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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선의 세계 오지 기행]러시아 캄차카 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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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2-22 21:55:52 수정 : 2008-02-22 21: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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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신비 간직한 원시의 땅
◇바다에서 바라본 캄차카의 주도인 페트로파블롭스크 전경.
캄차카 반도의 주도인 페트로파블롭스크에서 동북쪽으로 약 180㎞ 떨어진 크로노츠키(Kronotsky) 자연보호구역은 수많은 야생동식물이 서식하는 곳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 지역이기도 하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간헐천 지대다.

헬리콥터를 이용해야만 갈 수 있고, 제한된 지역을 지정된 코스로만 다녀야 한다. 그곳을 가기 위해 20인승 대형 헬기에 몸을 실었다.

“운이 좋으면 강변에서 연어를 잡아 먹는 곰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크로노츠키 자연보호구역에 속한 게이저 계곡의 간헐천.

승무원은 내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창문 올리는 법도 자세히 일러 준다. 이륙한 비행기가 캄차카 상공을 낮게 날기 시작했다. 작은 샛강에서 흰 새들이 날아오르고 헬기는 어느새 인적이 없는 삼림지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의 흔적이 없는 원시의 땅이다.

헬기는 한 시간 반 남짓 동북쪽으로 날아 게이저(Geysers) 계곡에 우리를 내려 준다. 40여개의 간헐천이 시도 때도 없이 뜨거운 물기둥을 뿜어 올리고, 크고 작은 폭포수들이 온천 강을 만들어 낸다. 여기저기서 뿜어내는 수증기로 인해 온몸이 축축해진다. 그 중 큰 간헐천 앞에 섰다. 마치 큰솥에 물이 끓듯 부글부글 끓고 있다. 조금만 있으면 이곳에서 물이 솟구칠 것이라며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고 했다. 이곳의 간헐천들은 주기적으로 물을 뿜어 올린다고 했다. 드디어 펄펄 끓는 물이 “쉬익 쉬익” 소리를 지르며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있다. 땅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몇 군데 골짜기를 더 둘러보고 산 너머에 있는 우존 칼데라로 이동했다. 상공에서 내려다본 우존 칼데라는 거대한 분화구였다. 이 거대한 분화구는 4만여년 전에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언젠가 가 보았던 탄자니아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크기와 모양이 흡사했다. 이 분화구는 지름이 100㎞쯤 된다고 한다.

분화구 안 진흙 호수에는 하얀 수증기가 피워 오르고 있었다. 관리인에 따르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곰들이 이 진흙 호수에서 목욕을 하며 놀았는데, 헬기 소리에 숨었다고 했다. 호숫가 진흙 위로 곰들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들은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오기 전 몇 달 동안 이곳에서 풀과 열매를 따먹으며 지낸다고 한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이곳 곰들의 숫자가 줄잡아 2만이 넘었지만 지금은 많이 줄었다고 한다.
 
곰들이 좋아한다는 검은 열매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관리인이 열매를 따 먹어 보라고 한다. 달콤한 곰의 간식을 훔쳐 먹으며 원시의 땅을 둘러보았다.

간헐천, 칼데라, 뜨거운 진흙…. 캄차카 반도의 화산활동이 만들어 낸 신비한 자연현상은 마치 외계 어느 행성에 와 있는 듯 낯설기만 하다. 
◇전통복장을 입은 캄차카 반도 원주민 카락족.

페트로파블롭스크에서 서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연어를 만나러 간다. 길 양쪽으로 빼곡하게 늘어 선 자작나무 숲의 사열을 받으며 세 시간 가까이 달려 미스트라야 강변에 닿을 수 있었다. 폭이 100여m는 되어 보이는 강은 완만히 흐르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연어들이 강물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이 강물은 300여㎞를 지나 오호츠크해로 흘러든다고 한다.

안개에 가려 먼 산들은 보이지 않고 강변 언덕으로 ‘이반차이’라는 붉은색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강변에는 곰들이 먹다 버린 연어들이 벌건 속살을 드러내고 버려져 있었다. 먹잇감이 많아서인지 머리와 내장만 먹고 버려 둔 게 많았다.

