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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디자인’으로 세계무대 누비는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입력 : 2008-04-15 13:39:05 수정 : 2008-04-15 13: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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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자유, 그걸 실현할 수 있는 영역은 무궁무진”
패션. 이 단어를 어정쩡하게 발음하면 외국인은 세 가지 의미로 착각할 수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특정한 시기에 유행하는 복식이나 두발의 일정한 형식’이라는 의미의 Fashion이고, 윗니로 아랫입술을 가볍게 밟아야 하는 F 발음을 정확하게 못하면 내일 부활절을 앞두고 있는 터에 예수의 수난을 저미는 Passion(受難曲·수난곡)으로 들릴 수 있다. 또 하나, 팝송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단어 passion을 열정, 혹은 격정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한국적인 ‘특수 상황’에서만 가능한 오해일 터인데, 그래서 영어몰입교육이 운위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도 이 세 가지 한국적인 해석은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에게 두루 적용할 수 있는 화두다.

이상봉은 한국 패션계에 30여년째 복무하고 있는 대표적인 디자이너다. ‘앙드레 김’이 국내에서 한국 패션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상징적인 존재라면, 그는 지금 실질적으로 한국 패션의 내실을 세계무대에서 과시하는 존재다. 지난해에도 파리, 상하이, 모스크바를 넘나들며 ‘쇼’를 벌였고, 엊그제(20일)는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가 주최한 쇼에서 모델 20여명에게 다시 옷을 입혔다. 한달 전(2월 24일)에는 파리에서 팝페라 가수 키메라를 초청해 소리와 시각을 아우르며 이상봉의 거듭난 모습을 선보였다. 2005년부터 한글을 옷에 흘려 해외의 전문가들을 황홀하게 만든 그가 만든 드레스 한 벌은 300만∼400만원이 있어야 사 입을 수 있고, 그 가격으로 해외 20여개 국에 수출하고 있다. 그 수출기업의 이름은 ‘㈜이상봉’이다. 이상봉은 국내보다 해외에 더 알려진 이름이었는데, 2006년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하면서 패션 디자이너의 세계를 제대로 모르는 대중에게도 친숙한 이름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지난 20일 오후 7시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린 ‘서울패션위크’에서 디자이너 이상봉이 패션쇼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PASSION 1 - 수난곡(受難曲)

그를 만난 장소는 서울 강남 역삼동 작은 빌딩의 5층이었는데, 그곳은 다양한 한국 전통 가구와 장식들이 어지럽게 배열된 갤러리 같았다. 낮고 호소력 짙은 목청은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미리 접한 터였지만 아래층에서 숨을 몰아쉬며 올라오자마자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의 목소리는 실제 상황에서도 여전히 친근했다. 그의 나이는 아무리 자료를 뒤적여도 없었다. 인터뷰 말미에 들은 이야기인데 , 그는 서른일곱 살부터 나이를 버렸다고 했다.

“나이를 자꾸 생각하면 정신적으로 굳어질 것 같은 느낌인데, 어떻게 보면 발악이겠지만, 디자이너의 (선택한) 망각은 의미가 있지 않나요? 어느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프로의 속성상 그건 꼭 밝혀야 된다고 해서, 그러면 못하겠다고 한 적도 있어요.”



이상봉은 1남5녀 중 외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다. 대단히 평범한 아이였고, 성장기에는 자살을 ‘꿈꾸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동창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제대로 기억 못할 존재였다. 내성적인 문학청년이던 그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서울예술대 방송연예과에 들어가 연극과 만난 건 흥미롭다. 하지만 세상과 만나는 두려움이 하루아침에 어디 가겠는가. 공연을 앞두고 그는 너무나 두려워서 도망가버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서, 가난한 가장으로 대학에 다녀야 했던 그는 친구가 수선집을 하는 것을 보고, ‘먹고는 사는가’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던 기억을 떠올려, 우연히 신문광고를 보고 ‘국제복장학원’에 들어갔다. 알고 보니 학교 가는 길에 있던 가까운 집이었다. 그가 운명을 신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프로 디자이너로 활약하는 80∼90%가 이 학원을 나왔는데, 그는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손에 물을 묻히는 것조차 끔찍이 경계했던 모친이 그가 바느질 숙제하는 모습을 곁에서 물끄러미 넘겨다보다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 FASHION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패션에 대한 선입견을 바로잡는 데 유용한 텍스트다. 말 한마디로 ‘파리, 밀라노, 런던, 뉴욕’ 세계 4대 컬렉션의 스케줄을 바꾸는 전설적인 여자 편집장. 표정 하나만으로도 유명 디자이너들을 가슴 졸이게 하는 그 여자, 패션계의 막강한 권력자이자 미국 ‘보그’지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만든 이 영화에서 시골뜨기 신참 여비서가 함부로 말을 한다.

