시설들과 대조적으로 1실에 100여명씩 수행하고 합숙하는 백련암 기도는 원시적이다. 밤 9시가 되면 기도 대열이 그대로 취침 대열이 되면서 칼잠을 잔다. 장좌불와 등 수행자로서의 참모습을 보여줬던 성철 스님의 가르침은 쉬운 게 없다. 참가자들은 나약해질 때마다 “성철 스님은 수행 중 ‘등을 대지 마라’고 했다”며 서로를 독려한다.

참가자 중 80%는 아비라 기도를 빼먹지 않는 ‘열성파’다. 나머지 초심자들은 인터넷 수행·명상 카페를 통해 오는 젊은 층이 대부분이다. 일본, 미국은 물론 제주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온다. 22년째 매년 4차례씩 아비라기도에 참석해왔다는 윤우석(58·서울)씨는 “아비라기도를 하면 호흡과 기의 흐름이 억지로 이뤄지지 않고 저절로 된다”면서 “좁은 방 안에서 대중이 일사불란하게 진언기도를 통해 공명 상태에 이르는 것,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록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대중 기도의 원력”이라고 말했다.

수행자들은 절을 할 때마다 ‘일체 중생이 다 행복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마음속으로 세번씩 반복하라고 가르친 성철 스님의 말을 되새긴다. 그리고 남을 위해 절을 할 때 내 심중에 싹트는 변화를 실감한다. 우강민(36·안산)씨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참여했는데 기도 내내 참회의 눈물이 쏟아졌다”면서 “처음엔 무엇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이제 내 삶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고 했다. 30년째 참가한다는 윤태봉(64·대구)씨는 “기복을 위한 기도는 실망을 초래하지만 성철 스님의 참회 기도는 자기를 바로보려는 치열한 싸움”이라면서 “해를 거듭하면서 내 가족뿐 아니라 일체중생의 행복을 비는 기도로 자가발전한다”고 했다.

합천=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아비라 기도란…

아비라 기도란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라는 진언에서 따온 말이다. ‘옴’은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모든 범음의 으뜸이 되는 글자이며, ‘아비라 훔 캄’은 비로자나 부처님의 몸을 뜻하는 글자, ‘스바하’는 회향(廻向)의 의미를 담은 범음이다. 전체적인 뜻은 법신이신 비로자나불의 크신 몸을 상징하지만, 아비라 기도의 가르침은 진언 해석이 아니라 진언을 열심히 염송하는 데 있다. 

타력에 의한 기원이나 스님들에게 부탁하는 기도·불공을 배격했던 성철 스님이 “자기가 지은 악업을 자신의 노력으로 참회하는 기도”로서 아비라 기도를 강조하며 1967년 백련암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처음엔 30명 정도로 소박하게 참여했으나, 81년 성철 스님이 조계종 종정에 오르면서 아비라 기도도 알려져 참여자가 늘어났다. 성철 스님 생전에 750명에 달했던 참가자들은 열반 5주년 기념 아비라기도 때 1000명을 기록했다.

연원은 중국 당대의 총림 수행법으로, 현재는 백련암을 비롯해 전국 성철문도회 사찰 10여곳에서 매년 네 차례씩 3박4일에 걸쳐 행해지고 있다. 서울 정안사, 인천 연등국제선원, 경기 정림사, 부산 해월정사, 대구 정혜사, 제주 법성사 등에서 아비라 기도에 참여할 수 있다.

오피니언

포토

원지안 '청순 대명사'
  • 원지안 '청순 대명사'
  • 이효리, 요가원 수강생 실물 후기 쏟아져…
  • 엔믹스 해원 '눈부신 미모'
  • 박한별, 남편 논란 딛고 여유 만끽…여전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