고무 보트를 모는 이반은 송어 낚시를 하고,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요다처럼 생긴 니콜라이는 노래를 부른다. 니콜라이가 부르는 러시아 민요의 애잔한 가락이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 조화를 이룬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 생각나는 풍경이다. 이반이 내게 낚시를 해 보라고 권한다. 지느러미가 다 해지도록 강물을 거슬러 고향으로 돌아가는 연어들에게 나는 차마 바늘을 던질 수가 없었다.

강변 자작나무 숲을 살피던 내 눈에 시커먼 물체가 나타났다. 캄차카 불곰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이다. “곰이다!” 나는 너무나 놀라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내 고함 소리에 불곰은 환영처럼 나타났다 숲으로 사라졌다. 이곳의 곰들은 대체로 새벽이나 해질 무렵 강가에 나와 연어를 잡는다고 하는데, 저 곰은 아마도 늦잠을 잔 모양이다. 큰 곰 한 마리가 하루 50∼60마리의 연어를 먹는다고 한다.

오늘 야영지는 강변의 ‘이반차이’ 꽃밭이다. 언제 이렇게 아름다운 꽃밭에서 야영을 한 적이 있었던가? 여행이 주는 행복으로 가슴이 뛴다.
◇연어를 낚아 올리는 캄차카 반도 사람들.

래프팅 팀의 리더는 보리스다. 그는 예순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어 보인다. 보리스의 지휘 하에 팀원들은 야영할 준비에 들어간다. 숲에서 죽은 나무를 잘라와 불을 피우고 니콜라이는 음식을 준비한다. 이곳까지 오면서 잡은 송어와 연어가 저녁 메뉴이다. 끓는 물에 감자와 토마토를 넣고, 손질한 연어들을 넣고 끓인다. 보리스는 연어 훈제구이를 준비한다. 뚜껑이 있는 큰 팬에 유칼립투스 나무 이파리를 깔고 양념한 연어를 그 위에 얹고 모닥불에 익힌다. 보드카와 뜨거운 연어 수프로 비에 젖은 몸을 데울 수가 있었다.

건너편 강변을 살피던 보리스가 우리 모두를 불렀다. 보리스가 가리키는 강 기슭으로 검은 물체가 어른거렸다. 불곰이었다. 큰 곰 한 마리에 새끼 곰 두 마리였다. 아마도 가족을 데리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강변으로 온 모양이다. 보리스가 폭약을 연거푸 터뜨렸다. 폭약의 굉음이 어둠을 뚫고 온 산하를 흔들었다. 야영하는 사이 호기심 많은 녀석들이 강을 건너 우리에게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숲과 강의 주인은 저들인데…. 쫓겨 가는 곰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훈제 연어를 안주 삼아 마신 보드카의 힘이 서서히 발휘되는지, 세르게이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넘쳐 넘쳐 흐르는 볼가강 물 위에 스텐카 라진. 배 위에서. 노래 소리 들린다.”

러시아 ‘돈 코사크’ 합창단이 부른 그 노래를 나도 한때 얼마나 즐겨 들었던가. 내가 허밍으로 선율을 따라하자 보리스가 아주 좋아한다. 귀향하는 연어들의 퍼덕임과 곰의 뒤척임, 그리고 스텐카 라진…. 그렇게 캄차카 반도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여행작가



≫여행정보 

캄차카는 오호츠크해, 베링해와 접한 러시아 극동의 반도다. 일본과 같은 환태평양 화산대에 속해 있어 화산이 120여개나 된다. 현재는 한국에서 캄차카까지 직항편이 없어 블라디보스토크 또는 하바롭스크를 경유해 캄차카의 주도인 페트로파블롭스크까지 간다. 비행시간은 4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캄차카 반도에는 화산 트레킹, 래프팅, 낚시, 헬기관광, 크루즈 등 다양한 여행상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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