-저 버클들은 저에게는 모두 같아보여요. 전 아직 이런 ‘물건’들을 잘 몰라서요.

-물건? 오케이. 넌 이게 너랑 아무 상관없는 거라 생각하는구나. 넌 네 옷장으로 가서 그 울퉁불퉁한 블루 스웨터를 골랐나 보네. 왜냐하면 세상에다 넌 네 가방 속에 든 것에만 관심 있다는 걸 말해 주려고. 하지만 넌 그 스웨터는 단순한 블루가 아니라는 건 모르나 보구나. 그건 터쿼즈(Turquoise)색이 아니라 정확히는 셀룰리언(Ceruleon)색이란 거야. 2002년에 오스카 드 렌타가 셀룰리언색 가운을 발표했었지. 그 후에 입셍 로랑이 군용 셀룰리언색 재킷을 선보였고, 그 후 8명의 다른 디자이너들의 발표회에서 셀룰리언색은 속속 등장하게 되었지. 그런 후엔 백화점으로 내려갔고 ‘끔찍한’ 캐주얼 코너로 넘어간 거지. 그렇지만 그 블루색은 수많은 재화와 일자릴 창출했어. 좀 웃기지 않니? 패션계와는 상관없다는 네가 사실은 패션계 사람들이 고른 색깔의 스웨터를 입고 있다는 게? 그것도 이런 ‘물건’들 사이에서 고른!

이른바 ‘명품’에 대한 일반의 이미지는 대부분의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만의 과시용 잔치판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도대체 옷 한 벌에 몇백만원을 들여 입어야 하는 행태를 어떻게 용납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절차를 거쳐 우리가 결국 그 ‘끔찍한’ 캐주얼 매장에서 색깔을 선택하고 디자인을 고르는 구조에 대해서는 미처 몰랐다.

“밀라노와 파리는 치열한 전쟁을 벌여요. 그래서 장관이 패션쇼에 오고 지극한 관심을 보일 정도이지요. 지난번 파리 컬렉션에서도 제가 한글 디자인으로 발표한 의상에 관심을 보였던 파리 통상산업부 장관 크리스틴 리가드가 왔어요. 우리는 말로만 디자인 혁명을 늘어놓지 실질적인 지원이나 관심은 부족한 편이지요. 도대체, 디자인이 적용되지 않는 게 있나요?”

소리꾼 장사익과 화가 임옥상은 편지를 보낼 때 워드프로세서에 의존하지 않고 육필로 사연을 적어 보냈다. 물처럼 흐르는 장사익의 글씨와 촘촘한 임옥상의 편지에 착안한 그는 2000년부터 옷에다 그 한글을 적절하게 활용해 파리 패션쇼에 선보였다. 우리가 아랍문자를 잘 모르듯, 그들에게는 글씨의 내용을 떠나서 ‘그림’으로 받아들였을 터이고,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적인 감성을 패션에 그윽하게 투사했던 이상봉은 신이 났다. 정작 국내 반응은 섭섭하리만치 냉담했다. 지겹게 보아온 한글이 국내에서 특별히 신선할 이유는 없을지 모른다. 



“작년에 모스크바 컬렉션에 갔을 때 고객들이 한글 패션을 입고 오더군요.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예술가에게 진부한 반복은 ‘죽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만두려고도 했어요. 그런데 주변의 반응이 대단히 호의적이고 격려를 해주셔서 지금까지 한글 패션을 쇼를 할 때마다 새롭게 바꾸어서 넣었습니다. 문자라는 건 그것을 생산한 국가나 문명의 총체적인 상징이죠. 우리 한글을 그들이 가슴에, 바지에, 팔에 너펄거리면서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 상상할 수 있겠어요?”

아무 생각없이 티셔츠를 입는데, 가슴 위에 영어가 흘러간다. 제대로 해석해보면 “나를 가져요” 혹은 “나는 이미 당신 것이에요” 같은 낯 뜨거운 문구이지만, 그냥 패션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우리 문화다. 하지만 이상봉의 패션에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흘러가고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 같은 문장이 흐른다. 모스크바에서, 파리에서, 압구정동에서 그들이 그 의미를 알고 입지는 않을 터이지만.

