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산 자락 아래서 길을 잃고 활인선원을 묻는 기자에게 마을 노인이 일러준다. 노인이 가르쳐준 대로 차를 세우고도 10여분 남짓 가파른 산길을 걸어 오르자 반가운 ‘해우소’ 간판이 보인다. 그 뒤로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2만5000여평의 대지에 비봉산을 성벽처럼 두르고 8개 동의 선원 건물이 정갈하게 들어서 있다. 제주도 원명선원 대효 스님이 참선 대중화를 위해 2008년 말 참선전문도량으로 지은 이곳은 전국 각지의 수행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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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5일간의 ‘삼매체험 참선 단식’ 수련회 참가자들이 활인선원 뒤 산길을 걸으며 참선 삼매에 빠져 있다. 안성=이제원 기자 |
◆명상(瞑想)의 길에선 명상(名相·이름과 형상)을 지워라=4박5일간의 선수련 4일째에 접어든 지난 7일, 선원 내 법당은 삼매경에 빠진 수련생들로 깊은 침묵에 빠져들고 있었다. 16세 중학생부터 50대 주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수행자들이 함께 참선하는 법당 안은 늦겨울 산바람을 피하기에 더할나위없는 안식처였다. 새벽 3시30분에 기상해 오후 9시까지 계속되는 수행 프로그램 속에 공양(식사) 시간은 없었다. 무절제한 현대인의 생활습관이 몸과 마음에 함께 병을 불러왔다는 문제의식 하에 죽염을 탄 미온수만 먹으며 일체의 곡기를 끊고 단식과 참선(간화선)을 함께한다. 마음을 수련해 배고픔을 다스리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오히려 집착과 습관적 허기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익힌다. 실제로 참가자들은 “내가 5일 동안 안 먹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놀랍고, 단식보다 더 크게 마음에 일어난 변화가 놀랍다”는 소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참선전문도량 활인선원’이라는 간판을 빼면 이곳은 대규모 자연 속 토굴에 가깝다. 선원 내에는 일체의 불교 장식이나 설명이 없다. 대효 스님은 “선(禪)에는 일체의 명상(名相)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모든 삼라만상에는 본래 이름이 없다. 우리가 특정한 언어나 표현(이름이나 분별), 형상에 갇힘으로써 관념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수행자들에게 주어지는 화두 역시 ‘이 뭣꼬’가 아닌 ‘무엇인가’이다. ‘무엇인가’를 참구해 들어갈 때 ‘이것’ 혹은 ‘내 마음’이라는 대상을 정하는 것도 분별심의 산물이며 번뇌, 망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지난 11월부터 이 곳에서 매주말 운영 중인 행복참선학교에 ‘개근’해 참선을 해왔다는 천주교 신자 공혜랑(56)씨는 “남편과 사별 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중 ‘선’에 관심을 갖게 돼 우연히 이곳을 찾았다”면서 “나를 묶는 쇠사슬은 마음이 아닌 마음의 그림자임을 아는 지혜를 배웠다. 선은 도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평생 정진해야 될 마음의 길”이라고 말했다.
◆수행과정,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새벽예불과 법문, 참선과 행선, 산행, 108배, 중단 반조(나아가던 일을 중단하고 나를 돌이켜 봄)와 묵언, 요가 등으로 짜여진 수행일정 중 가장 호응도가 높은 것은 실참(實參)과 연계된 대효 스님의 자상한 법문이다. 어려운 불교용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깨달음과 부처의 지혜를 찾도록 돕는 법문은 참선의 길잡이다.
“깨닫고 난 후에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깨달음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깨닫고 나면 삼천초목, 삼라만상 고맙지 않은 게 없다”는 가르침에 이어 “원수를 삼으려면 김정일을 원수로 삼지 왜 가까운 가족을 미워하냐. 차라리 길에 나가 모르는 사람에게 태클을 걸어서 원수를 만드는게 낫다”는 법문에선 수시로 웃음이 터졌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활인선원은 참가자들이 각자 ‘자기점검표’를 매일 작성해 선원장 스님과 문답 시간을 갖는 것도 특징이다. 스승을 모시고 공부하며 수행 중 궁금한 것이 있을 때마다 물어보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이곳의 지침이다. 묵언수행 중인 참가자들은 법문과 문답 시간 때면 말문을 열고 활발한 질문을 쏟아낸다.
“깨달은 다음에도 꿈을 꿉니까?”(수행자) “꿈과 거리가 멀어진다. 삶도 허무맹랑한데 꿈은 더욱 그렇다. 깨달음은 잠에서 깨는 것과 같으며 선은 꿈(미혹)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스님)
“‘분심’이 나서 용맹정진하고 났더니 시야가 희미하게 보이더라. 잘못된 것이냐”는 질문도 나왔다. 스님은 “선사들이 목숨 걸고 화두를 참구하라는 말은 참선의 중요성을 얘기한 것이지 용을 쓰고 힘을 주어야 참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참선은 부처의 지혜, 즉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본성을 찾아가는 행복한 길”이라고 설명했다.
언니와 함께 이번 수련에 참가한 김성현(16)양은 “처음 며칠은 몸이 힘들 때마다 울면서 엄마를 원망했는데, 참선으로 내가 달라진 느낌에 원망이 고마움으로 바뀌었다”면서 “친구들과 고민상담으로도 풀리지 않던 게 수련을 통해 뻥 뚫렸다”고 했다. 이경희(56)씨는 “삶의 전쟁터로 돌아가면 불필요한 욕망을 내것으로 만들려는 맹목적인 마음을 중단하겠다. 내게 주어진 능력으로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에 전력을 쏟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안성=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활인선원은…
제주도 원명선원에서 33년째 원명선원을 이끌어온 대효 스님이 경기 안성에 문 연 참선 전문 도량이다. 한 뜻있는 수행자가 비봉산 자락의 부지를 희사해 완성됐다.
4박5일 선수련회에서는 간화선(화두참구) 수행법을 바탕으로 단식과 참선을 병행, 수련한다.
이밖에 활인선원에서는 주말 행복참선학교가 열리며 50일 출가, 100일 출가 프로그램이 계절별로 운영된다. 수행일정 및 위치 문의는 1644-5266, 홈페이지 www. hwalin.net 참조.
제주도 원명선원에서 33년째 원명선원을 이끌어온 대효 스님이 경기 안성에 문 연 참선 전문 도량이다. 한 뜻있는 수행자가 비봉산 자락의 부지를 희사해 완성됐다.
4박5일 선수련회에서는 간화선(화두참구) 수행법을 바탕으로 단식과 참선을 병행, 수련한다.
이밖에 활인선원에서는 주말 행복참선학교가 열리며 50일 출가, 100일 출가 프로그램이 계절별로 운영된다. 수행일정 및 위치 문의는 1644-5266, 홈페이지 www. hwalin.net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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