이상봉은 파리 진출 10여년째를 맞고 있다. 2002년부터 기성복패션쇼에 참가해 매년 두 번씩 피를 말리는 쇼를 연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국 패션쇼에는 일반 관객이 90%라면, 파리에서는 전문가들만 참여한다. 그들의 눈빛만 봐도 그날의 성공과 실패를 예감할 수 있다. 이상봉을 평가하는 사람들 중에 그를 기리는 이들은 “디자이너가 존경할 수 있는 디자이너”라는 말도 나오고 “유명해지고도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세계 20여개국에 자신의 이름을 건 옷을 수출하는 한국의 디자이너는 왜 그리 겸손하고, 자신이 부족하다고 죄인처럼 되뇌는지 궁금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어요. 자유, 그걸 제대로 실현하고 싶은 욕망.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라는 소설, 비행기에서 읽었는데, 그이야말로 정말 자유인이더군요. 패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스위스 브랜드 찻잔(‘유라’라는 브랜드인데 그는 그 잔에 진한 커피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아파트 인테리어(부천 중동에서 건설되는 60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좌우 벽에서 그의 메시지를 만난다), 은밀한 속옷, 심지어는 담뱃갑(‘에세’라는 담배의 특별 에디션 판을 그가 디자인했다)까지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이름의 내 주관이 통용될 공간은 무궁무진해요. 우리가 같이 느끼고 공감하는 거죠.”
◇지난 2월 파리 컬렉션 당시 백스테이지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이상봉과 외국 모델들.

# PASSION 2 - 열정

“내가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면 자살했을지도 몰라요. 세상과 융합을 잘 못했거든요. 나는 상처를 받는 편이에요. 하지만 그 상처는 오기와 같이 있어요. 한글 패션은 물론이지만, 내가 제일 먼저 나의 실험을 입고 다녀요. 친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니까.우리 회사 직원이 80여명인데 모두 반대했어요. 하지만 내가 먼저 입고 그들에게 익숙하게 만들었어요. 이해는 하지만, 우리 것에 대한 내국인들의 ‘익숙한’ 편견, 제발 버렸으면 좋겠어요. 제가 휴대전화 디자인도 하고, 패션은 짧은 절기에 스쳐 지나가지만 수십년 묵묵하게 버틸 아파트에도 관여하고 폭넓게 움직이는 이유는, 디자인이라는 장르의 짧지만 긴, 그 생명력 때문이지요.”

정작 평균적인 패션 감각도 모자라는 사람이 한국 패션 디자이너 중 대표적인 명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사실, 문제이긴 하다. 어쨌든 겉에서 보기에 화려한 패션쇼니, 그 쇼에는 유명 연예인이나 한품에 안길 가는 허리의 모델들이 즐비하게 등장하니, 얼마나 화려할까.

“제발 선입견을 버려 주세요. 옷로비 사건 같은 것 때문에 왜곡하지 말아주세요. 프랑스 패션쇼에 그 나라 장관(한글 디자인에 매료된 프랑스 장관은 이상봉이 쇼를 할 때마다 나타났다)이 왜 나오겠습니까? 바야흐로 디자인 전쟁입니다(앙드레 김은 삼성의 에어컨에 자신의 문양을 입혔다). 기술이 디자인을 이끄는 게 아니라, 디자인에 기술이 아부하는 시대입니다. ‘데카르트 디자인’(기술·Tech라는 의미와 Art가 결합된 신조어), 그건 우리 삶의 미래이자 대세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당연한데, 실제 우리 정부가 이 대세를 준비하는 모습은 그리 든든하지는 않네요.”

자료를 뒤적이다 보니, 그의 딸이 지난해 결혼했는데 직접 웨딩 드레스를 만들었다는 토막 소식이 있었다.

“어떻게 그런 것까지 물어요? 사실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인간의 몸이에요. 자연은 인간을 위한 배경인 것 같아요. 1, 2㎝ 정도의 증감은 수십년 이 직업을 하다 보면 감을 잡아요. 내 딸, 내가 늘 부족해서 걔를 초등학교 때부터 다그쳤는네 어느날 일기를 훔쳐보니 죽고 싶다는 얘기가 있대요. 너무 힘들었어요. 그 아이가 뉴욕에서 패션 일을 해요. 결혼할 때 아빠의 웨딩 드레스를 입고 싶다고 해서 감동했고, 내 딸이 이렇게 가냘프구나 하는 걸, 수도 없는 여자들의 몸을 만졌으면서도 내 딸에 대해선 첨 알게 돼서 울컥했어요. 그 딸이 알려줘서 원룸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고, 요즘에는 회사가 아니라 거기서 자요. 패션, 그건 나를 자살하지 않게 만든 열정이고 사랑입니다.”

생태탕으로 점심을 나누며 에필로그를 이어갔다. 슬쩍 내미는 ‘촌지’ 두 품목. 헤비스모커인 필자에게 내미는 이상봉 디자인 한정판 담배 ‘에세’ 한 갑과 빨간 넥타이. 대중에게 알려주고 싶은 옷 잘 입는 법 팁 하나를 요구했더니, 그는 ‘용기’라고 화답했다. 그 빨간 넥타이, 그녀를 만날 때 매고 갈 수 있을까?

글 조용호, 사진 김창길 기자 jhoy@segye.com
영상 김경호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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